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가시의 길- (18)
"음..........."
요란히도 시끄러운 소리에 루디는 깊게 들어있던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
다. 오늘은 그야말로 전 알마스를 다 동원하여 물을 정화 시켰기 때문에
피곤에 지친 몸을 푹 쉬게 하려고 했는데 그야말로 난데없는 날벼락이었
다.
그러나 무엇인가 부서지고 깨지는 시끄러운 소리뿐만이 전부가 아니었
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곧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격렬한 진동으로 변해갔다.
"뭐야.... 이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루디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오
직 자신뿐이었다. 루디는 섬짓한 불길함을 느끼며 재빨리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동굴밖에는 크라다겜이 보랏빛의 눈동자를 번득이며 경계하
는 자세로 서 있었다.
"크....... 크라다겜.....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던한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크라다겜의 모습을 바라보며 꺼림칙한 목
소리로 루디가 묻자 크라다겜은 격렬한 진동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굳건한 자세로 킬츠가 카름을 찾으러 간 돌의 산 쪽을 바라보았다.
"지각이 변하고 있다...... 또 다른 마족이 이 결계 안으로 소환된 것인
가...."
크라다겜은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루디를 돌아보지도 않
으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의 물자를 챙겨서 나를 따라와라 인간이여. 위험한 일이 일어나
고 있다."
크라다겜은 그렇게 말하고는 엄청난 속도로 돌의 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데 더 큰 위험이란 대체 무엇인가. 루디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와 그 동안 모아둔 마물의 고기와
식수를 챙겨 들고 자신도 돌의 산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위의 마물
들이 습격을 해오면 어쩌나 걱정도 됐지만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는 크라
다겜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땅의 흔들림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아픔이 밀려왔다. 머리에서 시작되어 얼굴을 흐르고 있는 비릿한 액체.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자신의 피였다.
카름은 온몸에 퍼져오는 고통을 느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킬츠에
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는데갑자기 땅이 밑으로 꺼지며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까지는 느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정신을 잃고
말았었다.
더듬거리며 낭떠러지 아래의 벽을 찾아 몸을 기댄 그녀는 서서히 되살
아 오는 감각으로 인해 온 몸에 밀려오는 끔직한 고통을 느끼며 신음 소
리를 내었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 킬츠... 킬츠.... 어디 있어요..."
힘없는 목소리로 주위를 향해 소리쳐 보았지만 주위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킬츠와는 다른 곳으로 떨어진 듯 했다.
'아파..... 너무... 아파..... 그런데...... 내 앞에.....'
속으로 고통을 참아내던 카름은 어느 순간 자신의 정면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존재가. 그곳에
서있었다. 불길하고 두려운 기운. 그녀의 소울아이가 필사적으로 무엇인
가의 위험을 자신에게 알리려 하는 것이었다.
"스르릉......"
그리고 카름의 앞에서 금속성의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금
속을 마찰시키는 소리. 마치 칼집에서 칼을 꺼내고 있는 듯한 소리.
그리고 그녀는 무엇인가가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
다.
절벽에서 떨어진 킬츠는 찢어진 상처와 손상된 뼈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몸의 고통도 잊은 체 바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름은 어디
에 있는가. 그녀는 무사한 것인가. 오직 먼저 절벽에서 떨어진 카름의 생
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후 한층 더 강해진 주위의 기운 덕분에 킬츠의 소울아이
는 다시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자세히 보이지는 않
았지만 그가 떨어진 절벽의 높이는 적어도 5000세션(약 40M)은 충분히
되어 보였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군..... 카름도 살아있어야 할 텐데....'
킬츠는 절벽아래, 자신이 서있는 곳에 동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음
을 옮겼다. 카름도 분명히 이 근처에 떨어 졌을 것이 분명했다. 카름이
제발 살아만 있어 달다고, 킬츠는 속으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빌고 있
었다.
길은 원체 어두운 데다가 절벽의 아래라서 더욱 어두웠다.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오직 하늘에만 약간의 빛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바람소리 마저 스산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 '착'하고 무엇인가가 베어지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무엇인가
날카로운 검에 의해 가볍게 베어지는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무엇
인가가 떼구르 굴러와 킬츠의 발에 부딪쳤다.
