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72화 (72/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5)

'포기는 안 된다.'

키사르는 태연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냉정한 자신을 되찾아가기 시작했

다. 현재 경과된 시간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직은 한 달을 채우

기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식수는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이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또 한번

빈틈을 보이다간 그것마저 끊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물

이 있다면 남은 기간을 버티는 것은 문제없으니....'

키사르는 침착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곳에서  버틸 나날을 생각했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인간인 이상 잠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잠에 들어 빈틈을 보이면 바로 그 '누군가'가 먹

을 것을 가져가 버리니...... 짧은 순간동안 여러 가지의 방법이 그의  머

릿속에 빠르게 검색되어 갔다. 그리고 결국 결정된 것은 지극히 간단한,

하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 방법이었다.

'그 누군가를 제거한다.'

애초에 근원을 제거한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동안

불안에 떨지 않고, 먹을 것에대한 걱정도 없이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근원을 제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키사르는 남아있는 약간의 고기  조각을 뜯어서 천장을  향해 던졌다.

일단 확인을 하기 위해 살짝 던졌는데, 고기조각은 천장에 닿지도 않고

곧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역시 이곳에서부터 천장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마도  100세션

(약 8m)정도.... 더될지도 모른다.'

천장의 높이가 높이인 이상, 조용히 벽을  타고 기어올라 상대를 먼저

기습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가지였다.  바로

상대를 이곳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일단 한참을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시간이 얼마정도 흐르고 난

뒤, 제풀에 쓰러진 것처럼 벽에 기대며 쓰러진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연기를 할뿐이지 정신은 바짝 세우며 그자세로 잠이 든 것처럼  가만히

쓰러져 있는 다. 그리고  곧 빈틈을 보였다 생각하고  천장에서 내려올

누군가의 기척을 재빨리 알아채고 최대한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단숨에 쓰러뜨린다. 이것이  일단 키사르가 세운  작전이었는데 장래에

적의 정보를 분석하여 높은 차원의 전략과 정확한 전술을 사용하는  용

병가를 희망하는 그로써는 최초로 세운 실전용  작전이었다. 물론 아군

은 자신 혼자였고 작전지역은 극히 좁으며, 적군에 대한 정보는 기껏해

야 어둠에 능숙하다는 정도밖에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그런 대

로 가능성은 있었다. 아니, 그 밖의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별 수  없이

선택했다는 말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넉 놓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방의 벽을 기어올라  상대를 공격할 수도 없

었다.

그리하여 결정된 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를 완

벽히 속이는 연기력과 자신의 살기를 감추는  자제심, 그리고 연기도중

실제로 잠들지 않기 위한 집중력과 일단 적을 포착했을 때 번개같이 기

습하는 행동력이 있어야 했다. 이것은 모든  전술의 기본으로 다채로운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서 용병가가 갖춰야할 필수 조건이었다.

일단 작전이 세워진 이상 자신의 집중력이 또 떨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작전을 시작하는 편이 좋았다. 키사르는 곧 불안함이 가득 담긴 신음소

리를 내며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마다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기도 했으며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

도 했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본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대

한의 리얼리티를 살린 음성적인 효과를 곁들였다.

정말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일단 자신의 작전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 그리고  장래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연습해둔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키사르는 연기에 온 정신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 다른 한편은 자신이 작전을 시작하고 나서 흐른 시간과 걸음걸이를

계산하여 자신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

았다. 한가지의 목적을 위해 한번에 다방면으로 생각하며 그 여러 가지

의 생각과 결론은 종합하여  상황에 따라 다시 재해석하는  것, 그것은

바로 키사르의 주특기였다.

'이쯤 하면.... 됐을 것이다.'

그렇게 방안을 맴돌다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키사르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 점점 방안을 돌아다니는 속도를  늦추어 가더니, 급기야

한쪽 벽에 기대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숨소리를 고르게

내며 조용해 졌고 적에 대한 살기를 억제하며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는

고난도의 정신 컨트롤 능력을 보여주며 작전의 막바지에 돌입하기 시작

했다. 기회는 단 한번이었다. 실패하면 결코 또다시 함정에 걸려들 리가

없었고, 다른 방법도 없었다. 언제나 실전에서의 중요한 기회는 단 한번

인 것. 그 기회를 잘  살리느냐, 아니면 허망하게 놓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었다.

'단, 한번의 기회뿐이다.'

그의 품속에는 식량상자 속에 들어있었던 작은 쇠막대기가 다  한번의

기회를 노리며 키사르 대신 곱게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키사르의 집중력도 점점 한계에  닿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아직 기척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벌써 몇  일

째 잠을 자지 않은 것인지, 키사르는  알 수 없었다. 상대는 계속  편히

자신을 지켜보다가 빈틈이 보이면 유유히 내려와 행동하니  키사르로써

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부스럭

그때 어떤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순간 키사르의  집중력도 날이

선 칼처럼 날카롭게 집중되었다. 드디어, 그 누군가가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온다......'

