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사막의 도시- (8)
루디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자신의 동기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약한 마법사의 육체는 이미 산산이 찢겨지고 잔인하게 분해되어 사방에
낭자한 선혈과 파편들로 흩어져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루디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전력으로 달려온 것 때문에 숨이 차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
의 가슴을 꽉 조르고 있었다.
"으... 으윽......"
순간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루디는 재빨리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
것은 가장 뒤쪽으로 날아가 버린 베키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베키트!"
루디는 신속하게 그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아마도 세 명중
에 가장 뒤쪽에서 마법과 충돌했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그
러나 그의 한쪽 팔과 두 다리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고 복부엔
대량의 피부가 소실되어 찢겨진 검푸른 내장조각이 다른 장기들과 함께
그곳에 흩어져 있었다. 이미 생사가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온몸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붉은 혈액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루, 루디... 이건, 주, 중요한 것..... 반드시.. 지식의 탑으로.. 가, 가져가
야.."
베키트는 이미 보이지 않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마지막 하나 남은
그의 손으로 품속에서 방금 전의 그 책을 꺼내들었다. 이미 죽음의 그
림자가 진하게 배어있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최후까지 약속을 지키
려는 매직길드의 마법사다운 의지가 강하게 배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
이야말로 이미 즉사했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처를 입고서도 최후
까지 목숨을 연장했던 원동력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반드시......"
루디가 떨리는 손으로 그 책을 건네 받자 베키트의 얼굴에 희미한 미
소가 서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전신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던 전율스
런 상처의 고통에 부들거리던 그의 육신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움
직임을 멈추었다. 숨이 끊어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
다.
"왜... 대체 왜...."
루디의 눈에 붉은 핏대가 서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도 갑작스런,
그리고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 루디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떨리는
온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기왕 죽는 바에 혼자 죽지 그 책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기나.
아까운 목숨하나 또 사라지게.... 뭐, 물론 나야 또 한번 감사하는 마음
이지만,"
다크위자드 헤릭사는 그런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검은 망토 사이
로 만연한 기쁨의 미소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하
며 체내의 알마스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막아낼 사람이 자네 혼자이니 아마도 방금 죽은 그 녀석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 걸세. 이 마법이 제 위력을 발휘하면 그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거든. 자, 그 책을 네게 넘긴 그 친구나 원망하라 구."
헤릭사가 소리치자 다시 한번 그의 몸 앞에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형
성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폭발을 간직하며 작렬하는 거대한 불덩어리.
다섯의 원소를 조합한 상위마력의 결산 물인 그 살육의 마법은 실로 공
포스러운 모습이었다.
"내가... 당할 것 같으냐...."
마음의 분노, 마음의 고통, 마음의 전율이 모두 평상시의 수준을 몇 배
로 상회하며 끌어 오르고 있는 루디는 그 모든 감정들이 서서히 '절망'
이라는 한가지의 감정으로 응축되어 가는 자기 자신을 최대한 억제하며
눈앞에 타오르는 그 불덩어리를 응시했다. 그것은 수년동안 매직길드에
서 함께 수행하며 서로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던 몇 안 되는 그의 친
구들을 빼앗아 가버린 바로 그 저주의 불길이었다.
"둘의 화염과 둘의 바람! 역으로! 나의 주위를 감싸들어라! 실드오브
윈드 화이어!"
루디는 한순간 자신이 방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알마스를 교환하여 자
신이 조합 가능한 최고의 원소마법을 전개했다. 물론 4원소 마법은 5원
소마법을 당해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잘만하면 야 1원소마법으로
2원소 마법을 상대할 수는 있었지만 애초에 등급이 다른 상위마력을 운
용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5원소 마법이었으므로 그 사이의 격차는
더욱 심했다. 그러나 루디가 사용한 마법은 죽은 세 명이 사용했던 공
격마법인 게일 윈드와는 달리 순수하게 방어를 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었다. 오직 부딪치는 것들의 에너지를 분해하여 소멸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서 대체로 한 등급 위의 마법이라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것이었
다. 어쨌거나 상대가 상위마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일
말의 승산은 있었다. 혼란한 가운데에서도 루디는 그런 것들은 재빨리
판단하며 마법을 전개한 것이었었다.
"막아내랏!"
다크위자드가 사용한 5원소 조합의 막강한 불덩어리가 실드와 부딪치
자 루디는 엄청난 반동력을 몸으로 감당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그리곤 그의 풍부한 알마스로 교환한 다수의 마력을 실드와 프레임 럼
프와의 접촉부분으로 집중시켰다. 이미 전개한 마법에다 2차 적으로 또
다시 마력을 투입하여효과를 증폭시키는 것, 오직 A클래스의 알마스
를 가진 마법사만이 사용 가능할 정도로 대량의 알마스를 소모시키는
기술이었다.
"이중 마력 증폭?"
다크위자드 헤릭사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한
등급 아래의 마법으로 자신의 마법을 장시간 버텨낸 것만으로도 대단히
놀라운데 결국은 자신의 마법이 소멸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떠냐! 이렇게 몇 번이라도 막을 수 있다! 또 공격해 보시지!"
