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드 닷(Gold Dot) 2권-5화 (5/8)

“캐롤이 없어졌으니,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이에요?”

웃으며 물고기 밥으로 물고기를 맞추던 다비드가 제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비드와 제드는 한량처럼 정원의 연못에서 관상어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말 그대로다.”

“아니요, 제드는 나한테 꼭 필요해요.”

“이제 다칠 일도….”

“아니요.

“혼자 우주로 나가는 것도….”

“아니요.”

다비드는 제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없어도 잘 살지 않았나.”

“무슨 뜻이에요?”

다비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드는 여태까지 떠날 것처럼 굴었던 적은 없었다. 뭘까.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다비드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뭔가 돌아갈 방법을 찾은 걸까? 인터넷 사용 기록을 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집을 얻어 달라고 하려는 것일까. 초조함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팔다리 정도만 인체 개조해야 할까. 다비드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었다.

“내가 우주에 같이 가지 않으면 너 혼자 장기간 우주에 있을 것 아니냐.”

“하.”

우주로 함께 가자던 다비드의 제안을 거절하는 듯한 제드의 말에 다비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우주에서 죽으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제드에게 바짝 다가온 다비드의 표정은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인공 태양을 받은 금발 때문에 눈이 부셨다. 협박성 짙은 그의 말에 제드는 눈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지.”

“다녀오면, 제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줄게요. 약속해요.”

2차 타 행성 탐방 기간을 몇 년으로 늘려 버리자. 둘만 광활한 우주에서 부유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었다. 다비드는 제드와 몇 년 동안 우주에 나가 있으면서 그를 꼬실 자신이 있었다.

“너는 캐롤을 다 죽이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지.”

“그랬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줄 거예요. 그리고 당장 돌아갈 방법도 없잖아요.”

“….”

“나랑 우주로 나가요. 이곳 사람들이 다 죽게끔 내버려 둘 건가요? 제드.”

제드는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지 못했다. 다비드의 표정이 제드를 그냥 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제드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 돈도 없고 아이디 카드라는 것도 없다. 다비드 없이는 이곳 생활이 어려웠다.

“나랑 우주로 나가요. 이런 기회도 흔치 않아요.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제드가 대답이 없자 다비드는 녹을 듯 웃었다. 그가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끝없이 나빠졌다.

그러나 제드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조급함은 옅었다.

다비드가 물고기 밥을 연못에 성의 없이 던졌다. 물고기들이 떼거리로 한곳에 몰려 엎치락뒤치락하자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웃는 다비드의 얼굴에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빛이 부서져 내렸다. 제드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빼앗겼다. 다비드가 제드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밖에 다녀올게요. 빨리 올 테니까 혼자 잘 있어야 해요?”

다비드는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그가 귀여웠다. 따뜻하고 큰 제드의 손에 가볍게 입 맞춘 다비드가 저택 밖을 빠져나갔다.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미소 한 방에 넋을 빼놓던 제드는 정신을 차렸다. 다비드의 미인계에 넘어간 것 같았다. 자신의 단순함에 혀를 찼다.

제드는 저택을 돌아보았다. 버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비드가 시킨 많은 일을 처리할 것이었다.

넓은 정원을 둘러보던 제드는 철 담을 향해 걸었다. 멘가에게 오늘도 보자고 말했다. 언제인지는 말하지 않았으니 저택 근처를 어슬렁거려야겠다.

저택의 철 담벼락은 짙은 메탈의 고급스러운 문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밖에서 저택의 정원이 보였지만, 철 담이 높고 촘촘해서 들어올 수는 없는 구조였다.

일반적인 힘으로 건드는 것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일정 무게 이상으로 힘이 가해지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전류가 흐르는 구조였다.

철 담 근처를 돌던 제드는 얼마 가지 않아 멘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다비드가 나가자마자 온 거다.”

멘가는 다비드가 저택을 나서기 훨씬 전부터 제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명화가 가능한 시간은 단 몇 시간뿐이었기에 제드가 빨리 나오기를 바랐다.

멘가는 좋은 밥 먹고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는 반질한 제드의 얼굴을 보자 짜증이 일었다.

“다비드 그 미친 새끼랑 한집에 살다니. 미인이면 뭐해. 미친놈인걸? 너한텐 미친 짓 안 해?”

그 미친놈이랑 거시기를 맞대고 손장난까지 쳤다. 제드는 그냥 얼버무렸다.

“뭐, 그렇게 미치진 않았다.”

“뭐?”

“아예 안 미쳤다는 건 아니고, 조금 미쳤다. 그것보다 어제 하던 이야기나 더 해라.”

로버들을 살육하고 다니는 것을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데 조금 미쳤다니. 멘가는 저 큰 다비드의 저택에서 편히 지내니 제드가 그를 감싼다고 생각했다.

멘가는 그날의 다비드를 잊을 수 없었다. 헬멧을 벗고 사람들을 도륙하던 미치광이.

방금 전 멀리서 저택을 나오는 다비드의 모습을 보고 오줌을 지릴 뻔했다. 아름다운 외관은 그의 잔인한 성정을 예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제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시발, 기억력도 점점 떨어져 가.”

고생을 많이 한 탓에 멘가는 입이 험해지고 점점 멍청이가 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돌아갈 수 있다고.”

“어, 응! 맞아! 너 여기 왔을 때 검은 구멍에 빠지지 않았어?”

“맞다. 크고 기이할 만큼 검은 구멍이었지.”

“그게 블랙홀이라는 거야.”

“블랙홀?”

멘가는 캐롤에 있을 때 이상한 실험을 하는 것을 보았다. 시간 역행과 이동 실험이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극히 일부였지만, 캐롤에는 이상한 연구원들이 많았다. 신기한 불 능력자인 멘가를 실험에 끼워 주고, 알려 주기까지 했다.

“캐롤 내부에선 시간 역행 실험을 했거든. 위험한 실험이라 사람이 죽는 건 예사였는데, 시발 그놈들은 목숨을 파리처럼 여겨서 실험했었지. 그때 웜홀 실험도 했었어.”

“그건 뭐지.”

“쉽게 말해서, 구멍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거야.”

“잘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다마치스 왕국에 생긴 구멍으로 들어가면 바로 스카쟈로 나오는 거야. 문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게 가능한가?”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진 않다나 봐.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데 우린 재수가 없어서 거기 빠진 거고, 이곳으로 이동해 온 거야.”

“정말 재수가 없었군.”

“근데 이곳에선 그 구멍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어.”

제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건가?”

“뭐 그렇지. 존나게 먼 행성이 우리가 왔던 곳이야.”

“구멍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어떻게 하는 거냐.”

“어제 말한 이 저택에 있는 기계가 필요해.”

“씨에스렐렐레레?”

“CSRR0! 이 저택에 하나 있고, 항공 우주 센터에 하나 있어. 다비드 저택엔 네가 있으니까 찾기 쉬울 것 아냐.”

“찾으면 어떻게 되지? 가동할 줄 아나?”

“알아. 내가 얼마나 돌아갈 방법을 찾았는데. 그 빌어먹을 지옥에서….”

멘가는 그간의 고생으로 인해 말문이 턱 막히는지 잠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멘가는 제드의 말투를 보고 그가 귀족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능력까지 있으니 꽤 상류층일 것이라는 오해를 했다.

‘이놈도 돌아가고 싶겠지.’

자신들이 왔던 세계에 두고 온 가족, 명예, 직업 등등 많은 이유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제드를 살폈다.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찾아보마.”

제드는 일단 멘가를 돕자고 생각했다. 그는 맹렬히 돌아가고 싶어 했다. 캐롤이었을 당시 범죄를 저질러 이곳에 정착할 수도 없었다. 다비드에게 걸리면 죽은 목숨이기도 했다.

돌아갈지 남을지 제드 자신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멘가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항상 그랬던 대로 당연하게 다른 이를 돕는 길을 택했다.

* * *

제드가 멘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동안, 다비드는 제드의 의사도 묻지 않고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 제드의 이름도 넣어 버렸다. 자신의 동행자로서, 치유자로서.

1인으로 구성되었던 프로젝트에 한 명 추가되어 여러 계획과 구성이 뒤틀렸다. 에든과 실무자들은 소리 없이 울었다.

“기존 우주선에 안전 장치를 더 추가해요.”

“이미 최고로 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추가해요.”

“…알겠습니다.”

에든은 울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힘이 풀리면 애송이처럼 눈물을 찔끔 흘릴 것 같았다.

“제드 님이 함께 가시기로 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제드의 의사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것을 모르는 에든은 참 잘되었다며 반색했다.

다비드는 기분이 좋았다. 저택에 돌아가 제드와 좋은 시간을 보낼 계획을 짰다.

제드는 단순하니 금방 넘어올 것이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우주로 나가자고 살살 꼬셔야겠다.

다비드가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웃자 에든은 등골에 소름이 올라왔다.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으신데, 뭔가 잘못됐나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갈게요.”

“하하, 알겠습니다. 저는 남아서 더 일하겠습니다!”

“그래요.”

에든은 다비드를 플라잉카 앞까지 배웅하고는 깍듯하게 인사하고 뒤돌아갔다.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다비드는 플라잉카 안에서 다리를 꼬고 밖을 쳐다봤다. 건물 사이로 애완 로봇 홀로그램이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론칭하자마자 인기가 상당한 모델이다. 왜 저런 쓸데없는 것을 키우는지 다비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제드가 떠올랐다. 저런 쓸데없는 걸 좋아하려나. 그가 안고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마를 가리는 머리칼, 깊은 아이홀, 무심한 표정을 짓고는 두꺼운 팔뚝으로 저 귀여운 동물을 안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 동물형 로봇이 조금은 귀여워 보였다.

자신이 밖에 나갈 때 집에 혼자 있으니 동물형 로봇과 놀면 괜찮지 않을까.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안 된다. 무생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옆에 인간 형상을 한 것이 있는 것을 상상하자 기분이 나빴다.

다비드는 플라잉카의 경유지를 추가했다.

* * *

“나 그거 안다.”

제드는 동물형 로봇을 데리고 돌아온 다비드에게 말했다. 전에 에든과 버그와 함께 봤던 로봇과 비슷한 종류였다. 그것보다 크기는 더 컸고, 얼굴은 달랐지만 사랑스러운 것은 다르지 않았다.

“알아요?”

다비드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개와 고양이의 합성 로봇을 바라보는 제드를 쳐다봤다. 기쁘거나 고마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별론가.’

“이름 지어 줘요.”

“키울 거냐?”

“마음에 안 들어요?”

“내 것이냐?”

제드는 다비드 옆에 얌전히 앉아 헥헥거리는 동물형 로봇 앞에 쭈그려 앉아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다. 로봇은 제드의 손바닥을 혀로 핥으며 애교를 피워 댔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제드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전에 봤던 것과는 털 모양이 달랐다. 긴 주둥이, 처진 귀, 웃는 얼굴.

흰색, 검은색, 갈색과 회색이 섞인 개는 눈과 코가 반질반질한 바둑알 같았다. 제드의 손길이 좋은지 긴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외관은 오스트레일리언 셰퍼드랑 같아요.”

“마음에 든다. 이름은 감자로 하지.”

“지금 내가 준 로봇한테 그딴 이름을 짓겠다고요?”

“입에 착 붙지 않나? 아니면 피자가 좋겠군!”

“왜 다 먹는 건데요?”

“베이글이나 도넛도 잘 어울린다.”

“그냥 감자로 해요.”

다비드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드는 감자를 번쩍 들어 ‘감자. 감자.’ 하며 둥가거렸다.

쾌활한 개를 든 건장한 제드. 상상만큼이나 잘 어울렸다. 다비드는 현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제드는 귓가에서 헥헥 소리를 내며 혀를 길게 뺀 감자의 모습이 귀여웠다. 고양이의 유전자가 합쳐진 감자의 몸은 연체동물처럼 길쭉 늘어나 뭉클하며 안겼다.

“버그에게 보여 줘야겠군.”

“그 로봇은 바빠요.”

내가 24시간 가동해도 다 처리하지 못할 일을 줬거든요. 다비드는 제드가 감자를 안고 버그를 찾도록 내버려 뒀다. 버그는 내일까지 지붕 청소를 할 터였다.

다비드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제드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하고 들어간 방에서는 제드가 감자와 터그 놀이 중이었다.

“하하. 고양이처럼 꾹꾹이도 하고 식빵 자세도 한다. 근데 이럴 땐 영락없는 개야.”

그야 개와 고양이의 장점과 귀여움만 모아 만든 로봇이라 그런 것이다.

제드는 맨바닥에 철푸덕 앉아 감자와 놀며 다비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비드는 은근슬쩍 감자를 발로 밀고 제드를 향해 말했다.

“영화 본 적 있어요?”

“없다.”

