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70화 (70/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3)

"에, 지금까지 힘든 수련을 훌륭하게 거친 여러분 견습 패러딘 나이트

들 께 먼저 라프나 대신전의 대 신관으로써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뿌

듯함을 느낍니다."

며칠이 지나 드디어 최종 선발전이 시작되는  날의 아침. 오늘은 평소

처럼 아침을 휴페리온 천 번 휘두르기로 시작하지 않고, 남아있는 견습

패러딘 나이트들이 모여 1층 수련 실에서 대 신관의 축전을 듣게  되었

다.

"비록 정원에 약간 못 미치는  적은 수의 수련생들이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여러분  개개인들의 지금까지의 성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우수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약  1년 후, 이 자리

에 다시 모일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대 신관은 확신에 가득 찬 분명한 어조로 힘있게 수련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 다시  모인다....... 그렇다면 지금은  각자 헤어진다는 것인

가?"

다운크람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펠린도 약간의  의아

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거쳐야할 최종 선발전은 모두 일곱 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문은, 여러분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을 요구 할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잘 훈련받은 건장한  어른

병사라 하더라도 결코 한달 이상을 버티기 어려운 정말 힘든  관문들입

니다."

"어이구, 이거 겁주는데. 무서워라."

루벨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작게 말하자 카젯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

정으로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화이트 나이트도 우리의 4년간의 수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걸."

"오랜만에 옳은말을 하는군."

다운크람이 카젯의 말을 듣고 대꾸하자, 카젯의 찌푸려진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다운크람... 나한테 무슨......."

"자. 전 여러분의 강인함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14명

전원이 모두 신전과 국가에 봉사하는 영광스런 패러딘 나이트가 될  것

으로 확신하겠습니다."

대 신관은 간략하게 축전을 끝내고는 무릎을 꿇은 14명의  수련생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차례대로 축도를 하며 신의 축복을 기원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대 신관은 바삐 서둘러 수행 신관들과 함께 신전을  빠져

나갔다. 이번에 잠시 대 신전에 들린 것도 방금 전의 축전만을 하기 위

한 것으로 대 신관은 현재 종교계에 큰 비상이 걸려있는 북쪽의 국경지

방에 생성된 다크핵사곤의 결계문제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

는 중이었다.  이미 협조를 얻기 위해 드라킬스  공국이며 세디아 황국

이며 안 다닌 곳이 없는 대 신관이었으나, 현재 클라스라인의 외교적으

로는 전혀 실리적이지는 못하지만 물량적으로는 전폭적인 협력과  북부

자치도시연합의 미세한 지원, 그리고  매직길드의 마법사들의 도움만이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에게서는 매정한 거부의 의사를 들어야 했을 뿐

이었다. 덕분에 아직도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의 대 신관으로써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중이었다.

"대 신관도 정신없이 바쁘겠지. 다크핵사곤의 결계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으니......"

세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킬츠와 장로, 그리고 그밖에

마을사람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제발 대 신관의  노

력이라도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렌이었다.

"그건 그렇지,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신전의 대 신관은 대륙 종교계

의 중추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 정령의 신, 스피리스트의 신전

쪽은 애초에 정령사들의 배출에만 정신이 팔려있고.  운명의 신 데스튼

신전의 사람들은 언제나  운명 어쩌고 하면서  세속에 통 관심이  없으

니.... 우리 대 신관 님의 어깨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겠어."

다운크람도 세렌의 말에 동조하며 다른 신전 사람들의 무책임을  비꼬

았다. 키사르가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초반에 함께 신경을 쓰던  다른

두 개의 신전이, 최근 들어  결계문제에 손을 떼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스피리스트의 신전이나 데스튼의 신전은 라프나의 신전처럼 한  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물량적인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신께 봉사하는 사람들이면서 어쩌면  대륙에 큰

파문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이번 사건에 나 몰라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잘못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냐?"

