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드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수감시설에 있었다. 제드와 멘가는 운 좋게도 다마치스 왕국에 속한 산맥에서 발견되었다. 둘을 발견한 마구간 지기가 치안관에 신고했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수감시설로 이송되었다.
“복식이 특이한데?”
“만지지 말고 저 안에 가둬 둬.”
신분을 증명하는 어떠한 물건도 없고 복식이 이상한 두 사내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멘가는 제드보다 먼저 눈을 떴고, 실종자와 타국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다른 곳으로 분리되었다.
눈을 뜨지 못하는 제드를 본 멘가는 돌아왔다는 안도와 흥분감 속에서 죄책감을 가졌다. 조금의 배려로 그는 제드가 다마치스 왕국에 속한 치유자라고 치안대에 말했다.
그리하여 그가 사라졌던 기간 동안 탈영병 신분이었던 제드는 수감시설로 이송되었다.
제드가 눈을 떴을 때, 며칠이 지나 있었다. 열악한 수감시설은 제드를 그냥 방치해 화상을 입은 손에 물집과 고름이 차 쓰라렸다.
“나는 다른 차원에 떨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제드는 취조받으며 그간의 일들에 대해 토로했다. 제드는 정신이상자라는 오해를 받아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제드의 말을 듣던 치안대와 그를 조사하러 나온 능력자 부대원들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함께 발견된 멘가의 말과 제드의 진술이 일치하였고, 멘가가 입고 있던 슈트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는 완전히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보호 관찰 대상입니다. 3일 후 나가실 수 있으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제드는 독방에 앉아 철창을 사이에 둔 부대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탈영병이라는 오해는 풀 수 있었다. 탈영은 최대 사형이다. 오해를 벗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알겠다.”
그가 나가자 제드는 감옥 안의 작은 창살로 밖을 올려다보았다. 플라잉카가 돌아다니지 않고, 높은 건물이 없는 세계. 돌아왔다. 반가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쁘지는 않았다.
제드가 원한 귀환이 아니었으므로 당혹스럽다는 느낌이 더욱더 강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다비드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잔상처럼 그의 비통한 표정이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많이 놀랐겠지.’
이제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는 웜홀 기계도 없고 우주선도 없다.
그게 마지막인 줄 몰랐다.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일까.
제드의 어깨가 처졌다. 그가 걱정되었다. 내가 일부러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알아주었으면 했다.
함께하겠다고 했는데 마지막에 멘가가 잡을 줄 꿈에도 몰랐다. 멘가는 다비드가 미워서 자신을 함께 끌고 온 것 같았다.
‘멘가를 믿은 내 잘못이다.’
안 좋은 기억도 많고 성격도 더러운 다비드였지만 자신 때문에 그가 많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고 제드는 진심으로 빌었다.
멘가의 공격을 받고 다비드는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 자신이 없으니 치료받으려면 한참을 고생할 것이다.
가슴에 화상을 입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던 다비드는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이었다.
‘멘가에게 팔을 잡혔을 때 다비드는 나를 따라서 블랙홀로 뛰어들려고 했지.’
주인에게 버림받는 개처럼, 눈앞에서 부모를 잃는 아이처럼 그는 절박해 보였다. 다비드를 떠올릴 때마다 제드는 마음이 시큰하게 아파 왔다.
* * *
제드가 사라진 지 삼 일째. 거의 무너진 다비드의 저택 안에서 에든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멘가가 1지구에 나타나고 상황을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
멘가가 다비드의 저택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고, 지원군과 함께 도착했을 때는 다비드가 저택을 부수고 있었다.
가슴팍에 화상을 입은 채 미친 사람처럼 저택을 뒤지는 그를 말리던 안드로이드와 로봇이 여러 대 부서졌다.
‘제드, 제드!’
다비드의 비명과 같은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때렸다. 국보급이라는 기계들을 부수며 다비드는 사람이 들어가지도 못할 작은 곳까지 헤집으며 제드를 찾아다녔다.
에든은 큰 몸집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다비드가 다치지 않도록 안드로이드를 배치했다.
‘신원미상자가 돌아갈 방법을 알 줄은 몰랐지.’
알았다면 보안을 좀 더 강화하거나 저택에 있던 웜홀 기계를 폐기했을 것이다.
그 기계는 다비드의 부모대에서 한창 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을 때 두었던 기계로 제대로 작동되는지도 미지수인 고물이나 다름없었다.
저택에서 숨을 죽이던 에든은 다시 시작된 깨부숴지는 소리에 발작하듯 숨을 죽였다.
그가 밖으로 나가 인명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저택을 봉쇄했다. 그래도 그가 마음먹는다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에든은 어쩔 수 없이 저택에 머물며 목숨 걸고 다비드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라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11지구 이후로 나가 씨가 마르다시피 한 로버들을 처단했으면 좋겠다.
언론이 난리인 지금, 다비드가 1지구의 시민을 죽인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다음 주 예정이었던 행성 이주 프로젝트도 무기한 딜레이였다.
‘생각보다 더 제드 님에게 빠져 계셨구나.’
다비드는 항상 미쳐 있었지만, 이토록 이성을 잃은 적은 없었다. 지금 다비드 옆에 간다면 자신이 수년을 함께한 비서라도 그냥 죽임을 당할 정도였다. 저택에 있던 버그와 감자도 다비드 손에 부서졌다.
‘메모리를 백업해 놓았으니 다행이지.’
에든은 다비드가 빨리 진정했으면 하고 바랐다. 제드가 돌아올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제드가 다시 블랙홀에 빠지고, 지구에 도착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에든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안 간다면서요.’
다비드는 가슴팍 상처를 치료받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안드로이드를 가르고 부쉈다.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그가 해체하는 대로 인형처럼 흔들렸다. 배 속 기계를 헤집고, 목을 비틀어 분해해도 먹먹한 머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드의 방에 들어갔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곳이었다. 그가 누웠던 침대에 엎드려도 그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다비드는 제드의 옷장을 열어 그의 옷을 침대 위에 펼쳤다.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하얀 옷 사이에 파묻혀 누워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제드.”
죽으면 이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제드는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른 이를 치유하며 자신을 잊고 잘 살겠지. 분노가 치밀었다.
“죽여 버릴걸.”
그를 죽였다면 이런 비참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텐데. 어디 가두어 놓을걸. 인체를 개조해 버릴걸. 후회의 연속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멘가에게 맞은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아파요.”
