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화 (11/166)

제 2장. -가시의 길- (6)

클라스라인 법국의 수도, 세인트룸에 세워져 있는 생명의 빛의 여신, 라

프나의 대 신전은 대륙 중앙의 네른 산맥의 정상에 위치한 자연의  정령

의 신 스피리스트의 대신전 보다도, 세디아 황국의 수도인 타벨루니아에

있는 생명의 운명의 신 테스튼의 대 신전보다도 그 규모 가 훨씬 방대했

다. 그것은 클라스라인 법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14년

마다 한번씩 치러지는 패러딘 나이트 선발 수련을 치를 훈련소가 필요했

기 때문이었다.

라프나의 대 신전은 세인트룸의 가장 중앙에서 조금 왼쪽에 떨어진  중

심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커다랗고 뾰족한  신

전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희고  매끄러운 신전들이 둘러서 지어져  있었

다. 그 규모는 클라스라인의 법왕이 거주하는  성보다도 더욱 방대할 정

도로 여덟 개의 신전뿐만 아니라 신전 우측에 지어진 패러딘 나이트  선

발 훈련소의 크기만 해도 웬만한  마을의 크기를 능가할 정도로  거대했

다.

'이곳은 여러 번 나를 놀라게 하는 구나.'

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 참가한 세렌은새벽부터 하인들의  옷

시중을 받으며 화려하고 깔끔한 차림으로 마차를 타고 라프나의 대 신전

에 도착했다. 분주하게 신전 내를 돌아다니고 있던 신관들은 잠시 후 신

전의 가장 가운데 위치한 '생명의 신전'에서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의  개

회식이 거행된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미 모든 참가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들은 사전에 끝나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인들을 돌려보낸 세렌은 한참을 걸어서야 생명의 신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신전의 정문 옆을 지키는 신관들이 공손하게 세렌에게 물어보자 세렌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역시 예의 바르게 대답하였다.

"세렌 마틴스입니다.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의

신전에 패러딘 나이트가  되고자 이번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  왔습니

다."

"세렌 님이셨군요. 어서  들어가십시오. 곧  개회식이 시작할  예정입니

다."

신관은 안쪽으로 손을 향했고 그러자 반대편에서 또 한 명의 신관이 세

렌에게 다가와 그를 안내하여 안으로  들어가 그가 앉을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신전내부는 역시 밖에서 본대로 매우 넓고 커다란 홀과 같은  공간이었

다. 주위의 벽과 바닥은 모두 은은한 빛을 발하는 흰색이었고 여러 가지

의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단상 뒤의 벽면에는

거대한 라프나 여신의 자애롭고 성스러운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

었다. 그것은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

어주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가장 앞 열의 의자에 앉은 세렌은 조용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200여 개

의 의자는 이미 자신의 나이또래의 소년들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그러

나 그들은 조금도 떠들거나 딴 짓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들 귀족의 자제들일 테지... 분위기부터 다르군.'

그리고 잠시 후 지긋이 나이가 들은 대 신관이 중앙의 단상위로 올라가

개회식을 시작했고 세렌은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대 신관의 말

에 귀를 기울였다.

"............... 그리하여 바로 우리의 생명의 여신인 라프나 님의 의지를 실

천하기 위해 패러딘 나이트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 온갖 역경과

시련. 그리고 좌절을 극복하여 훌륭한 패러딘 나이트가 탄생하기를 진심

으로 기원합니다."

개회식이 끝나자 신전내의 모든 지원자들은 신관들의 안내에 따라 신전

을 벗어나 패러딘  나이트 선발 훈련소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훈련소에 도착한 그들에게  신관들은 우선 조별로 지정된

방을 안내해 주었다. 총 참가 인원 246명을 6명씩 41개조로 나누어 방이

주어졌는데 방은 4층과 5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같은 조 가된 구성원

들은 마지막 날까지 바뀌지 않았고 서로 자유롭게 대련을 할 수  있으며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시험과 대항전을 함께 치르는  그야말로

룸메이트였다.

수행의 일과는 태양이 뜨고 나서부터 1크락(모래시계가  한번 돌아가는

시간, 한시간 정도)동안 1층의 수련  실로 가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휴페리온을 천 번 휘두르는 것이 첫 번째 수련이었고 그 후로 다시 1크

락동안 아침식사를 마치고 휴식이 주어졌으며 다시 2층 수련의 방에  대

기하여 3크락동안 패러딘  나이트로써 익혀야할 기사도와  세계사, 역사

예절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1크락 동안 점심식사를 마치고 휴식시

간이 주어졌으며 다시 1층 수련 실에 대기를 한 후 4크락동안 올려 베기

천 번, 내려 베기 천 번, 가로 베기 천 번, 찌르기 천 번을 하는 것이 세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수련이었다. 그 후  1크락의 시간동안 지도를

담당하는 패러진 나이트의 개인 교습 및 대련시간이 주어졌고 1크락동안

식사와 휴식. 그리고 나서 1크락 동안 말을  타는 기술을 수련하는 것이

일곱 번째 수련이었다. 그리고 나서 2크락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진 뒤 8

크락동안 수면을 취하는 것이었다.

