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안개의 숲- (2)
파울드의 고급여관 세피로이스의 4층 중앙에 있는 비 객실로 지정된
특수용도의 방. 즉 나이트 길드의 회의실에서는 현재 북부 자치도시 연
합의 총 병력을 쥐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총 참모장 마인슈의 차후
에 있을 전쟁에 관한 중요한 설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
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일단 나이트길드의 총평의장, 대외담당관, 자
치도시 연합 담당관, 정보처리 담당관, 재정보급 담당관, 특수 치안 담
당관을 시작으로 그밖에 자치도시 연합의 방어사령관인 킬츠와 총 참모
장의 부관인 루디, 혼의 용병장인 스와인, 자유기사 단장인 나이트 세
텔, 그리고 특별히 전술, 전략적인 분야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준 천인장 뉴린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나, 드라킬스 공국과의 심각한
전력 적 열세가 만회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르게 생각을 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드라킬스가 화력 면에서 가장 떨어지는 게다가 이곳저곳
의 잔여 병력들에서 끌어 모은 하 등급의 병력을 우리의 실력을 알아보
는데 소비했다는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인슈는 미리 준비한 차트를 가져와서는 양국의 전략적 상황을 비교
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도표는 정보처리 담당관 제란스 님과 함께 만든 것으로 일단, 드
라킬스는 붉은 색, 자치도시 연합은 푸른색입니다."
"큭... 여덜..... 아니 열 배는 되 보이는군."
모두들 대부분 붉은 색으로 뒤덮인 드라킬스의 영토와 점령당한 자치
도시 연합의 영토를 바라보는 가운데 스와인이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
리며 고개를 저었다.
"보시는 대로드라킬스는 점령한 자치도시의 영토 내에만 3만의 전투
보병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들은 페이오드 왕국과의 국경지대
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지만, 만약 이들 만이라도 정상적인 사령관의 통
솔 하에 공격해 온다면, 우리로써는 패배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습
니다. 게다가 만약 그 3만의 군대를 물리친다면, 그대는 그 유명한 드라
킬스의 3대 장군들이 운용하는 막강한 군대와 붙어야만 합니다."
막 마인슈가 3대장군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순간 뉴린젤의 눈에서
반짝하고 광채가 도는 것을 포착한 사람은 그곳에서 오직 킬츠밖에 없
었다.
"3대장군... 그 세 명의 사령관들을 말하는 것인가..."
"맞습니다. 피리우크 님. 그 세 명의 사령관들이 이끄는 군대 중 하나
만 쳐들어와도 우리로써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만약 두 개 이상이
동시에 공격해 온다면, 이미 상황은 끝났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겨도 결국은 패배란 말인가."
세텔의 한숨 섞인 말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두워지고 있었
다.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는 아무리 좋은 전략과 전술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마인슈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다시 이야기
를 시작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인슈의 간단한 말에, 모두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전쟁을 피한다면 멸망하는 일도 없겠지만, 어디 그것
이 쉬운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마인슈는 천천히, 그리고 논리 있게 그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전략은 일
단 드라킬스의 목적에 관한 심리적인 측면을 노리는 것인데..... 조금은
도박을 해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마인슈는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고는 차트의 다음 장을 넘기었다. 다음
장도 전장과 같은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전장보다는 세로로 더 넓은
지역이 표시되어 있어서 페이오드와 클라스라인, 그리고 안개의 숲을
지나 남쪽에 있는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일부까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저의 판단이지만, 드라킬스의 최근 50년간의 대대적인 병력의
증강은 단지 우리 북부 자치도시 연합을 점령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엔
그 규모가 너무도 방대합니다. 아마도, 북부 자치도시 연합을 점령하여
보급로를 확보하여서 클라스라인 법국이나 페이오드 왕국, 혹은 세디아
황국을 노리고 있는 것에 틀림없겠지요. 개인적으론 넓고 기름진 평야
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클라스라인을 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대륙 전체를 점령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
요."
"대륙정복......"
"엄청난 목표로군."
"켈도스 24세..... 아니, 켈도스 가문 전체가 무서운 야망을 품고 있었
군."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사실이었지만 대륙정복이라는 구체적인 말이 마
인슈의 입에서 나오자 모두들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놀라했다.
"현재 우리는 대륙의 동쪽의 변두리에 위치하는 영토만을 확보하고 있
어서 전략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장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드
라킬스도 이왕이면 완전한 점령을 위해서 공격하는 것이지, 큰 의미를
가지고 이 파울드 성을 공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점
을 노려서 더 이상 드라킬스가 이곳을 공격하지 않게 해야만 합니다."
마인슈는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 듯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서
생각의 정리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어하기 시작했
다.
"일단 빠른 시일 내에 남부 자치도시 연합에서 최대한의 지원군을 확보
해 와야 합니다. 이번 전쟁의 승리로 인해 약간의 시간을 벌었으므로,
그 시간 내에 남부자치도시 연합을 완전 설득시킬 수 있는 문서를 작성
하여 지금까지의 미미한 지원의 수중이 아닌, 남부자치도시 연합의 주
력 군을 전부 지원 받아야 합니다."