침대에 누운 채 대답해 주는 이 없는 말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제드가 떠난 날 이후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가 떠난 지 두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벌써 몇 주가 지난 것도 같았다.
“제드는 아픈 사람을 좋아해.”
그는 자신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멘가를 치유했다. 그는 아픈 사람만 신경 쓴다.
다비드는 화상 입은 가슴을 손톱으로 긁었다. 화상 입은 물렁한 살점은 그의 손톱에 의해 쉽게 떨어져 나갔다.
“나도 아파요, 제드.”
하얀 침대보와 제드의 옷이 피로 젖어 갈 만큼 살점을 뜯어내며 제드를 불러도 그는 오지 않았다. 다비드는 폭소하며 침대를 팡팡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에든을 찾았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에든이 다비드의 부름에 벌벌 떨며 나왔다. 피 칠갑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가 두려웠다.
에든은 깨진 머리를 꿰매고 재생 캡슐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큰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우주센터에 웜홀 기계 하나 더 있었죠?”
에든은 걸레짝이 된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다비드에게 치료받으라는 말을 하면 심기를 거스를까 바닥만 보고 그의 말에 대답했다.
“네. 하나 있는 거로 압니다.”
“플라잉카 준비해요.”
부랴부랴 플라잉카를 호출한 에든은 항공 우주 센터에 연락해 안드로이드와 보안 담당자만 빼고 다른 연구원과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다비드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바짝 긴장됐다. 에든은 피 칠갑한 다비드를 위해 로봇을 시켜 그의 옷을 가져왔다.
누구 하나 죽일 듯한 얼굴로 흥얼거리는 다비드는 정말이지 기괴했다. 외투를 입는 피가 굳은 손은 지저분했다. 항상 깨끗했던 손톱 밑은 꺼멓게 죽은 살점이 붙어 있었다.
인명 피해만은 없기를 빌었던 에든의 바람은 철저히 깨부숴졌다. 항공 우주 센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다비드는 비교적 얌전했다.
저택에 있던 웜홀 기계와 똑같은 모델의 기계를 본 순간 다비드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이 기계를 가동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사실을 다비드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에든이 용기 내어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다비드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기계를 가동했다.
“안 켜지네요.”
“…오래된 기계라 그렇습니다.”
마지막 남은 웜홀 기계는 작동되지 않았다. 다비드의 저택에 있던 기계가 비이상적으로 작동된 것이었다.
제대로 작동되는 웜홀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이 필요할 터였다.
다비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섬뜩한 기운에 에든이 뒤로 물러섰다.
다비드의 웃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최소 인원을 두고 비운 건물은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스산했다.
에든의 불안함 예감은 적중했다. 다비드가 무서운 기세로 센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의 손에 부서지는 수십억 디런의 기계가 고물이 되어 갔다.
센터에 경고음이 울리자 안전요원과 안드로이드가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멈추십시오.”
겁을 모르는 로봇이 다비드에게 다가서자마자 목이 분리되었다. 상대가 다비드라 보안요원들도 어쩌지 못했다.
“대피하지 않고 뭐하십니까!”
에든이 그들에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요원들은 다비드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가소롭다는 듯 히죽 웃은 다비드가 결국 죄 없는 1지구민을 공격했다.
“컥. 크읍.”
맨손으로 다비드에게 뱃가죽이 뚫린 보안요원은 숨도 쉬지 못하고 할딱거렸다. 그다음 순간부터 요원들은 총을 발사했다.
기계 슈트를 입지 않은 다비드는 여러 발의 총을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총에 의해 고가의 기계가 망가지자 상황실에서 보안요원에게 퇴각 조치를 내리고 안드로이드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요원들이 배에 구멍이 뚫린 채 피를 토하는 동료를 부축하며 사라지자 안드로이드들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다비드를 포획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비드 님 그만하십시오!”
에든이 크게 소리쳐도 다비드는 다가오는 안드로이드 무리에게 조각난 웜홀 기계의 날카로운 파편을 던졌다.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들고 무식하게 박살 내는 모습은 이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분과 비슷한 안드로이드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에든의 말에 다비드가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다비드는 아주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에든에게 손에 들린 부품을 던졌다.
“내가 제드 껍데기를 가지고 싶은 건 줄 알아요?”
옆으로 피하며 에든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피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터졌을 것이었다.
“큭.”
무릎 꿇은 채 눈 부위를 손바닥으로 짚자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다비드를 더 자극하면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을 직감한 에든이 바닥을 기며 도망쳤다.
* * *
수감시설에서 나온 제드는 보호관찰이라는 명목하에 잠시나마 집으로 보내졌다.
오랜만에 본 동생은 화를 내면서 울었다. 토벌전은 이미 끝나 있었고 그 뒤로 동생은 행방불명된 제드를 계속 걱정한 모양이었다.
제드가 탈영했다는 누명을 쓸 것 같자 동생은 부대로 직접 찾아가 그럴 리 없다고 변호하고, 토벌전 중 사라졌으니 찾아내라며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했다.
그녀는 제드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었다. 제드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그녀는 별말이 없었다.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동생은 제드가 미쳤다거나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드와 똑 닮은 그녀는 단순하게 ‘돌아왔으니 다행.’이라는 결론을 냈다.
다비드가 지구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할 때마다 제드는 목구멍에 박힌 가시처럼 동생이 걸렸다. 지구에 계속 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면서도 동생에 대한 우려는 가슴 한쪽에 항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해도 제드는 동생을 다시 봐서 기쁘고, 탈영병이라는 오해를 풀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드는 부대원의 감시 속에서 일상을 보냈다. 평생 일만 하다가 팔자에도 없는 휴식 기간이 늘고 있었다. 몸이 편하니 계속해서 다비드가 떠올랐다.
‘보고 싶군.’
멘가의 복수심에 의한 귀환은 제드에게 큰 당황과 허무를 선사하면서 동생에 대한 걱정을 해소시켰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다비드와 영영 헤어졌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제드는 그렇게 다비드와의 이별에 대한 부작용을 점차 겪고 있었다.
불 꺼진 방에서 제드는 창문을 열었다. 밖은 고요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제집은 변함이 없었다. 밤에도 환하던 지구와는 달리 이곳은 밤이 되면 어둡고 적막하기 그지없다.
제드의 방은 2층이기에 낮은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머리를 흔드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인구가 별로 없는 마을에다가 외딴곳에 떨어진 제드의 나무집은 쓸쓸했다.
‘나를 곧 잊겠군.’