차원 이동을 검색하며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짜인 각본대로 연기하는 가상예술. 떠돌아다니는 클립으로 기사와 마법사, 마녀 등 재밌는 것을 봤었다.

“그거 봐요.”

바닥에 앉아 있는 제드의 팔을 잡아끄는 힘이 장난 아니다. 제드는 다비드와 영화를 보는 것보다 감자랑 노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비드의 힘이 너무 세서 끌려가다시피 갈 수밖에 없었다.

제드는 자존심 상하게 종잇장처럼 끌려갔지만 마치 자의로 가는 것마냥 무심하게 표정 관리를 했다.

다비드는 제드를 1층 계단 앞에 세워 두고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감자가 뒤따라와 제드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비드가 주방에서 종이봉투와 컵을 가지고 나왔다.

“이건 뭐지?”

“감자튀김이랑 콜라요. 먹을 거죠?”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는 먹을 것을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종이봉투와 컵을 건네받자 고소한 냄새가 폴폴 올라왔다. 콜라는 먹어 봤다. 입에서 톡톡 터지는 검은 물. 중독성 있어서 자꾸만 생각났다.

감자튀김은 감자 요리인가 보다. 제드는 꼬리를 살랑이며 주위를 맴도는 감자를 내려다보곤 감자튀김이 들어 있는 종이봉투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비드는 제드를 이끌고 2층으로 향했다. 감자가 따라오려 하자 죽일 듯 노려보았다. 동물형 로봇은 인간의 표정을 읽어 기분을 맞출 수 있었고, 감자는 다비드의 표정을 보더니, 꼬리를 말고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제드는 감자튀김 봉투에 정신이 팔려 감자가 사라지는지도 몰랐다.

2층 한편, 영화관처럼 꾸며진 방은 영상물을 감상하는 데 특화된 형식이다. 소파와 침대의 중간쯤 되는 기다린 의자가 놓여 있고, 한 면을 다 채우는 스크린이 놓여 있다. 스크린 앞에는 검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킁킁대며 다비드를 따라 스크린 앞 커다란 소파에 앉은 제드가 종이봉투를 열었다. 바삭하고 기다란 감자튀김이 놓여 있었다. 치즈 시즈닝과 주황색 치즈가 듬뿍 뿌려져 있어 달달한 냄새도 풍겼다.

“뭐 볼래요?”

“우주 전쟁 영화가 유행이라고 했다.”

핵전쟁 이후 우주 전쟁 영화는 꾸준히 유행 중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사람들은 우주와 외계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감독들은 무수히 많은 콘텐츠를 쏟아 내었다.

다비드는 콜라에 빨대를 꽂아 주고 가장 많이 보는 영화 1위를 틀었다.

파격적이고 선정적이기로 유명한 영화였다. 다비드가 꿍꿍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제드는 멘가도 다비드도 잊고 감자튀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감자튀김 봉투를 거침없이 찢었다. 다비드는 그의 툭 불어져 나온 목젖을 꿀렁이며 침 삼키는 모습을 관찰했다.

시즈닝 잔뜩 묻은 감자튀김을 한입 먹은 제드의 표정은 선물을 처음 받아 보는 아이처럼 놀라움과 감동으로 젖었다.

“감자에서 이런 맛이….”

제드는 자신이 다마치스 왕국에서 먹었던 감자 요리는 다 쓰레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비드는 감자튀김 하나에 시시각각 바뀌는 제드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음식 앞에서 비렁뱅이처럼 구는 모습에 하찮은 매력이 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고화질 배경이 생겨났다. 검은 무대에서는 3D 홀로그램 배우가 나와 바로 눈앞에서 연기하는 듯했다.

영화는 2D와 3D 모두를 지원했다. 배우의 모공까지 보고 싶다면 2D, 연극처럼 보고 싶다면 3D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비드는 망설임 없이 3D로 재생했다.

“제드, 영화 안 봐요?”

“맛있군. 너도 먹을 거냐?”

“됐어요.”

제드는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다비드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홀로그램 배우를 응시했다.

배경은 우주였고, 주인공 둘은 우주선을 조작해서 외계인을 물리친다. 그 장면을 3D로 구현해 내자 같이 우주선 속에 있는 것 같은 긴급함을 주었다.

“네가 전에 말한 우주로 가자는 게 저런 거냐?”

“맞아요. 이 영화는 우주를 잘 구현했기로 유명해요.”

제드는 우물거리며 배우를 응시했다. 우주라는 곳은 저렇구나. 우주선은 원래 저렇게 흔들리나? 저런 괴물과 싸워야 하나? 만약 우주로 나가야 한다면 멘가는 어쩌지? 그 전에 기계를 찾아야 하겠지. 등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드디어 해치웠어요.

-이제 귀환만 남았군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계인을 모두 처리했단다. 전개가 참 빠른 영화였다. 제드는 눈앞에 실제 있는 것 같은 홀로그램 배우를 신기하게 감상했다.

주인공의 미모가 상당하기로 유명한 영화였지만 매일 다비드를 보는 제드의 입장에서는 배우들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뒤로 하게 해 줄게요.

여자배우가 남자배우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더니 우주복을 벗기 시작하자 제드의 눈이 흔들렸다. 바로 앞에서 실시간으로 남의 섹스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뒤로…?’

슬쩍 본 다비드의 얼굴은 홀로그램 빛을 받아 섬뜩하리만치 각양각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깜박이지 않는 눈과 풍성한 속눈썹, 완벽한 이목구비는 인형 같았다.

‘큼, 금방 지나가겠지.’

제드의 바람과는 다르게 남녀가 홀딱 벗고 우주선에서 점점 진하게 입을 맞추고 서로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제드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까지 하는 거지? 진짜 하는 건가?’

다비드가 제드의 집중하는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침을 삼키는 모습이 처음 야한 것을 접한 사춘기 소년 같았다. 감자튀김 봉투는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남자배우의 성기가 노출되자 제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왜 다 벗는 거냐!”

19세 이상 관람 영화는 원래 배우의 성기까지 모두 노출이 되었다. 눈 둘 곳이 없어 방황하던 제드가 다비드와 눈이 마주쳤다.

다비드는 부푼 제드의 다리 사이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성 기능이 좋다는 거다.”

“알아요. 전에 확인했잖아요.”

다비드의 희고 커다란 손이 제드의 허벅지 위에 올라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몸이 밀착되었다.

“손을 어디다….”

“제드, 남자끼리 어디로 하는지 알아요?”

귀를 지분대는 다비드의 입술과 그의 낮은 목소리에 제드의 것이 바지를 뚫을 듯했다.

“뒤로…?”

“맞아요.”

참 잘했다는 듯 다비드의 손길이 농밀해졌다. 제드 나이, 또래들 장가들어서 아이까지 볼 나이. 알 것 다 알았다.

대놓고 제드의 툭 불거진 성기를 훑자 제드의 건장한 몸이 움찔거렸다. 지난밤 함께했던 장면이 스쳤다. 강렬한 기억이었다.

“해 볼래요?”

뒤로, 같이, 해 봐? 제드는 다비드의 얼굴을 보고 아래를 봤다. 다비드의 아래 또한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홀로그램 불빛이 비치는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제드는 영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비드에게 홀리고 있었다.

‘해 봐도 좋지 않을까.’

제드의 마음은 딱 그것이었다.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고, 다비드가 같이하자는데. 나도 성인이고 그도 성인이고, 같은 남자이지만 다비드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나 이래도 돼?’ 하는 이성적인 마음은 다비드의 손길에 의해 훌훌 본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많이 아플 거다. 괜찮나?”

“제드는 괜찮아요?”

“그래. 아프면 말해라.”

제드는 듬직하게 다비드의 등을 쓰다듬었다. 제드는 자신을 받아들일 다비드가 걱정되면서도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그만두기 없어요.”

“그래.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

“나는 힘든 걸 못 느껴요.”

당차게도 말하는군. 제드는 끄덕거리며 다비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비드는 그의 체취,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얌전히 받다가 순간 제드를 엎었다. 결코 가벼운 몸이 아닌 제드는 다비드가 드는 대로 속수무책으로 소파에 처박혔다.

소파에 누운 상태로 다비드가 몸 위로 올라오자 제드는 잠시 뭔가 싶었다. 거침없는 손길로 제드의 바지 앞섶을 끌어 내리자 선단이 촉촉한 두꺼운 성기가 드러났다.

“다치면 내가 치유해 주마.”

“제드도, 내가 책임지고 치료해 줄게요.”

제드는 자신이 넣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키가 더 크기도 하고, 근육도 더 크기도 하고, 어쨌든 제 엉덩이에 저 미사일만 한 것이 들어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비드가 바지를 내리자 묵직한 것이 제드의 성기를 툭 쳤다.

‘다시 봐도, 잘못 단 것 같군.’

클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적당히를 알아야지. 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비드는 전처럼 제드의 성기와 자신의 것을 비볐다. 뜨거운 것이 맞닿자 제드는 잊었던 감각이 떠올라 심장이 터질 듯 몸이 달았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몸은 본능적으로 다비드와 자신의 것을 겹쳐 잡았다. 다비드는 두 손으로 두 개의 성기를 잡고 비비는 제드를 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린 듯,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좋아요?”

허리를 내려 허리를 움직이던 다비드는 제드의 얼굴 가까이 멈추고는 물었다. 제드는 숨결이 닿을 듯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점점 달뜨는 자신과는 다르게 다비드는 침착해 보였다.

“흣.”

바짝 다가온 다비드의 얼굴을 피해 제드가 고개를 돌려도 그는 끈질기게 쫓았다. 닿을 듯 말 듯 했던 숨결이 닿고 다비드의 입술이 촉촉하게 젖은 제드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제드는 일순 차갑다고 느꼈지만, 곧 입 안을 헤집는 다비드의 뜨거운 혓바닥에 금방 잊었다.

“숨, 막힌다.”

“손 쉬지 말아요.”

다비드가 느리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소파가 들썩거렸다. 제드는 키스의 간지러운 감각과 아래를 자극하는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온몸의 근육이 긴장되고 땀이 배어 나왔다.

다비드는 거추장스러운 제드의 티셔츠를 찢었다. 질긴 원단은 그의 손에 종이 찢기듯 수월하게 걸레가 되었다. 다비드는 두 손으로 다 쥐어지지도 않을 제드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거긴 왜 만지는 거냐.’

제드는 불만 어린 목소리로 묻고 싶었지만, 다비드의 혀에 막힌 목구멍은 끙끙대는 소리만 흘렀다.

입에 드나드는 혀의 깔짝대는 소리와 선단에서 나온 축축한 쿠퍼액으로 질척이는 두 개의 성기를 빠르게 훑어 내리는 소리는 소음과 섞여 끈적하고 은밀했다.

가슴을 주물럭대던 다비드의 손이 제드의 성기 끝을 감싸 쥐고 엄지로 귀두 구멍을 긁자 제드의 몸이 움찔 떨렸다. 건강한 제드의 아래는 사정할 준비를 마쳤다.

‘조금 더, 빨리.’

사정을 위해 손을 빠르게 놀리는 제드를 보던 다비드가 음하게 미소 짓더니 제드를 돌려 눕혔다.

제드는 갑작스럽게 보이는 소파의 아이보리색 푹신한 방석에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더 하면 분명 갈 것 같았는데 날벼락이었다.

다비드는 제드의 흰 속옷에 감춰진 빵실한 엉덩이를 보았다. 아니, 감춰 주지 못한 봉긋한 엉덩이였다. 하얀색 드로어즈 겉으로 탐스러운 엉덩이가 모양 그대로 노출되었다.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토실토실하다.

앞으로는 성기를 내보인 채 소파에 처박힌 제드는 불만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다비드가 번뜩이는 눈으로 제드의 엉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제정신이 아니다. 평소에도 저렇지만 유독 위험한 기분에 휩싸였다.

“뭐 하는 거지?”

다비드는 대답도 하지 않고 홀린 사람처럼 제드의 드로어즈를 내렸다. 구운 달걀 같은 맨들맨들하고 올라붙은 엉덩이가 드로어즈 위로 봉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너… 설마.”

다비드의 심상치 않은 행동에 제드의 얼굴이 점점 납색으로 변했다. 아니겠지. 쿠퍼액을 질질 흘리던 게 쪼그라들 것 같았다.

제드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려고 하자, 다비드는 제드의 엉덩이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어흑. 하지 마라!”

감촉이 끝내줬다. 다비드는 제드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하며 잇자국을 냈다. 침착했던 외관과 달리 그의 이성은 저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제드. 부드러워요.”

“깨물지 마라.”

벗어나려 했지만 다비드의 힘은 장사였다. 자존심 상했지만 제드가 뒤로 손을 돌려 그의 머리를 밀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비드가 통통한 제드의 엉덩이를 덥석 잡아 벌렸다. 깨끗하고 앙다문 구멍이 눈앞에 드러났다. 꽉 다물려 있어 새침해 보이기도 했다.

