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58화 (58/166)

제 5장. -사막의 도시- (3)

킬츠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이름조차 공포스러운 후식을 거절했다. 그

리고 그보다 이미 자신의 테이블에 떡 하니 올라온  한 무더기의 전갈

들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러야했다.

"아, 아니... 후식은 됐고....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물론이지요. 꼬리의 맹 독을 완벽히 제거한, 텔핀의 명물요리입니다."

킬츠는 혀를 차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원망스럽다는 듯 접시 안을  바

라보았다.

"이게.... 텔핀의 명물요리........"

"예. 요즘 전갈이 많이 잡혀서 가격이 내렸기  때문에 특별히 많이 내

왔습니다. 아마 다른 곳에  가셔도 이만큼의 전갈을 내오는  집은 드물

겁니다."

순간 킬츠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해갔다.

"다, 다른 곳? 그렇다면 이곳의 모든 음식점의 명물 요리도 전부 이것

이란 말......"

"물론이지요. 가게마다 소스의 차는 있겠지만."

"아아..................."

킬츠는 더 이상 말없이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대접에는 사막에 특히 많이 산다는 매우 기분 나쁜 모양의 곤충

들이 어서 먹어달라는 듯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인간은 별걸 다 먹는군, 난 적어도 곤충은 먹지 않았는데,"

덕분에 대접으로 하나 가득 나온  특제 스콜피언 정식을 군소리  없이

다 먹어치운 쥬크가 기분이 찝찔한지 창백한 킬츠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긴.... 인간은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종족이니까...."

불과 30분 전.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킬츠는  다크핵사곤에서 마물의

고기를 먹으며 생명을 이어갔던 때를 생각했다. 물론 적어도 그 마물의

고기는 '고기' 라고 불릴 정도의 씹히는 육감이 있었다. 그러나 향은 지

독했었고 맛도 형편없었다. 그에 비하면 이  전갈요리는 호화로운 음식

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킬츠는 눈  딱 감고 이를 갈며 문

제의 대접을 비워버린 것이었다. 원래 킬츠는 이 요리점을 시작으로 적

어도 세 군데 이상의 음식점을 순방하며 가지각색의 요리들을 맛볼  생

각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빛이 별로 좋지 않은데, 킬츠."

"솔직히 맛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이건 기분문제라서."

킬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앞으로 며칠을 이곳에서 보낼 것이 까

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식 습관이 괴상한 곳에서 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간단한 일이 아닐 듯 싶었다. 하지만,  여

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킬츠는  자신의 구세주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자네가 킬츠 군인가? 북부자치도시 연합에서 온 사신인 킬츠  마켄시

타."

"제가 킬츠입니다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드러내고 있는 4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여관 쪽에서 킬츠에게로 다가오며 아는 체 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

이었지만 아무래도 옆에 있는 쥬크 때문에 금새 알아차린 듯 했다.

"소개가 늦었군. 나는 나이트 길드의  남부자치도시 연합 지부장인 테

슬러라고 하네."

테슬러는 은 빛나는 금속성의 반지를 킬츠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것

은 두말 할 것도 없는 나이트길드의 지부장을 나타내는 증표였다.

테슬러가 킬츠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자 킬츠는 쓴웃음을 지

으며 방금 먹고 나온 전갈 요리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테슬러는 껄껄

웃으며 자신이 잘 아는 곳이 있다며 킬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 자네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 따라 오

게, 좋은 곳이 있어."

신원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남을  함정으로 빠트릴 타임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킬츠는 쥬크와 함께 테슬러를 따라갔다. 하지만, 조금 위

험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있는 킬츠였다.

테슬러가 간 곳은 도시 골목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곳에 있는  허름한

주점이었다.조명도 어둡고 분위기도 음산하여 그다지  좋은 기분이 드

는 곳은 아니었으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컵 속에 흑 맥주가  가득

나오고, 곧 이어 쿨드(소와,  돼지의 중간쯤 되는 먹을  수 있는  동물,

대대적으로 사육하여 기름)  고기로 만든 소시지와  말린 포도, 그리고

약간의 거친 빵이 나오자 주접의 어두운 분위기 따위는 킬츠에게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것들 특별히 고급이라거나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국의

음식에 대한 고통을 맛본 이상 지금의 킬츠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먹거

리였다.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용병단을 이끌며 성 방위 사령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들 하지.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아.  혼자

서 드라킬스의 병사 150명을, 혹은 200명을 쓰러뜨렸다고. 요약하면, 자

네는 영웅이란 거야."

킬츠가 한 참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을 때쯤, 테슬러는 그런 킬

츠를 바라보며 가벼운 세상이 하고있는 그에  대한 평가를 말해주었다.

정작 킬츠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파울드의 성벽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을 능가하는 그의 활약은  이미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

가, 사람들 사이에 큰 화젯거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웅......... 듣기 좋은 말이긴 한데,  사람 몇백 명 죽였다고  영웅이란

것은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킬츠가 이제 조금 숨을 돌린 듯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그 자신은 사

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앙금을 품고 살아

가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니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물론 조금 과한 소문이긴 한데, 그것도  다 우리 나이트 길드의 수작

이니 이해해주게. 이왕 북부 자치도시 연합을 살리기 위해 개입한 지금,

약간의 과대 포장한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거

든."