제드는 다비드가 성격은 무척 더럽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그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아픔이 커 까칠한 면이 있지만, 기부도 하고 로버도 처치하는 등 누구보다도 어진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했다.
그와 외모로 견줄 자가 없을뿐더러 미디어에서 보았듯 인기도 많으니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을 깔끔하게 잊을 것이라고 제드는 착잡하게 판단했다. 제드는 자신에게만 다비드가 친절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복수도 끝냈으니 이제 내가 필요하지는 않겠지. 조금은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쉬워하고 가끔은 나를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제드는 소망했다.
* * *
다비드가 항공우주센터에서 난리를 피운 후, 1지구 전체가 흉흉했다.
언론에서는 그의 광증에 대해 떠들었고 그를 자랑으로 생각하던 이웃들은 매일 폭발로 인한 소음 때문에 집을 내놓거나 이사를 가기 바빴다.
사람들은 다비드를 두려워했다. 때마침 그가 과거 로버를 사냥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떠돌면서 인권운동가 사이에서 그를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다.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 집중하던 1지구회는 다비드가 도저히 우주로 나갈 상태가 아니란 것을 판단하고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힘썼다.
불같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그가 피우는 소동들을 눈감아 주는 것은 물론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의견들도 즉각 삭제하고 있었다. 다비드가 일으킨 소란 때문에 다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기사 한 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비드는 사실상 저택에 구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저택 밖에는 많은 안드로이드가 주시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저택으로 로봇을 보냈지만, 어느 것 하나 다시 나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촬영되어 전송된 영상에서는 다비드가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고 곧 영상은 끊어졌다.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일세!”
1지구회 의원들은 회의실에 앉아 얼굴이 벌게져서 다비드를 우주로 나가게끔 할 방법을 찾으라고 윽박질렀다. 그가 어째서 저 꼴이 난 것인지 조사를 통해 보고 받았다.
얼마 전 다비드의 저택에서 웜홀 기계가 가동되었고 그의 몸을 치유해 주던 아이삭스 제라드라는 자가 행방불명되었다는 보고였다. 다비드가 항공우주센터에서 웜홀 기계를 부수며 난리를 피운 이유도 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이삭스 제라드라는 신원 불명의 사람은 정신 의료시설에 있다가 치유라는 이능력 덕에 다비드가 발빠르게 거두어 갔다고 했다.
“그를 억지로 우주로 보낼 수도, 그렇다고 처벌할 수도 없지 않나.”
의원들은 다비드를 싫어했다. 그들은 다비드의 얼굴과 능력, 재력, 젊음 모든 것이 완벽해서 재수가 없었다. 오만한 성격과 자신들을 깔아 보는 듯한 태도도 싫었다.
물론 그의 몸 대부분이 기계라는 사실을 의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몸의 상처가 잘 낫지 않는 부작용이 있지만, 괴물 같은 신체 능력치에 그 정도 리스크는 안고 가야 평등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다비드가 저 정도로 맛이 간 것에 대해 의원들은 기막혀했다.
얼른 지구 밖으로 나가 행성 이주 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고귀한 임무를 가진 사람이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 비서, 에든이라는 비서는 지금 어디 있나?”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다비드의 비서인 에든은 그의 손에 한쪽 눈을 잃었다. 그는 인공 안구를 이식받기 위해 병원에 있어 이 자리에 불참했다.
“저러다 죽기라도 하면 지구는 어떡합니까.”
“죽다니, 기계 몸을 달고 어찌 그리 쉽게 죽겠나.”
“영상 못 보셨습니까. 그는 몸이 잘 낫지 않습니다. 가슴에 큰 상처를 달고 몸도 피투성이던데.”
의원들은 다비드가 지금껏 몸을 사리던 것을 알았다. 그래서 캐롤도 제라드라는 치유자를 찾아낸 후에 소탕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몸이 망가지도록 난장을 피웠다. 치료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저택으로 보냈던 로봇의 마지막 영상들을 살펴보면 점점 상처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일이야….”
결국 아무런 해결책 없이 회의는 끝났다. 에든이 치료를 끝내면 다비드를 설득해 보라는 배려 없는 지시만 내릴 뿐이었다.
다비드는 부서진 로봇의 잔해 사이에서 과호흡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손이 발발 떨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힘주어 잡고 터뜨릴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닥친 공황발작은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어릴 적 늘상 겪었던 발작은 재활이 성공하고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다.
몸을 웅크린 채 지저분한 바닥에 이마를 기대고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졸도할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 1시간이 지나서야 다비드는 서서히 차분해졌다. 그는 웅크린 상태 그대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구원해 준 이가 곁에서 사라지니 납치, 고문당했을 때의 트라우마가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성공적인 재활 후 캐롤에 대한 분노만으로 정신줄을 잡고 있던 다비드의 정서 상태가 불안정하게 날뛰었다.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다비드는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웃음 때문에 들썩거리는 그의 어깨와는 다르게 바닥은 눈물로 점점이 젖어 갔다.
* * *
제드는 땀 냄새 나는 부대로 복귀했다. 건장한 남자들 사이에 있으니 자신이 다비드에게 품었던 성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그라들었다.
부대원들은 제드의 집안 사정이나 그의 성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탈영했다고 했을 때 기이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얼마나 무서우면 최전방에서 싸우는 공격형 능력자도 아닌 치유자가 탈영했냐고 비웃기도 했다. 귀족 출신 부대원은 제드가 평민에 걸맞지 않은 지위에 앉아 있으니 꽁지 빠져라 도망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징계를 받지 않고 복귀를 한 것으로 보아 탈영이 아닌 실종이었다고 대부분의 부대원은 추측했다. 오랜만에 듣는 제드의 귀족 말투에 반가워하는 이도 있었다.
제드는 십여 년을 일했던 곳에서 다시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지구에 가기 전 매일 수행했던 일은 낯설면서 익숙했다.
“서면으로 작성해 오게.”
제드가 없는 동안 부대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제드는 그것들을 일일이 잡아내어 서류화시켰다. 대충 일을 처리했던 부대원들은 제드의 명령에 밤낮없이 서류 작업을 했다.
평소와 같이 지루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제드는 멘가가 조금씩 원망스러웠다. 다비드가 떠오를 때마다 그때 멘가가 자신을 잡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드는 이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좀먹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저, 이미 일어난 불행에 대한 고통을 조용히 감내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동생과 모래가 씹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어디 가십니까?”
“기록실에 간다.”
제드는 부대에서 차원 이동자에 대한 기록을 다시 살폈다. 과거에 대충 살펴봤던 것을 다시 보니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들 중 다른 세계로 돌아갔다는 사람은 없었다.
