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34화 (34/166)

3장. -전란의 길- (2)

자치도시 연합은 이제 단  두 개의 성만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는

일명, '혼의 용병'이라 불리는 600년 이상을 자치도시 연합에 소속 되

어있는 용병 단의 거점인 '제인트' 성채였고 나머지 하나는 자치도시

연합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인 '파울드'였다.

성의력 667년의 4월. 드라킬스의 잔여 군대는 남아있던 여섯 개의 도

시를 점령했고 두 갈래로 뭉쳐서 제인트와 파울드에 가장 가까운  도

시에 집결해 있었다. 그리고 드라킬스 본국에서  마지막 끝맺음을 위

한 병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적의 증원 군이 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때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전술적인 변화는 도저히 계획할 수 없었다. 두 갈래

로 나눠오는 적의 증원 군은 각각 1만이었고 역시 두 개로 갈라져 있

는 적의 잔여병력은 각각 7000 이상이었다. 즉 합계  3만 4천의 대군

이었는데 자치도시 연합의 잔존병력은 제인트의 혼의 용병 단  6천과

파울프의 자유기사단 8천, 그리고 대부분 용병으로  구성된 보병 2천

여명이었다. 즉, 자치도시 연합은 자신들의 두 배가 넘는 적들과 싸워

야할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용병을 하겠다고?"

"그래, 루디형. 그밖에 마땅히 일할 곳이 없잖아?"

킬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디에게 대답했다.  이곳은 자치도시 연합

의 도시인 파울드의 작은 술집 안이었다. 주위엔 몇몇의 남자들이 중

얼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주인은  카운터에서 익숙한  가락을

흥얼거리며 컵을 닦고 있었다.

결국 결계 안에서 탈출한 킬츠 일행은 가까운 농가에서 친절한  농

민들에게 정상적인 음식과, 목욕과, 하루 밤의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이곳 파울프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 돈이  필

요했기 때문에 파울프의 무기상점에 들려서 크라다겜의 투구와  갑옷

을 팔아 넘겼다. 주인은 대단히 견고한  갑옷이라며 무척 즐거워하고

는 150바클에 그것들을 모두 사주었는데, 사실 그것은 마계의 금속으

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의 갑옷이었기 때문에 그 가격은 턱없이 부족

한 것이었다.

"적어도 2천 바클은 받았어야 됐어. 그러면 굳이  킬츠 네가 용병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만약 그것이 데스나이트의 갑옷이라고 밝히면 무슨 일이 벌

어질지 모르니까..... 당사자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킬츠는 옆에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술잔을 응시하고 있는 크라다

겜을 바라보았다. 깃이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최대한 얼굴을 가

리고 있는 그는 '전' 데스나이트의 마스터로 데스 워리어 마스터인 크

라다렛과의 결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지만 마족 특유의 빠른 회복력으

로 지금은 거의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크라다겜은 결계에서 빠져 나오자 자신의  갑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그때 킬츠와 루디는 크라다겜의 맨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약간 밝은 회색 빛 피부에 각이진 뚜렷한 얼굴을 한 상당한 미

남이었다. 그 회색 빛 피부와 조금 뾰족한  귀가 아니라면 무척 잘생

긴 인간이라 해도 문제없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제, 이런 갑옷 따윈 필요 없다. 지금부터는 나의 의지대로  이 지

상에서 살아가겠다. 이곳은  너희들이 나보다 익숙하니까  잘 부탁한

다."

조금은 멋대가리 없는 말투로 킬츠와  루디에게 새삼 인사를 하는

크라다겜이었지만 그것도 사실은 마족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충

격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에 킬츠의 기억엔 무척 인상깊게 남아있었다.

"이 자식! 뭐라고 그랬어! 우리가 전쟁에서 반드시 진다고!"

그때 킬츠의 옆 테이블에서 큰소리가 나며 싸움이 벌어졌다.

"아니..... 꼭 반드시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였다. 용병인 듯한

우람한 체구의 세 남자가 비교적  왜소한 체격의 유약하게 생긴 학자

풍의 한 젊은 남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는 마구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학자풍의 젊은 남자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만 두시지 그래."

보다못한 킬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이

건 또 어디서 굴러온 뼈다귀냐 라는 표정으로 술에 취한 그들 중 한

명이 킬츠를 공격했고 킬츠는 가볍게 그 남자의 복부를 가격하고  한

손으로 가볍게 그의 몸을 집어들어 술집 밖으로  던졌다. 그러자  나

머지 두 남자는 경악과 함께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밖으

로 사라져 버렸다.

"괜찮아요? 어디서 저런 깡패 같은 놈들이....."

