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60화 (60/166)

제 5장. -사막의 도시- (5)

몇 시간이 지나고,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은 킬츠가  심한 허기를 느

끼고 있을 때쯤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옷 맞춤 점의 주인이  뉴린젤과

함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왔다.

"재단은 대부분 천사성국 산 실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임의

로 옷과 어울리는 화장도 해드렸어요."

킬츠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너무나도 변해버린  뉴린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홍빛의 실크로 만든 허리선이  곱게 들어간 원피

스였는데 무척 큰 키의 그녀에게 무척 조화로운 완벽함을 보여주고  있

었다. 하나로 가볍게 묵은 검은 폭포수 같이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  그

리고 차갑게 얼어있는 표정 안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본연의  아름다움

이, 단지 살짝 매만진 화장으로 인해 마치 겨우내 쌓인 눈이 봄이 되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 듯 살풋이 드러나 있었다.

"괜..... 괜찮은가?"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에 단추가 달리고 아래는 치마로  이루어

진 부드러운 재질의 옷을 입어본 뉴린젤은 평소의 굳은 표정이 아닌 약

간 어색해하는 얼굴로 머쓱하게 킬츠의 자문을 구했다.

"물론! 최고야, 뉴린젤. 이젠 그 누구도  너를 보고 이상하다거나 하지

않을 걸."

킬츠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며 뉴린젤을 다시 태어나게 한  의상실의

주인에게 넉넉히 사례했다. 주인은 대륙 공용 은화로 40바키(barky:화폐

단위. 1바키에 약 9천 원 정도의 가치)를 달라고 말했으나 킬츠는 파울

드 평원 전쟁에서 포상으로 받은 50바키 짜리 금화를 하나 주고는 거스

름돈도 받지 않았다.

"그럼 팁으로 알고 감사히 받지요.  여성분께서 스타일이 좋고 아름다

우셔서 간만에 옷 만드는 보람이 있었어요. 시간  나면 나중에 또 한번

들리시길."

여 주인은 가게를 나가는 두 남녀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배웅했다.

뉴린젤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옆에서 평범한  옷을 입은 킬츠가

너무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자. 시장이라도 돌아다니며 시내를  구경하러 가자. 루디형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야."

킬츠는 즐거운 표정으로 뉴린젤과 함께 텔핀의 시가지로 들어가기  시

작했다. 뉴린젤도 어색하게나마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과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불안을 한번에 날아가 버렸다.

"어이, 아름다운 아가씨! 여기 클라스라인에서 직수입된 맛있는 과일이

단돈 2바키예요!"

"아가씨 정도의 미인이라면 여기 이 관록 있는 세공장이가  만든 고급

귀걸이가 어울릴 거예요."

처음엔 과연 그 호칭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의식하지  못했던

뉴린젤이었다. 그러나 차츰 많은 상점과 가판의  주인들이 그녀를 그렇

게 불렀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환하게 바뀌어 갔다. 예전에 파울드에서

연습 복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나갔을 때,  그녀 특유의 차갑고 위압적

인 분위기에 눌려 아무도 그녀에게 먼저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큰 키와 멋진 옷, 그리고 섬세함과 쿨 한 아름다

움을 동시에 갖춘 얼굴이 더해진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 누구라도 단번

에 반할 그런 모습이었다.

"주위의.... 주위의 시선이 느껴진다. 킬츠."

"너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뉴린젤."

환한 표정으로 조금 멍해 있는 뉴린젤을 바라보며 킬츠는 입가에 미소

를 띄었다. 사실 인간의 내면을 보는 그였기에  외견 따위는 그다지 가

치 있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도 역시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

을 한 인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때.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지? 뉴린젤은 원래 이런 미인이었던 거야.

물론 나는 평상시의 뉴린젤의 모습도 좋아하지만......"

킬츠는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예전부터 마음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그였기에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았으면서 배고픈 지 모르고 한참

동안 시장을 돌아다녔다.  거의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그제서야 현실에

눈을 떠 심각한 허기를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잖아. 배가 무척 고

픈데."

"저기 식당이 있다."