검은 구멍, 블랙홀에 대해서도 수소문했다. 허탕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돈을 주고 사설 기관에까지 조사를 맡겼다. 역시나 제대로 된 정보는 없었다.
은연중 품었던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제드의 가슴속에서 사라졌다.
부대원 중 그나마 친구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 동기, 눅스가 제드에게 돌아온 기념으로 술 한잔하자는 제안을 했다.
제드는 자꾸만 드는 ‘멘가가 나를 잡지 않았더라면, 지금 다비드와 함께 있겠지.’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그의 말을 수락했다.
눅스는 제드에게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제드가 차원 이동했다는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해서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눅스는 곧 결혼한다며 주제를 돌렸다.
“야, 진짜 안 믿겨. 내가 결혼이라니.”
“나도다.”
곧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입이 닳도록 그녀를 칭찬했다. 술에 취할수록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언제 한번 소개해 줄게. 엄청 예뻐.”
“필요 없다.”
“개예뻐.”
예쁘다는 칭찬에 다비드가 떠올랐다. 제드는 술을 들이켰다.
“너도 여자 소개해 줘?”
“됐다.”
“내 신붓감 친구들도 다 예뻐!”
전이라면 조금은 혹했겠지만, 제드는 다비드라는 강렬한 매운맛을 경험했기에 한동안, 아니 꽤 오래 누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비드보다 예쁜 사람은 없다.
“그러다 노총각 금방이지.”
제드는 주위 여자들이 힐끔대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눅스는 저런 친구한테는 저돌적인 여자가 딱 맞는데, 하는 것 따위를 생각했다.
눅스는 진급이 확정되었다고 했다. 진급에 결혼, 겹경사였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술을 왕창 들이켰다.
“난 결혼하면 진짜 잘할 거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호의호식하게 해 줄 거야!”
주정뱅이가 따로 없다. 눅스는 공격형 능력자라서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진급이 확정되었으니 위험해질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가 아주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공격형 능력자는 죽음에 직면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토벌전이 끝난 지금, 그의 주정은 행복한 걱정과 투정이었다.
제드는 눅스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축의금 빵빵하게 준비해 놓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더 취하기 전에 제드는 그를 숙소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한 잔 더 해야지!”
“많이 취했군. 가자.”
“나 안 취했어.”
그는 이미 많이 취한 듯 비틀거렸다. 제드는 술값을 계산하고 그와 부대 숙소로 향했다. 눅스의 숙소 근처에 적당히 그를 버려 두고, 제드는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취기가 오르자 발걸음이 가볍다. 하늘의 별은 반짝반짝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행성은 둥글다고 했지, 내가 밟고 있는 이곳도 둥글려나.’
별은 아주 멀리 있는, 스스로 빛을 내는 다른 행성이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별이 하늘에 박힌 보석인 줄 알고 있었다.
제드는 행성이 둥글다든지, 우주에는 많은 별이 있다든지 하는 것이 자신만 아는 비밀 같아 웃음이 나왔다.
‘지구는 빛나는 별과 달랐지.’
제드는 인터넷에서 지구의 위성사진을 본 적 있었다. 먼지에 둘러싸인 골드 닷.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지구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다비드가 떠올랐다.
술기운이 오르자 다비드가 까탈스럽게 굴던 것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그려졌다.
‘더러운 손으로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정말 시끄럽네요.’
‘진짜 추레하네요.’
‘거지 같아요.’
처음에는 그가 참 싹수없다고 생각했다. 살살 웃으면서 갈구는 것이 심보가 고약했다. 그래서 제드는 그와 정을 나누게 될 줄 몰랐다.
다비드는 정에 고팠던지 자신에게 곧잘 치대곤 했다. 은근 허당이라 자주 다쳐 와서는 치유해 달라고 했다. 자신이 외로울까 감자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신체 접촉도 좋아했다.
제드의 올라갔던 입매가 어느새 딱딱히 굳었다. 다비드가 너무 그리웠다.
* * *
다비드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제드가 사라진 지하실의 석재 바닥을 깨고 맨손으로 흙을 파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다비드는 발작이 올 때마다 죽을 것 같다며 제드를 찾았다. 그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매 순간 눈도, 귀도, 혀도 잘렸을 때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그 짓을 반복하고 있을 때, 에든에게서 제드의 행성 좌표가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텅 비어 있던 다비드의 눈이 괴기하게 빛났다.
다비드는 위험한 여정에 올랐다. 눈이 돌아 버린 그를 말릴 수 있는 인물은 13개로 나누어진 지구 안, 누구도 없었다.
그는 우주왕복선에 전투 슈트와 로봇을 쌓아 넣고 제드의 행성 좌표를 찍었다.
“너무 멉니다.”
“에든,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요.”
에든의 눈에는 큰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인공 안구 이식을 받고 며칠 동안 빛을 보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 때문이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다비드는 여기저기 다쳐 있었다. 검은색 전투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에게서는 피 냄새가 났다.
“그 행성이 몇 광년 떨어져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우주선을 타도 몇 년은 걸릴 위치입니다.”
“한쪽 눈도 필요 없나 봐요?”
에든은 다비드가 지긋지긋했다. 저 성질머리 하며 수년을 함께한 자신을 공격한 그가 무섭고 싫었다.
그가 행성 이주 프로젝트의 단 하나뿐인 적임자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목숨 걸고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돌아오실 겁니까?”
“몰라요.”
“만약 죽는다면 어쩌실 겁니까? 행성 이주는 어떻게 하실 거란 말입니까.”
다비드는 소리 지르는 에든을 무시하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서서히 닫히는 문에 대고 에든은 끝까지 말을 이었다.
“제발 지구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제드 님 하나 찾으려고 우리 후손들은 다 죽을 겁니다.”
다비드가 지구로 돌아온다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비드를 말려야 한다며 발을 굴렀다. 그러나 에든처럼 목소리를 내거나 그를 직접적으로 붙잡는 이는 없었다. 지금쯤 늦게나마 소식을 접한 의원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있을 것이다.
“개자식!”
에든의 욕설은 우주왕복선이 쏘아지는 소음에 묻혔다. 에든은 떠나가는 우주선을 허망하게 올려다보았다.
