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25화 (25/166)

제 2장. -가시의 길- (21)

라프나 신전의 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도 시작 된지 벌써  3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 수련에 참가했던 246명중 200여명 이상이 벌점으로 인하여 탈락을

했고 41개였던 조도 현재  14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14개의 조 중에서도 초기의 인원인 여섯 명이 전부 남아있는 조는 단 한

조 뿐이었다.

"한 번에 1200번씩 휴페리온을 휘둘러도 이제는  버틸 수 있겠어. 내일

부터는 100개쯤 더 올려볼까?"

아침의 수련을 마치고 식당으로 걸음을 올리는 도중, 처음엔 그들 여섯

명중에서 가장 키가 작았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루벨과 키를

견줄 정도로 키가 쑥 자라버린 카젯이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이

미 휴페리온을 천 번 휘두르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는 게 좋을지도, 넌 머리가 안 되니까 더욱 검술을 단련하여 모자

란 부분을 메워 줘야지."

"음, 훌륭한 조언인데, 하지만 카젯의 빈 머리를 검술로  메우기엔 남은

2년으로는 절대 모자랄 걸. 세상 떠날 때까지  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

야."

키사르의독설에 다운크람이 맞장구쳤다. 키사르가 제정신을 차린 뒤로,

카젯은 키사르와 다운크람, 이 두 사람의  독설과 악담을 동시에 들으며

괴로운 3년을 보내야 했다. 물론 본인이 워낙 낙천적이라 크게 상처받는

일은 없었지만.

3년이 지난 다운크람의 얼굴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원래 나이보다 서너 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 얼굴이 더욱 원숙

해 졌을 뿐.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여전할 그  마른 얼굴과 날카로운 눈

매가 있는 이상 언제나 원래 나이 보나 서너 살 더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키사르는 별로 키가 자라지 않았다. 여섯 명중에서  가장 작은 키를 가

지고 있었다. 대략 21세션(168cm)정도였는데  타고난 동안이라서 다운크

람과는 반대로 십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는 몸매와

길게 기른 머리를 단정히 묵고있는 모습이 무척 여성스러워 보였으나 그

것은 단순한 외견의 모습일 뿐, 언제나  한곳만을 응시하는 섬뜩한 눈동

자와 마주치거나 다운크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매서운 독설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

인지 진정 깨달을 수 있었다. 키사르는 평소에는 매우 말이 적은 편이었

지만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주위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2층 수련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즘 최대의 관

심거리는 오전의 지식수련(기사도 및 역사,  최근엔 전략과 전술을 배우

고 있음)시간에 강사로 온 법왕청의 학자들과 키사르와의 지식 대결이었

다. 카젯의 입을 빌리면 즉 입으로 하는 싸움이었는데 처음으로 온 강사

가 말한 '강의 시작 전에 자신과 특정 분야에서 지식을 겨루어서 이기는

사람이 있다면 강의 시간 내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 라

는 발언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즉시 키사르는 강사와의 대결을 신청했고 강사의 의견에  따

라 클라스라인의 건국이래 진행되어온 외교관계를 주제로 겨루었다.

결과는 성의전쟁 이전의 외교관계까지 연도와 날자,  심지어 당시의 외

교관의 외교 특성까지 알고있던 키사르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 학자는 자신의 전문인 외교분야에서 패배하자 분통이 터졌는

지 다음날부터는 법왕청 소속의 각분야에 전문 학자들을 대신  내보내었

고 그때마다 키사르는 연전연승, 결국 지금까지  20번 겨루어 20번 전부

승리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었다. 실로 감탄할 만한 지식이었다.