각각 수련을 행하는 도중 포기하게  되면 벌점이 1점씩 쌓이게  되는데

이것이 78점 이 되면 수련을 할 자격을 잃게 되고 강제로 신전에서 나가

야만 했다. 그리고 강제 퇴출 당한 사람에겐 화이트나이트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다.

신관의 설명이 끝나자 소년들 사이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미 들어

서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테지만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하루의  수행

량이었다.

오랫동안 검을 휘두르면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끔직한 고통을 느끼게

되지만 일단 한번의 수련이 끝나게 되면 수련 생들 한 명당 한 명씩 담

당하고 있는 신관들이 신성마법으로  완벽히 치료해주기 때문에  문제는

천 번을 휘두르는 동안 고통을 참고 버틸 수 있는 자신의 의지 뿐 이었

다.

수련은 내일부터 시작이었고 세렌은 설명이 끝나자 천천히 자신에게 배

정된 방으로 걸어가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들의 방을 향해 걸

어가는 소년들의 표정은 매우 다양했다. 무척  자신감에 찬 오만한 얼굴

로 당당히 걷고있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척 불안한  표정으로

축 처진 어깨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소년들도 있었다.

'앞으로 5년인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던 세렌은 5층에  있는 자신에게  지정된

'17' 이라고 쓰여진 방을 찾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매우 넓은 공간으로 저택에  있는 세렌의 방보다 두 배  이상은

되어 보였다. 가운데 의자가 여섯  개 있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좌,  우로

세 개씩 멀찍하게 침대가 놓여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방으로, 각각의

침대 뒤로 한 개씩의 문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개인에게 주어진  화장

실과 목욕실이었다.

세렌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세렌의 룸메이트 다섯은 이미 방에  들어와

있었다. 가장 왼쪽 끝의 침대를 남겨두고  각각 자신의 침대에 앉아있었

는데 왼쪽의 두 명은 서로 알고 있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오른쪽의 세 명은 완전히 침체된 분위기로 가만히 앉아있었

다.

"음 네 가 마지막 방 친구인가? 반갑다.  난 카제스 센트리얼이라고 하

지, 이쪽은 루벨리자크 타키노피아이고. 넌 이름이 뭐니?"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명의 소년 중 약간 작은 키에 발랄하게 생

긴 소년이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옆에서 자신과 이야기 하고있던  덩치가

커다란 소년의 이름까지 소개하며 세렌에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다. 난 세렌 마틴스라고 하지."

"마틴스! 법왕청의 그랜드  저지인 마틴스 백작가문이란  말이야? 이거

대단하군."

세렌의 말을 듣자마자 카제스는 호들갑을 떨며  감탄했고 그제야. 오른

쪽의 세 명도 반응을 보이며 세렌을 처다 보았다.

"대단한 가문이라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세렌은 자신이 이름을 말하자 나타나는 모두의 반응을 느끼고는 씁쓸한

기분이 되어 높낮이가 없는 퉁명스런 어조로 한마디 휙 하니 내  뱉고는

자신의 침대로 가서 털썩하고 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머리 좀 써라 카제스. 저 녀석도 이번 선발전을 위해서 마틴스 가문에

서 양자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세렌의 말에 카제스가 의아해하며 되물어보자 옆에 있던  루벨리자크가

조용히 입을 열며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엥? 정말이야?"

"루벨리자크의 말대로. 나는 일주일  전에 마틴스 가문에  양자로 받아

들어졌다."

세렌은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

렌은 그것이 수련 생들 사이에 누군가는 분명히 알고있을 사실이었기 때

문에 언젠가 밝혀질 사실은 당당하게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내려져 있었다.

"그래? 와. 그러면 우리와 같은 처지잖아. 안 그래 루벨?"

"그래. 그러면 우리도 정식으로 소개해 볼까.  난 루벨. 원래 성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던 파울드의 고아였지. 뒷골목에서  힘 좀 쓴다고 소문이

났는지 타키노피아 가문에서 나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카젯, 너도 소개하

지 그래."