아이삭스 제라드, 그 사람이 뭐라고. 다비드는 지구의 모든 것, 인류를 다 버리고 떠났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다. 다비드라는 사람이 이해되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가 냉철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에든의 착각이었다. 이 정도로 멍청한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감정에 휘둘려서 인류를 버린 머저리. 죽어 가는 행성에 버려진 사람 중 하나가 된 에든은 왕복선이 사라질 때까지 원망스럽게 다비드를 욕했다.
* * *
다비드는 우주 속으로 들어왔다. 머릿속에는 온통 제드뿐이었다. 제드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제드를 다시 볼 수 있다. 제드, 제드.
비정상적으로 제드에 대해 생각했다. 에든이 말한 행성 이주나 인류에 대한 것은 다비드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드가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눈에서 독기가 피어났다. 멘가와 이 상황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가 혼자라는 슬픔으로 변질되었다. 심신이 불안정했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면, 망가뜨릴 거예요.’
자신을 잊고 다른 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제드를 상상하자 살심이 들끓었다. 제드의 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사람에 대해 다비드는 웃으며 이를 갈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놓아 준다는 것은 개소리라고 다비드는 생각했다.
저 많은 로봇과 전투 슈트로 그의 행성을 깨부순다면, 그가 돌아갈 곳을 없애 버린다면 이 불안이 없어질 것 같았다.
고요한 우주 속에서 다비드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 신원미상자와 무슨 관계일까. 돌아가려고 나를 속인 것일까. 마지막에 끌려가는 것도 어쩌면 연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다비드는 일단 행성에 도착하면 제드를 찾고 그다음 신원미상자를 찾아내 찢어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홀로그램 불빛이 비친 다비드의 표정 없는 얼굴은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그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다비드는 공포에 휩싸였다. 제드가 웜홀 기계에 빨려 들어가 잘못해서 갈가리 찢겼다면? 좌표가 이상한 곳으로 잡혀서 벌써 죽었다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제드도, 행성도 아무것도 없다면?
그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발작이 올 것 같았다. 다비드는 눈을 감고 칼을 들었다.
다비드는 발작이 올 때마다 자해했다. 자신의 몸을 해치곤 제드를 찾았다. 팔, 허벅지를 칼로 죽죽 그었다.
다비드는 아픈 것을 질색했지만, 아프면 제드가 찾아와 치유해 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벌이는 행동이었다. 자해를 하면 공황발작이 누그러들고 고통 때문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또렷해졌다.
“침대도 놨는데, 킹사이즈로.”
다비드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광활한 우주에 촘촘히 박힌 수많은 행성이 텅 빈 다비드의 눈에 박혔다. 레이더에 잡힌 지구는 금빛 점이 되어 점점 멀어졌다.
얼굴을 적시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다비드는 거대한 우주를 홀로 부유했다.
* * *
“빌어먹을 왕족 놈들!”
곧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평민 부대원은 몰래 귀족과 왕족을 욕했다. 그놈들의 고귀한 자존심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파리 목숨처럼 쉽사리 꺼질 위기였다.
“조용히 말해. 죽고 싶어?”
“죽여 보라지! 망할 놈들!”
뜬소문은 아닌 듯 제드는 요즘 부쩍 바빠져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치유는 물론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고 훈련도 빠짐없이 받았다.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부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몬스터보다 인간과 싸우는 것은 더 지옥 같다. 목숨 걸고 전쟁에서 이겨도 평생 사람을 죽인 장면을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겪을 것이 뻔했다.
특히 공격형 능력자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폭탄 같은 상태였다. 근래 능력자들끼리 시비가 붙어 치유 받으러 오는 부대원의 수가 늘었다.
“동상에 걸렸군.”
제드는 손이 파랗게 굳은 부대원을 치유했다. 그는 아주 아픈 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웠던 공격형 능력자는 제드의 능력이 몸에 스미자 표정이 한결 풀렸다. 따스했다. 짜증 나고 예민했던 신경 줄이 흐느적댔다.
“감사합니다.”
“괜한 신경질 부리지 마라.”
“전쟁이 터질 거라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제 팔에 동상 입힌 놈이 우린 다 죽을 거라고 재수 없게 말해서 좀 싸웠습니다.”
“참 잘했군.”
“…부모님 걱정도 되고, 정말 전쟁이 나지는 않겠죠?”
근육이 다부진 공격형 능력자는 제드에게 고민을 술술 말했다. 따스한 감각을 주는 치유자는 가끔 그들의 투정을 받아 주곤 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걱정하고 신경질 부리며 싸움질이나 할 바에는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갖겠다.”
“네….”
제드 또한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눈앞의 공격형 능력자는 부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였기에 좋은 말을 하려 했다. 그가 머리카락을 넘기며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금발이군.’
하루에도 여러 번 떠오르는 다비드의 얼굴은 오늘도 어김없었다. 저 머리보다 부드러웠는데, 이 친구는 머리를 잘 안 감는군. 그러고 보니 쿰쿰한 냄새가 좀 나는 것 같다.
평생 깔끔 떨어 본 적 없는 제드였지만 다비드와 쾌적한 집에서 살다 보니 이곳이 얼마나 위생적이지 않은지 실감이 났다.
“제가 많이 다치면, 꼭 구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
자신을 구해 달라던 다비드는 뭘 하고 있을까. 자꾸만 떠오르는 그를 애써 잊으려 했다. 이제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제드는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훈련 너무 빡세지 않습니까?”
“맞다.”
훈련이 너무 고되다. 치유자도 기본 단련훈련을 진행했지만, 요즘에는 무기까지 다뤄야 했다. 제드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치유자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공격형 능력자는 한참을 제드에게 투덜거리다가 돌아갔다. 말썽을 부린 죄로 가서 기합을 받을 터라 한숨을 푹푹 내쉬는 뒷모습은 착잡해 보였다.
* * *
“빈틈없이 못났군.”
꿈에 다비드가 나왔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지만 빛나는 금발, 젖살이 포동포동함에도 뚜렷한 이목구비는 얼핏 보아도 다비드였다.
올망졸망한 게 참 귀엽다. 마냥 귀여워하기에는 다비드는 너무도 서글픈 표정으로 제드를 노려보았다.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아이의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소름 돋았지만 제드 입장에서는 미안하지만 귀여웠다.
꿈에서 제드는 다비드를 얼렀다. 주위에 아이가 없어 어색한 솜씨였지만 울지 말라며 타일렀다.
자신의 허벅지까지 올 듯 자그마한 다비드는 동그란 정수리를 보이며 얼굴을 감싸 쥐고 점점 크게 울었다.
