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사막의 도시- (10)
인간의 속도를 능가하여 금방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킬츠의 눈엔 처
음부터 그 근처에 혼자 쓰러져있는 회색 로브차림의 마법사, 루디에게
로 집중되어 있었다. 최대한으로 전개시켜놓은 그의 소울아이는 루디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으나, 또한 여러 가지의 기운이 섞
여 알 수 없는 파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게다가 또
어디를 크게 다쳤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의 근처에는 애초
에 몇 명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산산 조각난 인간의 각
종 육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방금 전의 그 폭발소리의 희생자인 듯 했
다.
"루디형! 거기구나! 무사한 거야!"
루디를 발견한 킬츠는 일단 크게 소리쳐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반응은
없었다. 덕분에 킬츠는 더욱 불안했으나 점차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루
디가 눈도 뜨고 있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또한 할게 되었다.
그리고 루디에게 막 도착하자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체로 눈을 서
서히 감고 있었다.
"뭐, 뭐야! 왜 그래!"
당황한 킬츠는 루디를 일으켜 상체를 붙잡고는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킬츠의 머릿속에 불길한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그만 흔들어라, 소년."
그때 눈을 감고있던 루디의 입이 스르르 열리며 평상시보다 조금은 딱
딱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엑? 소년?"
"이름이 킬츠라고 했지. 나를 잊었는가."
"왜, 왜 그래! 머리.. 머리를 다친 거야?"
"전에 결계 안에서 한번 만나지 않았는가. 나 펠리치오를."
루디가 눈을 뜨며 능청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눈빛으로 킬츠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킬츠는 지금 루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아, 그 대마도사라고 했던.... 루디형의 마음에 있는 절망의 정령에 봉
인되어 있다던......."
"그래. 바로 펠리치오. 나는 펠리치오의 정신이다. 아슬아슬하게 잘 와
주었다. 네 목소리가 조금만 더 늦게 들렸다면 너와 루디는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일순간에 사라질 뻔했다."
"아니.... 전에 마법사 님이 루디형이 정신적으로 위기일 때 자연스럽게
형의 의식을 점령한다고 하지 않았나 요?"
"물론 그렇긴 한데.... 이번엔 저 시커먼 다크휴먼의 마도사 놈 때문에
문제가 좀 있었다. 이 루디라는 소년이, 알마스는 인간 중에선 거의 최
고수준의 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도 5원소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바람에 저 녀석의 정신계 마법을 직격으로 맞아버렸다. 아무튼, 이번에
나는 너무 무리했어. 아마 앞으로 한번이나 더 이 녀석의 정신을 지탱
해줄지 모르겠구나. 미리 말해 두 건데, 이 녀석 제정신 차리면 꼭 5원
소 조합 이상의 원소 마법을 터득하라고 말해라. 최소한 정신계 마법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지. 알겠느냐?"
"아, 예."
그의 말들 중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킬츠가 얼떨결에 대답을 하자
루디의 육체를 컨트롤하고 있는 펠리치오의 정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
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너는 저쪽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던지 하거라. 난 방
금 이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큰 실수를 할 뻔했던 저 다크
휴먼의 다크위자드 나부랭이를 처리할 테니."
펠리치오의 말에 킬츠는 힐끔 저편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있는 도시사
람들과 경비대를 바라보며 즐거운 듯, 미소짓고있는 검은 로브의 마법
사를 바라보았다. 위험 천만해 보였지만, 전에 다크핵사곤의 결계에서
펠리치오가 보여주었던 마법의 신기를 기억했기에 걱정하지 않고 도시
경비대가 싸우는 쪽으로 달려갔다.
"이봐, 그렇게 구경 만하면 심심하지 않나?"
펠리치오가 씽긋 웃으며 전투를 구경하고 있는 헤릭사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헤릭사의 표정에서 놀람의 빛이 가득 번져갔다.
"아니, 이럴 수가. 디사포인트먼트 그로우 업에 당하고서도 말짱한 말
인가? 설마 너도 상위마력을 다룰 줄 안다는......"