마인슈는 도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즉, 2만 이상의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자유기사를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마 자
유기사단 2만이 아니라 4만 7천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총 병력을 전부
동원하더라도 승리할 수 없을 겁니다."
마인슈의 말에 기사단장 세텔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는데, 마인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목을 긁적거렸다.
"물론, 그 정도의 지원병력 가지고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
지만, 미리 말씀 드렸듯이 지금은 전쟁을 피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전쟁을 피하려는데 지원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드라킬
스 쪽에 사신을 보내 외교적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력
을 증강시킨다니?"
외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외담당관 키발드가 의문을 제기했다.
전쟁을 그만 두게 하려 하는데 만약 병력을 증강시킨다면 오히려 드라
킬스의 의혹을 사서 더욱 전쟁의 불을 앞당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그러니까, 우리는 드라킬스의 최종 목적에 심리적인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원을 받아 크게 병력을 증가시킨다면,
이번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드라킬스의 입장에서는 자치도시 연합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더 큰 피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별로 전략적으로 유용하지도 않은 장소를 점령하기 위해 구태여 적
지 않은 병력의 피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클
라스라인을 공격하려 한다면,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병력이 필요
할 테니까요. 이미 클라스라인이나 페이오드 같은 다른 국가들을 공격
하기 위한 병력의 이동로와 보급로는 전부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
기 때문에 우리는 남아있는 이 파울드와 나머지 세 개의 성들을 전쟁의
불길에서 비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만약 드라킬스의 최종 목표가 이 북부 자치
도시 연합의 완전 점령뿐이라면?"
"그때는 별수 있나요,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우던가, 아니면 순순히 항복
하는 수밖에......"
피리우크의 질문에 마인슈는 웃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말투였으나 그 길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
다.
"결국 도박을 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드라킬스의 최종 목표가 대륙 정
복이라는 것에 자치도시 연합의 생명을 건 도박을 말입니다."
나이트 길드의 총평의장 슈레인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총 참모장이신 마인슈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하겠습
니다. 혹시 반대의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지금 말씀하여 주십시오."
물론 아무도 손을 들거나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슈레인은 그 의견을 결정하여 마인슈의 지시에 따라 각자 실행의 준비
에 착수하여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럼 일단 남부 자치도시 연합으로 보낼 사신에 대한문제인데,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촉박하므로, 사신은 남부 자치도시 연합가지
의 최단 루트인 안개의 숲을 경유하여 지나가야만 합니다."
파울드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안개의 숲을 지나면 그곳이 바
로 남부 자치도시 연합의 수도 격인 도시 텔핀이 위치하는 자유의 사막
이 위치했다. 그러나 종으로는 짧고, 횡으로는 무척 긴 안개의 숲을 돌
아서 클라스라인의 영토를 거쳐서 간다면, 적어도 세배의 시간이 필요
했다. 일단 거리도 거리려니와 국경을 통과하는데 무척 많은 시간이 걸
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개의 숲을 통과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곳은 미개척지의
대표적인 곳으로 어떤 지형인지, 어떤 생물이 서식하는지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1년 내내 한치 앞을 구분 못할 짙은 안개로 뒤덮인 곳입니
다!"
북부 자유기사 단장, 세텔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흥분하며 말하자 나이
트 길드의 정보처리 담당관 제란스가 헛기침을 하며 조용하게 말을 덧
붙였다.
"우리 나이트 길드에서는 약 200여 년 전부터 무척 일부분이긴 하지만
안개의 숲을 지날 수 있는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그것을 보고가면 길을
잃지 않는 이상. 말을 타고 보름정도면 숲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 그,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
세텔은 머쓱해 하며 고개를 숙였고 마인슈는 별로 상관하지 않으며 계
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일단 비슷한 곳을 경험해본 방어사령관 킬츠와 제 부관인 루디
군을 추천합니다. 특수 치안 담당관이신 크라다겜 님도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사신으로 되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
에......."
마인슈는 아쉬운 표정으로 크라다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그가 함
께 동행한다면 아무리 안개의 숲이라도 걱정이 없을 듯 했으나, 막상
남부 자치도시 연합에 도착했을 때, 그쪽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리였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요."
그때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뉴린젤이 그 차가운 입을 열
며 말했다. 모두들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면 안됩니까?"
뉴린젤이 싸늘한 목소리로 재차 말하자 마인슈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
를 세차게 저었다.
"그럴 리가 요. 뉴린젤 천인장께서 함께 가주신다면 무척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킬츠?"
"무, 물론....... 의지가 되겠지요."
킬츠는 약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역시 조금은 의외였는데, 아버지
에게 복수를 하지 못하게될지도 모르는 이번 작전에 적극 참여하려는
그녀의 상반되는 마음을 킬츠로써는 도저히 짐작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날, 사신으로 선발된 킬츠와 루디, 그리고 뉴린젤은 막
중한 사명과 보름간의 식량을 짊어지고,, 성에서 제일로 빠른 말을 타고
미지의 미개척지인 안개의 숲으로 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