아이용 어두운 회색 정장에 반바지, 니삭스, 앙증맞은 구두까지 착용한 다비드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그 모양으로 울고 있으니 제드는 안절부절못했다.
어린 다비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드의 다리를 잡았다. 제드가 마주 안아 주자 아이 같지 않은 힘으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제드의 가슴골에 파묻혀 무언가 중얼거렸다.
‘제드.’
‘울지 마라.’
‘어디 갔어요?’
‘여기 있다.’
다비드는 가슴골에 파묻혀 웅얼웅얼했다. 촉촉한 뺨과 눈물, 침 때문에 가슴팍이 뜨끈하게 축축해졌다.
‘아프다.’
파고드는 다비드의 힘이 점점 세지자 제드는 그를 떼어 놓으려 했다.
‘지금 어디 있어요?’
몸이 터지리라 생각될 때쯤 잠에서 깼다. 머리가 울렸다. 꿈에까지 다비드가 나오자 제드는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했다.
부대에 복귀한 지 벌써 석 달이 흘렀다. 다비드를 보지 못한지도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만 잊어야 했다.
“으윽.”
제드는 고된 훈련으로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다 신음을 뱉었다. 온몸에 알이 배겨 죽겠다.
노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동생이 들어왔다. 대충 묶은 머리에 허리부터 발목까지 뚝 떨어지는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하게 사부작거렸다. 제드의 동생은 할머니 같은 구석이 있었다.
“해가 중천이야.”
해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부지런한 제드의 동생은 침대에서 끙끙거리는 남자 형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제드는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부대에서 보내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흉흉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동생은 역시나 제드를 반기지 않았다.
“오늘 어디 가는 거냐.”
“일 나가야지.”
그녀는 요즘 동네 빵집에서 일했다. 부지런한 성격과 다부진 몸, 강철 같은 체력을 겸비한 그녀를 부르는 곳은 많았다.
“넌 애인 있나.”
“그건 왜?”
평생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 없는 제드에 소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 장난기가 올랐다.
“드디어 장가가려나 봐. 누군데?”
“그런 건 아니다.”
덩치만 컸지 숙맥인 제 남자 형제가 어디서 누구를 만났을까. 그녀는 빨리 말하라는 듯 제드의 보기 좋은 등 근육을 찰싹 때렸다. 실종되었을 때 만났으려나, 아니면 돌아와서 소개를 받았을까.
“손이 더 매서워졌다. 밀가루 반죽이 도움이 됐나 보군.”
“됐고, 누군데? 예뻐?”
“예쁘지.”
제드는 자신도 모르게 다비드를 떠올리고는 대답해 버렸다. 망설임 없이 나온 제드의 답에 동생은 할 말을 잃었다.
말해 놓고 머쓱해하는 제드는 그녀의 눈에 부끄러운 듯 보였다.
“출근해라.”
“아니, 누군데?”
“저녁은 내가 해 놓지.”
“네가 한 요리 맛없어. 차라리 사 와.”
제드는 힘 좋은 팔뚝으로 동생을 번쩍 들어 현관문 앞에 갖다 놓았다. 그의 장사 같은 힘에 동생은 어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문을 열고 마뜩잖은 표정으로 제드를 한번 돌아본 뒤 나갔다.
“지구 음식은 맛있었지.”
제드는 이곳으로 돌아와서 여러 불편을 겪었다. 씻는 것부터 먹는 것, 자는 것까지 지구가 얼마나 편하고 안락하며 쾌적했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특히 먹는 것은 최악이다. 편식 없이 잘 먹던 제드는 이곳에 돌아와 짜고 투박하기만 한 음식을 먹으며 버그가 내온 음식들을 그리워했다.
“여태껏 너무 배부르게 지냈던 것 같다.”
제드는 어두운 옷을 내려다보았다. 다비드의 저택에서는 순백의 하얀 옷이 넘쳐났는데 이곳으로 돌아오니 이게 너의 위치라는 듯 다시 우중충한 옷들만 옷장에 가득했다.
흰옷은 빨래하기 힘들다. 금방 더러워지는 흰옷은 싸구려 비누로는 때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고급 비누는 너무 비쌌다. 제드에게 흰옷은 사치였다.
꿈에서 다비드를 보고, 싱숭생숭한 기분을 떨치려 제드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드는 웃통을 벗고 맨몸 운동을 했다. 근육이 펌핑되고 땀이 날수록 머릿속이 비워져 갔다. 웬만큼 땀을 빼자 허기가 돌았다.
동생이 없을 때 집 청소도 하고 저녁도 만들어 놔야겠다. 먼지떨이를 들고 환기를 위해 문을 벌컥 열자 꽃다발을 든 남자가 깜짝 놀라 제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냐.”
큰 덩치의 남자가 땀에 반질반질한 꽉 찬 가슴 근육을 내보이자 상대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는 해맑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처음 뵙습니다! 형님!”
꽃다발을 든 훈남. 그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지만, 동생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놈일 것 같았다.
“소피는 일 나갔다.”
“제가 늦었나 봅니다. 이것 좀 전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제드에게 꽃다발을 건네고는 꼿꼿이 서서 자신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저는 로비 브로디입니다! 가죽 공방을 운영하고 있고, 부모님께서는 멀리 사십니다. 크진 않지만 제집이 있고 공방은 단골이 많아서 망할 일이 없습니다! 소피가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도록….”
“됐다. 나한테 잘 보일 필요 없다.”
동생한테나 잘할 일이다. 제드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기운이 풀풀 풍겼다.
‘날 닮아서 사람 보는 눈이 있군.’
브로디를 보고 제드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다비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도 한 인물 했다. 제드는 다비드의 파탄 난 성격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형님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소피가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랬군.”
제드 앞에서는 별 티를 내지 않아서 몰랐다. 하나뿐인 피붙이라고 그래도 걱정이라는 것을 했나 보다. 제드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드가 먼지떨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브로디가 말했다.
“청소 중이셨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됐다.”
제드는 처음 보는 사람을 부려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제드의 요동치는 근육을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제드는 근방에서 유명한 능력자였다.
브로디는 소피의 오빠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남자로서 능력 있고 멋있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제발 돕고 싶습니다!”
“아니….”
“돕게 해 주십시오!”
브로디가 끈질기게 어필하자 제드는 하는 수 없이 그를 집에 들였다. 그는 낯가림 없이 싹싹하고 에너지 넘치게 제드를 모셨다.
“손재주가 좋군.”
“소피만 못합니다.”
브로디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처음 본 사이인데도 몇 년을 알고 지낸 양 친화력이 대단했다.
