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9)
성의력 667년 12월 16일. 텔핀을 출발하여 북부자치도시연합의 도시,
파울드를 향하던 남부자치도시 연합의 자유기사 1만 7천은 식량과 여분
의 무기를 싫은 보급 수레와 함께 20여일 만에 클라스라인 법국과의 국
경에 도착하였다.
지원 자유기사단을 통솔하고 있던 3성기사인(기사의 계급 중 가장 높
은 계급. 1성, 2성, 3성. 순서대로)나이트 네프일은 국경을 통과시켜주는
클라스라인의 국경 수비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유유히 서쪽 대로를
빠져나가 클라스라인과 북부자치도시연합의 국경을 향해 북진을 계속했
다. 아마도 보름정도 더 걸려야 클라스라인 북쪽의 국경을 빠져 나와
남아있는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네프일은
하나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미 북부자치도시 연합에서 클라스라인으
로 완벽한 국경통과 공문을 보내, 허락을 받았다는 킬츠일행이 가져온
문서에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클라스라인의 국무총관 프레이어 공작의 노
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나이트길드의 대외담당관 키발드에게 직접 공문
을 전달받은 프레이어는 혼자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법왕청의 귀족들에
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비밀스럽게, 그리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
여 남부자치도시의 군대가 국경을 통과시키게 하라는 명령을 남부자치
도시와의 국경, 그리고 북부자치도시와의 국경 수비대에 각각 전달 한
것이었다. 그리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은 법왕청의 귀족들이 모조리 들
고일어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프레이어 공작은 이에 대해 시간 관계상 부득이하게 회의에 부결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했다고 밝히며 흥분한 귀족들의 설득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신들을 무시했음이 분명한 이번 처사에 귀족들의 불만에 골이
깊게 패어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자리를 위해, 전년도 패러딘 나이트 수
석 선발 자까지 국외로 쫓아버린 그들이었다. 결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덕분에 두 군데의 국경을 무사히 통과한 남부자치도시연합의
지원군은 성의력 668년 1월 22일에 미리 도시 파울드의 후방에서 대기
중인 드라킬스의 정찰부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수요는 기병으로
대략 500여기. 황급히 놀란 정찰부대는 황급히 기수를 돌려 본진 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대 총관인 마인슈의 작전
으로, 이미 발견한 그들 정찰부대를 일부러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
남부자치도시 연합의 지원군과 조우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된
다면 드라킬스는 자치도시연합의 지원군 가세소식을 더 빠르게 알 수
있을 테고, 더 이상 전략적으로 가치가 없는 북부자치도시연합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할 의지를 더욱 빠르게 재촉할 수 있었다.
"눈앞에 적군이 지나가는데....... 그냥 놔두다니 기분이 좀 묘하군. 이것
도 다 작전이렷다?"
당시 텔핀의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있던 용병단의 천인장, 크랭크는 자
신의 뛰어난 시력을 과시하듯이 저 멀리서 조심히 이동하는 드라킬스의
정찰대를 발견하고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는 무료하다는 듯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폈다. 이미 정찰대가 지나갈 것을 예측한 대 총관의 지
시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유기사단의 지원이라고? 클라스라인 녀석들이 잘도 국경을
열어주었군."
자신의 붉은 질풍의 기사단을 이끌고, 북부자치도시연합과의 최전선이
자 클라스라인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네르담 성에 주둔 중이던 드래곤
나이트 디트마리스는 자신의 비룡이자 별명이기도한 비룡 '전장의 폭풍'
에게 먹이를 주다가 황급히 달려온 정찰대의 보고를 받았다.
"아무튼 잘된 일이야. 이로써 확실하게 쓸데없는 낭비병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군. 우리의 목적이야 일단 클라스라인이니까."
드라킬스 최고의 용장이자 맹장으로 불리는 이 젊은 사령관은 계략과
는 차원이 먼 강직한 인간이었으나, 순수한 전략만큼은 그 식견이 매우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그 동안의 북부자치도시 연합 점령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철벽의 기갑단 사령관인 나이트 파리퀸, 그리고 자신과 드래곤
나이트 동기이자 이제는 본인의 의지로 이름이 없어져버려 그냥 미카드
론 군으로 불리는 드라킬스 제 2기사단의 사령관인 미카드론과 함께 드
라킬스의 3대장군으로 불리고있었다.
