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44화 (44/166)

제 3장. -전란의 길- (12)

"감히 용병 나부랭이가 이 영광의 드래곤 나이트의 일원인 펠류즈에게

덤비는 것이냐!"

자신을 향해 창을 찔러오는 스와인의 공격을 강력하게 튕겨 내며 펠류

즈는 흥분의 고함을 질러대었다. 그리고 자신의  창으로 스와인을 향해

찔러 대기 시작했다. 드라킬스  공국의 질 좋은 철로  만들어진 육중한

드래곤 나이트의 전용 창. 일명 '라디온' 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혼의 용

병단장 스와인이 다루는 평범하고 적당한  크기의 창과 비교해 보았을

때 무게, 강도, 파괴력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높은 실력과 월등한 무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펠류즈는  지금

자신이 지휘하는 드라킬스 군의 패배로 인한 극심한 충격에 빠져 앞 뒤

없이 마구 공격했고 그와는 반대로 스와인은 자치도시 연합군의 승리의

기세를 등에 업고 침착하게 그 공격을 받아치며 간간히 역습을 노렸다.

"으음. 사령관으로써는 절대 부적격이지만 기사로써는 무척 뛰어난 실

력인데? 흥분하면서도 엄청나군."

그러나 역습을 허용치 않는 펠류즈의 견고한 공, 수 일체의 창술에 스

와인은 감탄하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난 드래곤 도어의 수행을 통과한 드래곤  나이트! 힘, 속도, 기술모두

너 따위 아무 데서나 굴러다닌 용병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 하지만 너와 난 전장에서 만든 피의 늪의 격이 다르지."

"뭐!"

펠류즈는 수세에 몰린 스와인에게 육중한 힘을 실은 라디온의  일격을

날렸다. 그러나 스와인은 그것을 자신의 창으로 막아낼 듯 하다가 양다

리를 말에 고정시키고 갑자기 몸을 옆으로 기울여 그 공격을 피해냈다.

펠류즈의 창은 허공을 스치며 빗나가 버렸고 앞으로 힘이쏠려 미처 자

세를 바로잡지 못한 펠류즈에게 스와인은 아래서부터 위로 솟구치듯 자

신의 창을 찔러 올렸다. 창은 즉각 강렬한  쇳소리를 내며 펠류즈의 갑

옷을 뚫은 뒤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죽어서도 잊지 마시길. 제 14대 혼의 용병장인 이 스와인이라는 이름

을 말이야. 혹시 유령이라도  된다면 동료들에게 가서 전해  주는 것도

좋겠지. 말 위에선 스와인과는 싸우지 말라고 말이야."

스와인은 창을 거두어 옆으로  비껴들고는 속삭이듯 펠류즈의  귀에다

대고 말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다른 전장을 향해서 말머리를 돌렸다.

"난.... 난 이제야.... 빛을 보는가 했는데...."

자신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이 바라보며 펠류즈는 곧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드라킬스 군은 사령관을 잃게  되었으나 그것은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병사들에게 그다지 큰 동요를 주지 못했다. 자치도시 연합군은 이미 적

의 사령관이 죽던 말건 더 이상의 기세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사기가 올

라있었고 드라킬스 군은 설사 사령관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의 명령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 닳고 후퇴의 명령을  부탁하기

위해 사령관에게로 달려온 부사령관 나이트 임멜은 땅에서 뒹굴고 있는

사령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위의

아군들은 거의 뿔뿔이 흩어져 적의 기병들에게 무참히 밟히고 있어  이

미 군대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 침착... 침착해라 임멜..... 아직 아군이 전멸 당한 것은  아니지 않은

가? 단 한 명의 병사라도 살려서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것이 지금 나의

임무이다........'

그는 작년에 드래곤 도어의 수행을  통과한 올해 19세의 신입  드래곤

나이트로 수행 당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을 인정받아 처음부터 대

군의 부사령관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사령관에게 세 개로 갈라져있던 병력을 하나로 합칠 것을 권유했고  양

날개의 군대가 격파 당하자 이번엔  보급선의 위태함을 감지하여 일단

마켄 성이나 토우르 성으로 퇴각할 것을 요청했으나 사령관의 막무가내

의 태도에 그의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다.

임멜은 마른침을 삼키며 병장기 소리와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전장터의

한 가운데서 혼신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될 것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큰 희생에 참지 못할 울분을 토해내듯, 그의

소리는 전장을 가득 울려 퍼졌다.

"드라킬스의 모든 살아남은 병사들이어! 모두 내가  달리는 곳으로 따

라와라! 퇴로를 만들어 살아 돌아가는 거다!  우리는 이곳에서 전멸 당

하지 않는다!"

