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43화 (43/166)

제 3장 -전란의 길- (11)

다음날, 킬츠는 총 여섯 명 있는 용병대의  백인장들을 불러 각각 300

여명의 용병들을 맡기고 파울드 성벽의 주요 포인트마다 배치시켜 두었

다.

이 중요 포인트의 배치전략은 킬츠의 부관인 나이트 라르스가  고안해

낸 것인데 어차피 킬츠는 그런 방면엔 능력이 꽝 이었으므로  대부분을

라르스에게 맡겼다. 라르스는 나이트치고는 약간 몸이 빈약한 편이었는

데 대신 전략가로써의 약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정보를 모

으고 분석하는데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고 용병에도 소질이 있었다.

킬츠는 자신이 뛰어난 전략과 용병으로  2천의 용병단을 승리로 이끌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하지 않고 있었다. 킬츠는  자신의 능력을 잘 파

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자신이  아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직접 전투 시에 투혼을 발휘하여 싸움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뉴린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녀

는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지  자신이 맡은 300여명의 용병들을  지정된

포인트에서 무엇인가 진형을 짜며 배치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가 드라킬스 최고의 3대  사령관으로 불리는 이상,

전술이나, 전략, 용병을 하는 법 등을  익혀두지 않았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와는 달리 이번이 처음이었

겠지만.

"아마도 적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직접 벽을 기어오르거나 사다리를 놓

고 올라오는 한편 성문을 공성병기로 공격할  걸세. 성문은 나이트길드

의 기술진들이 어떻게든 파괴되지 않게 보호 할 테니 성벽을 올라 공격

해오는 적의 군사들은 반드시 자네가 막아주어야  하네. 전투가 시작되

고 조금만 버티면 적의 보급로를  끊어놓은 우리의 자유기사단과 혼의

용병단이 적의 후위를 공격하러 달려 올 테니 적어도 그때까지는  버텨

야 하지."

잠시 후 자치도시 연합의 총 참모장을 맡고있는 마인슈가 루디와 함께

킬츠에게로 와서 중요한 몇 가지의 사항을 말해주었다.

"특별히 주의할 것은 지금 드라킬스 군은 하루쯤 굶어서  처음엔 전력

을 다해 미친 듯이 공격해올 것이라는 점이야.  하지만 일단 처음에 이

쪽이 완강히 버티어만 준다면 그때는 보급이 끊긴 적을 상대하는  것만

큼 간단한 일이 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마인슈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루디가 킬츠의 어깨를 힘있게 움켜잡

으며 바라보았다.

"너라면 반드시 이곳을 사수할 수 있을 꺼야."

"걱정 마. 난 100명이 넘는 데스워리어의 추격도 버티어 냈잖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나도 파울드  매직길드의 마법사들과 함께 성

문을 수비하는데 일조 할 테니까."

루디의 말에 킬츠는 표정을 환하게 밝히며  기뻐했다. 분명 마법의 힘

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성문은 철벽의 강도를 자랑할 것이었다.

"그거 정말 믿음직한 소린데?"

"드라킬스의 막무가내의 전쟁에 대륙의 모든 길드와 연합들이  피해를

보고있어. 쉽게 말해 모두 드라킬스를 싫어한다는 소리지. 클라스라인법

국이나 세디아 황국도 전면전을 두려워하여  개입을 하지 않을 뿐이지

역시 마찬가지야. 나이트길드의  대외담당관인 키발드 님이  협상을 잘

하신다면 그쪽에서도 지원군을 얻어올 수도 있구 말이야."

"더욱 마음이 놓이는데?"

"그래. 그럼 이번 전투가 끝나고 천천히 이야기하자."

킬츠와 루디는 서로를 완벽히 신뢰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나중의  재회

를 기약했다. 전쟁이라는 것은 누가,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는

예측 불허의 것이었으나 적어도 루디는 킬츠의 죽음을 예상하지 않았고

킬츠도 루디가 실패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결

계 안에서 있었던 그 수많은 시련과 고통은,  이미 그들이 서로를 완벽

히 믿을 수 있는 사이로 만들어 버렸다.

혹시나 설마 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

는 일이었다. 반드시.

"파울드 성이다!"

