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78화 (78/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10)

"이제 나오십시오, 루벨 님. 1차 관문이 다 끝났습니다.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철로 된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어둠만이 가득 차있던 방안에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벨은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찌푸리

며 그 거대한 몸을 천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가? 배고파 죽겠구먼."

루벨은 몸에 묻어있는 먼지를 툴툴 털어 내며 방밖으로 나가기 시작했

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그의 얼굴엔지루함과 배고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정신상태로 1차 관문을 보내었는지 알 수  없었던

루벨은 한달 내내 지루함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처음 방에 들어오고 나서 단 다섯 끼만에 대부분의 식

량을 전부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어

느 불쌍한 누군가에게 엄청난 허무감을 안겨준 이 행동은 곧  식수조차

다 마셔버림으로써 결말이 나버렸고, 남은 기간동안  쭈욱 세면대에 몸

을 기대고 잠들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하였

다. 그리고 그 이후 20일 이상을 세면대의  물만 마시며 굶어왔던 것이

었다. 당연히 두려움이나 공포, 긴장 따위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지

루한 관문이었다.

"저기, 신관 님. 배가 고픈데 어디 먹을 거 없나?"

"관문을 진행하는 도중엔 지정된 식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드실  수

없습니다."

단호한 신관의 말에 루벨은 입맛을 쩝접 다시며 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을 나온 루벨은 신관을 따라 전에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

작했다.

"저기, 그건 그렇고,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지? 왜 나 혼자인지...."

관문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과 함께  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파악한

루벨이 의아해 하며 묻자, 신관은 조용히 계단을 걸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최종선발전의 관문이 전부 끝날 때까지 수련생들은 서로를 볼

수도, 또 서로의 관문 통과 여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음 관문으로 떠났거나 아직 저 방안에 남아 있구요."

신관은 서로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으나 마지막 말 안에  들어있는

속뜻을 조금만 파악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뭐... 이런 시시한 관문에서 다른 녀석들이 탈락했을 리가  없지...... 나

야 식사 량이 좀 많아서 고생했지만.....'

그것은 수련생들 가운데 오직 단 한번도 미지의 적과 조우하지 못하는

행운을 누렸던 루벨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잠시 후. 계단을 다 올라가고, 수련관의 1층으로 나와, 다시 신관을 따

라 수련관 밖으로 나간 루벨은 그곳에 대기중인 말을 타고는  어디론가

또 다시 신관의 뒤를 따랐다.

'신관이면서 말도 잘 타여~~~~'

그리고 한참을 따라간 루디는 이미 신전 터를 벗어나 법왕청 뒤에  있

는 작은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 신전에서 천천히 말을 타고 대

략 20분 정도 의 거리에 위치한 낮고 규모가 작은 언덕 같은 산이었다.

산은 클라스라인 수도의 중앙에서 약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루벨은 말에서 내려, 신관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그곳에 대기중인 말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보다 먼저 이

관문에 도착한 수련생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 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두 번째 관문입니다."

선 중턱쯤에 도착한 신관은 그곳에 나있는 큼지막한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관문은 역시 한 달 동안 이곳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동굴 안으

로 계속 들어가다 보시면 바닥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는 곳이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바닥에  써있는 지시를 따르고  그곳에서 1달을

보내시면 됩니다. 한달 후에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음, 그런데, 저기, 안에 먹을 것은 있수?"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루벨이 말하자, 신관은  살짝 웃으며 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아.... 차라리 몬스터들과 겨루라는 것이라면 더 좋겠는데 말이야... 그

러면 그놈들을 잡아먹을 수라도 있지......"

인간과 몬스터의 식습관이 뒤바뀌어 버린 무시무시한 말을 중얼거리며

루벨은 동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굴은 약간의 습기가

차있었으며 온도가 약간 낮았다. 영하까지는 안 된다고 하여도,  따뜻한

클라스라인의 겨울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였다.

바닥에 있다는 붉은 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던 루벨은 주변에 발광물

질을 포함한 듯한 이끼들의 도움으로 주변을 비교적 정확하게 볼 수 있

었다. 사방의 벽들엔 각종 이끼들이 산발하여 돋아나 있었고,  군데군데

약간씩 물이 고인 웅덩이도 보였다. 그리고 그밖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단순한 관문이군.......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지? 식사 량을 조절

하기 위한 수행의 일종인가? 그러면 나는 정말 곤란한데....."

중얼대던 루벨은 이윽고 바닥에 그어진  붉은 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조금 더 안쪽의 바닥에 서있는 희미한 글씨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빨로 손가락을 깨물어 약간의 상처를 내시오.-

"아니..... 내 피를 빨아먹기라도 하라는 건가....."

루벨은 하, 하고 가볍게  웃으며 일단 하라는 대로  손가락에 상처를

내었다. 그러자 곧 상처에선 약간이긴 하지만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대였다. 무엇인가 끽끽거리고, 바글거리는 소리가 더 깊은 동굴

안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루벨은 곧 그  정체불명의

소리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박쥐' 떼였다. 박쥐는 그 크기가  대략 어린아이 주먹만한 것들

이었는데, 아무래도 흡혈 박쥐인 듯,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맹렬하게 루벨

에게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루벨의 손가락에  흐르는 피 냄새를

맡은 듯 했다. 그러나 눈에 핏발이 선 것은 박쥐들만이 아니었다.

이런 순간이라면, 보통 사람, 아니 설사 패러딘 나이트라 하더라도  놀

라거나,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루벨의  반응

은 조금은 달랐다. 표정에 웃음이 떠오르며, 온 몸에 있는 두꺼운근육

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포식 할 수 있겠군.... 음, 육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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