그 말의 일부는 오히려 자신감을 같기 위해 자기자신에게 외치는 것이

었다. 그리고 그는 자치도시 연합군의 포위만 중에서 가장 얇게 보이는

곳을 찾아 그곳으로 세차게 말을 몰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를 막아서

는 몇몇의 자유기사들이 단 일격의 창에 의하여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오로지 절망에 휩싸여 죽음만이 기다리는 절망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드라킬스의 살아남은 보병들이 그제야 하나, 둘 나이트 임멜의 뒤

를 따라 퇴로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군대답게 체계가 서있는 최

후의 발악이었다.

"적군이 퇴각하기 위해 포위망을 돌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트 임멜의 뒤를 따라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있는  드라킬스의

군대를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자유기사단의 사령관, 나이트 피리우

크에게 그의 부관이 급하게 말을 달려와 재차 소리치며 말하자  피리우

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머리를 파울드 성 쪽으로 돌렸다.

"포위망을 열어줘라! 그리고 더 이상의 추격은 금물이다! 우리도 성으

로 귀환하는거다!"

"옛! 하지만 우리는 전원 기병이고 잔여 적군은 모두 보병이라 추격하

면 전멸시킬 수도.."

"이미 적들은 절대적인 피해를 입고  궁지에 몰려있는 상태지. 절대적

인 피해를 입었어. 더 이상 우리에게 맞설 여력은 업을걸세.  그러니까

이 기회에 전쟁 내내 속공으로 사방을 돌아다닌 우리 군대의  사람들과

말들을 어서 쉬게 해야지. 지금은 더 이상  전투를 확산시킬 필요가 없

어."

"그렇긴 하지만......"

"지금 적병들을 전멸시키나, 그냥 돌려보내나 우리의 압도적인 승리에

변함은 없다네. 중요한 건  이번 전쟁이 끝나도 드라킬스는  또 군대를

보낼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번 보단  좀 더 제대로 된 군대를 말이

야. 그러니까. 지금은 곧 이어질 드라킬스의 다음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

는 것이 더 중요해."

못내 아쉬워하는 부관을 달래며 나이트 피리우크는 자유기사단을 이끌

고 성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혼의 용병단도 역시 더  이상의 무모한

추격전 따위는 포기하고 두 배의 적들에게 완승을 거둔 엄청난  전략을

실행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말들과  사람들을 위해 미련없이 파울드로

귀환했다.

이로써 처음 압도적인 병력 차로 승리를  확신했던 드라킬스 군과, 국

가의 멸망을 거의 눈앞에 두고있었던 북부  자치도시 연합과의 '파울드

평원 전쟁' 은 자치도시 연합군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킬스 군은 총 병력 3만 2500명중 2만 8200여명과 함께 사령관이었

던 드래곤 나이트 펠류즈와 수많은 장교들을 잃었고 자치도시 연합군은

총 병력 1만 6300명중에서 2700여명이 사망했다. 물론 천 인장 이상 급

의 장교들 중에 단 한 명도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쌍방의 희생자의 열 배가 넘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드라킬스  공국은

점령했던 자치도시 연합의 마켄 성과 토우르 성을 잃었고 그 동안 계속

되어오던 전쟁의 승리의 연속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승리다! 우리의 승리다!"

"이겼다, 우리가 드라킬스의 군대를 꺾었다고!"

파울드의 도시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된  듯 거리로 나와 밤새  기뻐

소리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었다. 그들은  거의 포기하고 있

었던 마지막 심정에서 다시 새 희망을 찾은 듯 열광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이번 전쟁이 그 동안 계속되었던 드라킬스와의 전쟁에서 거둔  최

초의 제대로 된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적의 절반의 군대를 가지

고 오히려 적을 거의 전멸시킨 대승이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더욱 각별

했다.

그 동안 상황이 위급해지면 가장먼저 퇴각을 해서 자치도시의  사람들

에게 원성을 샀던 혼의 용병들도 이번 전투로  그 평가가 재 역전됐다.

사실, 혼의 용병장인 스와인은 그 동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질 것 같은

전쟁을 피했던 것인데 이번에 새로 임명된 총 참모장 마인슈의  뛰어난

전략 아래서 그들의 뛰어난 속도와 파괴력,  그리고 600년 이상 이어져

온 축적된 경험은 유감없이 드러날 수 있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이번 전쟁의 승리가 그 동안 대륙 각지에서  참가하

지 않았던 용병들의 걸음을 돌이키게 한 것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승패

가 너무나도 뻔한 상황이어서 대륙에서 유일하게 용병단을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자치도시 연합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압도적인 승리로 인해 용병들의 구미가 당겨진  것

이었다.

금새 불어난 용병단을 관리하기 위해  살아남은 백인장 세 명이  모두

천인 장으로 승격했고 파울드 평원 전쟁에서 살아남은 용병들 중  노련

한 자들을 20명을 새로 뽑아 백인장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특

별 수당이 주어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