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6화 (6/166)

제 2장. -가시의 길- (1)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고부터 그들은  끝없이 대륙 구석구석을 누

비며 각지로 퍼져 갔다. 그러나 수 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대

륙의 30% 정도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우선 지역 지역에 부족과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 이외의  종

족, 즉 엘프, 드워프, 켄타로스,  머메이드(mermaid) 등이 살고있는 지역

은 특별히 간섭하지 않고 미개척지로 남겨놓고 있다.

이유는 그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성의 전쟁 당시 운명의

신 데스튼의  조화로 그들과 생명의 계약을 맺어 무한의 수명을 갖게된

강한 능력의 인간인 키퍼(KEEPER)가 그곳들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

다. 타 종족들이 성의전쟁 때 타천사  나타스의 어둠의  군대에 맞서 자

신들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계약을 맺은 당시에  대륙에

유명하던 강력한 인간들이 바로 키퍼이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어떤 불

상사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밖에 미개척 지역으로는 드라킬스공국과 자치도시 연합, 그리

고 클라스라인 법국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안개의  숲과, 대륙 가장 서북

부에 있는 생명의 화산, 그리고 대륙의 가장 동남부에 위치한 피의 사막

이 있었다.

'안개의 숲'은 그 크기가 자치도시 연합의 전 영토와 맞먹을 정도의  거

대한 숲으로 1년 내내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안개가 끼어있는 미지의

숲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동물들과 몬스터가  서식하는 이 곳

은 군데군데에 그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늪지까지 산재해 있

어서 불가분 하게 인간이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생명의 화산'은 이름 그대로 화산 활동을 계속하는 활화산으로써  지표

가 불안정하고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 몰라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으

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의 사막'은 오아시스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모

래 늪과  모래 속에 살고있는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들 때문에 역시 인간

들에겐 미 개척지역으로 남아있었다. 성의 전쟁  때 타천사 나타스와 인

들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당시 수만의 인간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으며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피로 사막의 모래를  물

들였기 때문에 피의 사막이라는이름이 붙게 되었다.

피의 사막.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자신이 얼마만큼 왔는지 분간할 수가

없으며 얼마나 가야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공포의 모래바다의 한  가

운데에 언제부터인가 세 명의 인간이 삼각형으로 서로 대치하여  서있었

다.

셋 다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한 명은 머리부터 완전히 가려서 얼

굴을 볼 수 없는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한 명은 회색 머리에

흰자뿐인 눈을 번뜩이는 젊은 남자,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얼굴이 형체

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섭게 일그러진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다크 헥사곤(DARK HEXAGON)을 발동하기 위한 모든 마력이 모아졌

다. 나 사알지스, 리치(LICH) 가 된 후로 육 백년이 지난 지금, 코페즈리

님이 최후에 자신의 소멸로써 완성하신 다크 헥사곤을 드디어 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길었군. 이 카루반. 오로지 이때를 위해서 나의 수많은  다크 위자드들

을 희생하며 목숨을 버텨 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굴까지 뒤덮는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의 목

소리가 침묵을 깨며 들려왔고 그에 이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남자도

아무런 변화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은발의 젊은 남자는 마

치 손을 대면 진하게 묻어 나올 듯한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빈정거렸다.

"사알지스, 카루반. 기쁠 때는 좀 웃어야 할  것 아니야? 고작 몇  백년

을 살았다고  이제는 표정마저 굳어 버렸단 건가? 정말 꼴 사나와서 못

봐 주겠군."

"젝트... 대체 하카르트가 너 같은  건방진 애송이에게 네크로맨서의 마

스터 자리를 물려주었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빈정대는 젝트에게 사알지스가 역시 변화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젝

트는 코웃음 치며 바로 맞받아 쳤다.

"흥! 머릿속에 든 것도 없는 해골주제에  무리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아

도 돼! 해골은 해골답게 입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그리고 그렇게 쓸데

없는 감상에 빠질 시간이  있으면 어서 다크  헥사곤이나 발동시키던지.

난  페이오드의 이상한 재상 놈 때문에 그 나라에 가봐야 하니까 바쁘다

고......... 아, 그러고 보니 당신들,  아래 있는 녀석들 단속  좀 하는 것이

좋겠어. 전부터 외부로 우리의 정보가 새는 것 같으니까.."

젝트는 그렇게 말을 늘어놓고는 잠시 후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

만 젝트의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고

잠시의 침묵이 지나서야 카루반이 조용히 사알지스를 응시하며 입을  열

었다.

"저 놈은 내버려두지. 그것보다 '그' 가 있는 곳을 알아내었다. 내 얼굴

을 이렇게 만들고 달아난 배신자. 블랙  드래곤 티라크람의 키퍼인 주제

에 티라크람은 지키지 않고 웬 조용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  같더

군. 재미있는 키퍼야. 내가 그곳으로 가서  다크 헥사곤을 발동시키겠다.

우선 무엇보다  그자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렬한 지옥을 느끼게 해준

다음에....."

"........ 그것도 좋겠지.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해 주길 바란다. 카루반."

"물론이다. 그러면 먼저 가보겠다. 신과 마의 합을 추구한  고귀한 서쪽

의  타천사를 위해."

"홀로 선과 악을 알고있는 불멸의 아름다운 회색 날개를 위해."

