소설리스트

거울의 길-79화 (79/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11)

루벨은 날아드는 박쥐들을 침착하게 응시하며 양손을 번갈아 가며  휘

둘렀다. 마치 통나무를 연상시키는 굵고 단단한 루벨의 팔뚝이 한번 박

쥐 떼들과 충돌 할 때마다 한번에 2,30여 마리가 피를 터뜨리며 동굴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박쥐들을 루벨이 전부 막아낼 수 는 없는 일이었다.

곧 박쥐들은 루벨의 몸 구석구석에 붙어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

이며 루벨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넣으려 했다.

"쯧쯧..... 내 근육이 너희들의  이빨로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이더냐."

순간 루벨은 전신의 근육에 힘을 가했고, 막 이빨을 박아 넣으려던 박

쥐들은 더욱 단단하게 팽창한 루디의 근육을 뚫지 못하고는 용을  쓰며

바둥거렸다. 그러나 그 중의 몇몇은  용케 이빨을 찔러 넣어서,  둥글게

생겨난 상처로 조금씩 배어 나오는  혈액을 게걸스럽게 빨아대고 있었

다. 하지만 루벨의 얼굴엔 평상시의 유들유들한  미소만이 떠오를 뿐이

었다.

"뭐, 마음 것 먹어둬. 어차피 다시 나의 몸 속으로 들어 올테니까."

한참동안 동굴 안을 가득 울리게 했던 박쥐 떼들의 소음소리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 소음의 규모가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완전히 사라져 버

렸다.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박쥐들의 먹이가 전부 사라졌던가, 아

니면 도망쳤다는 것인데, 박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쉽게도  그 두

가지 사례가 전부다 이 침묵의 이유는 아니었다.

"천 마리... 더 되려나."

루디는 자신의 몸 군데군데에 미약한 흐름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핏줄

기들을 손으로 쓱쓱 닦으며 사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박쥐들의 시체

를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아직 죽지 않고 미약한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막강한 루벨의 힘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루벨은 그것들을 전부 모아 동굴 한쪽  구석에 쌓아놓았다. 아직 들어

가 보지 못 한 동굴의 깊은 곳이 많이 남아 있었으나 루디는 현재로써

는 굳이 그곳으로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루디는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이란 잡아놓

은 박쥐들의 가죽을 벗기는 일이었다. 물론 박쥐의  가죽에 볼일 이 있

는 것은 아니었다.

루디는 사실 북부 자치도시 파울드의 뒷골목 출신이었다. 도시의 형편

상 여러 가지 가정문제나 연애문제가 속출하는 곳 이여서 도시에  부모

가 없는 아이들은 상당한 숫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며 서로 패거리를 만들어 구역을 정해 식량과 잠자리를

확보하곤 했는데, 도시 측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한 보호시설이 있기는

하였으나, 갑갑하고 지루한 그곳의 생활보다는, 조금 배고프고 조금  고

달프다 하더라도 자유로운 뒷골목의 생활을 선택한 그들이었다.

루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원래 루벨에겐 7살  때까지는 용병 일을 하

던 아버지가 살아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고아는 아니었는데,  단

지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드라킬스와의 전쟁에서 죽어간 그 수많은 용

병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린 루벨에게  찾아 온 것이었다. 물

론 처음엔 아버지가 남겨준 약간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나갔으나, 나중

에는 결국 허름한 집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거리로 나온 것이었다.

루벨은 어릴 때부터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거리 아이들의 대장노릇

을 맡아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으나 워낙

그 세계에서 활약상(?) 이 뛰어났으므로 차츰 그를 따르는 아이들이 늘

어났고 결국은 하나의 집단을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13살 때는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다른 구역의 소년 다섯 명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를 거둔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루벨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카

젯이었다. 그는 루벨의 구역에서 작은 여관을 하던 가난한 부부의 막내

아들이었는데, 성격이 활달하고 몸이 빨라 어느 날 시비가 붙어 루벨과

한번 싸우게된 날 이후로  말이 통해서 서로 친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 빠른 몸놀림과 천부적인 싸움실력으로 루벨을 도와

다른 구역의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내가 개도 먹어봤고, 고양이도 먹어봤으며,  쥐도 먹어봤지만, 박쥐는

또 처음이군. 뭐, 다 그게 그거아니겠어."

