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7화 (7/166)

제 2장. -가시의 길- (2)

킬츠가 흥분해서 소리치는 사이, 카름은 마을로 접근하는 사람을 느끼고

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아!  이쪽으로 오고있는 저  사람의 기운이

심하게 읽으러져 있어요! 뭔가  이상해.... 게다가 주위의  느낌도 이상해

요...... 갑자기 몸이 무엇인가에 압박 당하는 느낌...."

심각한 표정으로 불안하게 말하는 카름을 보고 킬츠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로 오는 길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

가가 비틀대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풍경도  어딘가 모르게

평소와 다른 위화감이 있었다.  킬츠와 카름은 일단 마을을 향해 오고있

는 사람을 향해 달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없이 엉망으로 다쳐있는

그 남자의 참혹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남자는 킬츠와 카름이 달려

오는걸 보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봐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엄청난 피..... 정신 차려요!"

먼저 달려온 킬츠가 남자의 상반신을  일으켜 안으며 소리치자 남자는

피로 가득 얼룩진 참혹한 얼굴을 들어 킬츠를 바라보며 힘겹게 눈을  뜨

며 말했다.

"이.... 주변은 엄청난 마물들이 가득하다.. 위험해.... 내 이름은 로니온....

어서... 쿠슬리에게 알려야......"

"로니온이라면 쿠슬리 씨가 말했던 내 검술선생? 이봐요 대체....."

킬츠가 황당해 하며 말하자 피투성이의 로니온은 힘없이 웃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네가.... 킬츠구나.... 미, 미안하다...... 난 네게  검을 가르쳐 줄 수 없게

되었어.... 네가 이, 이걸 쿠슬리에게...."

로니온은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만들어 진 듯한 반지를 하나 꺼내어  킬

츠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곤 그대로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두었다.

"뭐, 뭐야!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킬츠는 부들거리며 눈을 크게 떴고 곧 달려온 카름도 이미 시체가  되어

버린 로니온을 느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사람.... 기운이.... 사라졌군요. 죽었어요...."

"............."

킬츠는 침묵하며 손에 들어있는 반지를 꽉 쥐었고 그때 길 정면에서  누

군가 걸어오며 킬츠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내가 돌아 왔다고! 멋진 남자 루디가 돌아 왔어!  비록 매직길드

에서  잘렸지만 그래도 거기서 많이 배워 왔다고! 어이! 거기 혹시 킬츠

아니야!  오랜만이야! 그런데 마을에 오는 길에  웬 보지도 못한 괴물들

의 시체가 널려있어! 뒤엔 카름인가? 엥? 또 그 사람은 누구야?"

바로 매직길드에서 돌아오는 장로의 손자 루디였다.  그러나 킬츠와 카

름의 눈은 루디보다, 그의 뒤를 달려오고 있는 엄청난 크기에 형체를 알

아보기 힘들 정도로 읽으러진 개미의 모양을 한 두려운 형상의 몬스터로

집중되었다.

"루디형! 뒤를 봐!"

"피해요! 루디오빠!"

"엥? 뒤를....... 으아악~"

킬츠와 카름의 외침소리를 듣자 루디는 눈썹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았

다.  그리고 그곳에서 달려오는 몬스터를 발견하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

렀다. 그러나 몬스터는 이미 루디의 정면에  들이 닥쳤고 순식간에 분수

처럼 사방으로 피가 튀어  오르며 수많은 살점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루디의 움직임과 괴물의 움직임이 멈추어 버렸다.

"루디형!"

킬츠는 경직된 눈을 크게 뜨며  루디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허물어

지듯 쓰러지는 것은 루디가 아닌  바로 그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는 곧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졌고  루디는 괴물을 향해 어색하게  내밀고

있던 손을 거두며 얼굴에 튄 괴물의 피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한숨과 함

께 다시 뒤돌며 달려오다 멈춰버린 킬츠를 보았다.

"휴.... 조금만 늦었어도.... 주문 외울 시간이 없어서 가장 낮은 하위  주

문을 사용했는데 다행이 먹혔군..... 거리가 가까워서  제 위력을 발휘 한

건가?"

"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쓰러진 몬스터의 배 부위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헤집어 파여 진  듯

찢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킬츠가 의아해  하며 루디를 바라보자 루디는

킬츠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당당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게 바로 마법이야 마법. 사이비 마도사가 아닌 매직길드의

정통 마도사 분들에게 배운 진짜 마법이라고. 일단 할 말이 많으니까 집

으로 가자. 마을 은 여전하지? 할아버지도 잘 계시고?"

"물론이지....... 그런데 오늘 갑자기 웬 낮선 사람이... 아니지, 내 검술을

지도해준다는 사람이 여기가지 찾아와서는 방금 전에 죽어버렸어. 저 누

워있는 사람 보이지?"

킬츠가 루디와 마을 쪽으로 걸어오며 카름이 있는 곳에 누워있는  사람

을 가르치며 말하자 루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내가 이리 오면서 본 수많은  괴물들의 시체는 이 사람의 작품

인 듯  하구나. 안됐어....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이곳에 난데없이 보지

도 못한 몬스터가  나타난 거야...... 분명  이름 있는 훌륭한  검사였을텐

데...."