드라킬스의 병사들 사이에서 허기진 탄성이 하나, 둘 터져 나왔다.  저

곳만 점령하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하루를 꼬박 굶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희망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는.

"일단 선발대 5천이 성벽을 공략하라! 그리고 공성병기를 호위하며 후

위 대 5천이 성문을 파괴하라! 나머지 주력  병사들은 적의 기사단이다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기습해오는 것을 위해 대기하고!"

드라킬스의 2만 3천 여명의 보병들을 지휘하고 있던 드래곤 나이트 펠

류즈는 드디어 가슴을 펴며 아군에게 공격의 명령을 보내었다. 그의 생

각대로라면 적의 비열한 술수에 버텨오며 드디어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

를 벌이는 것이었는데 아무튼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거나 상황을 냉철하

게 판단하는 능력과는 대단히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펠류즈의 명령이 떨어지자 1만 여명의  드라킬스 보병들이 물밀 듯이

진격하여 파울드 성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빠른 병사들은 사

다리나 창을 사용하여 성벽을 무작위로 오르고  있었다. 전혀 통일되지

않은 마구잡이의 행동이었으나 일단 그 숫자만큼은 자치도시연합의  용

병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배고픔에  약간 맛이 간 듯한  얼굴 또한

압권이었다.

그런 무질서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펠류즈는 득의 만만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질서야 어쨌든  일단 올라가서 처 부수면  되는 것

아닌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일단 군사가 많으면 이긴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 만약 전쟁

이 그렇게만 이루어  진다면 사령관이 왜 필요하고 기사단이 왜 필요한

가. 당당히 전쟁의 가장 중요한 승리 조건으로 여기어지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용병은 왜 필요한 것인가?

"화살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성벽에  기어오르는 대로  즉각 없애버

려!"

킬츠가 지휘하는 2천의 용병들은 현재 혼신의 힘을 다해 적군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일단 처음에는 약간 구해놓았던  커다란 바위들을 던져서

드라킬스 병사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선사했으나 곧 바위는 다 떨어졌고

적군은 살육과 식욕의 욕망으로 번득이는 눈동자를 앞세우며  끊임없이

성벽을 기어올라왔다. 수 백 개의 사다리들은 이미 수천의 사람들이 올

라타 있어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올라오는 대로  직접 상대해주는

길 뿐. 다행이 한번에 올라오는 적의 수는 수비하는 용병들보다는 적었

기 때문에 밀리지는 않았다.

"비켜!"

킬츠는 한 개의 사다리 앞에  버티고 서서 기어올라오는 적군을  하나

하나씩 베어버리고 있었다.  처음엔 전력을 다해  사다리를 밀어버리려

했으나 인간 열 명을 능가하는 그 무게는 킬츠로써도 역부족이었다. 그

러나 킬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벽 위엔 다수의 적군이  올라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이었으나  일단 굶어서 눈

에 보이는 것이 없는 드라킬스의 병사들을 상대하는 데 무척 애를 먹고

있었다.

킬츠의 좌우에서 적을 상대하던 용병들도 이미 다수의 적군에게  밀려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부근에 꾸역꾸역  밀려드는 드라킬스 군들

은 모두 킬츠에게로 달려들었는데 킬츠는 피에 가득 물든 자신의  검을

꽉 움켜쥐고는 전력을 다해서 자신의 포위한 적군을 공격했다.

"사령관 님이 위험하다!"

일부 여유 있는 용병들이 킬츠의 위기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고 달려

왔으나 곧 킬츠가 적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킬츠가 자신을 둘

러싼 적군을 기세 좋게 무더기로 베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안심하고 다른 적군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다른 용병들도 킬

츠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적군을 베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하자 얼굴에 활

기를 되찾으며 전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뉴린젤이 버티고있는 우측 성벽도 그녀의 놀라운 실력으로 인해  안정

된 수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한번에 올라오는 적의 숫자도 이젠 점점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시작된 이 전초전은 오후 늦

게 가 되어서야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발대 전멸이라고! 이런. 하지만 적도 큰 피해를 입었겠지....."

오후 늦게 가 되자 더  이상의 성벽 위에서의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드라킬스의 군사들도 더는 없었다. 선발대 5

천이 전멸 당한 것이었다.