한참이 지나고 드디어 천 여 마리 박쥐들의 껍질을 능숙한 솜씨로  전

부 벗겨버린 루벨은 일단 한쪽에 모아둔 껍질 벗긴 박쥐 대여섯 마리를

한번에 입안으로 집어넣어 뼈 째 우드득거리며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

비린내와 악취가 보통사람은 냄새도 맡기 어려운 심각한 것이었으나 루

벨은 그것을 날걸로 먹으면서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리고 잠시 후 다 씹은 그것들은 가볍게 목구멍으로 삼켜버리고는  짧은

감상과 함께 다시 여러 마리를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음, 뼈는 아그작 거리고, 살은 쫄깃하군. 그런데......"

루벨은 두 번째 역시 가볍게 삼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기는 역시 야채와 함께 먹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벽에 붙어있는 이끼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하여, 루벨은 원래 박쥐를 피해 더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곳

에 준비된 무기(나무막대)로 박쥐들을 처리한 뒤 역시  그곳에 있는 식

량을 먹으며 계속되는 박쥐의 공격을 막아내는 힘겨운 이번 관문을, 박

쥐고기에 이끼를 곁들이며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동굴 안쪽에

는 더 많은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었으나 이번 루벨의 행동을  파악했는

지, 더 이상은 덤벼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나중에 모아둔  고기가

다 떨어져 다른 식량확보를 위해 더 깊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간 루디의

먹거리 신세가 되어있었다.

지식의 탑에서 하룻밤을 보낸 킬츠일행은 루디의 강력한 주장으로 지

식의 탑 구경도 할 겸 하룻밤을 더 묵어가기로 했다. 루디는 이미 아침

부터 신이 나서는 이리 저리로  구경나갔고, 뉴린젤도 '몸을 씻으러  간

다'라고 말하고는 안내해주는 마법사를 따라 방을 나섰다.

방은 양 구석으로 네 개의 침대가 놓아져있는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었

다. 방 가운데에 작은 테이블이 하나있었고 그밖에는 분 반대편의 벽에

나있는 튼튼한 창문정도였다.

킬츠는 혼자서는 도저히 나갈  엄두도 나지 않고,  나가봤자 그로써는

그다지 볼 것도 없을 것이 분명했을 것이므로,  역시 길이 좁아 이동에

불편함을 느끼던 쥬크와 함께 방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쥬크는 방 가

운데를 가득 차지하며 납작 엎드려 있었고 킬츠는 그런 쥬크의  등위에

누워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문을 두드리며 밝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13인의 마도

사중 한 명인 이트라이였는데, 방안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표정은 어제

의 평소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웬 일로."

킬츠는 가볍게 몸을 튕기며 쥬크의 등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테이

블로 와서 앉았고, 이트라이 역시 테이블로 와서는 킬츠를 마주보며 앉

았다.

"저... 동료 분이신 루디 님에 대해서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

니다."

"루디형이요?"

"네. 어제 클라스라인의 매직길드에서  보내왔던 자료들을 훑어보다가

루디 님에 대한 것을 보게되었거든요."

이트라이는 잠깐 말을 끓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킬츠를 바라보았다.

"알고.. 계십니까? 루디 님의 정신에 존재하는......"

"절망의 정령 말입니까?"

"... 네."

킬츠가 한발 앞서 대답하자 이트라이는 약간 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령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음......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했다던가 하는 것은 그 절망의

정령에 함께 봉인되어있다는 펠리치오 님의 정신에게서 들었습니다."

킬츠가 예전에 루디의 정신을  컨트롤하고 있던 펠리치오에게서 들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트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랫입술을

깨물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요. 한 도시와 그곳에 살고있는 수천, 수

만의 인간들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간....하지만 루디 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답니다."

말을 하는 이트라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절망의 정령이 폭주할 때는 소유자의 알마스를 대량으로 증폭하여 위

력을 발휘하지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절망

의 정령을 폭주시켰던  정령사의 알마스는 평범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루디 님은 다릅니다. 그분의 알마스는 A클래스예요.  만약 폭주할 경우

이번에는 도시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라 하나가, 혹은  이 대륙 전체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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