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안개의 숲- (3)
"일단 이 숲을 통해 죽 들어가면, 십자 표시된 나무들이 있을 거다. 그
것을 계속 따라 들어가면 서서히 사방이 안개로 덮인 곳이 나오게 되지
그때부터가 진짜 안개의 숲이야. 주의할 것은 사방이 안개로 뒤덮이면
사방으로 약 50세션 밖에 주위를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
은 이곳의 안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약 2백 세션 이상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아무리 큰 소리가 난다 해도 결코 들리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만 주의하고, 절대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라."
"만약 길을 잃으면?"
킬츠 일행과 함께 안개의 숲 근방의 평범한 숲까지 동행한 나이트 길
드의 제란스는 다시 도시로 귀환하기 전에 안개의 숲의 지도와 몇 가지
의 주의사항을 전달해 주었다.
"아직까지 길을 잃었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이 안
개의 숲을 빠져나가는 통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희생된 사람이 백 명이
넘는 다는 사실을, 그리고 역대로 이 숲을 지나가려다가 실종된 사람들
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
래."
킬츠가 별 의미 없이 한마디 던진 말을 제란스는 무척 두려운 경고성
의 여운이 남는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말머리를 돌리며 파울드를 향
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만, 지도대로만 따라간다면 약 보름정도 걸릴 테니, 중간에 마
치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착각이 들더라도 현혹되지 말고 그대로 가
면 된다. 식량은 넉넉히 준비해 두었으니 안심하고."
그렇게 제란스는 성으로 돌아갔고 드리어 킬츠일행은 그 누구도 통과
하지 못했다는, 그러나 사실은 나이트길드의 사람들은 통과했던 안개의
숲을 향해 약간의 긴장되는 마음을 품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거 봐, 루디형. 말이 지도지 단순히 십자 표시된 나무들이 이어진
길밖에 나와있지 않아. 그 밖에는 전부 백지........"
"지도 뒤에 뭐라고 쓰여있는데?"
"그래? 음..... 이 숲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래를 찾
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그 습성과 생태를 도저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것들이 살고 있다. 더욱 상세한 조사가 필요함? 이
거 뭐야! 겁 주는 거야!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
킬츠는 지도에 성의 없이 아무렇게나 써있는 누군가의 글씨를 읽고는
화를 내며 그것을 아무렇게나 접어 배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사
실 그 사람의, 그 사람의 동료들이 목숨을 건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더
라면 애초에 이곳을 지나가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성의가 없어.... 이런 위험한 곳에 사람을 지나가게 해놓고 이
따위 지도 한 장 달랑 쥐여주다니. 안 그래 뉴린젤?"
"그래."
"..........."
뉴린젤의 싸늘한 대답을 뒤로 잠시 일행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부자치도시 연합으로 지원군을 부탁하는 사신일행에 함께 동행하고
있는 뉴린젤의 행동은 킬츠도, 루디도 이해할 수 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자신의 인생을 틀어지게 마음대로 정해버린, 그리고 그
정해진 대로 굳어져 버리게 만들어버린 그녀의 아버지, 퀵셀트를 전장
에서 만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자치도시 연합
과 드라킬스공국이 전쟁을 계속해야만 하는데 이번 계획의 목적은 바로
그 전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저기...... 왜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했지? 뉴린젤은........."
"난 도움이 안 되는가?"
"아니, 그게 아니고, 뉴린젤의 목적은 바로 아버지와 싸우는 거잖아."
"........... 원한을 갚는 것이다."
"맞아. 그렇다면 이번 계획을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야? 만약 계획이
성공하면 드라킬스와는 전쟁을 하지 않을텐데, 그러면........."
킬츠를 태우고 있는 말은 파울드 성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고른 것들
중에 하나였는데, 말에 익숙하지 않은 킬츠로써는 그 정도의 흔들림조
차 무척 불편했다. 그리고 그것은 루디도 마찬가지여서 그 역시 표정이
별로 밝지는 않았는데 덕분에 숲이라서 말을 달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
려 다행이었다. 킬츠는 그 흔들리는 말 위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뉴린젤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말을 타본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지만, 설사 기분이 안 좋다 하더라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인간이
아니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하지만 결국 마인슈 총 참모장의 진짜 계획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뉴린젤은 차가운 얼굴에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하며 매우 불편해 보이
는 자세로 말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뉴린젤의 표정은 평소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자꾸만 옆구리에 부딪치는 그녀의 긴 검 때문에
말이 더 불편해 보였다.
"진짜 계획?"
"자치도시 연합이 세운 전략의 최종 목적은 자치도시 연합의 생존이
아니라 빼앗긴 도시들의 재탈환이라고 생각한다."
"엑? 재탈환이라고?"
