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51화 (51/166)

제 4장. -안개의 숲- (6)

일단 방향을 잡은 루디는  지체하지 않고 정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뉴린젤을 부축하고 있기 때문에 바른 속도를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일

단 다른 곳으로 피하다보면 언젠  간 안전한 곳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으... 음...."

뉴린젤은 입가에 약간의 고통의 빛을 떠올리며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뉴린젤의 목을 물은 그 뱀의 형상을 한 몬스터의 독이,  인간을

즉사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 독은 아니었는지, 뉴린젤은 힘겹게 호흡

을 이어가면서 아직 까진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

로 몇 시간 후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뉴린젤이 몸

에 해독제를 만드는 기관이 있다면 또 모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제길,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서 뉴린젤의 체내에 있는 불의 원소를 활

성화 시켜 자연 해독능력을 강화시켜야 할텐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루디는 일단 적당한 곳에서 멈춰 서

서 뉴린젤을 나무에 반쯤 기대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혹시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주위를 돌아다니며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

런데. 순간 그의 다리가 물컹하고는 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헉!"

일단 재빨리 발을 빼서 뒤로 물러선 루디였으나 갑작스런 하강에 적잖

게 놀라있었다. 그리고 불연 듯 머릿속을 스치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

다.

-안개의 숲에는 그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이 존재한다.-

어지간히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루디는 속에서 한숨이  새어나

왔다.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 앞은 엄청난  크기의

늪일텐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언

제, 어디서 늪이 길을 가로막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제길.... 하는 수 없지. 일단은 뉴린젤을 치료하고 내서....."

루디는 우선적으로 시급한 뉴린젤을 힘닿는데 까지 치료하기 위해 몸을

돌려 그녀를 기대어놓은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늪이 펼쳐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루디의 정

면의 안개 너머로 무엇인가 희미한 그림자 여러 개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루디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또 뭐야!'

당황한 루디가 다급히 알마스를 마력으로 교환하려는 사이 그  그림자

는 드디어 안개를 뚫고 그 실체를 드러내며 루디에게로 날아들기  시작

했다. 마치 작은 악마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입매와 두 개의 뿔. 은빛

의 피부와 등에 달린 펄럭이는 한 쌍의 박쥐와도 같은 날개. 그리고 네

개의 다리에 달려있는 피부와 동일한 색의 날카로운 발톱.

"가, 가고일? 왜?"

대륙의 특정한 일부분에 분포해있는  고대인의 유적에서만 그  진귀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막강한 마법생물이 지금 루디를 습격하고 있는 것이

었다. 루디도 단지 책에서만 읽었을 뿐이지 실제로 자신이 가고일을 보

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크... 어차피 수많은 마수들과.... 독수리머리의 늑대로 보았고...  세 쌍

의 다리가 달린 뱀도 보았는데, 가고일이라고 대수냐!"

루디는 뒤로 몸을 날리며 재빨리 선두로 공격해온 가고일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해냈다. 마법사답지 않은 민첩한 동작이었는데, 모두 지난 3년

간의 다크핵사곤의 결계 내에서 생활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능력이었

다.

"셋의 화염과 하나의 바람!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의 질풍이여! 프

레임 게일!(frame gale)"

두로 몸을 던지며 루디는 세  개의 빠른 기세의 불덩어리를  만들어내

가고일을 공격했다. 루디의 불덩어리들은  공중을 선회하는 가고일들의

방향을 따라잡아 기어이 세 마리를 공중에서  격추시켰다. 그러나 그것

도 잠시. 땅으로 떨어진 가고일들은 다시  꿈틀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오

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 정도의 공격쯤은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

-고대인이 만든 마법생물에게 어중간한 원소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순간 열 받게도 루디의 머릿속에  책에서 보았던 마법생물에 관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원소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결론

적으로 자신의 마법이 '어중간하다' 라는 사실이 루디를 더욱 분노케 했

다. 가고일들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잠깐 느꼈던 허탈한 절망감

도 그 분노에 밀려 봄에 눈 녹은 듯 사라져 버렸다.

"내 마법이 그렇게 간지럽더냐! 좋아! 그렇다면 A클래스  알마스의 위

력을 유감없이 퍼부어 주지!"

루디는 자신의 모든 알마스를 전부 마력으로 교환할 준비를 하며 자신

이 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의 절기들을 무작위로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그에겐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정함'이며 가장 주의할 것

은 '흥분' 이라는 철칙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만약 지금 이렇게

흥분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언제부터인가 느끼기  시작한 자신의 안 에

있는 또 다른 자신에게 먹혀버릴 듯한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서라도, 루디는 자꾸만 머릿속을 엄습해오는 '절망' 이란 단어를 지워내

야만 했다.