킬츠는 무심결에 자신의 발에 부딪친 원형의 물체를 집어들었다. 너무
나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눈앞에 가져와서야 킬츠는 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끈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연신 흐르고 있는 물체, 눈을 감고 있는 불안
해 보이는 얼굴, 중간이 잘려져 있는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
"으아아악-"
그것은 카름의 머리였다.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르고 오직 불안한 표정만
짓고 있는 얼굴. 잘려진 목은 너무나도 깨끗하게 베어져 있었다. 잘린 단
면이 수평을 이룰 정도로.
"카... 카름....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킬츠는 부들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절규하는 듯한 비명이
절벽 안을 가득 메우며 울려 퍼졌다. 킬츠는 카름의 목을 껴안고 울부짖
었다.
"으아악! 안돼! 안돼! 이럴 수는 없어...... 말도 안돼...... 왜 내 소중한 사
람이 죽어야 하는 거야.... 어머니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는데.... 카름... 카
름마저..... 왜 내 곁을 떠나는 거야!"
그러나 울려 퍼지는 킬츠의 절규 사이로 무엇인가가 소리 없이 접근해
왔다. 순간 그것을 느낀 킬츠는 카름의 머리를 옆으로 내려놓은 다음 분
노와 고통의 눈빛으로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너로구나...... 너 가 카름을 죽였어!"
"................"
그러나 킬츠는 말을 끝내자마자 한순간 자신의 가슴 부위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재빨리 몸을 뒤로 피했으나 이미 날아온 칼이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스치듯 베어졌는데 상처는 의외로 깊이 나 있었다. 그리고 연이은 공격.
킬츠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을 오로지 감으로 피해 내며 뒤로 물
러섰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검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더
이상 피할 수많은 없었던 킬츠는 이를 악물며 검을 세워 적의 공격을 막
아내었다.
'대단한... 힘이다.....'
그러나 킬츠의 검은 적의 검에 닿자마자 뒤도 되 튕겨 져 버렸다. 적의
검에 실린 힘의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러설 수도 없었다.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적은 바로 카름을 죽인 장본인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폭풍 같은 적의 공격에 킬츠는 제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다. 너무나도 강한 공격. 스쳐 맞기만 해도 이미 피부엔 깊게 베인
상처가 생겨 있었다. 하다 못해 제대로 보이기만 해도 좋으련만, 킬츠는
서서히 힘이 빠져오고 있었다.
'이 녀석이... 카름을 죽였다.... 이 녀석이 카름을 죽였다..... 이 녀석이..'
그러나 서서히 힘이 빠져 가는 몸과는 달리 정신은 점점 날카롭게 집중
되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적의 공격이 킬츠에게 스
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널 죽이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이라도 아끼지 않아........'
그러나 킬츠는 오히려 발을 한 발짝 내 딛으며 적의 공격 사정거리 안
으로 들어왔다. 적의 공격이 빠를지, 자신의 공격이 빠를지. 그것은 목숨
을 건 도박이었다.
킬츠는 전력을 다해, 자신의 모든 체중과 힘을 검에 실어 대각선으로
검을 베어갔다. 자신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러나 적의 검이 공기
를 가르는 소리가 더욱 빠르게 들려왔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공
격이자 카름의 목숨을 빼앗아간 공격. 킬츠는 자신의 옆구리에 날카로운
금속이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공격은 적을 가
르고 있었다. 단단한 금속의 갑옷을 뚫고 살 속, 깊숙하게, 그리고 그 안
에 있는 뼈와 그 밖의 것들이 자신의 검에 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거다, 바로 이거다. 킬츠의 마음속에 희열이 밀려왔다.
"파아악!"
킬츠의 검은 완전히 적을 두 동강 내버렸고 그 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피가 킬츠의 온몸을 뒤덮으며 쏟아졌다.
반면에 적의 검은 킬츠의 옆구리에 살짝 박히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
했다. 자신의 몸이 두 동강 나버렸기 때문에, 당연히 더 이상 벨 수는 없
었다.
"헉... 헉... 헉...."
킬츠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지워지는 듯 한 기분
이었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곧 힘든 현실이 다가왔다. 온몸
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고통. 많은 출혈로 인한 어지러움. 그리고
카름의 죽음.
킬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오직 하나뿐인 자신이라는 것을 느
끼며. 견딜 수 없는 아픔의 감정들이 밀려왔다. 킬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더라도, 눈을 뜨더라고 하늘은 똑같이
어두울 뿐이었다
"이건..... 데스워리어...."