그는 한쪽의 벽을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바로  키사르가 기대고있는

벽에 정 반대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내려오다가,  소

리도 나지 않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랬구나..... 저쪽 벽의 일정 높이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같

은 것이 놓여있었군.'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설마 했던 천장과의 이동통로가 존재했던  것이

었다. 키사르가 만질 수 없는 높이부터 나있었기 때문에 손으로는 확인

할 수 가 없었다.  키사르는 무척 교묘한 수법이라고  생각하며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의 움직이는 기척이 키사르의 육감에  뚜렷

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워낙 지금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모

르지만, 일단 어둠 속에서 적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

인 일이었다. 아니였다면 설사 상대가 근처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정확히 공격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누군가는 바닥으로 내려와서는 소리내지 않고 걸으며 키사르가  기

대있는 벽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세면대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

에 와서는 세면대에 물이  나오는 수도관을 이리저리 만지는  듯 했다.

아마도 이번에는 세면대의 물 공급을 끊는 듯 했다.

'이때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한 키사르는 재빨리 일어나 자신이 낼 수 있는  최

대한의 속력으로 상대에게 뛰어들며 동시에 품속에 넣어 두었던 쇠막대

를 꺼내들었다. 상대도 그런 키사르의 움직임을  눈치 챘는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는 듯 했다.

"하압!"

이제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킬 필요가 없는 키사르는 날카로운 기합소리

를 내며 자신의 유일한 무리를 휘둘러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속

도나 기세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그 길이가 짧아

서 인지, 상대는 키사르의 움직임을 읽으며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상대는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해내었

다. 키사르도, 그 누군가도 서로의 동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어둠 속에서도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여 다음행동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

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결국 구석에몰렸고 상대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 닳은 키사르는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최후

의 일격을 날리었다.

"으악! 항복!"

그때 상대가 다급히 소리치지 않았다면,  키사르의 쇠막대는 누군가의

머리를 으스러뜨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상대가  일단 항복의 의사

를 밝힌 이상 부득이 키사르가 살인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1차 관문은 이제 끝난 것입니까?"

키사르는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무뚝뚝한 말투로 상대에게 질문을  던

졌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끌끌 혀를 차며  키사르의 어깨에 손을 얹으

며 말했다.

"그렇다네, 훌륭한 견습 패러딘 나이트여. 그런데 이렇게 아무 것도 보

이지 않는 곳에서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군."

그는 일단 키사르에게 눈을 감고 있으라고 말 한 뒤 걸음을 옮겨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눈을 꼭 감고 있어야 하네!"

그러자 일단 그를 믿어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키사르의 눈꺼풀 사이를

강렬한 빛이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불빛이라 어

둠에 익숙해진 키사르의눈이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서 그는 눈을  감고

있어라 했던 것이었다.

잠시 후 불빛에 익숙해진 키사르는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궁금했던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천장은  바닥에

서 약 80세션쯤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한쪽구석에 받침이 있어

어딘 가로 통하는 길이 나있었다. 그리고 받침은 바로 방으로 내려오는

사다리 모양의 조각이 되어있는 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감쪽같이 속았네 그려. 설마 그게  함정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

는데, 연기가 아주 뛰어나더구만."

지금까지 키사르를 말못할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30대 후반의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는 다시 방으로 내려와서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등잔을 방 한가운데로 놓아두었다.

키사르는 대답 없이 조용히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는 곧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나이트 토우스. 바로 90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을 통과한 성기

사라네. 하하."

"그랬군요."

키사르는 자신의 움직임을 읽으며 구석에 몰리기 전까지 완벽하게  공

격을 피해냈던 것을 생각하며 그다지 놀라하지 않았다. 다만 명색이 패

러딘 나이트란 자가 이런 곳에서 새파란 견습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

이 놀라울 뿐이었다.

"아직 이 관문이 끝날 때까지 10일도  더 남았는데, 내가 자네에게 당

하고 말았으니 이 관문은 끝일세. 대충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번 관문은

수련생의 침착성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초점이었거든. 하지만 자네

는 침착성과 냉정함은 물론 오히려 나를 유인하는 계책까지 세워서  이

렇게 나를 항복시키고 말았으니, 자네  정말 대단해. 이름을 듣고  싶은

데."

"키사르. 키사르 제노렘."

"좋은 이름이군 키사르 군. 사실은 자네가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

내가 자네를 찾아가 설명해주려 했네 만, 이미 이렇게 다 알아버렸으니

그럴 필요는 없겠군."

"그렇다면 저도 다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의 최종 선발에  이런 역할

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키사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느끼며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때가 오면,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하지는

않겠노라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럼, 편하게 나머지 열흘을 보내기  바라네. 나는 먼저 나가있을  테

니. 저쪽 천장의 통로는 밖으로 통하게 되어있거든. 하지만 자네는 일단

이곳에서 나머지 열흘을 보내야 하네. 규정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성기사 수여식 때 다시 만나길 바라네."

나이트 토우스는 빙긋 웃으며 다시 사다리를 올라 천장 너머로 나있는

통로를 통해 방을 나갔다. 물론 빼앗았던 식량과 가죽 주머니에 담아두

었던 식수는 돌려준 다음이었다.

그제야 키사르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약 20일만에 정말로 편안

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단단하고 냉기가 맴도는 돌  바닥이었으나,

지금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침대보다도  더욱 부드럽게 느껴질 뿐이었

다.

'이제... 첫 번째는 통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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