순간적으로 과도한 알마스를 소모한 루디가 그 반동력을 몸으로 견디
며 입술을 떠는 가운데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치자 헤릭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라운데, 보아하니 알마스만큼은 대단히 풍부한 모양이군. 적어도 B
클래스 이상은 되겠어. 아까운데..... 그 정도라면 6원소 마법까지 사용
할 수 있을 텐데. 흐흐흐......."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아니, 흥미가 생겨서 말이다. 매직길드에 너 정도로 재능 있는 신진
마법사가 있었다니 정말 금시초문이군. 재미있어. 여러 가지로 실험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겠다."
헤릭사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면서 또 다시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
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마력이 응축하는 것을 파악한 루디는 또 한
번 실드를 전개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헤릭사는 그런 루디의 행동
을 비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루디의 방비와는 달리 헤릭사는 프레임 럼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
고 의아해 하고있는 루디는 곧 비명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쓰
러져 버렸다.
"하나의 불과 넷의 정신. 증가하라, 그리고 잠식하라! 디사포인드먼트
그로우 업!(DISAPPOINTMENT GROW UP)"
헤릭사가 사용한 마법은 정신계의 주문이었다. 상위마력을 응용해야지
만 사용할 수 있는 정신계의 마법, 당연히 상위마력을 운용해야 막아낼
수 있었기에 루디는 꼼짝없이 그 마법에 당하고 말았다.
"곧 절망이 너의 마음을 전부 잠식해 버릴 것이다. 흐흐흐...... 그렇게
되면 내가 최면으로 나의 충실한 부하로 만들어 주지. 너를 통해, 나는
6원소의 마법을 실험할 것이다. 후후. 이거 너무 즐겁군."
헤릭사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는
루디를 바라보며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거칠거칠하고 껄
끄러운 목소리는 결코 듣는 이에게도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때, 드디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텔핀의 도시 경비대가 무더기로 달
려왔다. 그 숫자는 약 이백여 명으로 모두들 롱 소드와 철제 실드로 무
장한 상태였다. 갑옷을 장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동 속도는 무척 뛰어났다.
"이런, 이런. 드디어 떼거지로 오시는 구만. 빠르기도 하여라...... 도시
를 지키기 위해저리도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 나라도 답례를 해야겠
군."
헤릭사는 빈정거리며 또 한번의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번에도 공격 계의 마법은 아니었고 주변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정신계의 마법이었다.
"둘의 바람과 셋의 정신. 그 모두에게, 암시를 내려라. 암시는 '방패를
든 자를 죽여라' 사페리픽 힌트!(soporific hint))"
헤릭사가 그 마법을 전개하자 이번에는 주변의 멀찌감치 에서 그 광경
을 구경하고 있던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텔핀의 수많은 도시사람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의지가
약하고 정신력이 떨어지는 수백 여명의 사람들의 눈에 정체를 알 수 없
는 적의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무리 지어 전신에
날카로운 살기를 띄우며 그쪽으로 달려 오고있는 도시경비대들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뉴린젤을 위해 돈 쓰는 날이니까 식비도 내가 낼게."
식사를 마친 킬츠가 뉴린젤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에 먼저
일어나서 바텐더에 앉아 술잔을 닦고있는 주인에게로 다가갔다.
"여기, 얼마지?"
"전부해서 2바클 15레빈입니다."
킬츠는 1바키 짜리 은화 두 개와 50레빈짜리 동화를 하나 내고는 뉴린
젤과 함께 주점을 나왔다. 이미 날씨는 어둑어둑 해져 있었고 골목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척 뜸해져있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뉴린젤. 새 옷을 루디형에게도 보여줘야지. 아마
깜짝 놀랄걸?"
"그.... 그럴까?"
뉴린젤은 아직도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듯 말투까지 어색하게 더듬거
리고 있었다. 표정도 평소의 얼음장같던 것에서 약간은 풀어져 인간다
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멀리 어디선가 '콰앙!' 하는 무엇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즐겁게 웃고있던 킬츠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심각하게
변해버렸다. 킬츠는 불길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이런.... 폭발의 근처에 루디형이 있어! 분명히 휘말렸을 꺼야!"
"루디가 말인가?"
"그래! 제길..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는데.... 뉴린젤. 먼저 달려 갈 테
니까 될 수 있는 한 무기를 가지고 따라와."
킬츠는 뉴린젤에게 말하고는 바로 그의 소울아이가 느낀 사건의 장소
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불안감은 이미 극에 달한 상태라서 전력으
로 달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였다.
'루디형에게 뭔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 점점 정체를 알 수 없
는 이상한 기운들이 증가하고 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킬츠는 자신의 소울아이에 무엇인가 기이한 기
운들이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서 증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
고 그러면 그럴수록 킬츠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져만 갔다. 조금전까지
만 해도 즐겁게 뉴린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킬츠는 속으로 위기
에 휘말려들었을 루디를 원망하며 이를 악물었다.
'좋은 시간을 방해하다니.... 루디형....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 거
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킬츠의 표정은 초조하기만 했다. 진심
은 오직 그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