“너, 안 된다. 손 놔라.”

“중간에 그만두기 없다니까요.”

“내가 네 괴물 같은 걸 왜 넣냐. 놔라!”

“처음은 거부감이 들 수 있어요. 뭐든 처음이 어려워요.”

“닥쳐라!”

키득키득, 보이는 게 없다. 눈앞에 놓인 빈틈없이 다물린 구멍과 돌아보는 제드의 불안감 가득한 표정. 뻣뻣하게 긴장한 그의 등 근육. 어느 것 하나 흥분되지 않는 게 없었다.

다비드가 발버둥 치지 못하게 몸으로 누르고 제드의 구멍 입구를 살살 만지자 제드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색이 되어 말했다.

“…내 것이 네 것보다 작으니까 더 수월할 거다.”

“….”

“내 것이 작다는 게 절대 아니고! 네 것이 너무 크다는 거다.”

다비드는 제드가 무엇을 말하든 하던 일에 열중했다. 미리 준비했던 동그란 물체를 제드의 구멍에 맞춰 조심스럽게 넣었다. 제드의 빳빳한 구멍은 작은 약과 다비드의 가운뎃손가락도 잘 삼키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도 버거운지 제드는 몸을 굳혔다. 안을 채우는 이물감에 인상을 절로 썼다.

다비드가 손가락을 빼내곤 옴칠대는 구멍을 봤다. 말도 하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에 제드는 소름이 돋았다.

엉덩이 볼기를 벌린 다비드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남자, 아니, 사람의 구멍에 거부감이 없었다. 제드라서 그런 것 같았다. 빨리 이 안을 휘젓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참아요. 곧 기분 좋아질 거예요.”

“뭘 넣은 거냐.”

제드의 안에 넣은 동그란 구체는 성행위에 쓰이는 알약형 윤활제다. 여성용이 아닌 남성용 윤활제. 고통 없이 기분 좋은 성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알약은 제드의 안에서 부드럽게 녹을 것이다.

합법인 마약성 성분이 그의 몸을 가볍게 달뜨도록 만들 것이고, 촉촉하게 젖어 성기를 받아들이기 딱 좋을 정도로 풀어질 것이다. 다비드는 약이 녹을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 제드의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넣고 휘저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을 자제하기 힘들다. 힘 조절을 잘못하면 제드의 연약한 구멍을 찢어 놓을 것 같았다.

알약은 사람의 온도에 반응하여 제드의 안에서 점차 녹아갔다. 촉촉하게 젖어 가는 아래에서 민망한 소리가 났다. 찔걱대는 노골적인 소리와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 돋는 감각에 제드의 잘 짜인 등 근육이 땀으로 젖어 갔다.

“움직이지 말아요.”

허리를 비틀던 제드는 은근하게 조이는 배 속이 이상했다. 한 번도 건드려 본 적 없는 미지의 곳이 자극당하자 성기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다시 빳빳해진 것을 느꼈다. 남자와의 성관계는 제드에게 도덕심을 쿡쿡 찌르는 일탈 같았다.

영화는 다시 전쟁 장면을 보여 주었다. 시끄러운 총격 소리와 비명에 제드의 신음이 묻혔지만, 다비드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알약이 반쯤 녹았을 때 제드는 몸이 녹진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을 휘젓던 다비드가 방향을 바꾸더니 어떤 곳을 누르자 제드의 몸이 제대로 반응했다.

“으읏.”

제드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사정했다. 손가락으로 뒤가 뚫려 단번에 사정하다니! 제드가 바르작거리며 사정하자 다비드가 눈을 휘며 제드의 앞을 만졌다.

“좋았어요? 많이 싸서 소파가 축축해요.”

뒷구멍을 자극받아 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새로운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또렷했다.

제드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멘가나 돌아갈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다.

“손가락 빼라.”

다비드는 제드의 어깨에 입 맞추며 그의 말에 따랐다. 알약은 모두 녹았는지 손이 미끈거렸다. 옷을 훌훌 벗은 다비드가 제드의 등 뒤로 몸을 겹쳤다.

땀 범벅인 제드의 등 뒤로 다비드의 맨살이 닿았다. 그는 제드를 무겁게 눌렀다. 녹진하게 풀린 제드의 구멍에 다비드의 성기 끝이 닿자 제드가 다시 발버둥 쳤다.

“넣으면, 죽는다. 내가.”

“안 죽어요. 못하겠다 싶으면 뺄게요.”

물론 거짓말이다. 다비드는 제드의 뒤에서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땀에 젖은 목덜미를 혀로 핥으며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너 제대로 할 줄은 아는 것 맞겠지?”

“걱정하지 말고 힘 풀어요.”

“지금이라도, 내가 넣는 거로 하자.”

제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구멍이 질펀하게 젖은 것이 제드에게도 느껴졌다. 찝찝하고 이상한 기분. 주체할 수 없는 간지러움과 뜨거움이 구멍과 배 속에 퍼졌다. 다비드가 넣은 이상한 것 때문이었다.

구멍 주변을 벌리고 빠듯하게 들어오는 다비드의 성기가 무서웠다. 복숭아 같은 성기 끝이 제드의 구멍에 포옥 박히자 촘촘한 주름이 너 나 할 것 없이 벌어졌다.

“윽. 안 들어가….”

“후우.”

다비드의 목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성기를 축축하게 빨아들이는 제드의 구멍이 망가지도록 처박고 싶은 욕심이 끓어올랐다.

소파 쿠션에 얼굴을 박고 몸을 떨자 다비드는 그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제드가 고통을 참는 눈이 다비드의 눈과 마주쳤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다비드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제드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온통 붉어져 있었다. 제드의 핏대 선 목선을 보며 다비드는 허리를 무겁게 내렸다.

“제드, 힘 풀어요.”

다비드 또한 삽입 섹스가 처음이다. 물론 근래 제드와 함께하기 위해 물품도 구매하고 포르노로 공부도 했지만, 초짜가 저지르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다비드는 제드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다비드 마음대로 했다가는 제드는 성기에 꿰뚫려 죽는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거칠게 하고 재생수에 넣어 버릴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드에게 입을 맞추고 그의 엉덩이를 벌렸다. 토실한 엉덩이 사이로 자신이 보아도 징그럽게 큰 성기가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들어가다 어느 순간 막혔다. 제드에게서 죽는소리가 나왔고 다비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흣. 흐윽.”

제드는 얼굴을 가렸다. 고통에 생리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배 속은 간지러운데 구멍은 아프고, 그렇다고 성기가 시들지도 않았다.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인데 또 싫지도 않다.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기분이었다.

“총 맞는 게 덜 아프겠다….”

제드의 중얼거림에 다비드는 성기를 작은 것으로 갈아 끼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구멍은 촉촉하게 젖었지만, 한 번도 열린 적 없었기에 버겁다며 파들거렸다.

간신히 들어간 구멍을 더 깊게 맛보고 싶기에 다비드는 필사적으로 제드의 몸이 이완되도록 도왔다.

“제드, 처넣어도 돼요?”

“안 돼, 아… 아프다. 찢어진 것 같다.”

힘들게 훈련할 때도 군소리하지 않았던 제드는 정말 죽을 것 같은지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애처롭게 매달린 눈물을 혀로 핥고 다비드는 반도 들어가지 않은 성기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흐읏.”

다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다비드의 성기는 제드의 기분 좋은 곳을 누르기 충분했다.

제드를 반듯하게 엎드려 눕히고, 그 위로 무릎 꿇은 다비드가 허리를 아래로 내리며 집요하게 삽입하기 시작했다.

봉긋한 제드의 볼기에 묻힌 성기가 터질 것 같았다. 제드는 쿠션을 깨물고 고통과 쾌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제드의 뒷목를 가볍게 누른 다비드는 성기를 빼내고, 다시 반 정도 처넣었다. 그럴 때마다 제드는 쿠션을 깨물며 배 속에서 올라오는 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제드, 제드.”

드디어 제드의 몸에 박는 다비드의 목소리가 잔뜩 낮아졌다. 목덜미를 누르던 손이 등을 쓰다듬고, 뒤로 살짝 꺾인 단단한 허리를 두 손으로 쥐고는 아래를 퍽퍽 박았다.

다비드의 움직임이 거세질수록 내장이 밖으로 뽑히는 것 같았다.

남자를 처음 받는 여린 구멍이 통통하게 붉은 빛으로 부어올랐다. 다비드가 성기를 빼낼 때마다 속이 딸려 나올 것 같았고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배가 뚫릴 것 같았다.

“아프다. 천천히 해라!”

“여기 기분 좋아요.”

제드의 배가 뚫릴 정도로 깊게 박고 싶은 것을 참으며 다비드는 중얼거렸다. 제드는 제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집요하게 허리를 놀리는 다비드에게 말하기를 포기했다.

“얼굴이 야해요.”

다비드는 쿠션을 물고 있는 제드의 옆얼굴을 핥았다. 머리를 치고 올라오는 쾌감과 잔뜩 흥분된 성기에 모든 신경이 쏠렸다. 더 깊게 박고 싸고 싶다.

다비드가 퍼억, 퍼억 거칠게 박을 때마다 제드의 몸이 소파에 처박혔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몸이 흔들렸다. 골반과 무릎이 소파에 쓸리고 제드의 긴 다리가 소파 끝에서 덜렁거렸다.

쿠션을 쥐어뜯고, 물어뜯다 전립선이 뭉그러지듯 눌리자 제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정했다. 배 속이 아프고 아리고, 뒤에 감각이 없는데도 많은 양의 정액이 쏟아졌다.

“흐읏.”

다비드도 사정하는 제드의 얼굴을 보며 그의 안에 진한 정액을 뿜었다. 머리를 치는 쾌감에 입술이 비틀어져 올라갔다.

다비드의 성기를 꽉 깨문 구멍이 파들파들 떨어대며 정액을 쥐어짜 냈다. 허리가 꺾인 채 떠는 제드의 몸을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길게 사정의 여운을 즐겼다.

“최고예요. 중독될 것 같아.”

“빼고 말해라.”

“미안해요. 안에 쌌어요.”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다. 다비드는 연신 제드의 옆얼굴을 핥았다.

“일단 빼라….”

제드의 목이 가라앉았다. 연달아 두 번이나 사정하니 몸이 축 늘어지고 구멍부터 배 속까지 얼얼했다.

“조금만 더 하면 다 들어갈 것 같은데.”

다비드는 제드의 빼라는 말을 무시했다. 다비드는 이제 한 번 사정했다. 징그럽게 큰 성기가 반밖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 죽을 것 같다. 녹진하게 풀렸으니 조금만 욕심부리면 모두 삽입할 수 있지 않을까.

제드의 등 뒤에서 무릎 꿇은 채 엉덩이 사이에 파묻힌 자신의 핏대 선 성기를 바라보았다.

별로 세게 쥔 것 같지 않았는데 제드의 엉덩이는 다비드의 손 모양으로 불긋해져 있었다. 볼기를 쥐고 벌리자 제드의 퉁퉁 부은 구멍이 자신의 성기를 아슬아슬하게 물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하앗.”

다비드가 성기를 살짝 빼내자 제드는 신음했다. 제드는 힘들고 아팠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소파에 파묻히기를 반복한 허리는 뒤로 접힌 것도 같았다.

핏대 선 성기에 정액과 함께 선분홍 피가 조금 딸려 나오자 다비드는 마지못해 그만두었다. 다비드의 성기가 빠져나가자 제드는 아래가 허전하게 뻥 뚫린 감각에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래가 벌름거려요.”

생중계하듯 다비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피만 안 보았다면 제드가 기절할 때까지 하는 건데. 아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다비드는 아픈 것이 싫었다. 남이 아픈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이 아픈 것이 싫은 것만큼 제드의 몸이 아픈 것도 싫었다.

부들거리며 소파를 짚고 일어나는 제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적당히를 모르는 다비드의 성기는 묵직하게 발기했다.

제드는 그의 성기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발기한 것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부축해라.”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서 계속 정액이 흘렀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피 섞인 분홍색 체액에 다비드는 입을 닫고 제드의 명령을 따랐다.

제드는 구멍이 뻥 뚫려서 내장이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느덧 영화는 끝나 파란 화면을 띄우고 있었다.

아픈 허리로 바지를 입어 울긋불긋한 엉덩이를 가렸다. 입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비드는 거구의 제드를 들어 지하로 향하고 싶었지만, 제드는 거절하고 부축하기를 종용했다.

대충 입은 바지가 정액으로 젖어 가는 것을 느끼며 제드는 오물을 지린 기분으로 자포자기해서 다비드의 부축을 받았다.