지금 그가 보살펴주며 먹이를 주고있는 '전장의 폭풍'은 머리부터 꼬리
까지의 총 길이가 55세션(약 4.4m)에 달하는 드라킬스가 자랑하는 전투
비룡으로 드래곤 나이트들 중에서도 10명 이내가 소유한 귀한 전력이었
다. 비룡에 탄 드래곤 나이트는 그야말로 공중병기로써 기병 100여명과
혼자 겨루어도 전멸을 시키고 마는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룡들은 드라킬스의 국가에서 대대로 길러오는 특별한 품종으로 일단
길들여지면 주인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하는 무척 편리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비늘과 긴 목과 꼬리를 가진 이 비룡은 바로 드라킬스의
상징이기도 했다.
디트마리스에게 보고를 받은 드라킬스의 참모 진들은 일단 남은 북부
자치도시연합의 점령은 유보하고, 현재 훈련중인 대규모의 신규 쿠스나
이스와 보병들이 현역으로 전투 가능한 내년 말, 즉 성의력 669년 10월
이후에 총 병력을 동원하여 클라스라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최종 방침을
내렸다.
"그렇게 결정 났다고 합니다. 미카드론 님."
몸살이 났다는 핑계로 참모회의에서 빠지고 자신의 저택에서 차와 독
서에 푹 빠져 있던 미카드론은 회의의 결과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부관
자벨에게 자신이 막 탄 향긋한 차를 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너무 시기를 늦추는 것이 아닐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만."
자벨은 내년 말이라는 총공격의 시기를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
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현재 있는 병력으로 클라스라인의 국
경을 뚫고 여러 개의 성을 점령하여, 그곳에서 장기전으로 버티다가 내
년 말에 준비되는 신규병력을 지원하여 그 여세를 몰아 클라스라인의
전 영토를 점령한다는 전략이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병력이 증강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되네."
미카드론은 이마로 내려온 자신의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가볍게 뒤로
넘기며 손에 들고있는 차의 향기를 깊게 들여 마셨다.
"병력을 집중하는 게 싸우기도 쉽고, 피해도 더 적지 않겠나,"
미카드론은 용병의 가장 기초적인 것을 설명하며 잠시 발코니 너머의
창 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나라의 식량사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네. 이
번 가을에 거둔 식량으로는 우리 전군이 내년에 전투하기에 모자란 감
이 있어. 아마 총 참모장님도 그것을 계산하고 내년 말에 전쟁을 시작
한다고 하였겠지 음험한 구석이 없지 않은 분이긴 하지만, 길게 내다보
는 전략적인 식견은 무척 뛰어나거든."
미카드론의 말에 자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손에 들고있는 찻잔
을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차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나,
특히 홍차에 있어서는 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자신의 상관덕분에
접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전쟁을 시작하면, 우리가 승리하겠지요?"
"글세, 확실히 병력면에선 우리가 우세하지만, 클라스라인의 패러딘 나
이트가 워낙 유명하지 않나. 예전의 북부자치도시 연합처럼 호락호락하
지는 않겠지."
미카드론은 순백의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패러딘나이트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용병가로써의 재능까지 알 수
는 없었지만, 그들의 무력은 결코 드래곤나이트에 뒤질 실력이 아니었
다.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부패한 귀족들에게 실망한 클라스라인의 국민
들에게 가히 신앙처럼 받들어져있는 존재가 바로 패러딘 나이트인 것이
다. 그 강인하고 고결하며 긍지 있는 모습이, 클라스라인이라는 국가가
현재까지 최고의 부유한 나라로 일컬어지며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원동
력인지도 몰랐다.
아직까지 드라킬스 공국과 클라스라인 법국이 전면전을 벌인 역사는
없었다. 단지 천사성국의 엔젤나이트와 더불어 패러딘나이트와 드래곤
나이트가 대륙 3대 기사단으로 불렸기 때문에 그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글세, 디트마리스라면 한번쯤 붙어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나
는 조금 내키지 않는걸.'
미카드론은 그러다가 자신의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과연 몇 명의 여성
의 울음을 터뜨리게 될지 상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자신도 자신을
사모하는 여성들이 국내외에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정작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설사 자신이 통솔하는
군대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잔의 홍
차와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성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다던 가, 아니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직까지도 자신의 기억 속에 생생이 남아있는 한 여성 때문에 그
러는 것일 뿐.
"자, 홍차 한잔 더하게나 자벨. 평화는 있을 때 소중히 다루어야지, 언
제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가벼운 것이라네."
"우리 국왕페하의 야심대로, 대륙이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면 영구한
평화가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일세, 설사 대륙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인
간이 살고있는 이상 영구한 평화란 지속될 수 없어. 인간은 결코 언제
까지나 머무르려 하는 종족이 아니거든. 어떻게든 변화하려고 하지."
미카드론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방안에 가득 차있는 향긋한 공기를 천
천히 들이마셨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적어도 후에 나의 손자 뻘 되는 아이들이 전쟁과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 그리고 그들이 자
라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힘으
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