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33화 (33/166)

3장. -전란의 길- (1)

대륙 북쪽으로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군사력의  나라인

드라킬스 공국은 네 개의 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영토의 북쪽

과 중앙은 국왕의 가문인 켈도스 가문의 영토였고 서북쪽의 산악지방은

루비 가문의 영토, 남쪽의 낮은 구릉지방은 토파즈 가문의 영토, 그리고

동쪽의 평야지방은 마노 가문의 영토였다.

드라킬스의 마노가문의 영지내의 주요 도시인 네브란은. 현재,  전쟁

중이라는 국내 사정 때문에 도시  전체가 약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북부 자치도시 연합을 상대로  한 영토확장 전쟁이었는데

이미 대부분의 자치도시 소속의 성과  도시들은 드라킬스에게 함락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일부분은 아무리 전쟁중이라  해도 평소의 활기를 띄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대규모의 시장이었다.

'저것이 사람들의 모습.....'

활기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짐꾼들은 열심히  짐을 나르는 모습과, 손님

과 상인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과,  서로 이런

저런 국내외의 사정들을 심각하게,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새겨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뉴린젤 파우카. 올해로 22살이 된 그녀는 너무나 날카

롭고, 매서우며, 차가운 얼굴로 활기에 가득 찬 시장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23세션(184cm)이  훨씬 넘는 키

와, 마치 깨끗한 얼음으로 조각한 듯 차가움과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

는 그녀의 얼굴은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분은, 날 지금까지 속였던 것이다,'

시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

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어떤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증오와 미움으로

격렬한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극한의 상황에 도

달해 있었고 대상에 대한 저주의 마음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뉴린젤은 거침없고 날렵한 걸음으로 자신이 살고있는 저택으로 돌아왔

다. 그리고 투박한 침대와 테이블뿐인 자신의 방으로 가서 마치 그녀의

모습과도 같은 길고 매끈하게 빠진, 그리고 날카로운 자신의 장검을 집

어들었다. 그 검은 손잡이의 길이가 5세션이나  되었고 날의 길이는 창

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인 20세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저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의 한 가운데 있는 커

다랗고 고풍스러운 방. 그곳은 바로 그의 아버지인 드래곤 나이트 NO7

인 나이트 파리퀸의 방이었다.  뉴린젤은 거침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 왔구나. 처음 감상한 도시의 모습은 어떠하더냐?"

나이트 파리퀸은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클라스라인의 팔튼지방의 567

년 산 레드 와인(led wine)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뉴린젤은 아름답지

만, 너무나도 차가움을 간직한 음성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

라보고 있었다.

"지난 22년간. 저는 아버님의 말을 믿고, 오직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서, 오직 드래곤 나이트가  되기 위해서 훈련뿐인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제가 갈 길이라는 아버님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 밖의

세상은 가치 없고 불필요하다는 그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뉴린젤의 목소리는 점점  적대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나이트 파리퀸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그런 자신의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리퀸의 부인은 뉴린젤을 낳고 심하게  몸이 약해져 얼마 후  죽음을

맞이했다. 드래곤 나이트는 재혼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파리퀸은 이제 하나뿐이며,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자신의 딸을

철저히 주위에서 고립시키며 여자로써 참기 힘든 고도의 수련을 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가문에선 드래곤  나이트가 탄생해야 한다

는 잘못된 가문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결과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22세가 될   때까지 저택의 정원 밖으로  단 한번도

나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저택의 그 누구도 세상의 이야기는 해주

지 않았다. 오직 저택 지하의 수련 실에서  그의 아버지가 명령한 처절

한 수련남을 해올 뿐이었다.

그리고 실로 22년만에, 파리퀸은  놀랄만한 실력을 지니게  된 자신의

딸에게 저택에서 마음대로 나가도 좋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

짜 세상의 모습을 보고 온 그의 딸  뉴린젤이 엄청난 분노에 휩싸일 것

이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진자 세상을 보고  오니, 제가 얼마나 잘못되고,  억압된

시간을 살아왔는지 깨 닳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버님께 경어를 쓰

고있지만, 그것은 제가 그 동안 당신에게 그렇게 하라고 반복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쓸 수만 있다면, 전 지금 당신에게 이세상의 모든

끔직하고 더러운 욕설을 말했을 것입니다."