한편 적의 선공에서 성을 기어이 지켜낸 킬츠 지휘하의 용병단은 죽은

자는 죽음으로써 성벽 위에 누워있었고 산 자도 누적된 피로와  부상으

로 인해 시체 사이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워있었다.

"어이! 조금이라 움직일 힘이 있는  놈들은 일어서! 곧 죽을 부상병들

을 빨리 도시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단 말이야!"

그곳에서 지금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살아남은 세 명의 백인

장들과 사령관인 킬츠뿐이었다. 특히 킬츠는 아직도  굳건한 체력을 과

시하며 심한 부상병들을 성벽 아래로 직접 운반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용병은 약 500여명. 그중  100여명은 곧 죽을 것  같은 심한

부상병이었고 나머지들도 결코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킬츠의 호통소리에 잠시 후 뉴린젤이 운용하던 용병들이 제정신을  일

어나 부상병들의 호송과 치료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

밑에 있었던 용병 300중  무려 200명 이상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것은

총 생존자의 과반수에 가까운 숫자였는데 이것은 뉴린젤의 뛰어난 운영

과 진형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에구, 이거 막아냈긴 했지만, 다음이 걱정이군...."

살아남은 세 명의 백인장중 한 명이자 쌍 검의 달인이란 명성을  얻고

있는 백인장 크랭크가 가만히 성밖의  상황을 응시하고 있는 뉴린젤의

근처에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현재 나이 33세에 경력

15년의 베테랑 용병으로 지금 킬츠의 나이인 18세 때부터 숱한  전장을

거치며 살아남은 건실한 체격과 실력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

부분의 수하들을 잃고 뉴린젤의 부대에 편입되어있는 상황이었다.

".......... 다음은 필요 없다."

뉴린젤은 자신의 긴 장검에 묻은 피를 옷자락으로 닦아 검 집에  집어

넣으며 멀리 평원을 응시하였다. 그곳엔 뿌연 먼지가 기세 좋게 일어나

며 드라킬스 군이 집결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왔다! 자유기사단이다!"

"저쪽에서도! 혼의 용병단이다!"

피로에 지친 용병들의 입에서 기쁨의 환희와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드디어 적의 보급선을 끊어 논 아군

의 본대가 다시 돌아와 적의 후방을 공격해 들어온 것이었다.

"뭐, 뭐야 저건!"

아군의 보급선을 끊은 적의 군대는 기껏해야 2천 이하라고 계산하고있

던 드라킬스 군의 사령관 펠류즈는 후방의 좌우에 나타난, 적어도 합계

1만 이상의 기마병들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2차로 성벽을 공략하지 위해서 대부분의 주력 보병들을 대기시

키는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빠, 빨리 성문을 파괴하고 도시를 점령하라!"

"아, 안됩니다! 성문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펠류즈는 뒤늦게 집중적으로 성문의 격파를 명령했으나 안쪽에서 마법

사들이 방어마법을 사용하여 버티고있는 성문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

다. 그리고 이미 후방에 육박해온 자치도시  연합군의 기병들은 드라킬

스군의 후방을 마구 유린하고 있었다.

약 이틀째 굶고 있는 드라킬스의 군대는 창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연합군의 기병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도륙당했다. 게다가 마침

파울드의 성벽 위에서 킬츠가 지휘하는 살아남은 용병들이  우왕좌왕하

는 드라킬스 군에게 화살을 퍼 붇기 시작했다.  대륙의 보병 중에서 최

강의 갑옷으로 몸을 무장한 드라킬스의 보병들이었으나 일단  퍼부어지

는 화살세례에 더욱 혼란함이 증가되고 있었다.

"이, 일단 적의 기병을 상대하라! 모두 무기를 창으로 바꾸고!"

"후훗. 이미 늦었다 네. 무능하기 그지없는 드라킬스의 사령관 씨."

멸망해 가는 아군에게 발악하듯 명령을 내리는 펠류즈였으나 이미  지

휘계통이 무너진 지 오래 라서 그의 명령은 아군의 병사들에게 씨도 먹

히지 않았다. 그리고 패배라는 절망의 그림자 속에 점점 빨려 들어감을

느끼는 드래곤 나이트 펠류즈에게 혼의 용병단장인 스와인이  비웃음과

함께 현란한 솜씨로 말을 달리며 공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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