그리고 그들도 서로 한마디씩 남기며 잠시 후 그곳 피의 사막에서 모습

을 감추며 사라져 버렸다. 바로 그들이  다크휴먼의 세 명의 마스터로써

성의전쟁을 일으켰으며 온 대륙을 공포에 떨게 했던 타천사 나타스를 따

르는 악의  집단을 지배하는 중추적인 수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바깥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대륙에서 그들의 머릿속을 정확히 아는 사

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지 결코 그들

이 자신들의 사명에 게으르지 않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매직길드의 마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루디의 보호자께.

우선 이렇게 부득이 하게 편지로 말씀을 드려야 하는 점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매직길드의 클라스라인 지점에서 수행을 하고  있

는 루디 군의정신에 선천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기에 위험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령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매직길드에선 루디 군을 보호자께로 돌려보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아마 이 편지를 받으실  때쯤 루디 군은 집에 도착할

것입니다. 부디 저희의  부득이한 사정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이만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매직 길드 클라스라인 법국 지부장.

13인의 마도사 이트라이 로버렌스

편지를 다 읽고 마지막 이름 옆에  있는 매직길드 법인이 들어간 도장

까지 본 언덕마을의 장로는 한숨을 내쉬며 2층에 올라가 아직 잠에서 깨

어나지 않고 자신의 방 침대에 뻗어있는 킬츠를 흔들어 깨웠다.

"으윽.... 뭐야... 장로님?"

"일어나거라 킬츠. 루디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구나. 부탁인데 마중  좀

나가 있지 않으련?"

"예? 루디형이 돌아와요?"

얼떨결에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와버린 킬츠는  갑자기 돌아온다는

루디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품으면서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

며 천천히 로케스트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아.... 역시 이 언덕은 언제나 좋다니까. 그런 데....."

킬츠는 언덕을 바라보며 변함없는 웃음을 지었다.  로케스트 언덕은 언

제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킬츠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언덕은

어느새 새로운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고 싱그러운 풀들이 한 여름의 햇살

을 반사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역시 언제나 같이 이 지방 특유의 바닷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킬츠가 언제나 찾아오는 평소의  언덕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언덕의 정상에 검고 긴 머리의 소녀가 눈을 감고 앉아있다는  점이

었다.

"카, 카름?"

그 모습을 본 킬츠는 엉겁결에 소리쳤고 언덕의 정상에 가만히  앉아있

던 카름은 킬츠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킬츠? 당신이군요. 이리 올라와요."

"아, 알았어."

곧 킬츠도 언덕의 정상에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머쓱하게 서 있던 킬

츠는 카름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들고있는 것을 발견하자 한숨을 내쉬며

잠시 후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서로 말없이

가만있었다.

"여기는 웬 일이야?"

그러다  킬츠가 먼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소리 속으로  입을 열어

말하자  카름은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며 대답을 했다.

"킬츠의 검술 선생님을 데려온다고 아버지가 마을을 떠나  신지 보름이

다 되었는데  돌아오시지 않으셔서요.  혹시 오늘은  돌아오시지 않을까

해서 이곳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고 대답을 한 카름은 킬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살짝 웃으며 말했

다.

"그런데 킬츠는 여기에 왜 올라왔어요?"

그러자 킬츠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장로님이 오늘쯤 매직길드에 가있는 루디형이 돌아온다고 해

서 말이야. 알지? 장로님의 손자인  그 루디형. 뭐.... 갑작스럽게  온다고

해서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은 마중하러 나온  거야. 만나서 물어보면 사

정을 알 수 있겠지."

"아! 정말? 그럼 오늘 루디 오빠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거네요. 어릴 적

에는 저와  에리나랑 루디 오빠가 함께 모여서 놀았었는데. 하지만 에리

나도, 루디오빠도 마을을 떠나게 돼서 많이  서운했었어요 얼마 전에 떠

난 세렌도요. 그런데  루디 오빠가 마을로 돌아온다니 참 다행이에요."

카름은 즐거운 듯 웃으며 정면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보

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그녀의 그런 행동들은 킬츠가 보기엔 전혀

어색해 보이지도, 이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뭐... 나도 루디형과는 많이 지냈지. 한  집에서 살았으니까.  언제나 두

개뿐인 침대를 나와 세렌,  그리고 루디형이 서로 차지하느라  난리였어.

물론 결국엔 언제나 세렌이 바닥에 잠을 자게 되었지만......."

킬츠는 자신도 모르게 세렌을 생각하며 미소짓고  있었다. 세렌이 마을

을 떠난 지 한 달.  겉으론 세렌을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있었지만

사실 킬츠의 기억 속엔 언제나 세렌이 함께 자리잡고 남아 있었다. 그러

다가 자신이 정작 루디가 아닌 세렌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 닳은

킬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킬츠

의 속마음을 알고있는 카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킬츠의 손을 잡

았다.

"킬츠, 너무 세렌을  나무라지 말아요.  그도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길을 걷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예요. 세렌은

자신이 더욱 큰 인간이 되기를 바랬었으니 까요. 킬츠도 역시 큰 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그러자 킬츠는 자신의 손안에 있는 카름의 손을 꽉 쥐며 고개를 푹 숙

였다.

"알아..... 그 녀석이 잘못 한 건 없어.......   그냥 내가 괴로워서 그래. 단

지...... 소중한 사람이 내 주위에서 사라진다는 것 때문에."

그러다 킬츠는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래! 카름 말대로  내가 강해지면  되는 거야!  그러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지. 그런데 내  검술선생이란 사람은 왜 오지를 않는  거야.....

빨리 배워야 내가 강해지지!"

"아! 마침 저기에 누가 오네요. 처음 느끼는 인간의 기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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