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35화 (35/166)

제 3장. -전란의 길- (3)

결국 술집의 주인 리네임은 가게문을 닫고 킬츠일행과 함께  파울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거의 깊은 저녁시간이라 그들이 걷고있는 행 길

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고 있었다.

킬츠는 리네임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잔득 있었지만 일단  쿠슬리를

만난다면 전부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꾹 참으며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루디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주위가 어두워지자 도시 안의 여러 집들에  하나하나

불이 켜지고 있었다.무척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람들의 도시 파울드. 그

리고 그런 도시들이 모여서 탄생한 자치도시  연합. 그들에겐 귀족이나

왕족과 같은 신분의 격차 따위는  없었다. 오직 열심히 일하고,  정직히

생활하며 맡은 바의 직업에 충실한, 그리고 남의 직업이 하찮다고 그것

을 깔보지 않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

렇기 때문에 이곳은 시장이라 해도 존경받을 뿐이지 추앙 받진  않았으

며 도둑이나 깡패라 해도 법대로 처리할 뿐이지 인간의 권리는  존중해

주었다. 아무리 남의 물건을 훔쳤다 해도  드라킬스처럼 손목을 자르지

않았으며 아무리 남을 죽였다 해도  그것의 이유가 조금이라도 참작이

된다면 클라스라인처럼 사형에 처하지 않았다.

"루디형, 이곳은...... 좋은 곳 인 것 같아."

"그래? 뭐, 킬츠 너도, 그리고 나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녀 본적이 없

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이 자치도시 연합은 유일하게 대륙에서  인간의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야."

"귀족 같은 것이 없다는 거지?"

킬츠는 클라스라인 법국의 어느 귀족가문에 양자로 들어간 세렌을  생

각하며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흐리

고, 진한 불빛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언뜻 보면 마치  환상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도시의 야경을 처음 보는 킬츠

만이 느끼는 감정일 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런 게 정상적인 거야. 난 인간에게 능력의 차이는 없지만, 천

하고 귀함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이트

리네임?"

마인슈는 킬츠와 루디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리네

임에게 말했다. 그러나 리네임은 가볍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글쎄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리네임은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과거의 일들이  그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귀족이나 왕족이란 신분의  차

이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리네임이었지만, 인간이라면 정말 견디기 힘

든 혹독한 수련을 통과한 기사나  마법사들은 도저히 평범한 인간과는

동일시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

인 자신이 남을 대할 때 거만하거나 얕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어를 쓰는 편이었다.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나이가  어리던 많던, 모두에게 존대

의 말투를 쓰고있는 리네임을 보며, 왼지 카름의 모습을 떠올리는 킬츠

였다.

"전투...... 전투다."

그때 가장 뒤에서 킬츠와 함께 걸어오고 있던 크라다겜이 낮은 목소리

로 말했다. 루디는 웬 전투.... 하며 의아해  했지만 곧 크라다겜의 말대

로 모두들 길 한 가운데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집단을 확인할 수 있

었다. 벌써 그 싸움을 하는 주변에는 도시사람들 여럿이 조금씩 떨어진

곳에서 그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곳엔 한명의 사람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나머지 10여명을 마음  것

유린하고 있었다. 무척 빠른 속도와 강한 힘으로  긴 검을 다루고 있었

는데 그 검이 어찌나 긴지,  크라다겜의 파일팽 정도는 되는  길이었다.

물론 두께는 일반 검 정도로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검이 상당히  얇아

보였다.

그는 마른 몸과 무척 큰 키의 몸으로 아슬아슬하게 상대를 베고  있었

다. 조금만 더 깊이 베면 완전히 즉사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무

척 길고 비단결 같이 아름다운 윤기가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머리

에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당에는 조금  전 킬츠에게 크게 혼난  그

용병 일당도 껴있었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용병인 듯 했다. 아마도  패

색이 짙은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잔득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킬츠 일행도 가까운 곳에서 멈춰서 그것을 구경했는데 그제야 혼자 싸

우는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엑..... 저.... 키도 엄청 크고 표정도  삭막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여

자야."

루디가 놀라하며 그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라다겜과 맞먹을 정

도의 큰 키에 상대적으로 무척 가늘어 보이는  몸매. 그리고 역시 크라

다겜과 맞먹을 정도로 싸늘하고 표정 없는 얼굴. 그렇지만 그것은 무척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었다.  옷은 전체적으로 검은  계통의 타이트한

연습 복에 어깨갑옷과 가슴갑옷을 착용했고 얼굴은  아무런 화장도, 장

식도 없었지만 그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삭막한 표정을 더한다  하더라

도 전체적으론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용병들은 쓰러지더라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번째의 검은 사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금새두어 개

의 팔이 잘려져서 날아갔다.