잠시 후 앞에서 누군가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음성에 딱딱
한 말투. 바로 크라다겜의 목소리였다.
"새롭게 소환된 마족이.... 데스워리어였군. 데스나이트 들이 대부분 사
라졌기 때문에 다시 불러낸 것인가... 그렇다면 데스워리어 마스터인 크
라다렛도 왔을 테지."
크라다겜은 킬츠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힐끔 왼쪽 벽을 바라보았
다. 어둠에 가려져 있었지만 크라다겜의 눈은 그곳에 있는 목이 없는 카
름의 몸을 보고 있었다.
"............ 여자가 죽었군."
"................"
"여러 가지 감정들이 이리저리 엉켜 있군. 하지만 그 대부분은 절망인
가."
"카름을 죽인.... 이 녀석이........ 데스워리어라는 녀석이야?"
킬츠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깊이 잠겨있는 침체된 목소
리였다.
"맞다. 데스워리어. 데스나이트, 데스위자드와 함께 마계의 3대 가문의
전속 부대들이지. 가장 많은 숫자를 거느리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은 데
스나이트보다 떨어지지만 무척 강하고 용맹스럽다. 역시 파괴와 살육만
을 생각하고 행동하지."
크라다겜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이미 킬츠의 귀는 소리에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의식이 풀어지며 킬츠의
눈앞은 흐릿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카름의..... 목을......."
킬츠는 풀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곧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한계의
상황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크라다겜은 말없이 쓰러진 킬츠의 몸을 집어들어 한 손으로 옆구리에
껴들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옆에 놓아져 있는 카름의 목을 잡아들었
다. 그리고 그때 헐떡거리며 그곳으로 루디가 달려왔다.
"크라다겜.... 대체 이런 낭떠러지의 밑으로 들어오다니.... 앗! 킬츠아니
야! 그런데 그쪽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루디는 약한 불의 원소마법을 사용하여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그런 그
의 눈에 킬츠를 옆구리에 껴들고 있으며 또 반대쪽 손으로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크라다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가져와서
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킬츠와는 달리 루디는 단번에 크라다겜이 들
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카.... 카름? 그건... 카름의... 목이잖아! 어떻게!"
크라다겜은 말없이 옆의 어둠을 응시했고 그곳을 바라본 루디는 역시
목이 없는 쓰러져 있는 카름의 몸을 볼 수 있었다.
"대... 대체..."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말하겠다. 지금은 새로운 마족들이 이 결계 안
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나의 힘으로도
수많은 데스워리어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라다겜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름의 머리를 루디에게 건네주었다.
"받아라."
"아.. 앗!"
그리고 크라다겜은 엉겁결에 카름의 머리를 받아든 루디를 바로 잡아 들
어서 킬츠의 반대편 옆구리로 끼워 잡아들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루디는 딱딱한 갑옷 때문에 몸이 아팠지만 완강한 크라다겜의 태도에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단지 카름의 머리를 떨어뜨리지 않게 꽉 붙
잡고 있을 뿐.
루디가 등에 멘 가죽 통 안의 물이 빠른 흔들림에 출렁 겨리고 있었다.
크라다겜은 흔들리는 루디의 머리가 아파 올 정도의 빠른 속도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하나, 둘 어두운 그림자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밝고 현란한 내부의 벽 조각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 밝은
조명과 부드럽고 알맞은 실내온도. 이곳은 바로 이 나라의 오랜 정통과
위엄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 바로 클라스라인
법국의 법왕이 사는 곳 바로 법왕청이었다.
역대의 법왕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서 이곳에서 활동하고,
이곳에서 목숨을 마쳤다. 실로 법왕의 고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성이었
는데, 실로 대륙의 다섯 왕국의 궁성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
이었다.