그들의 대화가 이해가 안  가는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카젯이 돌연히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그들 여섯과 나머지

여덟 명의 수련생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수련관의

지하로 통하는 '비밀'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

기 그들을 이끌고 수련관 1층의 강당으로 향한 신관이 2층으로  올라가

는 두 개의 계단 사이에 있는 빈 공간 앞에 서서는 이리저리 벽을 만지

더니 갑자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의 입구가 열린 것이었다.

계단은 마치 한없이 이어져 있는 듯 한참을 내려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아무 말 없이 선두에 서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신관

이 들고있는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하여, 완전한  암흑의 공간을 조심스

레 내려갈 뿐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카젯이 신관에게 무어라 질문했으나, 신관은 고개

를 저으며 도착하면 알려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용히 따라서 내려오기만 해주세요. 도착하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카젯은 불만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궁시렁 거렸으나 별 수 없는  일이

었다. 신관의 말 맏다라 그야말로 조용히 그를 따라 내려갈 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 높이가 작고 촘촘히 만들어져있으며  원형

으로 뺑글뺑글 돌며 내려가는 나선모양의 구조라 대략 5층의 높이쯤 내

려갔다고 생각되는 깊이였으나, 다 내려가는데 반  크락 가까이 걸리었

다. 그리고 결국 도착한 곳은, 음습한 지하통로로, 통로 벽마다 500세션

(약 40m) 간격으로 작은 철문이 하나씩 달려있었다. 극히  어두워 세렌

들로써는 그 통로의 길이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었으나 대

략 30여 개의 철문이 존재하는 듯 했다.

"여러분의 최종 선발전 첫 번째  관문은 각자 저 철문 건너편의  방에

들어가 한 달 동안 버티는 것입니다. 물론 식량과 물은 미리 안에 준비

되어 있습니다. 세면대와 화장실도 준비되어 있구요."

"엥? 그게 무슨 관문이야?"

카젯이 이상해 하며 소리치자 그들을 안내한 신관은 가볍게 미소를 지

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각자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방안은 완전한  방음이니 아무리

소리를 치셔도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만약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신

분들은 문을 세게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아무도 포기하지 않을걸,"

카젯이 재차 장담하며 말했고 카젯의 말이라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일에 취미를 가지고있는 다운크람조차 함께 의아해 할 정도였다.

"총 일곱 개의 관문이라고 했으니 나중 관문을 위해서  장기간 휴식을

가지라는 건가?"

다운크람으로써도 이번 관문에 대해 그 정도 이상의 해석을 하지 못했

다. 그 동안 매일 5천 회씩 휴페리온을 휘두르며 고통스런 수련을 반복

해 왔던 그들로써는 아무도 이번 관문에 대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가

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관의 지시에 따라 다들 철문을  열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철

문은 무척 오래되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수월하게 열렸다.

"그럼, 한달 뒤에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이제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약간 의미심장한 듯한 신관의 목소리가 14명의 견습패러딘 나이트들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말이, 그들이 앞으로 한달 동안  들

은 유일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단.... 한 점의 빛도 없다.'

방안으로 들어온 키사르는 완전한 어둠의 공간에서 홀로 서있는  자신

을 발견했다. 처음엔 약간 어지러울 정도였다. 눈을 뜨고있음에도  불구

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무척 묘한 기분이었다.

키사르는 일단 문 옆에 있는 벽에 손을 집고,  천천히 벽을 따라 이동

하기 시작했다. 방의 크기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방은 전에 여섯  명이

함께 쓰던 방 정도의 크기의 완전한 정 사각형으로 되어있었고 한쪽 벽

엔 방금 그가 들어온 철문이, 그리고 그 건너편 벽엔 급, 배수처리가 되

어있는 세면대와 변기(?)가. 그리고 나머지  3면의 벽에는 각각 식수로

사용하라는 듯한 커다란 물통과 말린 고기, 빵 등이 담겨진 돌로 된 상

자가 각각 따로 놓여 있었다.