“많이 아파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다비드였지만, 제드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드는 정사로 붉어진 얼굴답지 않게 덤덤한 표정이었고 미미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땀에 젖은 제드는 무거웠지만 다비드는 그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허리를 감아 거뜬하게 부축했다. 그러면서 은근 몸을 부벼 왔다. 허리를 만지는 손도 끈질겼다.

“괜찮다.”

지하로 내려가는 내내 한 발 옮길 때마다 제드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보송한 몸으로 제 몸을 더듬는 다비드가 몹시 거슬렸다.

지하실로 들어서자 다비드는 제드를 잠시 앉혀 두고 재생수가 담긴 기계를 만지기 시작했다.

“저질렀군.”

제드는 헛헛하게 웃었다. 생애 처음 하는 섹스가 남자, 거기다 뒤가 뚫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제드가 온 세계에서는 손가락질받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남성과 동성애를 저지르면 무너질 것 같던 세상도 그대로였다.

몸은 아팠지만, 만족감과 개운함도 있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낯설면서 좋았다. 기계를 만지며 계속 제드를 흘끔대는 잘생긴 다비드도 좋은 것 같았다.

섹스 후에는 유대감이 생긴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처음 보는 다비드의 열정적인 모습이 떠오르자 큼큼하고 제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하실에서 뚝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감자가 꼬리를 살랑이며 내려왔다.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제드의 뒤로 멍청한 얼굴의 감자가 보이자 다비드는 표정으로 말했다.

‘꺼져.’

제드에게 달달한 미소를 짓던 다비드의 표정이 일순 흉흉해지자 감자는 2개월이라는 로봇 인생에서 큰 위기를 느꼈다. 잘 만든 로봇은 주인의 표정을 읽고는 귀를 접고는 바닥을 기며 사라졌다.

불쌍한 동물형 로봇이 사라지자 다비드는 다시 미소를 짓고 제드에게 다가갔다.

“다 됐어요.”

“이건 뭐냐.”

재생수가 들어찬 캡슐은 김을 내며 따뜻한 온도로 부글거리고 있었다. 캐롤을 처치했을 때, 재생수를 사용해 본 제드는 재생수가 얼마나 차가운지 경험한 바 있었기에 의문인 얼굴로 다비드를 쳐다보았다.

“이건 따뜻해 보이는군.”

재생수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능은 없다. 온도가 높아지면 재생수는 몸을 낫게 하는 기능이 저하되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기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차갑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다비드는 제드를 위해 재생수 기계를 다른 기계에 연결해서 마치 온천처럼 만들었다.

투명하고 큰 욕조 같은 기계에 들어가기 위해 제드가 낑낑거리자 다비드가 그를 번쩍 안아 들고 몸을 담갔다.

따뜻한 액체가 가득한 곳에 몸을 누이니 금방 몸이 노곤해졌다. 제드는 잠들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정신 줄을 붙잡고 있었다.

“징그럽다. 그만 만져라.”

“싫어요.”

제드를 안은 상태로 재생수 기계 안으로 들어온 다비드는 그를 놓지 않고 가랑이 사이에 가두었다. 그러고는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제드는 딱 붙어 있는 그를 밀어 보았지만 고상한 얼굴답지 않게 힘이 무척이나 센 다비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쁜 얼굴을 들이밀고 웃는 것에 비해 옆구리에 닿는 묵직한 것은 정도를 몰랐다.

다비드의 편안하고 장난기 서린 얼굴에는 평소 예민하고, 웃으면서도 기분 나빠 보이는 기묘한 분위기가 없었다.

“전에 수영할 줄 모른다고 했죠.”

“그래.”

“숨 참는 것부터 배워야 해요.”

제드는 다비드의 야릇한 표정을 보고 설마 했다. 설마. 설마 입 맞추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입을 맞추면서 숨 참기 연습을….”

“됐다.”

제드는 다 듣기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 제드의 단호한 대답에 다비드가 쿡쿡 웃자 몸이 닿은 제드의 몸까지 흔들렸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엉덩이가 쑤셨다. 재생수의 효과는 직접 경험했기에 의심은 없었지만, 근육통까지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제드. 기분 좋았어요.”

다비드가 제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포근하고 몽글거리는 분위기에 제드는 말을 아꼈다. 어색하지 않은 침묵 속에서 다비드는 눈을 감고 제드의 숨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눈을 감은 다비드의 풍성한 속눈썹에 재생수가 튀어 반짝거렸다. 그림자 진 옆모습이 환상적이다. 제드는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얼굴이 조각상 같은 싹수없는 놈인 줄로만 알았다.

제드의 추측은 맞았다. 그는 정말 잘생긴 인성 파탄자였다. 그래도 그에게는 로버를 싫어할 만한 사정이 있었고, 끔찍하게 아파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에 고픈 인간이었다.

“나도 좋았다.”

제드가 따스한 재생수가 묻은 손으로 다비드의 물기 어린 뺨을 닦아 주었다. 다비드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어릴 적 이후로 처음 지어 보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 * *

제드는 다음 날 멘가를 보러 나갈 수 없었다. 다비드가 외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비드는 저택에 방문한 에든까지 쫓아내고는 제드의 옆에 붙어 있었다.

제드는 예상대로 가벼운 근육통을 앓았다. 총각 딱지를 뗀 다비드는 새신랑처럼 무섭게 제드를 챙겼다.

식탁에 앉아 있는 제드의 옆에 딱 붙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는 모습은 안드로이드인 버그가 보기에도 몹시 이상했다.

“제드.”

여기서도 나를 봐요. 저기에서도 나를 봐요. 제드. 제드, 하며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제드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밥 좀 먹자.”

감자가 제드의 발밑에 엎드려 그루밍 했다. 다비드는 감자를 발로 쓱 옆으로 밀고는 제드가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부담스러워 제드는 음식이 목에 걸리는 기분에 물을 들이켰다.

“다비드 님의 웅성 호르몬이 평소의 16배 높습니다.”

“풋.”

버그가 중얼거리자 제드는 입에 있던 물을 뿜었다.

“정소에서 분비되는 수치가 너무 높아 성적 충동으로 이어지는….”

“그만.”

무표정한 버그는 제드의 제지에 입을 다물었다. 다비드는 옆에서 얄궂게 웃고만 있었다.

“맞아요. 지금 충동을 참고 있어요.”

허리를 감싼 다비드의 팔이 끈적하게 제드의 옆구리를 쓸었다. 제드는 버그 앞에서 남사스러워 다비드의 팔을 풀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뭘 할까요? 침실로 갈까요?”

눈에 훤히 보이는 그의 의도에 제드는 눈을 흘겼다. 어제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다. 제드는 그의 거대한 거시기가 떠올랐다.

“다음엔 내가 넣을 거다.”

꿈도 야무져. 다비드는 제드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네 건 너무 무식하다.”

“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의사나 기술자는 다비드에게 원래 달려 있어야 할 크기로 달았다고 했다. 다치지 않는 이상 떼고 다시 달기에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기에 제드에게는 참 애석한 일이다.

제드가 아파하던 것이 떠오르자 자신에게 대물 유전자를 남긴 부친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작았어도 좋았으련만. 다비드는 작은 누군가가 들었다면 발작할 배부른 소리를 했다.

그래도 너무 거대하면 불편한 법이다. 바지를 맞출 때도 일상생활이나 운동을 할 때도, 그리고 이번에 깨달은 성관계를 할 때도.

다비드는 값비싼 윤활제를 구비해 두고 제드가 아파하지 않을 현란한 테크닉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포르노를 너무 믿으면 안 되겠다. 크면 좋아하기만 하고, 한 번에 쑤욱 잘 삽입되던데 다 거짓이었다. 제드가 처음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그의 안전을 위해 적당히 걸러야겠다.

“그래서, 침실로 갈까요?”

“안 갈 거다. 넌 안 나가나?”

“네. 오늘은 일 없어요.”

분명 아침에 에든이 애달프게 저택 문을 두드리는 것을 봤는데 능청스럽게 거짓을 말했다.

제드의 다리에 뺨을 비비는 감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비드가 노려보자 버그가 감자를 들고 밖으로 사라졌다. 눈치가 없다가도 빠른 버그였다.

“아니면 13지구 가 볼래요?”

“거긴 폭파되지 않았나.”

“많이 재건했어요.”

다비드는 다시금 떠오른 인정 욕구에 눈을 반짝였다. 타 행성에 가기 전에 할렘가인 10지구부터 13지구를 재건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캐롤이 전멸하고 다비드가 로버를 처치했을 때부터 그 지역은 잔챙이들이 활개를 잠시 쳤었지만, 금방 정리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금쯤 봐줄 만할 정도로 재건되었을 것이다.

“그래.”

제드에게 13지구는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버려진 구역. 인터넷의 사진으로 보았던 할렘가의 사람들. 아이들.

다비드는 제드가 어떤 것을 염려하는지 알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점수 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드와 다비드는 옷을 갈아입고, 플라잉카에 올랐다. 에든은 갑작스럽게 제드와 13지구에 방문한다는 다비드의 연락을 받고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물론 다비드는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오늘은 왜 그 빠른 거로 안 가는 거냐.”

“에든이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해서요.”

“그렇군.”

“그걸로 타고 싶었어요?”

“아니.”

제드는 말도 잘 나오지 않을 만큼 빠른 전투기가 싫었다. 또 토하고 싶지 않았기에 플라잉카에 오르는 것이 좋았다.

다비드는 널찍한 플라잉카에서도 제드의 옆에 붙어 있었다.

“아직 아파요?”

“괜찮다.”

다비드는 어두운 전투복을 입은 제드를 보며 아랫도리가 반응하지 않기를 바랐다. 뇌에 연결된 아랫도리와의 반응 체제를 잠시 꺼두고 싶은 지경이다. 아차 해서 그를 덮치지 않도록.

어제 느껴 본 제드의 안은 최고였고,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한데 제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좋은 몸이 드러나는 전투복을 입고 팔짱을 낀 채 다리를 벌리고 늠름하게 앉아 있었다.

살짝 그을린 피부에 잘 어울리는 검은색 긴 팔 상의는 그의 몸에 피트 되어 육덕진 가슴과 팔뚝을 드러냈다.

전투 바지에 주름이 져 두꺼운 허벅지를 여실히 내보이는 것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치유자가 아닌 공격형 능력자 같은 야만스러움 또한 묻어 있었다.

“옷이 야해요.”

“너랑 다른 것도 없다.”

가슴 부위에 조여진 레이저 건 홀스터는 야릇한 상상을 만들기 충분하다.

제드는 레이저건을 사용할 줄 몰랐다. 13지구가 많이 괜찮아졌다고 해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랐기에 보여 주기식 위협용으로 그에게 잠금장치 걸린 총을 채운 것뿐이었다.

“레이저 건은 건들지 말아요.”

“알았다.”

제드는 확실히 밝은 옷보다 어두운 계열을 옷이 잘 어울렸다. 그의 야성미가 더 도드라졌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렇기에 다비드는 제드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혀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꼴로 지금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주워 입는 흰옷으로 그의 미모를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제드는 다비드와 10지구, 13지구에 방문했을 때 얼마나 행색이 꼬질꼬질해졌는지를 기억하고 어두운 전투복을 별말 없이 받아 입었다.

“스트랩 다시 조정해 줄게요.”

제드가 레이저건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다비드가 다시 한번 그의 홀스터를 만지작대자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스트랩이 조여지자 제드의 가슴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의 금발이 제드의 얼굴을 간지럽히자 건강한 제드의 아랫도리에서 신호가 왔다.

제드는 다비드가 너무 예뻐서 오는 신체 변화에 당황스러웠다. 다리를 꼬고 신체 변화를 감추려 했지만, 눈치 빠른 다비드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도착하려면 3시간은 걸려요.”

슬쩍슬쩍 제드의 가슴을 만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다비드가 홀스터를 정비하는 척 제 가슴을 만지작대는 것도 제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순진한 제드.’

대놓고 가슴을 꽉 잡자 제드가 움찔하고 몸이 튀었다.

“할까요?”

“양심도 없다.”

밖이 훤히 보이는 플라잉카와 다비드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제드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럴 수는 없지. 여기는 재생수라는 것도 없는데. 제드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하긴 위험하다.”

“안 넣으면 되잖아요.”

반면 이성이랄 게 없는 다비드가 그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제드는 그것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전처럼 손으로만 하면 되지 않을까. 사방이 트여 있어도 사람도 없는데. 간단하게 하는 거야.

제드가 반 이상 넘어온 듯 고뇌에 빠지자 다비드가 키득거렸다. 참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예민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쿡쿡거리자 제드는 간지러운 기분에 아래에 피가 쏠렸다.

간질간질한 분위기에 다비드는 벅차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저 일상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제드의 옆에 있는 지금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다비드의 얼굴에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다비드의 일생 동안 상대방에게 속절없이 빠져드는 경험은 유일하였기에 면역력이 없었다.