"요즘 피의 사막 근처의 팔튼 성에 마물들의 공격이 거세 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남쪽 해안 부근의 프로겐 성은 최근 동쪽바다의 섬들에서 살고있는
해적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제 36대 법왕인 파우킨저 3세는 신하들의 보고를 들으며 자 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로 40세를 맞이한 이 젊은 법왕은
19세에 법왕의 자리에 올라 20년 이상 클라스라인을 통치해 오면서 역대
의 법왕 중 가장 무능력하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국사를
그랜드 저지인 마틴스 백작과 국무총관인 프레이어 백작에게 맡겨 두고
자신은 언제나 법왕청 안에서 호위호식하며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
다. 그의 주요 하루 일과는 거대한 개인 목욕탕에서의 목욕과 최고급의
식사, 그리고 음식이 썩어날 정도로 자주 열리는 왕실의 파티였다. 왕실
의 파티는 거의 열흘마다 한 번 꼴로 열렸는데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해서
클라스라인 귀족들의 절반 이상이 매번 참여해도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팔튼 성과 프로겐 성의 성주는 누구인가?"
다시 무료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온 법왕이 무기력한 목소리로 묻자 언제
나 옆에 있던 국무총관인 프레이어 공작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
다.
"패러딘 나이트 NO 24인 루피퀸 후작과 패러딘 나이트 NO 35인 크차
리스 백작입니다."
역시 법왕과 비슷한 40대의 프레이어 공작은 그랜드 저지 마틴스 백작
과는 달리 젊은 기운으로 매사에 활동적이었다. 언제나 목소리에 힘이
담겨있었는데 그것은 클라스라인 제일의 명문귀족가문의 가주에게서 나
오는 당당한 자부심이었다.
"성주들이 패러딘 나이트이니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걱정할 것 없다.
팔튼과 프로겐의 병력은아마 크루세이더 5000씩 이었지? 수도 근위군 중
에서 예비병력인 화이트나이트를 천명씩 선발하여 지원군으로 보내주도
록 해라. 그러면 되겠지."
법왕은 자신의 생각에 썩 좋은 판단이라고 여겼는지 우쭐한 얼굴을 하
며 보고를 하러온 신하들을 물려보냈다.
크루세이더는 클라스라인의 일반 보병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1년간의 수
행을 받은 클라스라인의 정예병사들이었다. 대략 그 숫자는 6만에 달했
는데 최근 예산감축과 관리 부실로 인해 일만 정도가 줄어들은 형편이었
다.. 그리고 화이트나이트는 클라스라인의 정식 기사단으로 1년간 수행을
하는 크루세이더와는 달리 3년간의 수행에서 '통과' 한 실력 있는 기사들
로 숫자는 3만 정도였다. 하지만 패러딘 나이트라는 절대적인 기사단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이트 나이트 출신들은 언제나 최고의 지휘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프레이어 공작은 법왕의 방에서 나오면서 방금 전 법왕의 처사에 마음
껏 속으로 비웃었다. 자기 딴에는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나본데 사실
그것은 지금 국외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법왕만이 할 수 있는 극히 어리
석은 판단이었다.
우선 클라스라인 동쪽바다의 섬들은 얼마 전 카르트라고 하는 부족에
의해 통일이 되어서 서서히 국가체제를 갖추며 급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런 그들이 국내의 침략을 노리고 대대적으로 공격해 온다면
고작 5000의 크루세이더와 1000의 화이트나이트로 막을 수 없을 것이 분
명했다.
적어도 세디아 황국과 자치도시 연합과의 국경지방을 수비하고 있는 패
러딘 나이트 NO 7의 제레딘 공이 이끄는 1만의 화이트나이트로 구성된
섬광의 기사단이나 패러딘 나이트 NO 4의 파리퀴스 백작이 통솔하는 1
만 5000의 화이트 나이트와 2만의 크루세이더로 구성된 수도 방위군인
백색방패의 군대 가 아닌 이상 그들의 총 공격을 막기란 아마도 불가능
할 것이었다.
게다가 피의 사막과의 접근국경에 위치한 프로겐 성은 이미 병사들의
사기가 최악이었다. 말이 마물이지, 그들은 피의 사막에서 살고있는 변종
오크들로 피의 사막에서 생존할 만큼 강인한 생명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들이었다. 그들에게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5000에서
이미 절반 이상 죽어버린 크루세이더들과 예비병력인 신입 화이트나이트
1000여기로는 마물들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물론 이 성들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패러딘 나이트 성주들이 병사들을
제대로 통솔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만 한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으나. 기
금까지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오직 개인의 체력과 검술만 뛰어날 뿐,
용병을 하는 데에는 전혀 재주가 없었다. 그저 병사를 거느리고 싸울 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랄 인재들은 결코 아니었다.