공방에서 일한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제드의 구멍 난 제복도 깔끔하게 꿰매 놓았다.
소피가 벽에 잘못 박아 놓은 못을 뽑을 때도 옆에서 제드가 딛고 올라선 의자를 얌전히 잡고 서 있었다.
그동안 바빠서 미뤘던 집안 보수 작업도 제드와 함께 무리 없이 해냈다. 제드가 없을 때 이 집에서 소피 혼자 힘으로 끝내기 어려운 여러 일을 도왔던 듯 익숙해 보였다.
또한 소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입만 열면 그녀 이야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소피를 말하는 그의 얼굴은 팔불출 그 자체다.
“소피랑 많이 닮으셨습니다.”
“걔가 잘생기긴 했지.”
짙은 눈썹과 각진 턱, 큰 키는 함께 물려받은 유전자였다. 갈색 머리칼과 야성적인 인상 때문에 둘이 남매인 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알았다.
브로디는 청소와 바느질은 물론 요리도 잘했다. 스튜를 태우지 않고 맛을 내는 것도 제드 입장에서는 대단한 능력이었다.
소피가 돌아왔을 때 둘은 어느새 절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큰 빵을 끼고 들어왔다. 빵집에서 얻어 온 것 같았다.
“왜 여기 있어?”
“소피 보려고 왔어.”
알고 보니 그는 소피보다 두 살 어렸다. 소피가 제드의 곁으로 와서 스튜 맛을 보더니 제드를 흘겼다.
“네가 만든 것 아니지?”
“당연하지. 브로디가 만들었다.”
제드가 브로디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브로디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소피는 자신이 없을 때 친해진 두 남자를 떨떠름하게 보았다.
제드가 소피의 빵을 빼앗아 들자 소피가 인상을 쓰고는 제드의 등짝을 때렸다.
“너 안 씻었지?!”
“까먹었다.”
운동하고 씻지 않아 땀 냄새가 났나 보다. 제드는 시무룩한 얼굴로 욕실로 들어갔다. 씻지 않으면 그녀가 밥을 내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일은 어땠어? 힘들었지?”
“괜찮았어. 영감 몰래 빵 덩이 가져오느라 진땀 뺐지만.”
-쪽
브로디가 자연스럽게 소피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브로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그녀는 그의 입에 가볍게 키스했다.
“오빠랑 뭐 했어?”
“보수도 하고, 음식도 하면서 너 기다렸지.”
“저놈이 부려 먹진 않았고?”
“아니야. 잘해 주셨어.”
소곤소곤,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 둘은 눈을 맞추고 꺄르륵거리며 일상을 나누는 대화를 이었다.
제드는 옷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은 것을 깨닫고 문을 열었다가 조심스럽게 닫았다.
브로디에게 둘 사이에 관해서는 자세히 묻지는 않았고, 소피의 성격상 본인의 연애에 대해 제드에게 떠벌리는 편이 아니라 몰랐는데 둘은 상당히 깊은 사이인 것 같았다.
피붙이의 애정행각을 보는 것은 닭살 돋기 그지없었기에 제드는 팔을 벅벅 문질렀다.
* * *
모두가 우려하던 전쟁이 터졌다. 소피는 능력자인 제드의 가족이라는 혜택으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했다.
브로디는 소피와 가족이 되어야지만 함께 갈 수 있었기에 빠르고 볼품없는 결혼식도 올렸다.
결혼식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둘은 혼례복도 아닌 일상복을 입고 주례자 앞에서 결혼 서약을 읊은 뒤 브로디가 급하게 준비한 반지를 나눠 끼었다.
갑작스럽게 전쟁이 일어났기에 어쩔 수 없었고, 비슷한 이유로 이렇게 결혼하는 커플도 많았다.
제드와 소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브로디는 울었다. 누가 보아도 신혼부부라기에는 불안한 얼굴로 둘은 짐을 챙기고는 마을을 떠났다.
소피는 제드 덕에 안전한 곳으로 갔지만, 정작 제드는 이곳에 남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소피는 죄책감과 걱정에 제드를 한참이나 끌어안았다.
조금 수척해진 얼굴의 제드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녀를 마주 안아 주었다.
옆에서 함께 우는 브로디만 없었다면 마지막까지 담백하게 배웅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행복했으면 좋겠군.”
소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번 전쟁은 몬스터를 토벌할 때와 같지 않았다. 사람끼리 죽이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 나가야 한다. 쳐들어온 적군을 앞에 두고 고국을 뒤에 두고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물러날 수 없는 현실에도 제드는 좌절하지 않았다.
* * *
적국의 왕은 다마치스의 왕과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무슨 보물을 얻으려고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따위 이유에 죽어 가는 병사들과 능력자들은 그들에게 가축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부대원의 생명은 보잘것없는 소모품이다.
사상자가 많았던 며칠간은 서로 조용했다. 제드는 며칠 동안 잠잠한 전장 속 막사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하늘이 구질구질했다. 씻지 못하고 세탁하지 못해 더러운 수풀 색 제복과 막사에서 흘러나오는 환자들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시체를 태우는 불 능력자들은 고약한 냄새에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일했다. 그들 외에도 악취 때문에 코와 입을 가리고 다니는 병사들은 많았다.
제드가 하관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었다. 13지구에서 맡았던 기름 섞인 악취와는 다른 시체의 악취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하아.”
어스름한 회색빛 새벽에 제드의 하얀 입김이 퍼졌다. 문득 다비드가 떠올랐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 한가운데 있으니 다비드 생각이 많이 줄었다.
벌써 그와 떨어진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 죽는 것을 보지 않은 것이 옛날 일 같았다. 제드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잠시 이리로 와 보셔야겠습니다!”
제드는 뒤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뒤돌았다. 환자가 가득한 막사에서 나오던 치유병이 다급하게 제드를 부르고 있었다.
제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서둘러 막사로 향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이 지옥 같은 전쟁이 끝날지 모르겠다.
막사를 열자 고름과 오물 냄새가 확 끼쳤다. 누구 때문에 불렀는지 단번에 알 만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병사에게로 다가갔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몸부림치는 이는 신체에 대한 상실감과 고통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통한 비명은 일상처럼 전장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왜 이곳에서 이토록 아파야 할까. 보물이라는 무생물보다 못한 자신들의 목숨을 비웃으며 제드는 그의 몸에 능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동생이 떠올랐다. ‘내가 죽으면 소피가 위로금을 받겠지. 다행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비드를 먼저 떠올렸다.