"이름이 로니온이라고 했어. 쿠슬리 아저씨가 무척 강한 사람이라고 그

랬는데....."

킬츠가 지나가는 소리로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루디는 깜짝 놀라 눈

을 크게 뜨며  킬츠를 바라보았다.

"뭐! 로니온? 설마 그  나이트 길드의 로니온?  나이트길드의 자치도시

지부장인 그 로니온 자미라프를 말하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지만 어쨌든  쿠슬리 씨는 분명히 로니온이

라는 사람이 내게 검술을 지도해 준다고 했었어. 그렇지 카름?"

"네. 아버지는 분명히 로니온이라는 이름을 말 하셨어요."

"음...."

카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킬츠의 말에 대답하자 루디는 고개를 갸우뚱하

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루디는 곧 어깨를 으쓱하며

로니온의 시체로 다가왔다.

"뭐... 일단  얼굴이라도 봐둘까...... 분명  로니온은 40대 초반의 준수한

얼굴에 금발이라고.. 뭐 그것 만으론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루디가 로니온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막  몸을 숙이려는 찰라 엄청난 폭

발소리가  마을에서 들려왔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마을을 바라본

루디의 눈에는 붉고 사나운 화염에  뒤덮여 불길이 치솟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었다.

언덕마을의 장로는 킬츠를 루디에게 마중 보낸 후 거실의 의자에  앉

아 세크립의 잎을 진하게 달인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전서구로 매직길드에서 도착한 편지에는 루디의 정신에  정체불

명의 정령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여  마법을 배우기에 위험하기 때문에

루디를 돌려보낸다는 내용이 써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로도,  매직길드

측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장로는 편지를 들어 천천히 뒤쪽을 쓰

다듬어 내려갔고 그러자 깨끗했던 편지지의 뒷면에 서서히 새로운  글자

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티라크람의 키퍼(keeper)  타르 공.  저희로써도 루디군의

정신에 존재하는 절망의 정령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성의전쟁

때부터 3대 정신정령에 자신의 의지를 봉인하신 대마도사 펠리치오  님

의 의식이 아직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낸 것뿐입니다.

만일 루디 군이 절망에 빠지게 되어서 정령을 폭주시킨다면 18년 전의

참사가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정신의 3대  정령을 폭주시키면 펠리치오

님의 의식이 약해진 지금은 그때처럼 다시 봉인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합

니다. 부디 편안하게 루디 군을  대해주시기 바라며 나머지 공포의 정령

과 분노의 정령을 가진 인간의 소재도 빠른 시일 내에 파악하도록  하겠

습니다.

그리고 최근 다크휴먼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한 것 같습니다. 만

약을 대비하여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시 연락 드릴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변함없는 귀 공의 선의에 감사드리며

이트라이 로버렌스

숨겨진 편지에는 역시 장로가 추측했던 내용들이 실려있었다. 사실

루디를 매직길드에 보낸 진짜 이유는 마법 배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

다. 바로 매직길드의 마도사들에게 루디의 정신에  존재하는 3대 정신정

령중 하나인 절망의 정령을 소멸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그것은  매직

길드의 고명한 마도사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아침에 의자에 편히  앉아 마시는 한잔의  차라와 한숨 섞인  탄식이

라.... 보기 좋은 광경이군."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낮은 톤의 음산한 목소리에 장로는 흠칫 놀라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긴장된 눈빛으로  주위를 정면의 문을 응

시하는 장로의 눈에 곧 그곳에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매우

흉하게 읽으러진 얼굴에 검은 망토를둘러 입은 남자는 얼굴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나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덕마을의 장

로인 타르의 기억에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카루반.......... 자네인가."

"오랜만입니다 타르.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후로 600여 년...... 배신자

를 처단하기 위해 기다렸던 날들이 벌써 600년이나 되었단 말인가...."

"나와 싸우러 온 것인가........  아무리 600여 년이 지났어도  자네는 나

를 상대하지 못한다네."

장로가 양손을 서서히  올리며 조용히 말하자  카루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 흉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곳이 키퍼의  성지가 아니라도 당신이 키퍼란 사실은  변함없

고... 당신의 다크 매직(dark magic)이 이미 오래 전에 궁극의 경지에 달

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카루반은 한 손을 허공으로 올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때 코페즈리 님을  소멸시킨 당신이라 할지라도....  어둠의

마음을 잃어버린 지금, 당신의 다크매직은 이곳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

니다."

"이 곳...... 이라니?"

"감이 둔해진 건가..... 역시 약해졌어. 난 이미 이 주변에  다크 헥사곤

의 결계를 쳐 놓았습니다. 이미 확장되고 있지요."

"다크 헥사곤! 설마 그것을 완성했단 말이냐! 대체 어떻게......"

장로는 경악하며 소리쳤고 카루반은 사악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나

지막하게 대답했다.

"자세한 설명은 당신이 마지막으로  지옥을 경험할 때 살짝  귓속말로

전해드리지요. 우선은........ 600년 동안 쌓아온 나의 원한을 풀고 나서 말

입니다!"

카루반은 허공으로 치켜든 손을 꽉 쥐며 소리쳤고 순간 사방에 커다란

폭음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불길은 주

위의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휩쓸어 삼켜 버리며 점점 어두운 빛으로 바

뀌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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