프레이어 공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역대로 훌륭했던 법왕들은
고작해야 한 손의 손가락을 다 채울 수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었다.
대부분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백성의 세금만 좀먹었는데 그때마다 훌륭
한 그랜드 저지와 국무총관들이 나라를 지탱해 왔었다.
국토확장의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드라킬스, 통일이 된 동쪽의 섬
부족들, 무능력하고 사치스러운 국가의 통치자 법왕. 이런 최악의 상황에
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 나라를 기울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랜드 저지
인 마틴스 백작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활발하게 국사를 처리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나랏일들은 자신이 처리하는것에 대해 프레이어
공작은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나라안의 귀족들은 대부분 법왕처럼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허영심과 자만심만 산더미처럼 부풀어 있었고 정
작 실력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프레이어 공작의 유일한 희망이라곤 이
제 시작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서 훌륭한 성품과 뛰어난 능력,
그리고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통솔력을 가진 훌륭한 인재가 발굴되었으
면 하는 것이었다. 그의 첫째 아들인 파울프도 이 선발전에 참여를 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각종 교육과 훈련을 시켜온 그의 아들이 자신의 생
각에 맞는 훌륭한 패러딘 나이트로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 나라의 중신으
로써, 그리고 자식의 아버지로써 프레이어 공작이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었다.
라프나 신전의 제 91차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에 참가하고 있는 다운크람
파우리타운은 올해 나이 15세로 나이에 비해 세 살쯤 더 먹어 보이는 원
숙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나이또래에 비해 상당히 큰 키
를 가지고 있었는데 워낙 마른 체구와 루벨 같은 거구의 소유자들이 주
위에 버티고 있어서그다지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된 검은 머리카락, 마른 얼굴형
으로 인해 언뜻 보면 무척 신경질 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사실 꼼꼼
하고 세심한 성격 때문에 주위사람들과 충돌이 자주 생겨서 실제로 신경
질을 자주부리는 편이었다.
언제나 '난 가문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
운크람은 현재 몰락해버린 파우리타운 남작 가문의 젊은 가주로 술과 여
자에 찌들어 살며 가문의 하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그의 아버지, 펠
리스 남작과는 달리 누구보다도 성실했으며 의지가 강했다. 그리고 자신
의 아버지처럼 무능력하며 게으르고 의지 없는 사람을 가장 증오했다.
결국 펠리스 남작이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과 기력쇠악으로
사망해 버리자 다운크람은 아버지의 장례식조차 지내지 않고 시체를 화
장하여 저택의 정원 한 구석에다가 묻어버렸다. 주위의 귀족들은 그런
다운크람을 매정하고 예의 없는 불한당 취급을 했는데, 정작 다운크람은
그런 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를 화장하여 정
원에 묻은 것은 그를 증오하기도 했기 때문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집
안에 이미 장례식을 열거나 귀족 전용 공동묘지에 땅을 살만한 돈이 남
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집안에 한푼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상당한 액수의 빛까지 지고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전
재산을 탕진해 버린 것마저 모자라 빛까지 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덕분에 12살의 어린 나이에 가문을 책임지게된 다운크람에게 남겨진 것
이라곤 허름한 저택과, 손바닥만한 남작가문의 영지와, 50명이 넘는 하인
들과, 2만 바키의 빛, 그리고 네 명의 어린 동생들이었다. 앞의 두 가지
는 그래도 재산이라 할만했으나 뒤의 세 가지는 오히려 큰 골치 덩어리
였다.
가주가 된 다운크람은 즉시 하인들 중 40명 이상을 해고시켜버렸다. 해
고시킨 하인들 중에서는 노예의 신분으로 가문에 종속된 사람들도 있었
는데 다운크람은 그들의 노예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리고 자유롭게 해방시
켜 주었다. 노예라는 사슬로 인간의 가능성을 묶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그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명예와 부의 상징이었던 가문의 영지를
팔아버리고 빛을 갚고 난 나머지 차액을 해고한 하인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어 그 동안의 노동의 대가를 확실하게 보상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운크람은 말의 먹이가 되는 건초를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숫자와 계산에 뛰어난 자신의 능
력을 유감없이 발휘, 1년 동안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장사로는 가문을 제대로 일으키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판단했던 그는 완벽한 가문의 부흥을 위해 2년간 몸을 단련시키고 지식
을 쌓아 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패러딘 나이
트만 되면 기본적으로 백작의 지휘가 내려지기 때문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지와 권리가 주어졌고, 때문에 가문을 일으키기엔 더없이 좋
은 방법이었다.
