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사막의 도시- (6)
"지겹군....."
아침부터 자신의 여관방에 혼자 앉아 명상을 통한 수련을 하고있던 루
디는 결국 날이 어두워 질 때쯤 되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옷 사러 간다면서 왜이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오늘은 같이 시내나
나가려고 했는데....'
하루종일 명상만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시는 루디였다. 전에 매직길드
에서 수련을 할 때도 명상시간 만큼은 언제나 정량을 채우지 못하고 포
기해 버렸을 정도로 명상에 취미가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10크락
에(약 열 시간. 정확히 9.8시간) 가까운 명상도 보통사람으로써는 흉내
조차 내기 힘든 것이었지만, 마법사가 아주 극소량이라도 자신의 알마
스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명상의 시간이 최소단위가 바로 열 시
간이었다. 루디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적은 알마스를 지닌 마법사 지
망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알마스를 지니기 위해서 며칠 밤낮을 꼬
박 굶으며 30크락 내지 60크락의 시간동안 명상을 하기도 했다. 일단
자신의 한계 알마스의 수치가 증가하면 알마스를 소비한다 하더라도 나
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치가 올라간 한계 알마스까지 회복되는 것
이었다.
속이 출출한 루디는 나가서 무엇인가 요깃거리라도 해야되겠다고 생각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관을 나섰다. 초저녁의 건조한 사막의 바람
이 루디의 긴 갈색 앞머리를 휘날리며 지나갔다. 뙤약볕의 낮과는 달리
조금만 어둑해져 오면 기온이 급강하하는 것이 이 사막지방의 특징이었
다. 덕분에 마법사의 두꺼운 로브를 입고서도 루디는 그다지 더위를 느
끼지 못했다.
루디는 길거리의 노점상에서 꼬치로 여러 마리를 꾀어서 파는 도마뱀
구이를 하나 사서는 우물거리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씹는 맛이 그다지
즐거운 음식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옆에서 팔던 전갈 꼬치구이보다는 나
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내심 후회를 하는 자기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냥 시간을 때우려고 구경이나 하는 셈치고 시내의 시장 가를 맴돌던
루디는 어느 순간 길모퉁이에서 작고 낡은 서점을 발견했다. 아마도 오
래된 헌책을 취급하는 헌 책방인 모양이었는데, 호기심이 동한 루디는
혹시 좋은 책을 건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심을 가지고 안으로 들
어갔다.
"어서 오쇼."
가무잡잡한 피부를 긁으며 무료하게 가계를 지키고 있던 흰 턱수염의
노인은 루디가 들어오자 처음에 한번 가볍게 인사하고는 더 이상 거들
더 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루디는 마음놓고 편안하게 사방의 벽장에 꽂
혀있는 책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다지 인적도 없는 허름한 책방답지 않게 보유하고있는 서적은 대단
히 귀한 것들이었다. 최근에 쓰여진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200년 이상
전에 쓰여진 고서들이었는데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을 훌훌 넘기던 루디
는 오른쪽 책장의 가장 꼭대기에 꽂혀있는 회색 표지의 낡은 책을 꺼내
들고는 신음소리를 내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것은........."
-게쉬라트의 상위마력운용지침서- 라고 쓰여있는 그 책은 약 400여
년 전에 매직길드가 낳은 당대 최고의 마도사라 불리는 홍련의 마도사
게쉬라트의 유일하게 저서인 마법서적의 1차 사본이었다. 이 책은 1차
사본을 단 30권 만들고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아서 대단히 희귀한 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30년쯤 전에 누군가의 실수로매직길드에 보관되어있
던 원본이 불타버린 후로는 매직길드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희귀본이었
다.
'대단한 걸 발견했군.... 마침 내가 4원소의 조합에서 운용력이 멈춘 상
황이었는데, 잘됐다.'
루디는 못내 터져 나오는 기쁨의 웃음을 참으며 마치 별 것 아닌 책을
사려는 듯 평범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다가갔다.