"내 취미는 지식을 습득하고 분석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오늘 21번째로 키사르의 제물이  될 강사는 법왕청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법' 분야의 전문 학자였다.  강의가 시작하자 처음엔 당당하

게 본인의 소개를 했는데 상당히 재력 있는 자작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결이 시작되고 '화이트 나이트가 수도  내에서 가계를 약탈하

다 운 나쁘게 가계 손님의 기습을 맞아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

손님은 자치도시 연합의 상인으로 클라스라인의  국민이 아니었다. 그럴

때 상인에게 내릴 수 있는 판결과 그  이유는?' 이라는 키사르의 질문을

받고는 대결 10분만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결국 당당하고 재력 있는 자작가문의 귀족 강사는 사라지고, 강의 시간

내내 말을 더듬으며 쩔쩔매는 어설픈 풋내기 강사만이 남아있었다.

"야... 오늘 그 학자 정말 불쌍했어.  말까지 막 더듬을 정도니... 충격이

컸나봐. 키사르, 이번엔 좀 심했던  거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법왕청의

학자인데 10분만에 쓰러뜨려 버리면 어떻게 해."

강의가 끝나고 2층 수련의 방에서 나오는 도중, 펠린은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 키사르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3년 전이나 지금

이나 번함 없이 부드럽고 편한 얼굴의 펠린은 역시 예전과 비교해  변함

없이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인간의 강의를 듣는  시간은 1분, 1초가  아깝기 때문에...... 같은

법왕청의 학자라도 이 '카르트 부족의  네비아 군도(클라스라인 동쪽 바

다의 수십 여 개의 섬들을 말함)통일까지의 역사의 평가'를 만든 자이푸

스 남작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

린아이와 성숙한 어른 이상의 능력 차이라고 할까........ 왜 그런 무의미한

말만 늘여놓는 인간을 강사로 쓰는지. 그러려면 차라리 자이푸스 남작이

나 초빙할 것이지."

키사르는 읽고 있던 '카르트  부족의.....'에서 눈도 떼지  않으며 매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키사르는 이미 수련관의 도서관에 있는 10000여권의 책 중 정말 볼  가

치가 있다고 판단 내린 명서 500권 이상을  완전 독파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것들 중에서 적당한 책이나 그의 부탁으

로 도서관에 새로 들어 보고있는 신간들을 읽고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련 생들이  전부 대여한 책의 숫자는  키사르가

혼자 대여한 책의 숫자에 절반도  안 되는 실정이었다. 거의  이틀에 한

권 정도를 평균적으로 읽고 있으니.

"하지만 그런 인간도 운이 너무 없었던 거야. 노력하는 자, 결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당연한 결과랄까."

세렌은 가장 후 열에서 걸어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좋은 음성과 차분한

목소리. 3년간 여러 가지의 성장을 하면서 세렌은 조금 큰 키에 균형 잡

힌 청년의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  얼굴도 이제는 예전의 약간  어린 듯

했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준수하고 빼어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

었다.

"하지만 별로 노력하는 타입의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세렌. 노력

하는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에 당

당하거든. 하지만 고작 한번  지식을 겨루는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강의

시간 내내 그런 꼴을 보이다니. 그 강사, 반드시 무능력한 인간일 거야."

"그래도 명색이 법왕청의 학자인데."

"물론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있는 최

하의 귀족들보다는 조금 낳은 편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르면서 하찮

은 지식으로 우쭐거리며 뽐내는 그런 부류들도 만만치 않다."

"하하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일텐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런

인간들의 걱정은 우리가 패러딘 나이트가 되어서 해도 늦지 않아."

루벨이 넉살 좋은 웃음으로 괜히 옆에 있던 카젯의 등을 그 커다란 손

으로 펑펑 두드리며  말했다. 루벨도,  카젯도 키가 24세션(약 192cm)이

상 되었으나 결정적으로 루벨은 워낙  대단한 덩치가 있어서 둘이  같이

서있으면 루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본인은 자각 못해도 실제로 엄청난 힘이 담긴 루벨의 손에 등을 두드려

맞은 카젯은 컥 하는 신음을 내며 앞으로 기우뚱했다.

"으윽.... 다 좋은 말이긴 한데 왜 남의 등은 두드리고 난리야..."

"뭐, 강의시간 내내 졸 길래 잠 좀 깨라고 그랬지."