"그럼 집안에 동생들과 하인들밖에 없겠네? 걱정되지 않아?"
가끔 펠린이나 세렌이 다운크람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믿을 만한 하인에게 돈과 동생들을 맡겨두었으니 걱정 없다" 고 말하며
해고하지 않고 남겨둔 하인들에 대한 강한 신뢰를 나타내었다.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 참가한지 얼마 지난 요즘, 다운크람에겐 가문
의 부흥 외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생각이 깊고 실력 있
으며 제정신이 박힌 세렌이라는 같은 조의 동료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태
주는 것이었다. 역대로 그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인간이라
고 생각되는 사람이 바로 세렌이었는데 사상이 아주 이상적이었다. 인간
의 가치는 신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약간의
주관적 해석) 의하여 결정된다는 말이 다운크람의 마음에 쏙 들게 매력
적이었던 것이었다.
"세렌은 검술실력도 일류급이고, 외모도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나며 진실
된 사상과, 사람을 휘어잡는 묘한 카리스마까지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너무 독단적이라는 거야.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하니...."
아침수련을 무사히 마치고, 이미 수련 생들 사이에 전설이 되어버린 6
인 베기 사건(정통 귀족 자제들의 숙청 사건)을 떠올린 펠린이 다운크람
에게 말하자 다운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세렌은 생각이 깊지만 정작 위기가 오면 생각 없이 막 나가는
특징이 있어. 물론 혼자서 어느 정도의 위기는 타파할 실력이 뒷받침 되
어있기는하지만 말이야."
"맞아."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여러 가지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 단점도 있
는 게 당연한 것 아니야? 혹시 찾아보면 더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을지
도 몰라."
불쑥 대화에 끼어들은 카젯의 말이었다. 그러자 다운크람은 고개를 설
레설레 저으며 카젯에게 충고했다.
"그렇지만 말이지, 세렌의 모든 단점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아마 지금
이미 밝혀진 너의 단점의 10퍼센트조차 안될걸. 남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반성해 보지 그래."
"우윽... 뭔 말을 못한다니까..."
카젯은 툴툴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런 그도 세렌을 제외한
그들 다섯 명 중 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였다. 정식으로 검을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빠른 검술을 소
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정식으로 검을 배움에 따라 그 실력이 비약
적으로 상승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세렌의 상태가 안 좋은데.... 역시 그때의 소식 때
문인가?"
카젯은 가장 뒤에서 고개를 숙인 체 침묵으로 걸어오고 있는 세렌을 보
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모두들 세렌을 바라보았는데 세렌은 여전
히 침묵 속에서 고개를 약간 숙인 체 고민스러운 얼굴을 하고있었다.
이미 수련 생들에겐 선망과 질투, 그리고 신관들과 검술을 전수해 주는
패러딘 나이트들에게는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세렌이 이렇게 심각한 저기
압에 둘러 쌓인 것은 바로 며칠 전 키사르가 알아온 소식 때문이었다.
그날, 모든 수련을 마친 후, 자유시간이 되자 키사르는 수련관 2층의 도
서관에서 대여한 '드라킬스 공국의 영토확장에 대한 고찰' 이라는 제목의
책을 다 읽고 갔다주러 가는 길이었다. 클라스라인 법왕청의 학자인 자
이푸스 남작이 성의력 660년에 출간한 이 책은 키사르의 생각보다 매우
여러 가지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즉 드라킬스의 전쟁터의 보급 전
략과 다양한 전술, 그리고 가장 뛰어난 기동력과 화력을 자랑하는 드래
곤 나이트의 전략적 중요도, 그리고 전쟁 상대인 자치도시 연합을 제외
한 나머지 네 개의 국가간의 외교 정책 등 실로 풍부한 내용들이 자세하
게 설명되어 있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키사르는 또 다른 자이푸스 남작의 저서를 찾기
위해 책장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도서관 안에 중간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명의 신관들의 서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포착. 태연하게 그쪽으로 접근을 하여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
했다.
"그러니까, 저번에 도둑맞은 금서들 중에 어둠의 금주법인 다크핵사곤
의 결계와 관련된 것들이 있어서 이번에 다크휴먼들이 세디아 황국간의
국경지방에 그 결계를 핀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대 신관 님이 직접 그곳을 조사하러 떠
나셨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큰일이군요....."