"이 책을 사려는데, 얼마지요?"
그러자 주인노인은 잠시 루디가 든 책을 바라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마법산가?"
"아, 네. 그렇습니다만."
"자네 알마스가 B클래스 이상이 아니라면 그 책은 포기하는 것이 좋
아. 상위마력은 아무나 운용하는 게 아니지."
상위마력에 대해 무척 잘 알고있는 듯한 주인노인의 말에 루디는 속으
로 의아해 하면서도 자신 있게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전 A클래스의 알마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지 운용력이 모자라 상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 책을 사려는 겁니다."
이왕 싸게 사려는 계획이 틀어진바, 루디는 속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
는 전 재산의 액수를 가늠해보았다. 만약이 주인이 이 책의 진정한 가
치를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액수를 부를 것
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게의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젊은 남녀가 가계로 들어왔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들 모두 매직길드 출신임을 알리는 푸른
망토를 두른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들도 그냥 지나가는 길에 책이나 구경하려고 들린 듯 가볍게 주인에
게 인사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디는
다시 주인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가격을 물어보려 하였다. 그
런데 왠지 방금 전에 본 얼굴들이 어딘가 낯설지가 않았다.
'저 얼굴들, 어디선가.....'
루디는 다시 고개를 돌려 책방으로 들어온 세 명의 마법사들을 바라보
았다. 생각이 날 듯도 하려는 순간, 책을 하나 골라 그것을 막 펼치려
하는 여자 마법사와 킬츠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루디와는 달
리 한눈에 그를 알아보는 듯 했다.
"루디 선배? 루디선배 아니에요?"
"아! 레나, 그리고.... 제임스와 베키트!"
"어, 루디아니야!"
"뭐? 루디?"
루디는 그제서야 세 명의 마법사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기억해 내었
다. 그들은 바로 루디와 함께 클라스라인의 매직길드에서 수행을 쌓던
동기였는데 제임스와 베키트는 루디와 동갑으로 같은 나이 때 수련을
시작했고 레나는 한 살 아래로 루디보다 2년 늦게 수련을 시작한 후배
였다. 매직길드 내에서 비슷한 나이또래라 친하게 지냈었는데, 불과 3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얼굴은 무척 변해 있었다.
"야...... 레나. 그 동안 몰라보게 자랐구나. 너무 아름답게 변해버려서
처음엔 몰라볼 정도였어."
"너무 그렇게 치켜세우지 마요 선배. 그러는 선배야말로 그 동안 많이
바뀌었네 요. 분위기도 침착해지고..... 예전엔 그렇게나 까불었는데."
레나가 고운 얼굴을 살짝 웃으며 루디를 바라보았다. 매직 길드에서
서로 친남매처럼 사이가 좋았던 그들이었다.
"어이, 루디. 우리도 좀 아는 체 해줘. 이거 너무 아쉬운걸?"
"맞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이렇게 푸대접하다니."
"그래그래, 제임스, 베키트. 정말 오랜만이다."
루디가 반갑게 그들을 바라보며 이제 막 쌓아둔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책방주인 노인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루디를
불렀다.
"이봐 청년. 떠들 거면 여기서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구. 그리고 그
책, 살 거면 얼른 사버려. 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야."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흥, 내가 한 1만 바키쯤 부를 거라 생각하고 겁먹었나본데, 10바키만
내놔. 술값이나 쓰게."
노인은 그 책의 가치를 알면서도 그냥 루디에게 헐값에 넘기려는 듯
했다. 더욱더 의아심이 생긴 루디였지만, 일단 주인의 마음이 바뀌기전
에 얼른 10바키 짜리 은화를 건네주고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매직길
드의 동창들을 이끌고는 좋은 책을 싸게 얻은 것과, 오랜만에 옛 친구
들을 만났다는 이중의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운 표정으로 책방을 나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