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26화 (26/166)

제 2장. -가시의 길- (22)

라프나 신전에선 갑자기 견학(을 빙자한  구경)을 하러온 클라스라인의

두 명의 공주들과 한 명의 패러딘 나이트를 맞이하고는 별 제지 없이 그

들을 수련 실로 안내했다. 견습  패러딘 나이트의 수련 규정에  수련 중

외부 인이 관청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고, 게다가 클라스라인 법

국의 공주와 본 신전의 출신인 패러딘 나이트의 견학을 막을 이유는  진

전 측으로썬 전혀 없었다. 물론  신전 측도 이번 견학이  단순한 미네아

공주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번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은 전번과  비교했을 때 그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재까지 한 명도 탈락하지 않은 조가 있는

가 하면........."

"오,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요."

"네, 나이트 마드리스 님. 그리고 또 대단한 것은 지금까지 벌점을 단 1

점도 획득하지 않은 수련 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게 놀란 것은 패러딘 나이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네아 공

주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는 패러딘 나이트선발전 중에 최하의 벌

점으로 패러딘 나이트가 된 사람은 제 47회 선발전에서 나이트 크루딘이

세웠던 벌점 27점이었다. 그리고 보통 한번에 패러딘 나이트로 선발되는

16명의 평균 벌점은 50에서 60점 정도였다.  그런데 안내를 해주는 신관

의 말로는 벌점이 0점인 수련 생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수련기간이 2

년 가량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분명 대단한  기록

임엔 틀림없었다.

"그 수련 생의 이름이 뭐예요?"

"세렌 마틴스. 법왕청의 그랜드 저지이신 마틴스 백작 님의 아드님이십

니다."

"와, 역시. 명문 귀족의 출신이네. 어떤 사람이지요? 키는? 생김새는?"

"미네아! 얘가 예의 없게..."

갑자기 흥미를 보이며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미네아에게 미레나는

조용히 눈치를 주었고 신관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멈춰  섰

다. 수련 실에 다 온 것이었다.

"자, 미네아 공주 님. 직접 눈으로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러자 마드리드가 먼저 나서서 수련 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곧 뒤따라 두 명의 공주들도 수련 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외부와 다른 공기가 흐르는 듯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련 생들의 동작엔 어느 정도의 여유가 갖추어져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두 공주들을 향해 있었다.  쉬게 말해 한 눈을  파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자세가 심하게 흐트러지거나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와, 멋져. 이게 바로 패러딘 나이트의 검인 휴페리온을  수련하는 모습

인가?"

"그렇습니다, 미네아 공주 님.  지금은 오후의 수련시간으로 네  시간을

연속으로 수련을 합니다. 한 시간마다 신관들이 회복을 시켜주면서 올려

베기와 내려 베기, 가로 베기와 찌르기를 연습하지요. 지금은 올려  베기

의 수련 시간인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가 수련 실 내부를 그리운 듯 죽  둘러보며 말했다. 그도 이곳

에서 5년간 휴페리온을 휘두르며 수련을 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었다.

가로로 여섯 명씩 두 조가 횡렬로 죽 늘어서서 수련을 했는데 중간 중

간 완전히 비어있는 곳이 많이 있었고  수련 생이 있다해도 한 조에  한

명이나 두 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중간쯤에 여섯 명이 가로로 전부 서

서 수련을 하는 조가 있었다. 바로 그들이 신관이  말했던 한 명도 탈락

하지 않은 조임에 틀림없었다.  미네아 공주의 일행은  천천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섯 명 전부 대단히 안정적인 자세로 힘있게 휴페리온을 휘두르고  있

었다. 그런데, 그 여섯 명중 가장 왼쪽에 있는 청년의 모습이 미네아  공

주의 눈에 확, 하고 들어왔다. 풍부한 빛의 단정히 다듬어진 멋진 금발과

적당히 갸름한 얼굴에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밝은 초록빛의 눈동자. 땀

에 젖은 얇은 훈련복에 비치는 잘 다듬어진 근육의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체격. 바로 올해로 18세가 되는 세렌의 모습이었다.

'와.... 마치 빛나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멋지다, 정말.'

미네아 공주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세렌의  수련하

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무언가 생각을 굳힌 듯 빙긋 웃으며 다시

나이트 마드리스와 미레나 공주가 있는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언니, 저... 나가서 차라도 마시고 있자. 수련이 끝날 때까지 말이야."

"어머? 웬일로 네가 차를? 넌 뜨겁고 쓴 것은 절대로 안 먹었잖아."