테슬러는 가볍게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이미 킬츠 말고도 활약상이 대

단했던 뉴린젤이나, 애초에 훌륭한  전술을 세운 마인슈 총  참모장 등

여러 사람들에 대한 소문들이 약간의 포장(?)이  되어 소문으로 번지게

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킬츠가 검을  한번 휘둘렀더니 성으로 올

라왔던 드라킬스의 병사 열댓 명이 단번에 피를 뿌리며 반 토막이 났다

던가, 뉴린젤이 한 번의 찌르기로 세 명의 병사를 뚫어 버렸다던가,  부

터 시작하여 마인슈가 자신의 탁월한 전략,  전술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북부자치도시 연합으로 망명했다느니 하는 등 정작 본인이 들으

면 실소를 금치 못할  그런 소문들이 그것이었다. 물론  목적은 다량의

용병 확보와 아군의 사기를 고양시키는 것, 그리고 적군의 사기를 저하

시키는 것이었다.

"효과는 크겠지만, 정작 그 소문의 본인으로써 기분은 별로 좋지 않군

요. 뭐, 별로 상관은 없지만."

"이왕 북부자치도시 연합의사령관이 되고,  또 나이트 길드에 들어온

이상 이것도 임무라고 생각하시게. 그리고 젊은 사람이 영웅 소리를 듣

는데 나쁠 건 또 뭐 있나."

테슬러가 흑맥주를 천천히 들이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를테면 무등

을 태워주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고 얼굴을 찡그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었는데, 물론 킬츠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이트길드에서

더욱 저를 혹사시킬 것 같아서요."

"흑맥주........ 한잔 더하게나."

"알겠습니다."

테슬러는 주점의 주인에게 두 잔의 흑맥주를 더 주문하고는 잠시 조용

히 생각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킬츠도 말없이  남은 소시지를

우물거렸다.

"길드에서 준 안개의 숲의 지도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숲 내부

에 지형적인 변화가 일어났던지,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웠는지

가다보니 나무에 새겨진 십자의 표시가 없더군요."

"고생이, 심했겠군."

"심하다 마다 요. 길드로부터 위험수당과  추가수당을 꼭 받아내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멋진 동료  분을 얻지 않았는가.  쥬크 님이라고 했던

가."

"이제야 내 이야기가 나오는군."

킬츠와 테슬러가 앉은 테이블 옆의 공간을 전부 차지해버리고  엎드려

있는 쥬크가 지루한지 하품을 하고 있다가 테슬러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거야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나이트  길드의 의도와는 별개의 것이

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세상살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는 거야.

우리의 운명의 신 데스튼께서는 고집쟁이에다가 변덕이 아주  심하시거

든."

데스튼의 신전사람들이 들으면 분노해 마지않을 소리를 하면서 테슬러

는 자신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북부고, 남부고  자치도시 연합의 정부측  사람들은 결단력과

실행력이 더디니까 앞으로 한 4,5일은 기다려야 지원군이 준비 될 것이

다. 내가 압력을 좀 가해서 최대한의병력을 보내게 할 예정이지만, 그래

도 페이오드 왕국과의 국경을 지키는 병력은 뺄 수가 없거든. 아마 2만

몇천 정도의 병력이 지원군으로 보내지겠지."

데스튼은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야 나이트 길드의  남부자

치도시 연합 지부장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난 총 참모장님의 전략은  정확히 알지 못하네  만...... 그래봤자. 4만

정도의 미약하고 비 체계 적인 병력으로 드라킬스 공국의 총 공세를 막

지는 못하리라고 생각되네. 아무리 파울드 평원 전쟁처럼 솜씨 좋고 세

련된 전술을 사용한 다해도 말이야. 게다가 이번엔 그 유명한 드라킬스

의 3장군 께서 직접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저도 머리가떨어져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총 참모장의 말에 의

하면 이번 지원군은 오히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  더 군 요. 그러니

까..."

킬츠는 세피로이스의 나이트길드 회의실에서 마인슈가 들려주었던  이

야기를 그대로 테슬러에게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테슬러는 눈가에 이채를 띄우며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랬군. 역시 총 참모장의 머리는 비상해. 페이오드의 그  막 가

는 사시드 대 총관이 쫓아낸 이유를 알겠어."

테슬러는 페이오드 왕국의 현 재상이자 대 총관의 지휘를 거머쥐어 페

이오드 내에서 최대의 권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시드의 이름을 들먹였

다. 킬츠는 사시드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벼로 없었는데, 고작해야  나이

트 길드의 기사 여럿이 페이오드의 리플레이크 기사단의 일원이었는데,

사시드의 모함이나 술수에 빠져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었

다.

"어쨌든 우리 총 참모장님의 계획을 듣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 그

래. 음, 나도 불안해 하고있는 이 나라의 길드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러 가봐야겠어."

테슬러는활짝 갠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킬츠를 바라보았다.

"이 곳 텔핀은 좋은 도시라네,  물론 음식이 곤란하긴 하지만....  4,5일

푹 쉬며 관광이라도 즐겨보는 게 어떨까 하네 만. 젊을 때 많이 봐두는

것이 나중에 남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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