킬츠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랐고 뉴린젤은 자신의 판단의 이유를 설명
해 주기 시작했다.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아마도 드라킬스는 더 이상 자치도시의 잔존영
토를 공략하지 않고, 곧바로 클라스라인이나 페이오드를 공격해 들어갈
것이다. 전력 적으로는 그 두 나라가 자치도시 연합보다는 훨씬 강하고
체계적이기 때문에 서로 막대한 전력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드라킬스의 병력이 약화될 것은 당연한
일. 그때 자치도시 연합은 비축해 두었던 총 병력을 운용하여 잃었던
도시들을 재탈환한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킬츠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뉴린젤의 생각에 감탄했다. 그
리고 옆에 있던 루디도 깜짝 놀랐는데, 루디는 마인슈의 부관을 하면서
바로 그 최종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인슈의 전략이
훨씬 더 자세하고 복합적이었기는 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것은 뉴린젤
의 생각과 동일한 것이었다.
"드라킬스도 이점을 감안, 아마도 긴 원정을 보내기엔 시간이 부적합
한 보병부대를 점령한 자치도시연합의 도시에다 주둔시켜 두겠지."
"그렇다면......"
"아버님이 통솔하는 철벽의 기갑단은 전원 보병. 아마도 그 역할을 맡
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때를 노리고 이번 계획에 참가한 것이다."
뉴린젤의 계획은 체계적인 판단과 높은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체계적인
것이었다. 킬츠는 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런 정교한 계획을 생
각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슬슬...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점점 안개가 끼어오는데."
루디가 긴장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정말로 무척 농도 짙은 안개가 사
방에 자욱하게 끼는가 싶었는데, 금새 주위는 온통 안개로 뒤덮여 버렸
다. 신기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십자표시가 되어 있는 나무를잃어버릴지도 모르겠군.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루디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킬츠였다. 왠지 다크 핵사곤의 결계가 연상되어
서 혹시나 하고 시험해 보았는데, 역시 소울아이의 능력을 격하시키는
엄청난 밀도의 기운들이 가득 차 있었다. 다크핵사곤 안처럼 어두운 기
운은 아니었지만, 그 대기의 무거움은 더욱 강대했다. 3년간의 결계내
생활로 무척 단련된 킬츠의 소울아이로도 겨우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정말 심상치 않은데...... 대체 여기는?'
킬츠는 마치 과거 3년간 지내왔던 그곳처럼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것
을 느끼며 저절로 등에다 맨 검의 손잡이로 손이 옮겨져 갔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마물들이 습해 올지 모르는 극도로 위험한 곳에서 3
년간의 생활로 인해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저 희뿌연 안개 속에서 데스워리어가 맹렬한 기세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은, 킬츠로써는 예상 밖의 불길한 사건이었
다. 말들도 그런 킬츠의 기분을 느꼈는지, 푸드덕거리던콧소리를 죽이
기 시작했다. 점점 숲은 소리하나 없는 침묵의 공간으로 변해가기 시작
했다.
자치도시 연합의 최후의 보루, 도시 파울드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 내리기 시작한 천금같은 비라 도시 사람들
모두 아침부터 즐거운 기분으로 땅과 함께 젖어들고 있었다.
아직 직접적인 드라킬스군의 움직임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파울드
의 성문은 현재 출입하는 사람들로 한 것 붐비고 있었다. 마침 비가 내
리기 시작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아, 스피리스트의 정령사 이 시군요. 이곳 자유의 도시 파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행 중에 들리셨나보지요?"
성문을 지키며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던 파울드의
자유기사 하나가 밝은 녹색 바탕에 스피리스트 신전의 사계의 나무문양
이 수놓아진 로브를 입고있는 한 젊은 소녀 정령사를 발견하고는 친절
하게 인사하며 파울드에 오는 것을 환영했다. 대륙 어디를 가나 환영받
는 것이 바로 이들 정령사로써 스피리스트의 교리에 따라 어려운 사람
이나 위급한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의 신관
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어있는 신분이었다.
스피리스트는 정령의 신으로 세상의 모든 정령들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세 명의 신중 하나였다. 특이한 것은, 스피리스트의 신전에서는 신관을
육성하는 것만 아니라 정령사라는 것을 함께 육성하는 것이었다. 정령
사는 8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면 비로소 정식으로 인정받는데, 그때는
자유의 몸으로 신관처럼 신전에 귀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
는 특권이 주어졌다. 마치 매직길드 출신의 마법사가 원한다면 자유롭
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게다가 정령을 부리는 것, 즉 정령마법은 오직 스피리스트의 신전에서
정령강림의 의식을 치르고 난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명의 정령
사는 정령강림의 의식 때 받은 오직 하나의 정령밖에는 다룰 수가 없었
다. 정령사의 재능과 운명에 따라서 각기 다른 위력과 속성을 가진 정
령들이 내려지는데, 이것은 재능만 있다면 어떠한 속성이나 위력의 주
문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와는 극히 다른 점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기사 님께 스피리스트의 정령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고맙습니다. 비가 내리는데, 어서 여관을 잡으세요."
그 문지기 자유기사에게 친절히 좋은 여관까지 안내 받은 그 소녀 정
령사는 걸음을 바삐 재촉하며 기사가 알려준 그 여관을 향했다. 로브가
더 심하게 젖는다면, 내일까지 마르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