"아, 괜찮아. 정말 고맙군.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한 힘인데."

술집 바닥에 쓰러졌던 젊은 남자는 킬츠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킬츠의  권유로 킬츠일행이 있는  곳으로 테이블을

옮겼다.

"이런. 도움까지 받았는데 술까지  대접받다니. 젊은 청년들  같은데

정말 고마워. 내 이름은 마인슈. 얼굴이 동안이라 젊어 보이긴 그래도

나이는 30이 넘었다고. 그리고 전에는 잘 나갔었는데 지금은 그저 일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실업자일 뿐이야."

남자는 자신을 소개하며 앞에 놓여진 맥주를 죽 들이켰다.

"아- 좋다. 페이오드 왕국의 위스키도 좋지만 이곳의  맥주도 한 술

하는군."

"난 킬츠라고 합니다. 이쪽은 루디. 그리고 이쪽은......"

킬츠가 자신과 루디를 소개하고는 옆에 있는 크라다겜을 보며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자 마인슈는 눈치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일행의 이름이야 천천히 알면 되고.  일단 만나서 반갑네 킬츠  군.

그리고 루디 군."

"반갑습니다. 마인슈씨."

"반갑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까 이곳의 용병이 되려 한다고?"

마인슈는 언제 또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먼저 말을 꺼내며 킬츠를

바라보았다.

"아,  일단 돈도 벌고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드라킬

스와는 개인적으로 원한이 조금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지요."

"그래? 흐음..... 하지만 이 전쟁은 자치도시 연합의 완패로 끝날  거

야.

어찌어찌 해서 이곳 파울드에 잔여병력을 모두 모은 것까지는  좋았

는데 적의 대규모 공격을 농성으로 버티겠다고 하니...... 그것은  전멸

의 시간을 조금 늘리는 방법밖에 안 되는데 말이야."

"뭐..... 어쨌든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요. 그런데....."

킬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된 반지를 하나  꺼내

어 마인슈에게 보여주었다.

"이 반지를 아세요?  어떤 사람이 쿠슬리  씨에게 전해주라고  하던

데......"

"쿠슬리?"

"예...... 아는 분이에요. 그런데   이 차지도시 연합엔 없는  것 같아

서.... 혹시 이 반지에 대해서  알면 쿠슬리 씨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

킬츠가 꺼낸 반지는 로니온이 죽기 전에 그에게 넘겨주었던 바로 그

반지였다. 결계에서 빠져 나온 킬츠일행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쿠슬

리를 찾아 카름의 죽음을 알리고 그녀의 머리카락과 로니온의 유품을

전해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쿠슬리를 찾아

보았지만 결국 그의 행방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으음........ 어디서 많이 본 문장인데.... 어디서 봤더라?"

마인슈는 반지에 새겨진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턱을  긁적거렸

다. 무언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한다는 표정이었는데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는 손가락을 탁 치며 알았다는 듯 소리쳤다.

"맞아! 그거야!"

"생각났어요?"

"그래. 생각났지. 이것은 나이트 길드의 문장인 뒤집힌 검의 증표야.

그런데......"

마인슈가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

를 살짝 잡았기 때문에  그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술집 주인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서있었다.

"혹시 마인슈 님이 아니십니까?"

아직 30이 안돼 보이는 젊은 나이의 주인은 웃는 얼굴로 마인슈에게

말을 건네었다.

"맞습니다만..."

"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주인의 말에 마인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인의 웃는 얼굴을 찬찬

히 들어다 보았다.

"아니...... 엑? 나이트  리네임! 리플레이크 기사단에서  강제 추방된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자네 이런 곳에서 접시 닦고 있었

나?"

마인슈는 놀라는 얼굴로 주인을  바라보며 반갑게 소리쳤고  주인도

더욱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접시 닦기도 할만한  직업이에요. 그런데 보아하니  마인슈님도

페이오드에서 쫓겨나셨나 보네요. 하긴 그 공포의  대 총관이 마인슈

님 같은 실력자를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지요,"

"그냥 쫓겨난 게 아니라 집과 재산까지 전부 압수 당했다네. 덕분에

이렇게 실업자 상태로 놀고있지. 하루하루가 막막해."

마인슈는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고 리네임도 계속 웃으며 말을  하다

가 잠시 멈추고는 킬츠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마인슈님. 회포는 좀 나중에 풀었으면 하구요. 일단 이쪽 분들

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킬츠 님이라고 하셨나요?"

"그런데."

"그 반지는 제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물건

이기도 하구요.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러면  쿠슬리 님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리네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은 킬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의 어깨를 양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따라가다마다! 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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