“재웠으니 깨우지 마라.”
고통이 일순 멈춘 병사는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치유병사에게 말하고는 제드는 막사를 나왔다.
곧 결혼한다던 눅스는 운 나쁘게 최전방으로 배치되었다. 호의호식해 줄 거라던 그녀를 위해 소피처럼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제드는 눅스를 이 막사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죽지 않고 다쳐서 자신이 치유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몇 광년이나 떨어진 제드의 행성은 너무 멀어 행성 이주 프로젝트의 후보에조차 들지 못했다.
다비드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비행했다. 주위로 괴상한 빛을 내는 행성이 지나가도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조금의 영양소와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지만 다비드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몸에는 자해의 흔적들이 늘었다. 깊게 벤 상처는 아물지 않아 피가 몽글몽글 솟아났다.
지구로부터 연락이 오고 있지만 하나도 확인하지 않았고, 거리가 꽤나 멀어져 메시지가 도착하는 간격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파.”
킥킥. 다비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다가 곧 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트렸다. 잠시 처절한 표정이 되었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화면상의 제드가 있는 행성은 아직도 거리가 한참 남아 있었고, 다비드는 눈이 벌게져서 수동운전과 자동운전만 반복했다.
들쭉날쭉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매일 웃고 절망하기를 반복하며 자해하고 제드를 부르는 것만이 일과였다.
다비드는 그리움에 미칠 것 같았다. 쓸데없이 넓은 우주와 너무 먼 제드의 행성 거리에 화가 났다.
고요한 우주에서 다비드가 하는 것이라고는 망상뿐이다. 제드는 다비드의 망상 속에서 다른 이를 치유해 주고 짝이 되고, 다비드를 잊는다.
다비드는 불행하게 뻗어 나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제드는 곁에 없고, 그것이 너무 서럽다.
‘불구가 되어도, 끔찍하게 고문당해도, 제드가 나와 함께 있어 준다면 지금보다는 아프진 않을 텐데.’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어 오자 다시금 다비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누가 보기에도 전쟁은 이상했다. 처음 몇 개월간 병사들은 하루에 몇백은 죽어 나갈 정도로 치열했다. 제드를 포함한 치유자들은 매일 기절할 만큼의 능력을 사용해도 죽어 가는 사람들을 다 살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요즈음에는 적국도, 다마치스 왕국도 대기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막사와 보초만 살벌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전장에서 죽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족과 왕국을 지키려고 죽는 명예로운 죽음이 아닌, 왕족과 귀족의 싸움에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심리 소모만 고문처럼 이어져도 제드는 사상자나 부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제드는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이 태워진 곳에 서 있었다.
솜씨 좋은 능력자가 태워 뼛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그 능력자는 자신의 불 능력을 시체 태우는 데 쓰이는 것을 혐오했다. 전장에서 맡은 시체가 타는 냄새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전면적으로 싸우지 않음에도 열악한 환경 때문에 치유자를 찾는 병사들은 많았다. 음식을 먹고 탈이 난다거나, 타박상을 입는 사람들은 많았다. 어느 병사가 치유 막사에서 한스럽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말을 했다. 집에 가고 싶다. 그리운 이를 만나고 싶다. 이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제드 또한 마찬가지라 그저 무심하게 그들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렇게 1년여 동안 지속된 전쟁의 끝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었다.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니 국민 정서는 물론 경제도 얼어붙었다. 지친 병사들은 돌아가며 휴식과 복귀를 해야 했다.
휴전하게 된 이유도 이상했다. 다마치스의 왕족과 적국의 왕족이 혼전임신을 했단다. 임신한 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니 사실을 묻을 수도 없었고, 전쟁 중인 상황에서 얼토당토않게 서로 결혼으로 묶여야 했다.
서로의 병사가 죽어 나가는 마당에 두 나라의 귀족과 왕족은 파티를 열어 하하 호호 고상하게 웃으며 돌고 도는 화법으로 서로를 비꼬았을 것이 뻔했다.
죄 없는 병사들이 피 흘리는 와중에 고상함과 겉치레를 신경 쓰는 사람들. 전쟁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귀족들.
매일 죽어 나가는 끔찍한 곳에서 인형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대부분의 병사는 평생 장애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무너지진 않았군.”
제드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무너지거나 누군가 들어와 살고 있지는 않았다. 전쟁이 갑작스럽게 터져 동생과 제드가 짐을 챙긴 그대로 집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긴 시간을 대변하듯 먼지 쌓이고 녹슨 내부가 제드를 반겼다.
동생은 무사할 것이다. 동생이 안전한 지역으로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는 몇 개 받아 보지 못했다. 중간에 분실된 것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 휴전되었으니 동생에게 편지를 부쳐 안전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피임기구가 귀한 이곳에서 동생에게 아이가 생길 수도 있는 기간이다. 제드는 부디 둘 다 무사히 살아 있었으면 했다.
“먼지 때문에 죽겠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급박한 상황에 동생은 그래도 알뜰하게 물건들을 챙겨 나간 것 같았다. 집에는 귀중품은 남아 있지 않았고, 오래된 식기나 옷, 신발, 살림살이는 그대로 있었다.
다음 복귀일까지 2주일 남았다. 병사들이 돌아가며 휴전선을 지키며 항상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탈영은 말도 안 되었다.
병사의 가족들은 안전지역으로 피신했고, 탈영하면 가족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전쟁 중에 탈영하지 말고 이곳에서 죽으라고 협박하는 볼모나 다름이 없었다.
제드는 근 1년 만에 제대로 휴식이라는 것을 취했다. 비명과 다친 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살았군.”
이번에도 운이 좋아 살았다. 최전방에서 싸우지 않는 치유자라서 부지한 목숨이다. 그렇기에 다치거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더욱 도와줘야 한다고 다시 다짐했다.
2주 동안 푹 쉬고, 복귀해서 부상자를 치유하고, 일반 사람들 중 다치고 병든 이가 있다면 고쳐 줘야지, 라고 했던 다짐은 제드가 집에 돌아온 지 3일째 되는 날 깨졌다.
“누구십니까.”
“아이삭스 제라드. 지금 당장 같이 가 줘야겠네.”
문 앞에 서 있던 부대장이 제드를 거의 연행하듯 끌고 마차에 태웠다. 제드를 데리러 온 이는 제드가 살면서 얼굴 몇 번 보지 못한 고위급 관계자였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묻고 싶군. 어떤 미치광이 괴물이 자네 이름만 부르며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