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4)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몸 속에 시계를 갖추지 못한 키사르로써는
알 수 없었다. 대략 사흘정도 지난 것 같지만 그것도 정확한지 알 수는
없었다.
사흘 전, '누군가'에 의해 바닥에 떨어졌던 것은 식량상자 안에 있는
것과 동일한 빵의 부스러기였다. 확실히 누군가가 저 천장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건가....'
키사르는 천장에 거구로 매달려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박쥐인간을 상
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천장은 구조가 이중으로 되어있어 누군
가가 그곳에서 편안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키사르는
지난 며칠(?)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언제 올지
모르는 기습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일단 방 모서리에 등을 기
대로 앉아 등뒤로부터의 기습에 대한 위협을 피하고, 미약하나마 무기
로 쓸 수 있는 쇠막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누가 생각했는지.... 대단하군. 게다가 이것은 최종선발전이니까 빈틈을
보였다간 습격을 당하고 불합격될지도 몰라.'
키사르는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천장을 포함
한 불특정 다수의 공간을 응시했다. 언제, 어디서 몇 명이나, 혹은 몇
마리나 공격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
라 할지라도 결코 그냥 당할 키사르의 실력은 아니었다. 그의 검술솜씨
가 같은 방을 쓰는 동료들 중에서 가장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일단 4년
간의 수련을 마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화이트 나이트 10여명이
동시에 달려든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
키사르는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급수대의 수도꼭지
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소리를 느끼기 시
작했다.
'이 소리는.......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키사르는 자신이 환청을 듣고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랫동안 소리
를 못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곳에서 들릴지도 모르는 소리를 그의 머
리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결론은 내렸다. 천장, 혹은 정면 어디에선가 그
를 노리는 누군가가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부스럭거릴
리도 없었고, 분명히 수도꼭지는 완벽히 잠가둔 상황이었다.
'대단한.... 관문이군. 과연 엄청나게 긴장시킨다. 하지만, 그냥 당하지는
않아......'
그러나 아무리 키사르라고 해도 몇 날 몇 일을 같은 자세로 수면을 취
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그는 천천
히 내려가는 눈꺼풀과 고개를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이.... 들었었나.... 이런.'
정신을 차린 키사르는 얼마나 잤는지도 파악할수 없는 자신의 한심스
런 상황을 속으로 한탄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자신이 자고있는 사
이에 그 누군가는 자신을 공격해 오지 않았었다.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아무런 위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착각인가....'
키사르는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얼굴을 닦고는 식량이 있는 돌로 된 상
자를 향해 걸어갔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어둠뿐이었지만, 대략적인
방의 구조와 거리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벽에 부딪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식량이....... 줄어들었다.'
키사르는 남아있던 식량이 절반정도 줄어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다
시 섬짓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빈틈을 보이면 절반씩 식량을 가져간다 이건가.......'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했다. 현재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
었지만 만약 앞으로 서너 번 정도 빈틈을 보인다면 식량이 남아나지 않
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식량은 내가 직접 가지고 있으면 된다. 오히려 내게 직접적
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군.'
키사르는 안심하며 식량을 전부 꺼내와 자신의 등뒤에 놓고 다시 모서
리로 가 앉았다. 이렇게 하면 설사 키사르가 잠든다 해도 그를 건드려
야만 식량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즉시 깨어나 상대를 공격
할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조금 안심하고 잘 수 있겠군........'
'졸았나........'
긴장이 풀렸는지, 금새 깜빡 잠에 든 키사르는 등뒤의 식량이 무사한
지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식량에 대한 위험은 없
어진 것이었다.
이윽고 식사를 끝내고, 키사르는 물을마시러 물통이 있는 곳으로 걸
어갔다. 이미 깨어 있는 상황이니 모서리에 놓아둔 식량을 가져갈 염려
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때를 틈타 누군가가 그의 식량을 가져가려
접근한다면 기척을 느끼고 바로 달려갈 준비도 되어있었다.
"이... 런......"
키사르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손으로 물을 뜨러 물통에 손을
넣은 순간, 일정한 높이까지 차있어야 할 물이 만져지지 않은 것이었다.
남아있는 물은 고작해야 통의 10%정도. 바닥에 겨우 찰랑거리는 정도
였다. 날짜로 따지면 아껴먹어도 열흘 이상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설마 물을 가져 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
는데.......'
바가지로 퍼갔는지, 아니며 바닥에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밑으로 물이
빠지는 장치가 되어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위험했다. 식량, 식
수에 대한 문제도 문제였지만, 지금 키사르가 느끼는 심한 피로감과 무
력함, 그리고 절망감이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합쳐져 공포라는
소용돌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눈앞에 자신의 손을 갔다 대어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두움. 그야말로 어서 저쪽 벽에 붙어있는 철문을
두드려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는 없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저 변경의 도시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
을 거라 믿고있는 한 소년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키사르
의 모든 것을 배신하는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