“제드.”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섹시하다. 제드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성을 잡는 것에서 혼란을 겪고 있을 때, 다비드의 손이 제드의 허벅지로 올라오고 있었다.

-에든

플라잉카 안을 훤히 밝히는 에든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둘은 플라잉카 안에서 끈적하고 뜨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비드는 홀로그램 창에 뜬 에든의 이름을 확인하곤 무시했다.

“저건 뭐냐.”

“음, 곧 죽을 놈 이름이요.”

글을 알지 못하는 제드는 홀로그램으로 반짝거리는 알 수 없는 글자를 신기한 듯 보았다.

“저거 뭔지 안다. 다른 사람과 말하는 기계군.”

“오류예요.”

“받아라.”

제드는 다비드가 앉아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다리를 꼬아 그를 차단했다.

다비드는 로버를 향했던 만큼의 분노가 치미는 것을 애써 눌러 참아야 했다. 홀로그램이 뭐라고 제드의 이성이 저토록 빨리 돌아올까 원망스러웠다.

“안 받아도 돼요.”

제드의 눈에서 한심스러움이 스쳤다. 다비드의 웃음이 짙어지고 목이 뚝뚝 끊겨 돌아가더니 에든이라고 떠 있는 홀로그램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네.”

-다비드 님, 도착하시면 안드로이드가 나와 있을 겁니다.

홀로그램으로 뜬 에든의 모습은 초췌했다. 빡빡 깎은 머리와 두꺼운 목, 거대한 승모근은 여전했지만 까칠해진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아침에 바쁘다며 매몰차게 돌려보내 일 폭탄을 주더니, 그러는 와중에 갑자기 13지구에 방문한다는 다비드에게 에든은 불만이 상당했다.

그러나 홀로그램이 뜨자 섬뜩한 표정을 지은 다비드를 보고는 에든은 불만도 잊고 찔끔했다.

-다, 다수의 폴리스 로봇과 안드로이드를 배치했으니 안전상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위험구역이니 주의는 하셔야 합니다.

“주의하라고요?”

-네.

“문제가 없을 거라고요. 그러다 다치면 그냥 죽고?”

-…죄송합니다.

캐롤이 아니고서야, 다비드가 고의로 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다치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비는 처음이다. 다비드는 예민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초예민한 상태 같았다.

“무능하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혹시 무언가 대단히 죽을죄를 지었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혹시 옆에 제드 님이 계신데 제가 좋은 시간을 방해한 것입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에든은 눈치가 빨랐다.

“아니에요. 위험구역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부하직원 때문에 뒤지죠, 뭐.”

아닌 게 아니다. 표정이 아직도 섬뜩하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에든이 땀을 삐질대고 있는데 제드가 옆에서 무언가 찾고 있었다.

-실무자들도 배치해서 안전에….

“뭐 찾아요?”

“물….”

열심히 갈구던 에든과의 통신을 끊어 버리고 다비드는 제드에게 물을 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말하던 와중에 빠르게 끊긴 홀로그램에 에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예민하고 무서운 상사 때문에 수명이 팍팍 줄고 있었다.

끔찍하게 웃으면서 갈구는 다비드 때문에 목덜미가 축축이 젖었다. 에든은 다비드와 종일 붙어 있는 제드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 * *

다비드는 제드에게 전면형 방진 마스크를 채웠다. 기계 슈트를 입지 않았으니 대기오염이 심한 13지구에서 그냥 호흡하기에는 건강에도 좋지 않았고 냄새도 지독했다.

다비드 또한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했다. 가슴과 허리에 레이저건과 칼을 착용한 다비드는 얼굴을 가리자 금발의 용병 같아 보였다.

마중 나온 기계 슈트를 입은 안드로이드가 둘을 안내했다. 주위로는 폴리스 로봇이 호위를 했다.

13지구에 배치된 안드로이드는 덩치가 컸다. 드러난 얼굴은 험상궂고 흉터가 가득했다. 처음부터 흉터를 만들어 놓은 모델이다.

“전에 지하실에서 개조한 안드로이드예요.”

“그렇군….”

부끄러운 기억에 제드가 말꼬리를 늘리자 귓가로 다비드가 큭큭대는 소리가 들렸다.

많은 것이 바뀐 13지구는 확실히 전보다 나았다. 검은 하늘과 나무 한 그루 없는 거리는 그대로지만 폭발의 흔적은 없었고 황무지 같았다. 쌓여 있던 쓰레기가 없어진 것만 해도 많이 발전한 거였다.

“정말 많이 바뀌었군.”

“그렇죠? 제가 하라고 했어요.”

저 생색내는 말투에 제드는 씩 웃었다. 그래. 다비드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전처럼 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무법지였을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만으로 13지구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분명 좋은 영향이 갔을 것이다.

“대단하다. 정말 좋은 일을 했군.”

다비드는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과 칭찬에 뿌듯해했다. 행성 이주나 로버 처치 같은, 남들이 떠들어 대고 칭송하던 일을 해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다.

얼굴을 모두 가린 마스크 안에서 다비드는 예쁘게 미소 지었다.

“제드 덕이에요.”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니, 정말 제드 덕이에요.”

다비드는 저도 모르게 제드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큰 손이 좋다. 그 모습을 영상 장치로 보던 에든은 상사의 연애 현장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스럽게 중얼거렸다.

몇 달 새에 다비드는 큰 변화를 겪었다. 제드를 몰랐던 시간이 까마득했다. 무슨 재미로 살았더라. 항상 분노에 차 있던 것 같은데, 아주 먼 과거와 같이 느껴졌다.

제드는 마주 잡은 손을 한번 세게 잡아 주고는 안드로이드의 뒤를 따랐다. 제드의 굳건한 뒷모습을 보며 다비드는 콩닥대는 가슴께에 손을 대었다.

‘멋있어.’

“13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살 수 있게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폴리스의 수를 늘렸고 거주지 보수 작업과 보육원을 만들어 로버들에 의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잘 됐군.”

“모든 것은 폴머 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말에 제드는 다비드를 돌아보았다. 항상 까칠하고 남 위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일을 한 그가 멋졌다.

다비드가 모든 일을 본인 때문에 한 것인 줄 모르는 제드는 그가 역시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이 귀하다고 들었는데, 보육원 아이들을 입양하지는 않나?”

“아주 갓난아이일 경우는 입양이 수월하지만 6세 이상이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숫자가 낮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할렘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전자가 열등하다고 생각했기에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6세 이상의 아이들을 입양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폭력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임시로 지어진 보육원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수는 적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물려 입은 듯한 옷을 입었고 눈빛은 죽어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팔이 없거나 큰 흉을 가진 이도 있었다.

“가까이 가진 마십시오.”

“왜지.”

“전염성 높은 병이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와 로봇에 둘러싸인 제드와 다비드를 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제드가 아이들에게 향하자 다비드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제드, 병이 있어요.”

“내가 치유자라는 걸 잊었군.”

제드는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다비드의 손이 쉽게 떨어져 나갔다. 제드는 아이들의 병을 고쳐 줄 심산인 것 같았다.

제드가 아이들에게 병이 옮는다면 다비드는 저택에 있는 값비싼 기계로 제드를 고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다비드는 더럽고 병이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제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큰 덩치의 제드가 아이들 앞에 서자 아이들은 무서워했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자 위압감이 엄청났다.

“반갑군.”

아이들이 무서워하자 제드는 마스크를 벗었다. 벗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 년을 정화해도 13지구를 가득 채운 악취는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곳에 사는구나, 너희들은. 제드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여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해치지 않는다.”

“누구세요?”

맨 앞에 서 있던 아이가 당차게 물었다. 아이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혈색이 나빴다. 아이인데도 다크서클이 심하다.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쭈그려 앉은 제드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다.”

“구경하러 왔어요?”

“너희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제드에게 남의 불행을 구경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난 후 13지구를 벗어난 적 없었기에 악취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제드는 조심스레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경계하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제드는 능력을 개방했다. 금빛 실오라기 같은 것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굽이치자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제드에게 집중했다.

다비드는 제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쥔 것도, 아무에게나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나 거슬렸다.

그 감정과는 별개로 그의 능력이 우중충한 보육원을 찬란하게 밝히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폐병이 있군.’

오염된 곳에서 방치된 아이는 폐와 소화기관, 어떤 것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아이에게 이토록 많은 양의 능력이 스며드는 것도 그 이유였다.

“우아. 어떻게 했어요?”

“아저씨 마녀인가 봐!”

제드가 요술을 사용한다며 감탄하는 아이들은 제드를 보고 마녀, 마녀 거렸다. 치유 당한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제드를 보았다.

“이제 머리가 안 아파!”

아이가 밝게 웃으며 말하자 다른 아이들이 제드에게 달려들었다.

“아저씨 어떻게 한 거예요?”

“저도 해 주세요.”

“아저씨 저도요!”

아이들은 제드의 듬직한 팔에 매달렸다. 다비드는 불쾌했지만, 제드의 보람찬 얼굴에 입을 다물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들이 웃으며 그를 좋아하자 마음이 상했다. 남을 돕는 게 저렇게 좋을까.

“그만 해요.”

네 명의 아이들을 돌아가며 치유해 주던 제드에게 다비드가 말했다. 제드에게 여러 번 치유 받았던 다비드는 그가 지금 얼마나 힘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짐작 갔다.

아직 치유해 주지 못한 몇몇 아이들을 본 제드는 고개를 젓고 무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하층민이 거주하는 13지구의 보육원에서는 끊임없이 제드의 금빛 능력이 일렁였다.

“아저씨 천사예요?”

“나는 치유자다.”

“그게 뭔데요?”

“안 아프게 해 주는 거다.”

“천사다!”

아이들은 경계했던 것도 있고 제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제드가 아이들과 시시덕거리자 다비드가 그에게 다가왔다.

“무리하지 말아요.”

제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안드로이드에게 아이들을 데려가도록 명령했다. 보육원에 배치된 안드로이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이 정도는 쉽다!”

말과는 다르게 제드는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다비드는 제드의 얼굴에 마스크를 다시 씌워 주었다.

“돌아가서 진단받아요. 저 애들한테 폐병이 옮았을 수도 있어요.”

“알겠다.”

제드가 아이들을 치유하는 동안 다비드는 폴리스 로봇과 안드로이드에게 보육원에 필요한 장비와 보수가 필요한 부분을 수리시켰다.

그러고는 제드의 옆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마스크 속에서 질투 어린 눈으로 아이들을 째려보았다.

“저긴 사람 사는 곳인가?”

보육원을 나오던 제드가 건너편에 위치한 판잣집 동네를 보고 다비드에게 물었다.

판자집은 곧 무너질 것 같았고 무척이나 더러웠다. 그 앞에서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보육원 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폴리스 로봇을 대동한 사람이 우르르 보육원에 들어가자 궁금증에 구경 나온 것 같았다.

그는 더러운 누더기를 입고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다. 머리를 감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머리카락이 여러 덩어리로 엉겨 붙어 하얀 먼지가 박혀 있었다.

“맞아요.”

소름 끼칠 정도로 1지구와는 다른 모습이다.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집은 더럽고, 저곳에 살기만 해도 없던 병이 생길 것 같았다.

저들은 어떠한 잘못도 없이 이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옥 같은 곳에서 서른 살도 채우지 못한 채 죽을 것이었다.

제드는 말없이 그곳을 잠시 바라보다 플라잉카에 탑승했다. 돌아가는 플라잉카 안에서 제드는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왜 피곤하게 다른 이를 돕는 거지?’

다비드는 다른 이에게 가는 관심 한 톨마저도 짜증이 났다. 피곤한 얼굴로 잠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더러운 아이들 따위가 뭐라고. 제드가 좋아서 하는 일을 말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제드, 자요?”

플라잉카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어 고개를 젖히고 잠에 든 모습은 그의 이목구비를 살피기 좋은 자세였다. 말을 걸어도 깨지 않자 다비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서 제드를 관찰했다.

볼 위의 작은 점까지 샅샅이 훑던 다비드의 눈빛은 집요했다. 누군가 본다면 진저리칠 정도로 그의 시선은 끈질기게 제드에게 붙어 있었다. 돌아가는 3시간 동안 다비드는 움직임 없이 제드를 바라보았다.

플라잉카가 저택 앞에 멈춰 서자 다비드는 작은 소리로 제드를 깨웠다. 작은 목소리로 깨우는 통에 제드는 깨지 못했다.

“제드, 안 일어나면 내가 안고 갈 거예요.”

개미만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데 깰 사람은 없었다.