뉴린젤이 그 이름도 두려운 '사막의 전문요리점' 이라는 간판을 가리키

며 말했다. 그러자 킬츠는 당황하며 방향을 바꿔 뉴린젤을 어제 가보았

던 그 골목사이의 주점으로 안내했다.

"거기 보다는....... 내가 아는 가게가 있어. 거기로 가서 식사를 하자."

뉴린젤은 군말 없이 킬츠를 다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고 다행이 위치

를 제대로 기억해 두었던 킬츠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그 주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점의 안으로 들어가자 한가했던 어제와는 달리 여러 명의  우락부락

한 남자들이 맥주를 들이키며 만취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식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킬츠는 맥주는 주문하지 않고 소시지

와 흰 빵. 그리고 약간의 스프를 주문했다.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대접하

는 것치고는 무척 빈약한 식단이었으나 뉴린젤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

치 않고 나오는 대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보아하니 새파란 것들이 이런  곳에 오다니. 여기는  키만 크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이 애송이들아."

술에 취한 사내 중  한 명이 화기애애한(물론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킬츠와 뉴린젤의 분위기가 눈에 거슬렸는지 다짜고짜 시비를 걸고 나섰

다. 아무래도 주점은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나본데

물론 들을 가치도 없는 시비 거리였다.

"그럼, 당신처럼 흉한 몰골에 잔뜩 취한  주정뱅이만이 올 수 있는 곳

인가?"

킬츠는 귀찮다는 말투로 바로 옆까지 와서 주정을 부리는 사내를 가볍

게 밀쳤다. 평소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벌써 손이 올라가고도 남았

지만 지금은 기분이 무척 즐거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봐주는

킬츠였다. 그러나 그런 킬츠의 내심을 알리 없는 사내는 저만치 떠밀린

것과 자신보다 10년 이상 어려 보이는 청년에게  하대를 받은 것과, 뒤

의 테이블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비웃음을 터뜨린 동료들 덕분에  화

가 머리끝까지 솟아있었다. 그래도 용병 비슷한 것은 됐는지,  옆구리에

차고있는 허름한 롱 소드를 뽑아들고는 씩씩거리며 킬츠에게로  달려들

었다.

"이 건방진 꼬마!"

아무리 봐도 킬츠가 자신보다는 1세션이상 커 보임에도 불구하고 알코

올의 위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나오는 대로  내뱉었는지 말도 안 되

는 대명사로 킬츠를 부르며 사내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짜증나네."

킬츠는 크라다겜이 주었던 데스나이트의 검을 등에 메고 있었으나  굳

이 꺼낼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형편없는 실

력의 검은 킬츠에게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킬츠는 비스듬하게 사신을 노리고 베어오는 사내의 롱 소드를  가볍게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잡은 검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신체의 균

형을 잃은 사내를 힘있게 어깨로 들이받았다. 그러자 사내는 쿵 소리를

내며 힘없이 뒤로 멀리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본 사내의 동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술에 취해서

인지 킬츠와 자신들의 실력의 차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동

료가 당했다는 것과 그 빛을 갚겠다는 단순한 호승심이 그들의  행동력

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것을 본 뉴린젤이 인상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킬츠는

그런 그녀를 제지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오늘 새로 맞춘 옷을 더럽히면 안되지 뉴린젤. 가만히 있어."

킬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있던 빵 쪼가리를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대는 다섯 명. 모두들 자신이 한목 단단히  하

는 강한 용병들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킬츠의 눈으로 볼 때는

단순히 술에 취한 주정뱅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감히 용병을 건드리다니! 매운 맛을 보여줘야겠군."

아니나 다를까, 비틀대며 걸어오던 그들 중 한 명이 빈약한 용병 근성

을 드러내며 킬츠를 위협하고 나섰다.

"같은 용병에다가 술을  좋아하는 것도 똑같지만...  어째 크랭크 같은

용병과는 천지 차이군."

킬츠는 술이라면 둘째가도 서러워할 시원시원하고 실력 있는 북부자치

도시 연합 용병대의 천인장, 크랭크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살기 등등하

게 검을 배들고 다가오고  있는 그 용병집단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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