"으음...."

1층 수련 실에서 시작되는 오후의 총 4크락 동안의 수련시간은  예전의

빽빽했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엔 250명 정도가 한번

에 들어와서 수련을 했기 때문에 매우 압박 적인 기운이 수련시간  내내

수련 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40여명 정도가

사용할 뿐이었다. 덕분에 텅텅  비어버린 공간을 모두  넉넉히 차지하고

수련을 했기 때문에 수련 실 내부의 모습이 무척 한산했다.

남아있는 수련 생들은 대부분 휴페리온을 다루는 자세에 틀이 잡혀  있

었다. 안정된 자세와 휴페리온의 빠른 속력, 보통 검의 크기나 무게를 훨

씬 상회하고 있는 이 무기를 이제 그들은 보통 검보다 더욱 능수 능란하

게 다룰 수 있었다. 몇몇은 수련 도중에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였

다.

"야..... 카젯, 정말 올려 베는 속도가 빠른데! 바람소리가 윙윙......."

"하하하.... 그래? 그래도 말을 탄 상태에서는 펠린, 네가 최고지."

"아, 아, 고마워."

"뭘, 난 세인랜스를 다루는 것은 영 안 맞아서 말이야."

수련이 시작 된지 2년쯤 지났을 때부터 저녁의 기마 훈련 시간에  수련

생들은 패러딘 나이트의 기마전용 무기인 세인랜스를 다루는 훈련을  시

작했다.

세인랜스는 길이가 32세션(약 250cm)정도  창으로 끝은 뾰족하지만 손

잡이 쪽으로 갈수록 점점 둥글게 커지는 형태상으론 전형적인  기사창이

었다. 그러나 보통 기사창과 세인랜스가 다른  점은 라프나 신전 신관들

의 축복을 몇 중으로 받은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보통 철로 된 창과

는 강도 면에서 크게 앞서  있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적의  방패를 뚫고

적의 무기와 부딪치고 적의 피를 머금으면서도 언제나 밝은 은백색의 광

채를 잃지 않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무기,  그것이 바로 패러딘 나이트의

두 번째 전용무기인 세인랜스였다.

"물론 펠린의 기마 술은 우리 중 따라올  자가 없지. 그리고 기마 술이

받침 돼야만 기마 창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고."

세렌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휴페리온을 휘두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젠

세렌에게 예전 같은 장해져야만 한다는 긴박한 부담감은 없었다. 이제는

막무가내로 수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올려 베기라도 자신만의 미묘한 방향의 독창성과  힘의 강약. 그리고 속

도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련

중에 주위를 보는 시아가 넓어진 세렌에겐 예전에 부족했었던  여유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다.

그때 삐그덕 소리를 내며 수련실의 앞문이 천천히 열리며 몇 명의 사람

들이 들어왔다. 평소에 수련 도중엔 아무도 수련 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

았기 때문에 그곳의 수련 생과  담당 신관들은 대부분 시선이  정문으로

모아졌다.

먼저 앞장서서 들어오는 사람은 중년의 관록 있어 보이는 중무장한  패

러딘 나이트였다. 그리고 그 뒤로 두 명의 사람이  더 들어 왔는데 그들

은 눈이 확 뜨일 만큼 아름다운 미모의 소녀들이었다. 한 명은 청순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품고있는 단아한 미인이었고 또 한 명은 생기가 넘

치는 얼굴에 가득히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활달해 보이는  미인

이었다. 적어도 3년간 여자를 보지 못한 수련  생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

였다.

"에~~ 저거 뭐야. 지금 이상한 게 내 눈에 보이고 있어."

"너무 두려워하지마 카젯. 저건 여자라는 거야. 기억 나지 않을 지도 모

르지만 사실 언젠가 분명히 본적이 있었던 종족이라구."

카젯이 크게 놀라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루벨이 그런 카젯의  반응에

맞장구 쳐주며 같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라도  그들은 분명

놀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녀들의 정체를 알고 나면 더욱 놀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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