다비드는 조심스럽게 제드를 안아 들었다. 묵직하고 거대한 제드를 번쩍, 가볍게 든 다비드가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플라잉카에서 내렸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제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버그와 감자가 마중 나왔다. 둘은 잠든 제드를 안고 있는 다비드를 보고는 조용히 인사했다. 감자도 소리 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다비드는 둘을 무시하고는 바로 지하실로 향했다. 오염 지역에 있던 제드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검사 기계에 제드를 눕히고 다비드는 잠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치료하고 녹초가 된 것이라면 모를까, 다른 이를 치료하고 기절하듯 잠든 그가 못마땅하다. 한일자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잠이 든 제드에게 홀린 듯 다비드는 몰래 키스했다.

* * *

제드는 다음 날 늦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까지 잔 제드는 어제 얼마나 많은 양의 능력을 쓴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분명 플라잉카 안에서 잠들었는데 제드는 다비드의 방에서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잠을 쫓는 제드의 곁에는 다비드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잘 잤어요?”

“그래. 내가 오래 잤나 보군.”

“너무 잘 자서 못 깨웠어요.”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다비드는 말없이 웃었다. 한쪽 팔을 올려 베개 밑에 손을 끼우고 잠든 제드의 얼굴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제드는 상체를 일으키고 기지개를 켰다. 푹 잔 몸은 개운하면서도 찌뿌둥했다.

다비드가 어젯밤 진단하고, 혹시 모를 전염병 치료까지 완벽하게 끝낸 덕에 개운했고, 잠든 제드를 다비드가 인형처럼 안고 잔 탓에 찌뿌둥한 것이었다.

“어제 잠결에 나랑 같이 잔다고 한 것 기억 안 나요?”

“그럴 리가.”

일어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다비드를 흘겨보던 제드의 눈에 그의 손이 들어왔다.

“손이 왜 이러지?”

“아, 다쳤어요. 그래서 깨우려고 한 건데….”

다비드의 손바닥에 굵은 칼집이 나 있었다. 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제드는 일어나자마자 다비드의 손을 잡고 치유했다. 다비드는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따스한 기운에 심취했다.

“어제 제드가 무리한 것 같아서, 아침 준비하다가 칼을 잘못 다뤘어요.”

아침 식사를 왜 다비드가 준비한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제드는 다비드가 칼을 잘 다루는 것을 몰랐던 탓에 별 의심 없이 그의 손을 치유했다.

“버그 시켜라. 다치지 말고.”

“네.”

다비드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제드의 능력을 독점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제드를 데리고 식당으로 내려온 다비드를 버그는 이상한 눈으로 봤다.

아침부터 주방에 내려온 다비드는 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긋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정신 나간 행동은 안드로이드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도 나가나?”

“아니요. 안 나가요.”

오늘도 에든만 고생할 것 같았다. 제드는 속으로 그에게 유감을 표했다.

“그럼 지하실 구경을 하고 싶다.”

“좋아요.”

제드는 오늘도 멘가를 만나기는 그른 것 같아 그가 말했던 기계를 찾을 예정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니 다비드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멘가에 대해 다비드에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다비드를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멘가의 목숨이 달렸는데 섣불리 말할 수도 없었다.

다비드가 당장 밖으로 나가 저택 근처에 있을 멘가를 찾아내 죽인다면 제드는 막을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제드는 발밑의 감자를 매만졌다. 감자는 제드가 없을 때 버그와 함께 지냈다.

둘 다 제드나 다비드가 없으면 명령이 있을 때까지 한곳에 머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둘이 함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감자는 왜 자꾸 발로 미는 거냐.”

다비드의 발에 밀려난 감자가 멍청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제 손으로 사 준 로봇을 경계하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지하엔 기계랑 훈련장만 있어서 재미없을지도 몰라요.”

“괜찮다.”

“전에 같이 했던 것, 또 해도 되고요.”

전이라면 둘이 처음 아래를 맞댄 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솔깃한 제안이다.

‘아니, 기계가 먼저다.’

멘가가 말한 기계부터 찾자, 라며 제드는 다비드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허공을 노려보았다.

* * *

“이건 전신형 슈트고 옛날 모델이라 생각보다 무거워요.”

무겁다는 말과는 다르게 다비드는 전신 슈트를 가볍게 들어 올려 앞뒤를 보여 주었다.

“슈트가 많군.”

다비드는 캐롤을 처리하기 위해 기계 슈트를 모으다시피 했다. 슈트 하나의 가격은 웬만한 사람이 평생 벌어도 살 수 없을 만큼 값비쌌다.

다비드는 제드의 물음에 귀찮은 기색 없이 설명했다. 제드는 평소 관심도 없던 기계들의 설명을 들으며 다비드가 얼마나 많은 기계를 보유하고 있는지와 어려운 것들을 사용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재가공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치유 기계는 제드도 직접 사용해 봤죠?”

“그렇지. 이건 뭐냐.”

“핵융합 장치예요.”

어려운 단어에 제드의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이것 중에서 멘가가 말한 장치를 찾을 수 있을까.

“왜 여기 그런 것까지 있지.”

“이 저택엔 오래된 기계도 많아요. 부모님이 모았던 기계 중에 국보급도 있어서 아무 곳에나 보관할 수가 없어요.”

“그렇군.”

“다 쓰레기지만, 어쩔 수 없죠.”

다비드가 애물단지 취급하는 기계 장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다비드는 넓은 훈련장의 한쪽에 있는 기계 슈트를 설명해 주고 방으로 향했다.

“여긴….”

이곳은 다비드가 캐롤의 청년을 데려다 고문했던 곳이었다.

“나랑 여기 들어가는 게 무서워요?”

“안 무섭다.”

다비드가 악당처럼 웃었다. 가늘어진 눈이 제드를 탐색하듯 훑었다. 함께 할 짓 못 할 짓 다 했는데 무엇이 무서울까.

안으로 들어서자 범상치 않은 기계들로 가득했다. 전투기나 플라잉카, 캐롤의 전투기 안에서 보았던 여느 풍경과도 달랐다.

그저 작은 방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다비드의 방만큼 넓었다. 연구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새하얀 내부는 화이트 조명이 켜져 있어 지독하게 밝았다. 여러 개의 테이블은 대형 컴퓨터와 홀로그램 장치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거대한 기계와 물건이 유리관에 진공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엄청 많군.”

“다 쓰레기예요.”

부모님과 조부모가 모은 어마어마한 가치의 기계와 물건들은 다비드의 말에 어김없이 쓰레기가 되었다. 다비드에게 그것들이 하등 쓸모가 없었다.

제드는 멘가가 말한 기계를 찾으려고 해도 수많은 기계 중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글을 배워 둘 걸 그랬나, 하고 처음으로 후회가 들었다.

제드가 내부를 열심히 둘러보자 다비드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드가 원하면 여기서 놀아도 돼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기계 장치가 가득한 곳을 놀이방처럼 말했다.

“이제 제드가 이 저택에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은 없어요. 밖에만 나가지 말아요.”

다비드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공간에 제드를 온전히 들이는 기분이다. 저택을 더 크게 증축시켜 그가 스스로 나가지 않게끔 만들고 싶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를 들여다보는 제드가 귀여웠다. 봐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건들면 위험하니까 구경만 해요.”

“알겠다.”

다비드의 나쁜 손이 제드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삼각근을 문지르는 대담한 손길에 제드가 몸을 물렸다. 제드가 거리를 벌린 만큼 다비드는 더 붙어 왔다.

“싫어요?”

다비드는 적극적이다. 그는 제드가 치유해 준 후부터, 그와 관계한 이후로 한 꺼풀 벗긴 것마냥 속절없이 제드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싫지 않다.”

오히려 좋다. 제드 또한 빼는 성격이 아니었다. 너무 치대는 다비드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제드 또한 다비드와 살을 맞대고 있는 것이 좋았다.

반짝반짝한 푸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면 바보같이 눈을 떼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제드를 만나고 나는 많이 달라졌어요.”

제드를 만나기 전의 삶은 그저 피폐했다. 사는 이유와 즐거움은 딱히 없었다. 복수를 위해, 화풀이를 위해 사는 인생이었다.

짜증과 예민, 분노에 휩싸인 삶이 즐거울 리 없었고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타인은 믿을 수 없었고 우스울 뿐이었다.

그러나 제드를 만나서 구원받고, 그가 소중해지는 순간 다비드가 가지고 있던 애정에 대한 조롱 섞인 회의적인 생각을 부쉈다. 로버를 죽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삶은 이제 상상도 하기 싫다.

“제드는 나한테 특별해요.”

로맨스 작품에 나오는 흔하디흔한 말이 다비드의 빛나는 외모에서 나오자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가 되었다.

다비드가 한껏 분위기를 잡자 제드는 낯간지러웠다. 우물거리며 예쁜 말을 하는 입이 눈에 들어오자 제드는 기계 장치 위에 손을 딛고 다비드에게 입 맞추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다.

입이 맞닿기 직전 제드의 손에 눌린 기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작동되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지. 당황스럽군.”

“버튼에서 손 떼요.”

국보급이지만 사실상 몇백 년이 넘는 고물과 다름없는 기계는 말썽을 부렸다.

억울하게 생긴 세계 최초의 AI 기계는 눈을 끔뻑거리며 기괴한 몸짓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뗐는데 계속 움직인다!”

복부에 기계 장치를 내보인 하얀 대머리 로봇은 과거 인간의 미숙한 기술로 만든 탓에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을 닮아 얼굴은 원숭이 같았고 눈동자가 너무 작아 사백안이었다.

괴상하고 섬찟한 외모를 하고 두 발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광견병 걸린 오랑우탄 같았다.

“으아아! 이리로 온다! 말려라!”

“이 씨….”

다비드가 욕설을 중얼거렸다. 제드는 귀신처럼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로봇 때문에 경기를 일으켰다.

다비드는 가까이 다가온 징그럽게 생긴 국보급의 로봇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과거 세계 최초로 발명된 AI 로봇, 맨봇은 다비드의 손에서 박살 났다. 곧 경보장치가 울렸다. 다비드의 표정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보안 로봇들이 떼거리로 내려왔다.

다비드가 로봇을 저지하자 곧 폴리스와 에든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폴리스가 출발했다는 경고 창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벽면에 홀로그램으로 떴다.

버튼 하나 잘못 누른 것으로 난리통이 난 지하실을 잠자코 지켜보던 제드는 소란을 듣고 아래로 내려온 감자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위로 올라갔다.

“어디 가요? 하던 건 마저 해야죠.”

다비드는 포근한 분위기를 다시 찾으려 애썼다. 웃는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맨봇이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 내 꿈지럭대자 다비드가 가차 없이 로봇의 머리를 밟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제드를 바라보며 이리 오라는 듯 살살 웃는 다비드를 보고는 제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수습이나 해라.”

제드는 그 말을 남기고 여지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다비드는 실망감과 짜증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로봇을 발로 찼다.

* * *

다음 날, 다비드가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제드는 저택의 철 담 아래를 어슬렁거렸다. 제드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멘가가 그를 금방 발견했다.

“나만 안달이야?”

약속 시간에 늦은 오래된 연인처럼 멘가가 잔뜩 예민하게 굴었다.

“미안하다. 집에 다비드가 계속 있었다.”

“찾았어?”

“아니, 기계가 너무 많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그는 안달이 났다. 1지구에 숨어 있는 내내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있다.

거리를 떠돌며 보안이 취약한 빈집이나 오피스 건물에 몰래 들어가 지내고 있었다. 아직까지 들키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같은 곳에서 온 제드라는 사내는 얼굴이 뻔질할 만큼 잘 지내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해 질투를 느끼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갖은 고생으로 마음마저 못나진 자신에게 혐오감까지 들었다.

“전에 알려 준 기계 글자는 없나?”

“안 그래도 가져왔어.”

멘가가 땅에 종이를 두고 일정 거리에서 벗어나자 바닥에 그가 놓아 둔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화는 볼수록 놀라운 기술이었다.

제드는 보안이 철저한 철 담 건너편에서 종이를 건네받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문자를 외웠다.

“난, 난 너만 믿고 있어.”

멘가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것인지 제드에게 애원조로 말했다. 그는 13지구로 돌아갈 수 없고, 목숨을 걸고 1지구의 다비드의 저택 앞을 서성이는 것이었기에 제드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제드가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 태평해 보여서 부아가 치밀었다. 멘가는 제드 또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알겠다. 내가 꼭 알아보마.”

“근데 저 새낀 왜 집에 붙어 있는 거야?”

멘가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얼마 전에 둘이 나가던데, 니네 사이 좋아 보이더라.”

멘가는 다비드가 제드를 안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멘가의 눈에 제드를 애지중지하며 들고 가는 다비드의 모습은 낯설면서 가증스러웠다.

제드는 잠들어서 다비드가 직접 자신을 옮긴 것을 몰랐다.

다비드가 제드를 번쩍 들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를 빈정대던 멘가는 제드의 ‘그랬군.’ 하는 태도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드와 멘가가 온 세계는 동성애를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더럽게 남자끼리 붙어먹은 거야?”

