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가시의 길- (10)
킬츠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전력을 다해 기합을 지르며 데스나이
트에게로 달려들었다. 자신의 주먹은 기사의 검은 갑옷을 찌그러뜨리지
도 못할 것이 틀림없었으나 노리는 것은 오직 자신의 기합소리에 루디와
카름이 정신을 차리고 도망을 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너무도 가볍게 킬츠의 주먹은 대검을 잡지 않은 데스나이트의
왼손에 잡혀버렸다. 역시 자신의동작은 데스나이트에겐 우습게 보일 정
도의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킬츠의 머릿속엔 죽음이라는 단어
가 떠오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거대한 대검에
베인다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킬츠의 기대와는 달리 데스나이트는 킬츠의 주먹을 잡은 손을
당기며 킬츠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왔다. 킬츠는 당기어지지 않으려고 힘
을 섰으나 그야말로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킬츠를 자신의 앞까지 끌어온 데스나이트는 뜻밖에도 오른손의
검을 놓으며 킬츠를 양손으로 붙잡고 자신의 머리 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것도 매우 세심한 귀중품을 다루는 듯 무척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공포..... 절망..... 두려움...... 의문...... 아아....... 바로 이 감정.... 인
간의 감
정.... 나의 배고픔과 갈증이 이제야.... 사라져 간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
가는 군."
"엥?"
마치 안도하는 듯한 데스나이트의 딱딱하고 메마른 음성에 킬츠는 얼떨
떨한 표정으로 데스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검은 투구 사이로 자신을 바라
보는 눈동자는 날카롭고 매서웠지만 살기가 담겨있지는 않았다.
잠시 후 데스나이트는 킬츠를 다시 땅으로 내려놓았다. 킬츠는 키가 그
렇게 작은 편은 아이였지만 데스나이트와 적어도 4세션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데스나이트는 고개를 약간 숙여 킬츠를 바라보며 예의 딱딱하고
메마르며 낮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감사한다, 인간이여. 앞으로 하루만 더 인간의 감정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나의 몸은 재가되어 사라질 뻔했다."
"아니.... 뭐.. 제가... 한 것이 있다고..."
킬츠는 놀란 음성으로 데스나이트의 말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야말
로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클라스라인의 화이트나이트 일만 기를 전멸시
켰다 하는 공포의 데스나이트가 지금 자신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었다. 킬츠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러는 것이 이상한가? 인간이여. 나도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지.... 내가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665년만의 일
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지. 언제나 내 마음
속엔 파괴와 죽음만을 위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는데...... 최근 갑자기 이
렇게되었다."
아마도 3일전 펠리치오가 사용했던 이상한 마법의 효과라고 킬츠는 생
각했다. 그것은 정말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죽을 걸 살았구나.... 킬츠
는 긴장이 순간적으로 확 풀리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어 버렸다.
견습 패러딘 나이트 수행 첫날에 17번 조에서 유일하게 벌점을 4점이나
획득한 카젯이었지만 그의 진짜 전투의 감각은 저녁의 자유 대련 시간에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펠린과 다운크람은 카젯의 빠른 검에 속수 무책으
로 당했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루벨만이 그와 호각으로 대련할 수 있었
다. 그야말로 실전형이라 불릴 만 했는데 기어이 루벨마저 무릎을 꿀게
만든 카젯은 마지막으로 세렌과의 대련을 신청했다.
"훗! 3승 무패라고! 이제 마지막으로 승부를 내자 세렌!"
분명히 그와 대련을 붙지 않은 사람이 세렌을 제외하고 한 명 더 있었
지만 그는 애초에 대련 실에 나오지도 않았으므로 대상에서 제외였다.
그는 바로 키사르로 그는 수련 첫날 벌점이 6점으로 단 한번도 수련에
통과를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수련을 시작하지도 않은 그였다.
"지쳐 보이는데.... 괜찮겠냐?"
세렌은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카젯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당사자 본인은 전의에 넘쳐 있었고 세렌은 별 수 없이
날을 세우지 않은 연습용 휴페리온을 세워 들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킬츠의 일격에 맞아서 대련 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던 루벨은 카젯과
세렌이 대련을 시작하자 그 큰 덩치를 가볍게 튕기며 몸을 일으켰다. 펠
린과 다운크람도 그들의 대련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펠린은 한쪽 눈에
카젯의 주먹에 맞아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다운크람도 역시 발로 걷
어차인 가슴팍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바보는 지옥으로 보내버려!"
