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2화 (12/166)

제 2장. -가시의 길- (7)

눈을 보면 알 수 있는.

마음이 서글퍼진 어느 날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세상에 몸을 맡긴 어린 영혼

무엇이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지

눈을 보면 알 수 있는

피곤에 지쳐버린 어느 날

아픈 영혼을 참지 못하고

어둠에 마음을 맏긴 어린 몸

무엇이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지

눈을 보면 알 수 있는

허무에 잠겨버린 어느 날

고통의 몸을 참지 못하고

침묵에 영혼을 맏긴 어린 마음

무엇이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지

'노래가..........'

깊은 밤, 모두들 잠에 들었을 시간에  세렌은 잠결에 방안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누구지.......'

소리는 자신의 정면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하지만 세렌이 몸을 뒤척이

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때  조용한 노랫소리는 갑자기 멈추

었고 세렌도 잠시 가만히 있다가 더 이상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훈련소  안을 울리며 들려왔고 세렌은

잠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벨과 카젯은 개인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듯 했고 펠린과 다운크람은 이미 움직일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옷

까지 수련 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방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

다. 그리고 키사르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

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 일어났냐 세렌? 어서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 것이 좋아. 앞으로 1크

락 뒤에 수련이 시작되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지."

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루벨이 세렌의 어깨를 그 커다란 손으로  두드리

면서 시원하게 세렌을 잠에서 완전히 깨워주었다.  드디어 첫번째 수련

의 날이 밝아 온 것이었다.

1층의 수련 실로 내려가자 이미  그곳은 수련 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일정한 공간 안에 여섯 명씩  모여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조  원들

끼리 모여 있는 것이었다.

세렌이 나머지 다섯 명과 함께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으로 가자  그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여섯 명의 신관들이 그들에게 패러딘 나이트의 검인

흰색 날의 대검인 휴페리온을 건네주었다. 휴페리온은 보통 대검보다 폭

이 약간 좁고 길이가 긴  변형된 대검으로 패러딘 나이트들이  전장에서

사용하는 신관의 축복이 담겨있는 성스러운 무기였다.

세렌이 휴페리온을 받아들자 평소에 자신이  사용하던 검보다 거의 두

배 정도는 무게가 더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못 휘두를 정도는 아

니었지만 천 번이라는 횟수가 주어진 이상 그 정도의 무게는 커다란  문

제였다.

"저는 신관인 사나름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세렌 님의 수련을 도와드

리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며 부디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 님의 가

호가 있으셔서 패러딘 나이트가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세렌의 담당이 된 신관이 세렌에게 신관의 인사를(오른손으로  왼쪽 손

목을 잡고 허리를 살짝  숙이는 것)하자 세렌도 인사하며  사나름이라는

신관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희고 갸름한 얼굴  선에 자애로운 미소가 가

득 담긴 표정이 마치 라프나 여신의 그것과 같았다.

'다행이군.'

다시 1크락이 지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수련 실 안은 수련  생들의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을 베는 숫자는 제가 세고 있을 테니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수련도중에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시면  잠시 쉬고 다시 하셔도  됩니

다. 하지만 1크락내에 천  번을 휘두르지 못하시면 벌점  1점이 생기게

됩니다. 78점이 모이면 강제 퇴출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사나름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세렌의 수련에 피해가 되지 않게 몇  발

짝 뒤로 물러났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세렌은 가볍게 기합을 넣으며 찌르기부터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 아침

의 수련시간은 휴페리온을 어떤 방법으로 수련하느냐는 상관없었지만 어

차피 오후의 4크락의 수련시간을 생각하면 네 가지의 방법을 고루  훈련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세렌은 우선 가장  힘든 찌르기를 100번 정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검의 무게가 달라서인지 50번 정도 찌르기를 하자  벌서부

터 오른쪽 어깨근육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렌은 내색조차

하지 않으며 계속 수련을 이어  나갔다. 아직 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휴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에 수련을 하며  깨 닳은 것인데 검

을 휘두르는 수련을 하는 도중 몸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시 멈추고  휴

식을 하면 한동안은 통증이 가시지 않고 오히려 피로가 밀려와 다시  수

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렌은  수련을하는 속도를 조

절해 가면서 단 한번의 휴식도  없이 천 번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이미 정신력으로 이겨낼 다짐을 하고있었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세렌은 속으로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휴페리온을 휘둘렀다. 네 종

류의 기본검법을 백 번씩하고 다시 찌르기를 시작하고 있을 때쯤 주위의

몇몇의 수련 생들이 휴페리온을  내려놓고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양팔을 감싸쥐었다. 본인들은 휴식을 한답시고 멈춘 것이겠지만 그 중에

서 수련이 끝날 때까지 다시 휴페리온을 집어든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

았다.

700번쯤 베었을 때 세렌은 이미 자신의  세계에 몰두되어 있었다. 너무

나 고통스러운 온몸을 제어하기 위해서도 그러했고 또한 연습에  불필요

한 동작을 줄여 힘을 최대한 덜 들이기 위한 본능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냥 수련에 빠져들어 있을 뿐이었다.

'저 녀석 표정하나 안 바뀌는군.....'