"아니, 참. 언니도...... 어쨌든 나가 있자. 저, 신관 님? 차  좀 끓여 주실

수 있지요? 과자도 있으면 더 좋고...."

"과자는 없지만 차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네, 네, 좋아요, 좋아. 어서 나가요. 수련을 방해하면 안되지."

평소의 행동과 방금 전의 행동에 전혀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말을 하며 미네아 공주는 억지로 일행을 수련관의 밖으로 끌어내었다.

미레나 공주는 동생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떼쓰는

미네아의 행동 때문에 별 수 없이 수련관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곳 수련관의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평소에

도 격한 움직임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꺼려하는  그녀였기 때문에  수

련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까 그 숙녀 분들 왜 수련관 안으로 왔었던 걸까? 구경하러 온 것 같

지는 않았는데....."

수련이 끝나고, 카젯은 수련과 밖으로 나가며 궁금해했다. 그도 그럴 것

이  수련관 안으로 들어온 두 명의 여자는 대단한 미인이었고 거기에 경

호원 역할이라고 생각되는 패러딘나이트까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평

범한 소녀들은 아닌 듯 했다.

"눈은 폼으로 달려있고 머리는 장식으로 달려있는 것 같아."

"뭐! 날보고 하는 말이야?"

키사르가 중얼거리자 카젯은 발끈하며 소리쳤고 그런 카젯의 모습을 바

라보지도 않으며 키사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두 명의 소녀 중 한 명의 옷은 장식이 많은 평범한 외출복이었지만 나

머지 한 명의 옷에는 클라스라인의 증표인 푸른 잎사귀가 수놓아져 있었

다. 황금의 잎사귀는 왕실 남자들의 증표, 푸른색의 잎사귀는 왕실  여성

들의 증표, 즉 저 정도의  나이라면 공주라는 소리지. 그리고 두  소녀의

사이는 아주 좋아 보였으니까 나머지 한 명도 아마 공주일 것이  틀림없

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해도 아직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카젯은  끙끙거리며

궁리했지만 펠린과 루벨은 즉각 알아채며 동시에 깜짝 놀랐다.

"미레나 공주와 미네아 공주!"

"이런 반응이 정상 속도인데..... 카젯의 머리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

은 듯 한데? 아니면 두 개의 고유 명사를 처음 들어본 건가?"

"뭣이! 음...... 아냐. 이제 알았어. 공주란 거지?"

다운크람이 반응 없는 카젯을 바라보며 핀잔을 주자 카젯은 그제야키

사르의 말을 이해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공주

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미레나와 미네아라는 공주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카젯의 머리로는 매우 혼동되고 기억하지 힘든

이름임에 틀림없었다. 정상적인 클라스라인의 백성이라면  아마 한 명도

빠짐없이 알고 있을 이름이겠지만.

그때 세렌이 걸음을 멈추었고 따라서 모두들 걸음을 멈추었다. 길의 정

면을 아까 그 공주의 일행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

면 미네아 공주가 막고 있는 것이었지만. 나머지 두 명과 신관은 뒤쪽으

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약간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네아

공주의 무척 즐거워하는 표정과는 대단히 대조적으로.

"안녕? 난 미네아라고 하는데...."

"견습 패러딘 나이트 세렌이 공주 님을 뵙습니다!"

미네아 공주는 격식 없이 평범하게 말을 건네려 했으나 세렌은 한쪽 무

릎을 꿇으며 정중하게 공주를 대하는 예의를  갖추었다. 나머지 다섯 명

도 이어서 인사를 했다.

"엥.....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 뭐 상관없지. 거기, 네가 세렌이지?"

미네아 공주는 세렌을 지명하며 말했고 세렌은 속으로 조금 당황해  하

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와... 목소리도 좋아.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어."

미네아 공주의 생글거리는 표정과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는 세렌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나머지 견습패러딘 나이트 다섯을 동시에  긴장시켰

다. 소문에 인하면 이 둘째 공주는 괴팍하고 자유 분방한 왈가닥의 성격

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슨 황당한 부탁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말씀..... 하십시오."

"좋아. 세렌, 내 기사가 되어 줘."

그러자 미레나 공주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고  나이트

마드리스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운크람과 키사르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속으로 무척 황당해 하고 있었고 펠린과 루벨, 그리

고 카젯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세렌은 이 갑작스럽고 황당한 부탁에 속으로 경악했지만 침착하게 생각

을 하며 이 앞 뒤 없이 막 나가는 공주에게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궁

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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