"넌 안돼 카젯!"
"포기의 천재! 너에겐 역시 포기밖에 없어!"
"안 들려~~~"
퍼붓듯 쏟아지는 동료들의 무시무시한 야유를 들으면서 카젯은 고개를
마구 저으며 어설프게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리고는 먼저 세렌에게로
달려들었다.
세렌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카젯을 공격이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 깊게 응시하였다. 지금까지 세 명을 이긴 카젯의 공격은 모두다 빠
른 속도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변화에서 얻어진 것들이었다. 특히 검을
휘두르는 바로 직전의 순간에 몸의 동작을 변화시키며 상대의 몸 쪽으로
파고들어 주먹이나 발 차기로 변환되는 공격은 오랫동안 도시의 뒷골목
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생활을 해온 카젯의 특기였다. 펠린이나 다운크
람은 그 공격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었다.
세렌은 몸을 숙이고 달려오는 카젯의 몸이 작게 흔들리는 것을 포착했
다. 분명히 무엇인가 동작에 변화를 주려는 것이 분명했는데 휴페리온을
앞으로 세워 들고있던 세렌은 재빨리 한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그대로 카
젯을 항해 휴페리온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 매우 공격적인세렌의 행동
에 카젯은 달려오는 힘을 가세하여 자신의 휴페리온을 올려 베었다. 그
러자 세렌과 카젯의 휴페리온이 허공에서 서로 교차했고 날카로운 금속
성의 파공성이 대련 실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세렌도 한 발짝 내딛으며 추진력을 얻기는 했지만 당연히 달리고 있던
카젯의 휴페리온에 에 실린 힘이 세렌의 그것을 훨씬 상회할 것이 분명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카젯의 휴페리온은 세렌의 휴페리온과 부딪
치자마자 방향이 뒤틀리며 옆을 흘러버렸고 위기를 느끼며 다시 휘두른
것도 반대편으로 힘없이흘러 버렸다.
'아니?'
카젯의 연이은 두 번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그때는 이미 세렌의 검이
카젯의 목뒤에 닿아 있었다.
"오옷.... 저것은 보통 검술이 아니군. 대단한데?"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카젯 대신 루벨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고 펠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눈으로 세렌을 바라보았다.
"어.... 어째서 내 검이 그렇게 힘없이 옆으로 빗나간 거지?"
"네 기세가 너무 좋아서 말이다, 조금 비껴서 막은 것이지. 그러면 너의
기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네 검은 빗나가게 되거든."
세렌은 예전에 장로에게 배운 상대의 검을 흘리는 방법을 응용하여 카
젯을 상대한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카젯은 있는 힘을 대해 달려들었
던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만큼 자신의 검이 빗나가게 된 것이었다.
"바보의 최후 군."
"누가 바보라는 거냐! 그러는 너는 나한테 진 주제에!"
다운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고 카젯은 발끈하며 다운크람에게
소리쳤다. 연이어 다운크람의 독설은 계속되었고 둘은 티격태격하며 다
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수련의 나날들은 계속되었고 대부분의 뜻 있는 수련 생들의
생활은 점점 안정되어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하루에 3점 이상의 벌점을
얻지 않았는데 그것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의 사건은 수련을 시작한지 열흘이 되는 날에 일어났다. 그 사건의
시작은 오후에 휴페리온 훈련 중 마지막인 찌르기 천 번의 시간부터 시
작되었는데 일의 발단은 자신들은 훌륭한 귀족의 정통 자제들이며 건방
진 가짜(?) 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30여명의 높은 귀
족 가문의 수련 생들이 모여서 일을 꾸민 그 전날의 자유시간이었다.
그들은 클라스라인에서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위인 재상의 관직에
있는 리퀴드 공의 장남인 파울프라는 귀족지상제일주의에 빠져있는 한
소년을 중심으로 뭉쳤는데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수련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전체 조 중에서 가장 최하점의 벌점을 기록중인 17번 조의 건방진
가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였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난 결론을 다음날
마지막 수행의 시간에 실행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임무를 부여받은 18번 조의 수련 생은 마지막 휴페리온 수련시간인 찌
르기 천 번의 시간에 실수를 위장, 휴페리온을 앞을 향해 찌르듯 던졌고
던져진 그의 휴페리온은 조금 앞에서 수련중인 17번 조의 펠린의 어깨
속으로 깊숙하게 박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