"데스튼 님의 신전과 스피리스트 님의 신전에도 이미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조만간 대규모의 신관들이 집결하여 다크 핵사곤의 결계를 해제
하려고 하는데....."
키사르는 거기까지 듣고는 재빨리 도서관을 빠져 나왔다. 그는 마음을
고쳐 잡은 후로 같은 조 다섯 명의 출생지와 생일, 취미, 존경하는 인물,
심지어는 좋아하는 여성상까지 캐물어 알아내었는데 그것은 그의 유일한
취미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여 자신의 머리에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분
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중 세렌의 고향이(정확히는 아님) 클라스라인 법국과 세디아
황국사이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방금 전 신관들의
대화 중 바로 그 지명이 나왔기 때문에 킬츠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 두 지역은 일치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세렌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세렌은
말수가 적어지고 자주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키사르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을 맞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여섯 가
지 방법을 생각하여 말해주려고 했는데, 세렌이라면 자신이 그 해답을
직접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 그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킬츠는..... 장로님은..... 다 어떻게 된 거지.... 무사 한 건가? 아니면.....
아아... 대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으니...'
수련에 빠져 있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밥 먹는 시간마저 세렌은 고민에
잠겨있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마을로 달려가 그들의 생사를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의 미래를 위한 강력한 이성이 그 충동을 저
지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내린 판단은 '가지 않는다'였다 그것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
인 판단이었다. 지금 세렌이 언덕마을로 달려간다 하더라고 그곳은 이미
결계로 인해 출입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설사 들어갈 수 있는 결계라 하
더라도 라프나의 신관들이 이미 파견이 되었다 하니 들여 보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새로운 키사르의 정보에 의하면 다크핵사곤의 결계는 매 시간마다 아주
조금씩 팽창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마계의 몬스터, 즉 마수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세렌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그는 무능력하기만 했다. 아무리 수련
생들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해도 어디까지나 수련 생은 수련
생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실력을 갖춰야 한다.... 강한 실력을..... 다시는 내 자신의 이런 무능력한
모습에 실망하지 않게.....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그 길
밖에 없다. 내가 갈 길은.'
오늘따라 더욱 독하게 느껴지는 고급 포도주를 죽 들이키며 세렌은 다
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속에 술이 들어가자 얼굴이 조금 후끈
해 졌고 그제야 주위의 모습이 세렌의 눈에 들어왔다. 걱정하는표정으
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펠린, 꾸역꾸역 훈제구이를 입안으로 집어놓고
있는 루벨, 왠지 입맛이 없는지 자꾸 포크를 접시에 부딪치고 있는 카젯,
샐러드를 먹으며 짜증내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다운크람, 가볍게 식사
를 마치고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싸늘한 표정의 키사르.
세렌은 모두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클라스라인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 저마다 독특하고 개성이 강하지만 이미 무
엇인가의 공통점으로 인해, 그리고 서로간의 마음으로 인해, 벌써 서로
를 걱정해주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키사르 제외) 세렌에
게 미래를 맏긴 다고까지 했다.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렌이 고개를 들어 자신들을 처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들 역시
세렌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의 시선을 동시에 느낀 세렌은 조금 멋 적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술에 취했나봐."
"뭐?"
"아니.... 왠지 너희들이 예쁘게 보여서 말이야."
"에엑! 뭐라고? 설마 너...... 키사르의 영향을 받아..... 으악 키사르! 눈에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오래 살수 있는 지름길이다."
경악하는 카젯 이였고 그런 카젯에게 포크를 던지는 키사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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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렌의 이야기가 되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밝아진
느낌입니다.
킬츠의 이야기는....... 조금 괴로웠습니다. 카름을 죽이다니....
하지만 그녀는 원래 히로인으로 생각하고 만들이 안았기는 하지만
막상 이렇게 되다보니.... 조금 슬프군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하지만 끝은 아닙니다(뭐라고!)
두고보면....... 음,
2장은 세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듯 합니다.
원래 제목이 제목이니 만큼 킬츠의 이야기를 더 비중 있게 다루려고 했는데
세렌 쪽에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하지만 킬츠가 2장의 주역인 것은 확실하지요, 세렌과 비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