멘가는 역겹다는 듯 물었다. 그 조롱 섞인 질문에 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제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멘가는 배신당한 사람 같은 표정이 되었다.

“개새끼처럼 남자랑 그것도 그 미친놈이랑 붙어먹어?”

“네가 왜 화내는지 모르겠군.”

멘가는 생판 남이다. 물론 멘가 덕에 제드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제드가 다비드와 붙어먹었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기에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 너에게 그런 말을 들어 줄 이유도 없다.”

이세계의 전형적인 틀에 갇힌 멘가는 더럽다며 욕이 나가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제드에게 멘가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어떤 표정일지 상상이 되었다.

제드는 문득 멘가에게 다비드와 진짜로 붙어먹은 사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기계나 빨리 찾아. 더 이상 이 빌어먹을 곳에서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으니까.”

마뜩잖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하는 멘가의 말에 제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같은 곳에서 왔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아주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 * *

다비드가 두 번째 타 행성 순찰에 제드를 넣은 후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제드는 올곧다. 이곳 사람들과 아이들을 인질로 구슬린다면 어이없어하면서도 금세 우주로 함께 나갈 것이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불쌍한 척 그가 필요하다고 어필하면 된다. 거부한다면 잠들었을 때 몰래 데리고 가면 되고.

다비드가 히죽대며 웃자 옆에 있던 에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저렇게 무섭게 웃으시는 걸까.

“일정은 언제 잡는 것이 좋으십니까?”

“2주 후요.”

제드와 일상을 보내다 회유해서 2주 후에 몇 년간 우주에 나가 있는 거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행성 우주 프로젝트를 신혼여행쯤으로 생각하는 다비드는 싱글거렸다.

에든은 그가 처음 타 행성에 갔을 때 얼마나 대충했는지 그가 가져온 자료를 보고 알았다. 전문가들은 다비드에게 쓴소리 하나 하지 못했다.

막대한 비용과 엄청난 기대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물에 침음을 삼켰다. 세 번째로 가기로 했던 행성은 발을 딛지도 않았다.

성의 없이 찍어 온 행성의 표면을 보고 전문가들은 다비드가 어떠한 위험이나 목적 때문에 그런 것이라 믿기로 했다.

그의 까칠함을 아는 그들은 특출난 머리로 얼토당토않은 합리화를 시도했다.

‘제드 님과 동행하시려고 일부러 일정을 길게 잡으신 거겠지.’

기이할 정도로 늘어난 일정은 제드가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귀신같은 눈치를 가진 에든의 추측은 맞았다.

모공 하나 없는 조각상 같은 얼굴로 흐뭇한 웃음을 뿌려 대는 것이 퍽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우주선에 식량이랑 운동기구 같은 것도 잘 준비해 뒀겠죠?”

“네. 성인 남성 4명이 5년은 먹어도 충분한 식량입니다. 운동기구나 구급 캡슐, 심신 안정 장치까지 있습니다.”

모두 제드를 위한 장치였다. 다비드는 타 행성 탐방이 아닌 무슨 신혼집에 가구 넣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침대는 킹사이즈로요.”

“…구해 놓겠습니다.”

우주선에 침대를 놓다니. 그것도 킹사이즈로. 기본적으로 우주선 안은 무중력 상태라 침낭에 벨트를 착용하고 수면하도록 설계되었다.

침대에 누워 잔다는 것은 값비싸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한 중력 시스템을 가동한다는 말이었다.

‘우주선에서 도대체 뭘 하시려는 겁니까.’

에든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다비드는 둘의 몸집이 크니 킹사이즈로, 더 크면 붙어 잘 수 없으니 킹이 딱 좋겠다 싶었다. 혹시 킹사이즈 침대를 두 개 준비할까 봐 에든에게 일렀다.

“침대는 하나만 준비해요.”

“하나 말씀입니까. 알겠습니다.”

졸지에 우주선에 침대까지 추가하게 된 에든은 실무자들이 이것을 보고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 * *

다비드는 며칠 동안 제드와 붙어 있었다. 함께 엉터리 수영도 하고, 농구를 빙자한 스킨십을 하고 감자와 놀기도 하며 지루할 틈 없었다.

제드와 노는 다비드는 천진해 보였다. 제드 또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며칠 동안 멘가와 만날 수 없었다. 다비드 때문에 밖에 나갈 시간이 적기도 했지만, 제드가 틈틈이 철 담 아래를 거닐어도 멘가와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나오지 않은 것인지 그와 말을 나눌 수 없었다.

“제드.”

다비드는 돌아본 제드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꺄르륵 웃는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유치하군.”

제드의 부루퉁한 얼굴을 보던 다비드가 실실거렸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할까. 발밑에 있던 감자가 그루밍 하며 빵 터진 다비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다비드와는 몇 번 더 관계를 가졌다. 할 때마다 제드는 재생수에 몸을 담가야 했다.

제드는 자신이 치유 능력이 있으니 나만 믿으라며 다비드의 엉덩이를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아파하는 제드를 옆에서 위로하는 다비드가 얄미웠다.

‘엉덩이에 구멍이 난 것 같다.’

제드가 앓는 소리를 내도 다비드는 웃으며 엉덩이에는 누구나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말이나 해 댔다.

다비드와 관계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그는 끈질겨졌다. 제드가 느끼는 부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는 더 이상 나올 정액이 없을 때까지 쥐어짜 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소 깔끔 떠는 다비드는 잠자리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제드의 몸을 핥고 빨았다. 그는 제드의 몸에서 나오는 체액을 마시며 좋아했다.

‘얼굴에 싸 줘요.’

어디서 배워 왔는지 다비드는 변태적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들을 거리낌 없이 하곤 했다. 제드는 다비드의 아름다운 얼굴에 사정하며 기이한 배덕감을 느꼈다.

그런 다비드가 싫지는 않았지만 체력이 상당하니 조금 무서울 때도 있었다.

다비드와 지하실을 보며 멘가가 말한 기계도 찾았다. 작은 우주선처럼 생긴 기계는 생각보다 낡은 모습이었다.

기계를 찾았는데도 멘가와 만날 수 없으니 말을 전할 수도 없었다. 멘가를 돌려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 봐야 했다.

다비드는 함께 우주로 나가자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회유하고 다음에는 협박하더니 이제는 거의 매달리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해야 같이 가 줄 건데요?”

다비드는 제드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추었다. 그의 신체 접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부끄러움은 몰랐다.

제드 또한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다비드는 제드가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제드도 멘가를 돌려보내고 다비드와 우주로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돌아가도 다비드가 떠오르고, 너무 빠르게 돌아간 것에 대한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나갔다 올게요.”

“그래라.”

“같이 갈래요?”

저택에 있기 답답했던 제드는 그러겠다고 말하려다가 멘가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다비드가 제드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빨리 갔다 올게요.”

나간다면서 옆에서 뭉그적거리는 것이 한 시간 후에나 진짜로 나갈 것 같았다. 발밑에 있던 감자가 제드의 종아리를 주둥이로 쿡쿡 찌르자 제드가 북슬북슬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사롭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성격 더러운 미인이 어깨에 기대 있고, 손으로 동물 로봇을 만지고 있었다. 불과 일 년 전의 제드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다비드는 정말 한 시간이나 제드의 곁에서 부비고 뭉그적대다가 에든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저택 문을 두드리자 똥 씹은 표정으로 밖을 나갔다.

에든은 다비드가 플라잉카에 타자마자 밀린 업무를 보고했다. 상사는 점점 코빼기도 보기 힘들어졌다.

둘은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것인지 잠깐 저택에 갈 때도 붙어 있었고 다비드는 나와서도 집에 들어가고 싶어 신경질을 부려 댔다.

‘그래. 빨리 둘 다 우주 밖으로 나가 버려.’

라고 저주하듯 속으로 중얼거리며 에든이 말을 이었다.

“제드 님도 출발 전에 우주복 피팅과 중력가속도 훈련을 받으셔야 합니다. 일정은 언제로 잡을까요?”

“일정은 안 잡아도 돼요.”

우주로 나가자는 제안에 제드의 답을 확실히 받지는 못했다. 어차피 다비드는 제드가 어떤 답을 해도 그를 우주로 데려갈 것이었다.

제드를 잠재워 캡슐에 넣고 우주 밖으로 나간 후에 깨울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제드를 재워서 데려갈 거에요.”

에든은 혹시나 다비드가 그를 억지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었고, 그 추측은 대부분 맞았다.

숨을 삼킨 에든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상사에게 걸린 제드가 불쌍했다.

적어도 몇 년은 우주 밖에 나가 있을 텐데 그의 의사를 존중해 주지 않는 그의 상사가 얼마나 나쁜지 다시 상기했다.

적어도 제드에게는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저 더러운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꼭 센터까지 가야 해요?”

다비드는 제드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한 에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갑작스럽게 웃으며 그를 갈구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 년은 내가 없을 텐데. 이런 사소한 것까지 봐 달라고 부르면 어쩌자는 거죠?”

앞으로 몇 년 동안 다비드가 자리를 비우기에 할 일이 많은 것이었다.

행성 이주 프로젝트부터 폴머 가문의 일과 각종 항공 우주 기관 투자 등등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러 다비드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가 우주로 나가도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만반의 준비는 필요했다.

다비드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 애꿎은 에든에게 신경질 부리자 에든은 억울하면서도 그가 무서웠다.

“2차 행성 탐방에 나가셔도 연락은 꼭 받으셔야 합니다. 정말 급할 때만 연락드릴 테니 무시하지 말아 주십시오.”

“누가 우주 나가 있는 사람한테 매너 없이 연락해요? 난 제드랑 바쁠 예정인데.”

‘신혼여행 아니란 말입니다!’

에든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요즘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나는 다비드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는 것 같았다.

* * *

“남아 있던 쥐새끼가 있었나 봐요.”

다비드는 찌그러진 플라잉카를 밟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폴리스 로봇이 사방에서 경고음을 켜고 경계 태세로 몰려오고 있었다.

에든은 찌그러진 문을 힘겹게 열고 콜록대며 밖으로 나왔다. 에든의 정장은 온통 구겨지고 군데군데 찢어졌다. 찢어진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 셔츠 깃을 빨갛게 물들였다.

“괜찮으십니까?”

“어째서 캐롤이 살아 있는 거죠?”

피 흘리는 에든과는 다르게 다비드는 정장이 조금 구겨졌을 뿐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미간을 구기고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레이더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불길이 튀어 플라잉카를 공격했다. 분명 투명화를 쓴 캐롤의 짓이다.

에든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법도 하지만 다비드는 그가 안중에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알아보겠습니다.”

“누가 공격한 건지도 알아봐요.”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신원미상자 같습니다.”

다비드와 에든은 일을 마치고 저택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플라잉카 안에서도 에든은 끊임없이 일했고, 다비드에게 결재해 달라고 애걸복걸 중이었다.

다비드도 일을 하기는 했지만, 머릿속에는 제드 생각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플라잉카에서 경고음이 뜨더니 기체 안의 모든 안전장치가 가동되었다. 곧 큰 화염 같은 것이 플라잉카를 덮쳐 사방에서 에어백이 터지고, 빠르게 추락했다.

1지구에서는 플라잉카 사고가 없었다. 추락한 플라잉카는 인적 없는 공원으로 떨어졌고, 다행히 누군가 죽지는 않았다. 에든만 피를 흘렸지만, 폭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신원미상자. 하하.”

다비드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저 얼굴로 입을 찢으며 웃는 것이 얼마나 악귀 같은지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캐롤의 투명화를 사용하고, 무기보다는 화염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신원미상자라고 생각됩니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날 제드 님을 구해 주시고 발견되지 않았기에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날 신원미상자는 제드를 구했다고 했다. 다비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드. 그를 다시 보면 좋아하겠지. 기분 나빠. 제드가 알기 전에 찾아내서 죽여야겠다.

1지구에서 겁도 없이 다비드를 공격한 것을 보아 그에게 원한이 대단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13지구에서 1지구까지 들키지 않고 이동한 것을 보아 머리가 좋은 자일 것이다.

“슈트만 있었어도 잡을 수 있는 건데.”

다시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을 보아 주변에 남아 엿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슈트만 있었어도 불덩이가 날아온 지점에 미사일을 쏘아 댔을 것이다.

그 말에 에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다비드라면 1지구 도심인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무기를 휘두를 것 같았다.

“수색대는 배치했습니다.”

왜 공격했을까 생각하다 다비드의 표정이 굳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변에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플라잉카 호출하면 얼마나 걸리죠?”

“다시 저격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냐고요.”

다비드의 눈이 매서워지자 에든이 호출기를 확인했다.

“4분 정도 걸립니다.”

“불러요.”

