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20화 (20/166)

제 2장. -가시의 길- (15)

"................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키사르는 붉게 충혈 된 눈을 감으며 감정에 파묻힌 슬픔과 절망의 목소

리로 마지막 말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모두도 침울한 표정

으로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 다 포기한 거냐?"

잠시 시간이 지나고, 세렌은 고개를 들어 담담한 눈동자로 키사르를 바

라보며 질책하는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타키니가 파스펠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텐

데!"

순간  키사르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세렌을  바라보았다. 슬픔, 원망,

괴로움이 가득 차 잇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너만 괴롭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거야. 왜  포기하지? 원래는 아무 것

도 끝나지 않았는데, 네가  포기한 그 순간에 바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거다!"

"하지만 나는 타키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패러딘 나이트가 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너는 타키니를 그

곳에서 구해 올 수가 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돈은 문제가 안돼. 패러딘

나이트가 시종을 하나 몸소 고른다고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지. 설사 너

의 아버지라 할 지라도."

"하지만 그러려면 5년의 수련을 마쳐야 하는데."

"하지만 그 5년의 수행을  마치면 네게 길이  생기는 거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타키니와 함께 살 수 있는 바로 그 길이!"

"...................."

"지금 이 고통의 길을 참아내고 무사히 건너가면 되는 거야. 모든 희망

은 그곳에서부터 있어."

"아............."

"네가 포기한 그 순간에 모든 것은 끝났지만, 네가 다시 희망을 가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거다. 왜 그걸 모르지?"

"그래!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야!"

"포기할 필요는 없어!"

"타키니는 반드시 살아서 너를 기다릴 꺼야."

"음, 원래부터 무기력 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군. 난 무기력한 사람을 가

장 싫어 하지만........ 그런 사연이 있었다면 상관없지. 지금부터라도 돌아

오면 되니까.........."

세렌은 키사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강렬하게 소리쳤고 옆에 있던

나머지 네 사람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리고  결국 붉게 충혈된 키사르

의 눈은 천천히 감기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세렌... 모두들..... 고마워.... 내가 너무 한심했었

던 것 같다.."

"바로 그거야. 내일부터라도 열심히  수련을 해서 꼭  패러딘 나이트가

되면 되는 거야."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마음을 되찾은  키사르를 바라보며 세렌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루벨도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하하하..... 이제 진정한 패러딘 나이트가 한 명 더 생기게 되었군."

"맞아 루벨. 그런데.........."

역시 미소를 짓고 있던 펠린이 루벨의 말에 수긍을 하다가 갑자기 심각

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 키사르의 벌점이 몇 점이지?"

"48점. 그리고 오늘 일주일간  아무 것도 안 했다며  특수 벌점 25점이

추가되었지. 합이 73점이다."

".................... 5점 남았군."

재빨리 끝낸 다운크람의 정확한 계산에 카젯이 인상을 찡그리며 위험하

다는 듯 말했고 펠린도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키사르를 바라보았다. 그러

나 금새 눈물을 닦고 평상시의 안정을 되찾은 키사르는 평소의 낮은, 그

러나 결코 어둡거나 차갑지 않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이제부터  결코 벌점을 받을 생각은 없

으니까."

다음날, 키사르의 담당 신관인  마일프 신관은 지난  일주일처럼 한숨을

내쉬며 수련장으로 나왔다. 어쩌다가 담당을 맡은 수련 생이 행위무능력

자라서 아무런 수행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담당인 자신은 단 한번도  신

성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원래 신성마법을 터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까지 밤을 세워가며  열심히

라프나 여신에게 기도를 하고 신성마법을 연습했는데 그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수련관에 와보니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수련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키

사르가, 오늘은 오히려 수련 전에 준비운동까지  하며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신관, 오늘 좀 놀라겠군."

다운크람이 어리둥절 하는 키사르의 신관을 바라보며 작게 한마디했다.

그러나 그 신관은 곧 키사르의 진짜 사정은 모른 체 정말로 오직 그에게

라프나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오오.....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 님이시여..... 지금 이곳에서  당신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신의 축복 있기를.~~~~"

제 정신을 되찾은 키사르는 주위 사람을 놀라울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소유하고 있는 소년이었다. 세렌과 비슷한 키에 조금 더 말라 보이는 몸

매를 가지고 있었고 조금은 싸늘한 표정에 역시 말이 없는 타입이었는데

첫째 수련이 끝나고 일주일동안 했던  기사전문지식(국내역사, 세계역사,

인물 등)공부 시간에 배운 모든 것을 키사르는 상식으로알고 있었고 카

젯이 아직 절반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한 78가지의 패러딘나이트의  기사

도를 한시간만에 외워버렸다. 카젯은 경악을 하며 키사르를 바라보며 어

떻게 한 거냐고 집요하게 질문했으나 키사르는  '넌 나의 지식습득 능력

을 평생동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일축해 버렸다.

"휴......... 키사르 녀석............ 가만히 있을 땐 밉지나 않았는데, 다운크람

이 한 명 더 생긴 기분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수련 실로 가는 도중 카젯은 한숨을 내쉬며 루

벨에게 푸념을 했다. 그러나 루벨도

"사실을 말했는데 뭘 그래."

라고 말하며 카젯에게 2단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키사르는 자신의 말대로 단 1점의 벌점도  얻지 않았다. 그의 휴페리온

을 휘두르는 솜씨는 일품이었고 승마법도 역시 귀족의 자제답게  기본은

잡혀 있었다. 17조를 담당하고 있는 패러딘 나이트 NO. 41인 다펠람 공

도 왜 저런 기본이 갖추어진 녀석이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

에 대해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의 수행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더 이상의 정통귀

족연합(?)의 방해나 간섭도  없었다. 그날 이후  파울프는 3일 동안이나

수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 충격이 매우 켰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세렌은 곧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는데, 바로 클라스라인 법국

과 세디아 황국, 자치도시 연합의 혼합 국경지방, 즉 세렌의 진정한 고향

인 언덕마을의 근방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흑마법의 결계가  발동

하여 그곳으로 라프나 신전의 신관들도 조사를 위해 파견 됐다는 소식이

었다. 세렌이 수행을 시작한지 보름째 되는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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