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사막의 도시- (2)
성의력 14년에 북부자치도시 연합에 이어 페이오드 왕국과 클라스라인
법국의 사이에서 독립한 남부자치도시 연합. 환경적인 조건이 상당히
좋았었던 북부자치도시 연합과는 달리 이곳은 페이오드 왕국과의 서쪽
국경지방의 일부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전 영토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역시 페이오드와 클라스라인을 연결하는 최단 루트의 이동로이
기 때문에 상인들의 왕래가 잦아서 도시들이 대부분 상업적으로 발달했
다. 더불어 안전하게 사막을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운수업이나 안내업
역시 크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총 인구가 200만 정도로 클라스라인의 20% 수준, 드라킬스의 30% 수
준으로 국력은 대륙의 여러 나라 중 최 하위였으나 사막이라는 지리적
인 이점을 잘 활용하여 굳건히 영토를 지켜오고 있었다. 물론 현재의
최하위 국력의 나라는 북부 자치도시 연합으로 바뀐 상황이었지만.
도시 텔핀은 이 남부자치 도시연합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위
치가 클라스라인과의 최단 국경지방에 있어서 주력 병력이 밀집되어 있
어 치안도 좋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남쪽으로 3일정도 내려가면 대륙
마법사들의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매직길드의 본점이 세워져 있어
서 그곳을 목적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중간에 쉬어 가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덕분에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도시 파울드처럼 고급 여관들이
많이 발달하고 있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북부 자치도시 연합의 사신여러분."
텔핀에 도착한 킬츠 일행이 연합의 문서를 들고 시청으로 들어가자,
텔핀의 현 시장인 미노프는 그들을 환영하며맞이해 주었다.
"저희도 일찍이 북부자치도시 연합에 지원군을 보내려 했지만 서북쪽
으로 이어진 통로는 이미 드라킬스 공국에게 점령당해 버리고, 클라스
라인 법국과는 외교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
었습니다."
변명치고는 무척 합리적인 변명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지원군을 보낼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클라스라인으로 이어진 동북쪽의 통로를 이
용하여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미비하게 끌어왔다는 점에서 전 북부자치
도시 연합의 정부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북쪽의 분들께서 클라스라인의 통로를 확보해 주신다고 하니
이제는 안심하고 병력을 지원할 수 있겠지요."
50대 초반정도의 나이로 사막의 주민다운 흑갈색의 피부를 가진 미노
프 시장은 자신보다 평균 30년쯤 연하인 킬츠 일행에게 깍듯하게 예의
를 갖추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들이 텔핀에 머무르고 있을 동안 묵
을 수 있는 최고급의 여관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지원군은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자유기사단이 집결하고 보급품이 정리되는 대략 3~4일
후에 출발 할 예정이라고 했다.
"야, 무척 좋은 고급 여관인데? 세피로이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별 세 개는 줄 수 있겠어."
일행이 시장이 마련해준 고급여관 '사막의 밤'에 도착하자 루디는 환호
성을 지르며 즐거워 했다. 4층 높이의 건물에 횡으로 넓은 시원한 구
조. 그러나 여관의 등급 따위는 아무래도 좋고, 먼저 피로에 지친 심신
을 어서 침대로 날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루디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색은 하고있지 않지만, 뉴린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북부 자치도시 연합의 사신들이시군 요. 연락 받았습니다. 방은 3
층에 마련해 두었지요. 그런데....... 허억!"
고급여관 '사막의 밤'의 주인이 친절하게 킬츠일행을 맞이하다가, 잠시
후 킬츠의 뒤를 이어 터벅거리며 여관 안으로 들어온 은빛의 거대한 늑
대, 쥬크의 위압적인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킬츠가 쥬크의 목덜미를 친근하게 쓰다듬어주며 여관의 주인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길. 쥬크는 내 친구니까."
"물지... 않습니까? 저렇게 큰데......."
"내가 물면 넌 죽는다 인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도록."
쥬크가 인상을 쓰며 희고 날카롭고 이빨을 드러내었고, 여관주인은 쥬
크가 인간의 말을 하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몰란 눈을 껌뻑였다.
"느.... 늑대가 말을 했다?"
"왜, 내가 인간의 말을 하면 안돼는 거냐?"
쥬크가 한 쪽 앞발을 들어올리며 두께가 어른 손가락의 두 배는 될법
한 날카로운 발톱들을 드러내며 불쾌하다는 표정과 함께 으르렁거리자
주인은 혼비백산,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니, 아닙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자, 자. 방으로 안내해 드리
지요.방은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만 네 개를...."
"세 개면 충분하다, 내면을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여."
쥬크가 자신의 얼굴을 킬츠에게 비벼대며 긴 입 고리를 치켜올리며 씨
익 웃었고 킬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방은 세 개면 충분하다고 말했
다. 그리하여 루디와 뉴린젤이 각각 방을 하나씩 쓰고, 킬츠는 쥬크와
함께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물론 쥬크에게는 침대 따위는 필요 없었기
때문에 침대가 하나있는 방이라도 상관없었다.