"아니, 원래는 아니지만, 지금부터는 그 이상도 사용할 수 있지. 난 매
직길드 사상 최초로 전 클래스 A를 갖춘 마도사였거든. 물론 지금은
정신체일 뿐이라서 알마스는 어쩔 수 없지만, 이 청년의 알마스도 A클
래스이니 전성기의 위력을 유감없이 사용할 수 있다."
"무,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게 될 테고,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일단 빨리 끝내주도록 하마. 자네도 5원소를 운영하는 것은 가능한 것
같으니...... 6원소 정도라면 적당하겠군."
펠리치오는 건들건들한 태도로 깔보듯이 말하며 루디의 알마스를 마력
으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평소에 루디가 교환하는 기본
하위마력이 아니라, 좀더 세밀하게 응축되어있으며 강력한 위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상위마력이었다.
"엇! 말도 안돼...... 너 정도의 어린 애송이가 상위 마력을 사용하다니!"
"물론 이 청년은 나이가 어리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 상위마력을 사
용하게 될 것이다. 일단 내가 길을 닦아 놓았으니.... 운영력도 상승할
테고, 이미 경험이 많아 조정력과 속도 역시 B급 정도는 될 테니 효율
성만 수련하면 현존하는 최고의 마도사가 될 가능성도 있어."
펠리치오는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렇게 딴 짓을
하는 가운데에도 그의 주위에 몰려드는 마력의 기세는 가공할 정도로
증폭되어 있었다.
"다섯의 화염과 하나의 바람! 나의 주위를 휩쓸어라! 인페르노 윈
드!(inferno wind)"
"아, 아니! 둘의 바람과 셋의 화염! 역으로...... 으악!"
펠리치오가 마법을 사용하자 미처 헤릭사가 방어마법을 전개하기도 전
에 펠리치오의 주위로 땅에서부터 공중을 향해 원을 그리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불기둥 중 하나에 헤릭사는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휩쓸려 버렸다. 헤릭사는 순식간에 불기둥과 함께 공중을 떠올
라 흔적도 남기지 못한 체 새카만 재로 변해 버렸다.
"쯧쯧, 실드조차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는 애송이에게 6원소 마법은 조
금 과했나보군. 그럼 부디 잘 가시게. 어차피 다크위자드는 생명을 바쳐
서 높은 알마스를사용하는 것이니 조금 일찍 떠난 정도라고 생각해주
면 좋겠군."
펠리치오는 씁쓸하게 농담을 섞어가며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
간 불쌍한 다크위자드를 추모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한창 전투중인 정
신계 마법에 걸린 시민들과 도시 경비대의 피 튀기는 전투를 바라보았
다. 마법의 시술자가 죽는다 해도 일단 걸린 원소마법은 그 효과는 잃
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시민들은 광분하여 경비대들에게 달려들고 있
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신관이 아닌 이상 저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도로
돌려놓을 수도 없고....."
너무나 막강한 힘과 속도를 자랑하는 시민들 앞에 경비대는 고전을 면
치 못하고 있었으나 일단 킬츠가 가세한 후로는 전황이 조금씩 경비대
의 쪽으로 유리하게 바뀌고 있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킬츠에게 공격
당하면서도, 결코 킬츠를 반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검붉은
피를 뿌리며 차례대로 킬츠의 검 앞에 쓰러져 갔다.
편안한 말투와는 달리 펠리치오의 표정은 무척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
고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절망의 정령으로 봉인되기 전
에, 루디의 품속에 있는 책 두 권을 꺼내어 들었다.
"이것은 5원소 마법의 운영 법을 적은 지침서이고... 이쪽은......."
펠리치오는 나머지 한 권의 책이 고대어로 쓰여진 것을 발견하고는 흥
미로운 눈빛으로 차근차근 표지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의 표정은 흥미에서 놀람으로 바뀌어갔다.
"이,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