'세면대는 그렇다고 해도, 왜 식량과 식수를 따로따로.......'

키사르는 약간의 이상함을 느끼며 곰곰이 생각했다.  역대의 패러딘 나

이트들 중 그 누구도 밝히지 않은 최종 선발전이라 정보에 능통한 키사

르조차도 그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른 모든 수련생들은 그저 쉬어 가는  코스 려니 생각하고 있겠지만,

키사르의 머릿속은 이미 각종,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해 다방면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적어도 패러딘 나이트를 선발하는 최종 심사인데,  그

저 휴식을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할 리는 없다는 결론을 내

리게 되었다.

한 달. 키사르는 그것에 관문의 초점을 맞추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

고, 자신 이외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한 달간을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

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일뿐, 만약 그것이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4년간의 고통스런 수련을 자 참고 견뎌온 그들로써는 그야말로  편안한

휴식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너무 과민 하는 것인가?'

키사르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식량이 담겨져  있

는 돌로 된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상자는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

옮겨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에 담겨있는 식량은 얼마든지  옮겨 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 손을 만지고 냄새를 맡아 식량들

의 수량과 종류를 확인하던 키사르는 상자 안에 무엇인가 이상한  물체

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길이가 6~7세션 정도

되는 얇고 긴 쇠 막대였다.

'이런 곳에 왜 쇠막대가?'

키사르는 그것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어보며 더욱더 증폭되어 밀려오는

의문점들을 해석해야만 했다. 막대기는 단순한 강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끝이 뾰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것이었다.

키사르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암흑의 방, 사방으로 갈라져

있는 생필품들, 한 달이라는 기간, 그리고 이 쇠막대를 하나로 연관지어

무엇인가를 추리해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두뇌를

소유한 그에게 있어서도 그것들을 연관지어 새로운 사실을 밝혀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키사르는 일정

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방에 흩어진 생필품

각각의 것들을 얻기 위해선 비교적 방안의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한 달이라는 기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외부와 완전 단절된 체 긴 시간을 보내야함 즉 여

러 가지 방면에서 불안함을 가져다줌.

-완전한 어둠

그야말로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미지에 대한 불안함을 가져다준다.

여기까지의 결론은 바로 '불안감' 이었다.  아무래도 이 공간과 배경은

인간의 특이한 느낌중 하나인 불안감이라는 것을 증폭시키기 위한 일종

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쇠막대

이것에 대한 의문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두려

움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불안감에서 인간을 지

켜주는 물건이라면 몰라도.

'잠깐.... 그렇다면?'

키사르는 갑작스런 공포가 자신의 정신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쇠막대, 이것은 갈이나  봉, 그 밖의 '무기'를 연상시키

는 것으로 '무기' 는 자신을 공격하오는 '적'을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이었

다. 그렇다면, 이곳에 이런 쇠막대가  놓여져 있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이곳 어딘가에 있는 '적'을 상대 할 수 있는 무기

라는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적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물론 아무리 눈을 씻어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설마......'

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군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키사르의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가 이방을

한번 쭈욱 돌아다니며 확인을 해보기는 하였지만 사실 아무 것도  보이

지 않는 이상 다른 누군가가 없다고 단정 내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키

사르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아니 확인하지 못한 장소가 한군데 남아있

었다.

'천장!'

키사르의 머리 위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장.  그러나 그 천장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 철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신

관이 들고있던 불빛에 어렴풋이 보였던 방안의 모습이었지만 너무 순식

간에 문이닫혀서 미처 천장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눈에 확인하

지 못한 만큼 그 높이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보통 수련생들은 나 같은 결론을 내리려는  생각을 애초에 가지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첫  번째 관문을 준비한 사람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테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키사르는 불안한 마음을 느끼며 그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

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방안 어딘가에 '탁' 하고 무엇

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결코 키사르의 행동에 의한 결

과가 아니었다.

'나 말고 누군가가 이방에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