"좁은 방이군. 인간은 이런 답답한 곳에서 잘도 산단 말이야?"
킬츠들이 묵을 방은 혼자 쓰는 방치고는 공간이 무척 넓어 역시 고급
여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자신이 들어오기엔 좁은 방문을 겨우 비
집고 들어온 쥬크가 방 한가운데에 서있으니,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
로 방이 좁게 느껴졌다.
"잠을 잘 수 있다면 충분하니 상관없어. 안 그래?"
"음. 그런가? 좋은 논리로군."
"그럼 네 말대로 이런 좁은 곳에서 엉기적거리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이왕 왔으니 이 도시의 명물 음식들을 맛보는 것도 좋겠지."
"그거 좋은 생각이군. 난 너무 오랫동안 안개의 숲의 동물들만 먹고살
았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먹어보고 싶군. 인간의 음식도 나름대로의 정
취가 있겠지."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킬츠는 저녁 식사 겸해서 밖으
로 나가기 위해 뉴린젤과 루디의 방문을 두드렸다.
"어이, 루디형!"
"......................."
그러나 방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뉴린젤의 방 역시 마찬가지였
다. 킬츠의 좋은 귀로 자세히 들어보니, 이미 방안에는 골아 떨어진 인
간의 고른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체력이라면 그 누구와 겨루어도
만만치 않을 루디와 뉴린젤이었으나 그 동안의 안개의 숲의 여정에서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듯 했다.
"뭐..... 할 수 없지. 우리끼리라도 나가자 쥬크."
여관주인에게 텔핀의 유명한 명물 요릿집들을 서너 군데 알아낸 킬츠
는 쥬크와 함께 여관을 나와, 어둠을 밝히기 위해, 혹은 자신의 가게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찬란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도시의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킬츠."
조금 걷고있으려니 쥬크가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낮은 목소리
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순진한 은빛 늑대는 그
것을 깨 닳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너 대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쥬크......"
말 보다 더 큰 덩치에 아름다운 은빛의 털로 반짝이는 온몸, 인간의
문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자태의 늑대의 한 마리와 그 늑대
의 가까이 에서 정답게 걸어가고 있는 젊은 인간 청년 하나. 그것은 주
위 행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집중시키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그런가? 하긴, 내가 조금 멋있기는 하지."
"그것보다는 너무 눈에 띄어."
"하하하. 상관없지. 어쩐지 경계하는 듯한 시선이 조금 불쾌하기는 하
지만, 다 동경의 눈이라고 생각하겠어."
아주 세상을 살아가기 편안한 성격의 쥬크를 바라보며 킬츠는 쓴웃음
을 지었다. 위기 시에 무척 믿을 수 있는 친구요, 든든한 동료인 쥬크였
지만, 평상시에는 무척 권위적인 어른 같은 모습과, 철없고 순진한 아이
같은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보통 인간으로썬 감당하기 무척 어려운 멋
진(?)성격의 늑대였다.
조금 걷다보니, 여관주인이 말해준 첫 번째의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등불로 밝혀놓은 '사막의 전문요리점' 이라는 대륙 공용어의 간판을 내
걸고 있는 그 음식점은 보기에도 무척 화려했으며 손님들도 무척 붐비
고 있었다.
"냄새가 좋은데, 들어 가볼까 쥬크?"
"좋지."
음식점 안에서 약간의 소동을 일으킨 킬츠와 쥬크는 곧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게 되었다. 물론 쥬크는 킬츠가 앉은 의자 옆
에 웅크리고 있었다.
"에..... 이 집에서 가장 잘 하는 걸로 가득 부탁하지."
벌벌 떨면서 억지로 뽑혀 울며 겨자 먹기로 주문을 받으러온 점원에게
킬츠가 가장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주문방법을 사용하자, 점원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렇다면 스콜피언 정식을 '가득' 내오겠습니다."
"........."
약간 어감이 좋지 않은 음식의 이름을 대고는 점원은 부리나케 주방으
로 달려갔고 킬츠는 약간의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초조하게 음식을 기
다렸다. 쥬크도 그다지 밝아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는데, 둘 다 설마 정
말로 '그것'이 나올까.... 하고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고있을 무렵, 점원
은 큰 접시 두 개로 김이 펄펄 나는 요리를 가득 담아 가지고 왔다.
"자, 나왔습니다. 특제 스콜피언 정식!"
"어억!"
킬츠는 불안한 마음으로 접시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신음소리를
내며 경악했다. 그곳에는 이름 그대로 가지가지의 '전갈' 수십 마리가
맛있는 소스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더운 김을 내고 있었다.
"후식은 특제 스콜피언 '회'로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