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67화 (67/166)

제 5장. -사막의 도시- (11)

조금 시간이 더 지나자 제 2 경비대와 제 3경비대도 현장으로  달려와

서 난동을 부리는 시민의  진압에 나섰다. 물론 말이  진압이지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공격해 오는 그들을 경비대로써 그냥  막

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 경비대의 칼날 앞에 목숨을 잃었고,  극

히 일부는 겹겹으로 포위되어 다중으로 포박에 묶여 생포되었다.

"분명히 자신들의 의지는 아니었겠지만......."

킬츠는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경비대와  밧줄

에 칭칭 감겨서도 난동을 부리는 소수의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도 처

음에는 다리나 팔 같은 급소가 아닌 부위를 공격하여 단순히  시민들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으나 팔이 잘라지던, 다리가 끊어지던 일말의 고통

을 느끼는 표정도 없이 경비대를 공격해 가는 그들을 살려둘 수는 없었

다. 적어도 킬츠의 손에 의해서 그 움직임을  멈춘 시민들만 해도 서른

명 가까이 되었다.

"귀 공의 도움에 경비대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

니다."

자신이제 1 경비대의 대장이라고 밝힌 게림쿠라는 사내가 멍하니  서

서 시내의 길가에 널린 시민들의 시체를 응시하고 있는 킬츠에게  감사

의 인사를 하였다. 그러다가 언제 또 보았는지, 곧 북부 자치도시  연합

에서 사신으로 온 킬츠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소문으로 들은 파울드  성

벽에서 그가 벌인 일전에 대해 감탄의 탄성을 끊이지 않고 터뜨렸다.

"아니, 상관없어요. 우방국의 사신으로써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끈질기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그의  부

탁을 물리치고, 킬츠는 저 멀리서 혼자 불꽃을 일으키고 있는 루디에게

로 걸어갔다.

"펠리치오..."

"아니, 루디야. 킬츠."

이미 루디로 돌아와 의식을 차리고 있던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

히 서서 양손에 작은 불꽃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곳의 주

변에 있는 그의 친구들의 조각을 하나씩 불태우기 시작했다.

"왜........"

"내 동기들이야.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

"그렇다면 모아서 묻어주기라도 하면 되잖아."

"아니, 마법사는 죽으면 화장을 해야해. 누군가가 언데드로 부활시키면

곤란하거든...... 물론 이 녀석들은 그럴 염려도 없겠지만...."

조용히 한발씩 걸으며 천천히 불꽃을 쏘아내고 있는 루디의 표정에 점

점 슬픔의 그림자가 번지기  시작했다. 약간 파랗게 질린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정말 몇 안 되는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었는데..... 너무도 허무하게 가

버리는구나."

"루디형......"

"킬츠... 난 네가 너무 부러워....."

조금씩, 조금씩 루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넌 소중한 사람을 만들 수 있잖아..... 누구에게나 너의 속마음을 터놓

을 수 있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네게로 다가오지. 소중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소중한, 내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씩 내

곁을 떠나가.....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잃

은 만큼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야 할텐데......"

루디는 그중 유일하게 육체가 남아있는 베키트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그곳으로 불꽃을 떨어뜨렸다.

"그게..... 잘 될 것 같지가 않아........"

"위대한 마스터 오브 네크로맨서시여, 헤릭사와 연결되어있던 마계와

의 계약이 끊어졌습니다."

페이오드왕국과 드라킬스의 서북쪽  국경지방에 위치한  루히스 산맥.

그 산줄기를 드라킬스와 페이오드, 심지어는 천사성국의 일부까지 뻗어

내린 대륙에서 가장 광대한 규모의 산맥이다. 그리고 그 산맥 어딘가의

깊은 계곡에 위치한 어느 작은 산장. 이미  폐허에 가까운 그곳의 지하

에 다트휴먼의 본거지 중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

다. 오직 그들 다크휴먼들만이 비밀스럽게 출입 할 뿐.

"스키리스, 그냥 젝트라고 불러. 이름을 길게 부르면 짜증나니까....."

"그럼, 젝트 님. 다크 위자드 헤릭사와 연결되어있던........"

"그렇다고 두 번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다 이해했다구.... 제길."

실존하는 다크휴먼의 네크로맨서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현재 네크

로맨서의 마스터자리를 가지고 있는 젝트의 충실한 심복이기도 한 스키

리스는 일을 보낸 헤릭사의 몸에 누군가의 위해가 가해진 사실을  파악

하자마자 곧바로 젝트에게 달려갔다.

"알았으니 나가봐라.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네. 위대한 마스터 오브 네크로....."

"그냥 젝트라고 부르랬지!"

"네. 젝트 님."

아마 리치라도 저 정도로 말귀를  못 알아듣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

며, 젝트는 자신의 의자로 몸을 던졌다. 그의 방은 특별히 네크로맨서의

마스터답게 어두 침침하거나, 음산하거나, 살벌하지  않게, 어느 저택에

서나 볼 수 있는 약간은 고풍스럽고 평범한 방이었다.

"역시 카루반 님의 수하라서 그런지 실력이 형편없군........ 쳇, 가뜩 인

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그런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뒈져 버

리다니....."

그러나 말투 하나 만큼은 네크로맨서의 마스터답게(?) 심히 더러웠다.

반백의 회색 머리에 흰자만이 번득이는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거의 평이

한 젊은 얼굴로 어느 도시에나 찾아볼 수 있는 건방지고 교양 없는 불

한당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대부분의 다크위자드와 리치들은 다크핵사곤으로 투입되었고..... 남은

것은 우리 네크로맨서들과  약간의 잔당들..... 이것만으로  전 대륙에서

발생 가능한 일말의  방해를 전부 막아내라는  것은 너무 심한  과제인

데...... 게다가 벌써 하나는 물 건너갔을 듯 하고."

젝트는 혼자 기분 나쁜 말투로 중얼거리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

렸다. 수 백년을 이어오다 이제서야 그 완성을 볼 수 있게된 그들의 길

고 길었던 계획. 오직 그 계획을 이룩하기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몸

을 피해왔고, 멸망의 위기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어쨌든, 지금은 두 노인네의 소원을 이룩하기  위해  두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야 하겠어. 나도.... 진정한 진실은 알고 싶으니까."

젝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번뜩였다. 결코 그 목적과 결과를 알 수

없는 그들의 계획. 사실은 다크휴먼 자신들조차 그 계획이 불러올 결과

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오직 대대로 내려오는 그들의 숙원이었기 때

문에 역시 그들의 숙원이 되어 진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야. 이런걸 보고 일하는

사람과 돈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하지..... 크큭....'

-5장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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