"물론. 나는 카젯 루드리. 카제스라는 이름은 센트리얼 가문에서 이름이

촌스럽다고 억지로 바꿔 버린 거야. 루벨 저 녀석도 그렇게 해서 루벨리

자크라는 이름이 된 거고. 나는 파울드의 3류 여관집의 막내인데 어려서

부터 루벨과 함께 도시를 좀 휘젓고 다녀서 말이야. 역시 센트리얼 가문

에 양자가 되었지. 반갑다."

루벨과 카젯의 말에 세렌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

다. 이 두 명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패러딘 나이트를 배출하기 위해 클라

스라인의 귀족가문에서 양자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그런

부류의 소년들도 이곳엔 많이 있을 듯 했다.

"반갑다. 그럼 내 이름도 정식으로 말해야겠군. 내 이름은  세렌 그란드

라. 지금은 돌아가신 자유기사 레닉스 그란드라가 내 아버지야."

"오오! 그 자유기사 레닉스 님이 네 아버지? 페이오드의 고아였지만 자

치도시 연합으로 건너와 자유기사 단장까지 되셨던,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인데! 너 마틴스 가문에서 양자로 받아들일 만 하구나!"

루벨은 세렌의 말을 듣고는 그 큰 몸에 불끈 힘을 주며 즐겁다는 듯 소

리쳤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방 오른쪽의 세 명도  눈에 이채를

띄우며 세렌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우리아버지를 존경한다니. 그런데..... 저쪽  세 명의 이름도 알

고 싶은데."

세렌이 루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나머

지 세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얼굴로 세렌을 바라보던

가장 오른쪽의 평범하게 생긴 소년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들 활기차서 좋구나. 내 이름은 펠린 넨버니아. 물론  양자는 아닌

데 그렇다고 정식도 아니야. 난 아버님의  두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거

든. 쉽게 말해 서자지. 그래서 그 동안 대우가 너무 안 좋았어. 아버님의

저택에서 살지도 못했지. 정도는 다르겠지만 거의 너희들과 비슷한 생활

을 했을 꺼야. 잘 부탁한다."

펠린이가볍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옆에 있는 약간 마르고 신경질  적으

로 생긴 소년을 바라보자 그 소년은 쳇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쳇. 이곳에 모인 인간들은 모두 이상한 녀석들뿐이군. 내  이름은 다운

크람 파우리타운. 예전엔 클라스라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몰락한  가문의 가주다. 얼마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패러

딘 나이트의 선발전에 참가했다."

말하기가 썩 내키지 않다는 표정이었으나 다운크람은 자세히 자신을 소

개했고 이제 모두의 시선은 방 오른쪽 침대의 가장 오른쪽 구석, 세렌의

정면에 있는 검고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

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의 소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소년은 한참동안 나머지 소년들의 시선을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딱

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키사르 루켄비쉬타."

그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짧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고 침

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딘가 어두운 녀석이군.'

세렌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바라보고 있는 키사르를 바라보며  작

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렌은 마틴스가문의 저택에 들어가고 나서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그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이 바로  300개가

넘는 클라스라인의 귀족가문의 이름과 특징을  암기하는 것이었다. 도미

니아가 반드시 외워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서  별 수없이 외웠는데. 머리

가 좋은 세렌도 3일만에  어설프게나마 암기할 수 있었다.  물론 암기한

귀족의 가문 중에는 루켄비쉬타가문도 들어있었는데 그 가문은 특징  없

는 평범한 가문으로 세력이 그다지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수많은 클라스라인의 귀족가문 중 하나였다. 선조가  크게 공을 세운 것

도 없고 그냥 대대로 법왕청의 중간급의 직위를 맡아오고 있는 가문이었

다.

"뭐, 이로써 자기소개는 전부 끝났군. 난 이방 사람들이 서로 이름도 알

지 못하고 오늘이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야."

"하지만 문제는 내일이다. 신관의  설명대로 하루에 휴페리온을  오 천

번씩 휘두르고 찔러야 하는데 팔이 견뎌 줄까 모르겠어."

"맞아....... 두려워 지는군. 중간에 탈락할 수는 없는데...."

루벨과 카젯이 서로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세렌은 언덕마을에서 장

로에게 간단한 검을 배울 때 하루에 천 번 베기를 열 번씩 나우어서 수

련했는데 그래도 그것은 저녁이 되면 온몸의 근육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

할 정도로 힘든 수련이었다.

"일단 우리는 처지가 상당히 안 좋기 때문에 몸이 버티지  못한다 하더

라도 정신력으로 버텨야해. 한번의 수련이 끝나면 담당 신관들이 신성마

법으로 회복시켜 주니까......"

세렌은 모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무표정한 키사르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내일 해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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