"건방지구나 뉴린젤. 나는 너를 위해, 그리고 이 가문을 위해 그 동안

너를 그렇게 키운 것이다."

"그것은 아버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그 동안 아버지가 옳다고 생

각하는 것을 해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아버님의 말에 따르는 인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옳은 일을 한것이다,  너는 오직 너의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느

냐? 여자의 몸인 네가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면서 드래곤 나이트가 될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으냐!"

"옳고, 그른 것은 아버님이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드래곤 나이

트가 되고싶다고 아버님께 부탁드린 적 없습니다."

"!"

뉴린젤의 날카로운 말에 파리퀸은  잠시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다.

설마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

파리퀸은 한참만에 한숨과 함께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당황과 괴

로움이 섞인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 인생을 빼앗아서 자신의 뜻대로 만든 아버님을 지금 저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습니다.. 제가 당신께 바라는  건 오직 한가지. 당

신과의 결투입니다."

뉴린젤의 번개같은 발언에 파리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놀란 표

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이트  파리퀸은 자신의  딸이

느끼는 분노의 심각성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너와 결투를 할 수 없다."

"해야합니다."

"안 된다. 내가 내 딸과  목숨을 걸고 결투한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지금 당신을 공격한다 하더라도 말입니까?"

"설사, 너의 손에 죽더라도, 그렇게 하진 않겠다."

"................."

파리퀸의 완강한 태도에 뉴린젤은 잠시 말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

았다. 여자로써 해야하고, 또 마땅히 누려야할 그런 소녀시절의 생활을

박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고립된  공간에서 이기적이고, 잘못된  가치를

심어준 바로 그 인간에게, 지금 그녀는 나타낼  수 있는 최대의 적대감

과 증오감을 눈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 아버님의 나라, 드라킬스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

입니까?"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지?"

갑작스런 뉴린젤의 질문에 파리퀸은 잠시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그에 대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 이 나라의 동쪽에 있는 북부 자치도시 연합이다."

"아버님도 참가하였었지요?"

"전쟁 초반은 내가 지휘하는 철벽의  기갑단이 전쟁의 주력이었다. 지

금은 다음전쟁을 대비해 휴식중이지."

"그렇다면 전 북부자치도시 연합으로 망명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아, 아니... 그건...."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뉴린젤은 차가운

목소리도 그의 가슴에 계속하여 못을 박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버님은 당당하게 저와 결투를 하실 수  있겠지요. 국가의

공적이니 말입니다. 아니. 나라의 명령을 받들어 반드시 싸워야만  할지

도 모르지요."

"아아....... 아니, 지금 자치도시 연합은거의 전멸 직전이다. 네가 참가

한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어."

"거의 라면 아직 전멸은 안됐다는 말이군요. 그럼 상관없습니다."

뉴린젤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깊게 고개 숙여 파리퀸에게 정중히  인

사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그의 방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사입니다. 다음에 만날 곳은 전쟁터이겠군요."

파리퀸은 고개를 무릎에 묻은 채 너무나도 거대한 괴로움에 휩싸여  들

었다. 뉴린젤이 방에서 나가고, 잠시  후 저택에서 나갈 때까지도  그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 자세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자신이 지금  너

무나도 커다란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뉴린젤을 도시로 내보냈던 것이 잘못인지, 아니면 그녀를 애초에 그렇

게 키운 것이 잘못인지, 파리퀸은 지금 그것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

에 이르고 있었다. 가문을 위해서 했던 일이, 지금 그에게서 단  하나뿐

인 소중한 혈육을 잃게 만든 것이었다.

그의 손에 들고있는 작은 와인 잔에 남아있는 액체의 양이 점점  늘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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