"으악!"

양팔이 베인 용병은 비명과 함께 피를 쏟으며 쓰려졌고 나머지 용병들

은 술이 확 달아나는지 그때서야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리고 여

자는 쓰러져서 발버둥치고 있는 양팔이 잘라진 용병에게로 다가갔다.

"난...... 사람을 죽이는 검술밖에 배우지 못했어."

그리고 그녀는 검을 치켜들었고  인정 사정없이 아래로  내리 그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킬츠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파앙!"

킬츠의 검과 여자의 검이 강한 불꽃을  튀기며 정면으로 부딪쳤다. 여

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막은 킬츠를 바라보았다.

"죽일 것까지는 없잖아."

"그쪽이 먼저 도전해온 일이다. 여럿이서 하는 결투는 배운 적 없지만

결투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 진 쪽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

다."

"결투.... 같지는 않은데."

"너도 나에게 결투하자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 여자는 칼을 들이대면 무조건 결투를 하자는 뜻으로 해석

하는 것 같았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결투. 오직 대륙에서 드라킬스의  전

사들만 하는 그것을 이런 도시의 용병들이 미쳤다고 할 리 없었다.

어쨌든 여자의 표적은 용병들에서  킬츠로 옮겨진 것  같았다. 부딪힌

검을 밀면서 여자는 강하게 힘을 가해왔다. 그것은 3년 동안 혹독한 환

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킬츠마저도 뒤로 밀릴 정도의 힘이었다.

'어! 밀린다!'

킬츠는 밀리는 자신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그러나 여자는

재빨리 검을 떼어내며 이번에는 좌, 우의  연속공격으로 나오기 시작했

다. 게다가 그것은 그녀의 강한 힘보다 더욱  놀랄 정도의 빠른 속력이

었다.

'힘은 데스워리어 정도, 하지만 속도는훨씬 빠르다.'

킬츠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빠른 공격을 막아내며 점점 수세에  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자의 검은 아무렇게나 적당히  휘두르는 것이 아니

라 일정한 위치와 방향, 그리고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제대

로 배운 검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킬츠도 전력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의 검술

을 사용해 넓은 회전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고 짧은 간격으로  상대

의 정면을 공격했다. 이렇게 끊어 치는 공격이 계속되자 여자의 속도도

조금 늦추어 들었다.

"둘 다 대단한데요? 이건 기사 못지 않은 실력입니다."

지켜보던 리네임이 감탄을 하자 마인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계

속 그들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 같은데. 하지만 기사도 기사 나름이겠지."

"저쪽 여성분은 드라킬스의 다분히 공격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것 같은

데. 킬츠군의 검술은 처음 보는 것이군요."

"매우 독특한 것 같은데."

"네."

상황은 점점 킬츠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여자는 점점 뒤로 물러서

고 있었는데 킬츠의 검은 사실 보기보다 무척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에

상대하는 쪽의 피로가 매우 빠르게 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킬츠

가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만 해도 3개월이 걸린 바로 그  데스나이트의

검이었다.

그러나 막바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크게 몸을 회전시키

며 킬츠의 검 손잡이  부분을 원심력을 심어 강하게  가격했다. 킬츠는

갑자기 상대가 회전을 하자 잠시 주춤했고 그사이 그의 검은 이미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다.

"윽! 이런,"

여자는 검을 킬츠의 목에 대고 있었다. 무척 힘들었는지, 그녀는  격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넌 강하군.... 하아...... 네가 아버지 보다 강할까?"

"엥?"

"............ 방금은, 나의 요행이었다. 넌 나보다 강한 것 같다."

그녀는 킬츠의 목에서 검을 치우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이름은 뉴린젤 파우카. 난 널 죽이기 위해 싸웠지만 넌 나를 죽이

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네 이름은 뭐지?"

"나? 나, 난. 킬츠. 킬츠 마켄시타."

"킬츠, 다음엔 내가 진정 너를 이길 것이다."

뉴린젤은 자신의 등에서 긴 검  집을 빼내어 자신의 검을  집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빠른 걸음으로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강한 인간이다."

크라다겜이 킬츠의 검을 주어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킬츠도 검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방심했다 하나, 그래도 자

신은 강하다고 믿고있는 킬츠였다. 수많은 마족과 싸워왔기 때문에,  자

신이 인간에게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맞아. 정말 강한 인간이야 크라다겜. 난....... 어쩌면 너무 자만하고 있

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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