세렌의 오른쪽에서 천천히 가로 베기를  하고있던 루벨은 이미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 세렌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오래 전부

터 힘쓰는데 일가견이 있어서 무척  고통스럽긴 했지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팔 근육도 빈약하고 매우 섬세하게 생긴 세렌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휴페리온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

다. 거기에 비해 그의 왼쪽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카젯의 표정은 고통을

참기 위해 바득바득 인상을 쓰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일 크락이 거의 다 되갈 무렵이 되자 수련 실 안에서 휴페리온을 휘두

르고 있는 사람은 불과 30여명이었다. 나머지  200여명은 자신의 자리에

주저 않아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아직도 수련을 하고있는 사람들을  선

망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수련을 끝낸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었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왜? 왜 강해져야  하지? 왜

이렇게 커다란 내 몸의 고통을 억누르며 강해져야 하지? 모르겠다....  알

수가 없어..... 지금은 아무 것도 생각 할 수가 없다......'

"996... 997.... 998... 999... 천! 천 번을 다했습니다. 세렌 님, 천  번을 다

했다니까요!"

세렌이 천 번의 휴페리온 베기를 끝내자 신관 사나름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천 번이 끝났다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그러나 세렌은 듣지 못

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계속 휴페리온을  휘두르

고 있었다.

"이런..... 세렌 님! 그만하세요!"

신관 사나름은 세렌이 계속 검을 휘두르자 무엇인가 위험함을 느끼고는

달려가 그의 몸을 붙잡았다. 그제야 세렌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붙잡

았다는 것을 느끼고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

자 여러 수련 생들이 놀람의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담

당 신관인 사나름은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아.... 신관 님. 제가 천 번 휘두르기를 다 끝냈나 요?"

"이제야 제정신이 드셨군요. 네.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 제 허리는 그만 놓으세요. 부탁이니까."

"아! 네."

세렌의 말에 사나름은 황급히 세렌의 허리를 놓았고 세렌은 그런  사나

름을 보며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신관 님......한 발짝도  꼼짝 못하겠어요. 신성마법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아! 네. 그러지요. 죄송합니다. 많이 고통스럽지요?"

세렌의 행동에 잠시 정신이 팔려있던 사나름은 세렌의 말에 다시  황급

하게 신성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생명의 빛으로  우리의 고통받는 영혼들을  회복시켜 줄지니...

그 헤아릴 수 없는 영원의 빛으로 우리의 고통받는 몸을 회복시켜  주소

서. 리커버리 라이트!(RECOVERY RIGHT)"

사나름이 세렌의 몸 앞에 손을 펼치고 마법을 사용하자 세렌의 몸에 반

짝이는 빛이 서서히 생겨나 얼마동안 주위를  맴돌고 나서 사라졌다. 바

로 신성마법인 리커버리 라이트로 대상자의 체력과 상태이상, 자세히 말

하면 중독이나 큰 상처, 약간의 정신이상, 약한 저주, 불면증, 감기, 몸살,

두통, 근육통 등 여러 가지를 회복시키는  고급 신성마법으로 상당히 높

은 단계에 이른 신관만이 사용 가능한 어려운 마법이었다.

"대단해. 너 정말 대단하구나. 한번도 쉬지 않고 그  무거운 휴페리온을

천 번이나 휘두르다니. 난 700번쯤인가 하다가 너무 팔이 아파서 휴페리

온을 놓쳐버렸는데 다시 주우니까  그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고.

포기해 버렸지 뭐."

식당으로 가면서 카젯이 세렌에게로 다가와 궁시렁 거리며 푸념을 늘여

놓자 옆에 있던 루벨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역시 포기의 천재 카젯........"

"아앗! 옛날 별명은 부르지 말라고 그랬잖아! 이잇....... 이 폭식 마왕 루

벨주제에!"

"내 별명은 얼마든지 불러도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난  내 옆에 있는

누구같이 빈약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한다고."

루벨이 상관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유유히 카젯의 옆을 지나가자 카젯은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를 갈며 복수의 눈길을 루벨의 등으

로 쏟아 부었다. 그때 마침 펠린과 다운크람이 어딘가  매우 아픈 듯 인

상을 쓰며 카젯의 옆을 지나갔고 카젯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자신만  벌

점을 딴 것이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가운데로 붙어  들

어갔다.

"여... 펠린과 다운크람. 너희는 어떻게 됐어? 표정을 보아하니......"

"난 통과했다. 가문의 재건을 위해서... 이런 수련쯤은 참을 수 있지. 누

구처럼 태평한 건 아니라서 말이야."

"엑!"

다운크람은 카젯을 힐끔 바라보며 한마디했고 펠린도 이어서  아프다는

표정으로 카젯에게 말했다.

"나도 통과했어. 하지만 고통을  참느라 너무 이를  악물었더니 이빨이

너무 아파. 게다가 내 담당 신관 님은 신성마법이 서투르셔서.... 겨우 몸

의 근육만 치유해 주셨어."

"내 담당 신관도 신성마법이 엉망이야. 몰락한 귀족가문이라고 너무 푸

대접하는 것 같군."

"뭐야! 이것들도 다 통과 한 거야! 이럴 수가..."

"역시 포기의 천재 카젯....."

"아앗! 루벨! 그 별명은 부르지 말라고 그랬잖아!"

앞에서 걷고있던 루벨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

자 카젯은 다시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리쳤다.

"호오.... 이 녀석 별명이 포기의 천재라고?"

"다운크람! 제발 못 들은 걸로 해줘!"

"글세.... 상당히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되는데.. 하지만 그 별명은

저 녀석이 더 잘 어울리겠어."

다운크람은 힐끔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카젯과 펠린이 같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곳엔 섬뜩할 정도의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 바

라보며 걸어오고 있는 키사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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