"기록에 의하면, 안개의 숲의 통과지도를  만들기 위해 나이트길드 60

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와서 말하기는 좀 무엇하지만 단 세

명의 그들에게 안개의 숲을 통과하라고 한 것은  조금, 아니 무척 무리

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만,"

파울드의 고급여관 세피로이스의 4층에 위치한 나이트길드의 간부  회

의실.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지원군을 통과시켜  주기 바라는 클라스라

인으로 보내는 문서를 전부 작성한 나이트길드의 대외담당관  키발드는

총 참모장인 마인슈에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킬츠일행의

안개의 숲 통과에 관해 불안함을 나타내었다.  그러자 문서를 검토하던

마인슈는 가볍게 목을 글쩍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들만큼 최소한의 희생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이 일을 처리해 줄 사람도 없지요,  아니, 만약 그들이 앞으로 대략  세

달 이내에 지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드라킬스를 상대

로 펼칠 수 있는 전략의 폭이 극도로 좁아지게 됩니다."

마인슈는 현재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하고있는  북부자치도시연합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그 동안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최

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구상해놓은 자신의 전략이 물거품으로

바뀌는 사건을 상상하자,  정신이 아찔해져오는 공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만약 클라스라인의 길로 돌아간다면 안전은 하겠지만 대략 한달 반에

서 두 달 정도가 지나야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부자치

도시 연합이 생각할 시간과 자유기사를 원정시킬 물자들을 준비하는 시

간을고려해 볼 때 간단히 세 달이라는  시간을 오버해 버리지요. 하지

만 안개의 숲을 지난다면 적어도 20일 내에는 도착할 테니  아슬아슬하

게 제 시간에 맞춰 서 지원군을 요청할 수 있을 겁니다."

"실패하면 곤란한 상황이군요. 하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후회할 수는

없는 일, 우리도 킬츠 방어사령관이 얻어올  남부의 자유기사들이 편하

게 클라스라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지  않겠

습니까."

클라스라인으로 보내는 문서의 검토를 마인슈에게 맞긴 나이트 길드의

총평의장 슈레인은 검토가 끝난 문서를 키발드에게 돌려주며 미소를 지

어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가 떠난 사람들에게  가장 중대한 일을 맡겨

두었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서

떠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할 것이  아니냐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럼 이 문서를 파울드 시장의 서명을 받아 최대한 바른  시일 내에

클라스라인에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대외담당관. 반드시 문서의 승낙을 받아와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총 참모장님. 이 정도의 하찮은 외교적  활동으로 참모장

님의 전략에 차질이 갈 일은 없을 겁니다."

키발드는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치도시의 병력의

통솔력을 높이는 것과, 떠난 킬츠일행이 임무에  성공하는 것을 운명의

신 데스튼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 뿐 이었다.

더 이상 자신에게 덤비는 몬스터가 없음을 깨 닳은 킬츠는 자신이  이

곳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서둘러 십자 표시가

된 나무들을 따라 짙은  안개를 헤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후 열을 맡는 것이었지, 킬츠의 속셈은 자유롭게 적들과 싸우는 것이었

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킬츠는 순간 더 이상 십자 표시된 나무가  앞

에 없음을 깨 닳게 되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

에 뒤를 돌아보자, 다행이 뒤로 이어지는 나무들의 십자표시는 남아 있

었다. 이곳이 워낙 사방을 분간하기 힘든 안개로  뒤 덮여 있었기 때문

에 킬츠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덕분에 다시전개한 그

의 소울아이가 위에서 자신을 노리는 생명의 살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들은 곳 킬츠를 향해 하나, 둘 떨어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킬츠의 검을 세워들어 공중을 크게 베어나갔는데 그 검에 잘린 것은 다

름 아닌 다리가 세 쌍이 달린  뱀의 형상을 한 몬스터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배, 뱀! 다리가 있긴 하지만..... 뱀이라면 독이 있을 텐데,"

그것들의 굼틀거리는 시체를 본 킬츠는 곧 단순히 결론을 내리며 얼마

전가지 이곳에 있었을 루디와 뉴린젤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소울아이가 있었기에 뱀들의 공격을 예측할 수가  있었지만, 아마도 루

디와 뉴린젤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한 명,  혹은

두 명 다 뱀의 독에 중독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십자표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이동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쯤은  중독 된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아, 안돼! 그럴 수는 없어!"

거기가지 생각한 킬츠는 자신의 후 열을 맡은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

며 재빨리 가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나서, 그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자기 자신의 약함을 증오했는가.  게다

가 이번에도 자신의 무능으로 또 다른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된다면.....

킬츠는 자신의 모든 신경과 정신을 집중하여 이 안개의 벽을 넘어  자

신의 소울아이를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순간의 괴로움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

다. 만약 그로 인해 머릿속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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