피가 흐르는 곳을 손바닥을 누르고 에든은 플라잉카를 호출했다. 그는 다비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 * *

다비드를 공격한 멘가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자신이 이곳에 떨어져 고생하며 쌓였던 억울함과 분함은 근래 모두 다비드에게로 전가되었다.

다비드의 저택 안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기계를 찾아 준다던 제드의 얼굴은 뺀질해 보였고, 다비드와는 더러운 사이 같았다.

둘이 한통속이 아닐까. 멘가는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제드를 처음 보고는 눈물겹게 반가웠다. 그가 다비드의 저택에 머무는 것을 알고는 웜홀 기계를 쉽게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1지구로 왔다. 그러나 저택을 서성이며 언뜻 보이는 다비드와 제드의 사이는 이상했다.

‘더럽게 남자 새끼들끼리.’

멘가의 분노는 다비드, 그리고 제드에게로 향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진 목이 빠져라 제드를 기다렸지만, 그는 요새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았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비드 때문에 제드가 멘가를 찾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의 오해는 깊어졌다.

멘가는 며칠 전부터 다비드의 비서로 보이는 근육 괴물의 뒤를 밟아 동선을 파악했다. 다비드가 플라잉카를 타고 하늘을 나는 순간을 기다리다 마침내 공격했다.

이렇게 버려져서 죽을 바에는 먼저 선수를 치자. 다비드의 발을 묶어 놓고 저택 안으로 쳐들어가 기계를 가동해야겠다고 막무가내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멘가의 충혈된 눈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다비드에게 어떠한 무기도 있지 않았기에 순순히 1지구 도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새끼한테 총 한 자루라도 있었으면 난 뒤졌겠지.’

캐롤을 박살 냈던 다비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얼굴로 악마같이 인간을 도륙하는 살인마. 멘가는 그가 두렵고 미웠다.

낡고 허름한 슈트가 망가질 정도로 출력장치를 가동해 다비드의 저택까지 달려왔다. 곧 다비드가 뒤쫓아와 목을 잘라 버리거나 예의 그 소름 돋는 웃음을 지으며 고문할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쾅!

저택 문에 불덩이를 만들어 날렸다. 역시나 그의 저택은 미사일도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다.

경고음이 울리고 보안이 더욱 강화되자 멘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 투명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간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거리에 있던 폴리스 로봇이 이곳을 향해 오자 멘가가 그들을 공격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자 로봇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공격당했다.

“씨발! 문 열어!”

두드리고, 문에 능력을 쏘아 대도 문이 꿈쩍도 하지 않자 멘가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그 속 편하게 사는 제드 놈이라도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으면 했다.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지르며 저택 문을 쾅쾅 쳤다. 손에서 피가 튀고, 저택 문에서 나오는 고압전기로 탄내가 진동했지만 멘가는 그만둘 수 없었다. 곧 다비드가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다.

그때 대문 안에서 제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소란이지.”

“문 열어! 어서 문 열라고!”

문 안에서 로봇과 안드로이드가 제드를 막았다. 버그 또한 소란과 폭발이 일어나는 문에서 제드를 떨어뜨리려 노력했다.

“위험합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세요. 곧 보안 업체에서 올 겁니다.”

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면 멘가는 죽겠지. 무슨 소란인지는 모르겠지만, 멘가를 저대로 둔다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버그의 만류에도 제드는 저택의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기 위해 생체인식을 했다. 그러나 제드는 저택에서 단 하나 열지 못하는 문이 있었다. 다비드가 허락하지 않은 대문이었다.

“왜 안 열리는 거지?”

“들어가십시오.”

제드는 겁도 없이 전류가 흐르는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버그가 말리기도 전에 제드의 손에서 연기가 나오며 탄내가 났다.

제드가 손을 떼려 했지만, 감전의 영향으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자 버그가 그를 떼어 놓으려 했다. 감전 상태의 사람은 돌덩이 같았다.

버그 또한 몸에 전류가 흐르자 기계 부품에 결함이 생기며 몸을 버벅거렸다. 제드를 만졌던 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하는 수 없이 버그는 제드의 안전을 위해 대문 안에 설치된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문이 열리자 저택 안으로 멘가가 불쑥 튀어 들어왔다. 투명화한 자신을 보지 못하자 제드를 잡고 소리쳤다.

“다비드 놈의 연구실로 날 안내해!”

“네가 말한 기계라면 벌써 찾았다.”

제드는 찌릿찌릿한 몸을 문질렀다.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멘가의 입에서 욕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의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상처투성이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멘가는 중얼거렸다.

“돌아갈 거야. 돌아갈 수 있어. 여기서 뒤질 순 없다고.”

저택에서는 끊임없이 경고음이 울렸고, 저택 안 로봇들은 대문이 열리자 뱅글뱅글 돌았다. 버그도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저택이 공격당하자 다비드와 에든에게 호출이 갔을 것이었지만, 버그는 제드가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한다며 몸에 내장된 기능으로 다비드에게 알렸다.

저택에 거의 도착한 폴리스 소리와 경고음, 저택 문에서 스파크가 튀기는 난리 통에 제드는 그를 데리고 지하실로 빠르게 향할 수 있었다.

“곧 다비드가 올 거다.”

“알아. 내가 그 자식 발을 묶어 놨다고.”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걱정돼? 호모 자식아?!”

멘가의 목소리가 커졌다. 제드를 팔을 잡은 손아귀 힘이 억세졌다.

“네 불행을 명분 삼아 나를 분풀이 상대로 욕보이지 말아라.”

“닥쳐! 그 살인귀 놈이랑 눈 맞아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

“난 널 도와주고 있다. 이 문은 나와 다비드 외에는 열지 못해.”

제드가 지하실 문을 열며 말했다.

“말은, 씨발.”

멘가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지금 몹시 흥분했다는 것은 자신도 알았다. 지금 제드가 도와주지 않으면 다비드에게 잡혀 끔찍하게 죽는 결과만 남을 것이다.

그때 멘가의 투명화가 풀렸다. 제드는 드러난 그의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더 참혹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말라 있었고, 드러난 얼굴과 팔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머리와 수염은 더벅했고 황달 낀 눈은 붉게 충혈되어 물고기 같았다.

“안내해 줘. 돌아갈 거야.”

그 모습에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곳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불안하게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욕을 해대는 게 그의 심신 상태가 얼마나 불안한지 진단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멘가가 말했던 기계 앞으로 가자 멘가가 주위를 돌며 기계를 확인했다.

“이게 맞나?”

“맞아!”

멘가가 기계를 껴안고 기쁘게 말했다. 이 기계가 맞다고. 돌아갈 수 있다고.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멘가는 울었다.

그가 기계를 연결하고 작동 버튼을 누르자 긴장되어 죽을 것 같다고 비명과 같은 환호를 질렀다.

“작동되지 않으면 어쩌지? 되겠지? 제발. 제발.”

오래된 기계는 잠시 버벅대더니 곧 화면을 띄웠다. 작은 우주선처럼 생긴 기계에 하얀 화면이 뜨자 멘가가 명령어를 쳤다. 그는 글을 몰랐지만 돌아가기 위해 수식은 죽기 살기로 외웠다.

“바다나 몬스터 소굴에만 떨어지지 않길 바라라고!”

멘가가 제드에게 소리쳤다. 제드는 그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난 돌아가지 않는다.”

“뭐?”

“너만 돌아가라.”

제드의 말에 멘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대로 하라지. 곧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그는 제드를 제대로 쳐다도 보지 않았다.

기계에는 점점 큰 검은 홀이 생기며 크기를 키웠다. 제드와 멘가가 빠진 그 구멍과 같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안정적인 크기만큼 키워야 돼. 제드, 이 버튼 누르고 있어 봐.”

“잘 아는 사이예요? 친한가 봐요?”

어느새 지하로 들어온 다비드가 이상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가 있었고 어깨에 걸친 기관총이 흉흉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멘가가 불덩이를 다비드에게 쏘았다.

“공격하지 마라!”

젠장. 내가 공격형 능력자였으면. 전투 중에 항상 떠오르는 생각에 제드가 이를 악물었다. 다비드는 불덩이를 가볍게 피하고 멘가에게 총을 발사했다.

방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가치의 기계들에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자 기계와 방에 안전장치가 가동되었다.

다비드는 흉흉한 눈으로 멘가를 죽일 듯이 굴었다. 그가 불을 쏘아 대든 말든 그를 잡기 위해 화상을 입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멘가 또한 다비드가 쏜 총알로 인해 배에서 피를 뿜고 있었다.

다비드의 손에 잡히면 멘가는 죽는다. 제드가 다비드의 앞을 막았다.

“비켜요. 캐롤이에요.”

“멘가는 돌아갈 거다. 그냥 보내 줘라.”

“이름도 알아요? 둘이 어떻게 알아요? 그동안 몰래 연락이라도 했어요?

다비드의 눈이 제드를 찢어 죽일 듯 빛났다. 배신감에 가득 찬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상처 입은 것 같은 표정에 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어요? 제드? 응? 저 개새끼가 뭐라고 그랬어요?”

“아니다. 안 돌아갈 거다.”

“죽여 버릴 거야. 하하.”

다비드가 들고 있던 총을 멘가의 머리로 던졌다. 피가 흐르는 복부를 지혈하던 멘가는 머리를 맞자 억하며 쓰러졌다.

피떡이 된 멘가가 쓰러지자 제드가 다가가 그에게 능력을 썼다. 금빛이 일렁이자 다비드의 눈이 돌았다.

“지금 누굴 치유하는 거예요. 제드.”

제드는 다비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멘가가 피를 흘리지 않도록 힘을 부었다. 기계는 우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블랙홀을 넓게 확장하고 있었다.

“제드는 아픈 사람이 좋아요?”

다비드가 일그러진 얼굴로 미친놈처럼 웃으며 둘에게 다가왔다. 당장 제드에게 치유받고 있는 저 녀석을 찢어 죽여야겠다.

제드는 팔다리만 기계로 대체해도 될 것이다. 다비드가 그의 멱살을 잡자 제드가 다비드를 덮쳐 안았다.

“그만. 내가 남아서 널 평생 치유해 줄 테니. 그만해라.”

제드의 말에 다비드가 그의 눈을 봤다. 진실한 눈이었다. 남는다고? 내 옆에서 평생? 바닥에 처박혔던 기분이 아주 조금 괜찮아졌다.

다비드의 몸을 듬직한 품 안으로 넣은 제드가 그의 눈을 직시했다. 섬뜩하게 자신을 파고드는 다비드의 눈을 맞추며 제드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제드가 다비드를 말릴 때 멘가는 기계로 기어가 가동범위를 확장했다.

‘저 신원미상자는 뭔가 알고 있어.’

기계를 다루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행성을 알고 좌표를 찍어 블랙홀을 만드는 것부터가 그가 범상치 않다는 증거였다. 저 기계가 저택에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안 것일까.

다비드는 제드를 꽉 끌어안은 채로 그를 노려봤다. 제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검은 홀은 크기를 점점 키웠고, 저곳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제드를 빼앗길 것이 뻔했다.

다비드는 어릴 적 납치되었을 때보다 더한 불안감과 공포를 느꼈다. 제드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걱정하지 말고 진정해라.”

“제드, 아니죠.”

“안 갈 거다.”

시끄러운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워도 얼굴은 맞댄 둘에게는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따뜻하고 너른 품에 매달리다시피 한 다비드가 제드는 애처로웠다.

인위적으로 만든 블랙홀은 너무 새까매서 잡아먹힐 것 같았다.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다.

우웅거리는 낮은 소리가 섬뜩하게 사방을 메우자 주변 물건들이 그곳으로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멘가는 그 구멍을 홀린 듯 보다가 제드에게 소리쳤다.

“내가 가면! 이 버튼을 눌러서 홀을 닫아!”

제드가 그를 놓고 멘가가 있는 곳에 다가가려 하자 그를 꽉 잡았다.

“가지 말아요.”

“멘가를 돌려보내고, 기계를 멈출 거다.”

다비드가 제드를 놓지 않으려 했다. 힘이 장사라 뿌리칠 수도 없었다. 멘가는 가동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서 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제드를 불렀다.

제드가 다비드를 품에서 떨어뜨리려 하자 다비드가 온몸으로 엉겨 붙었다. 그를 진정시키고 손을 잡고는 멘가가 있는 쪽으로 함께 이동하자 천천히 따라왔다.

“저 미친 새끼는 마지막까지 지랄이야! 와서 이 버튼 눌러!”

블랙홀에서 빨아들이는 힘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다비드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제드는 그의 손을 꽉 쥐고 멘가가 말한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비드 또한 다른 기계를 한 손으로 잡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버텼다. 한 손에는 제드의 손을 구명줄처럼 잡았다.

제드가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멘가가 제드의 팔목을 힘껏 잡았다.

“저 씹새끼가 행복하게 둘 순 없지.”

눈이 마주친 멘가는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다비드는 멘가가 제드의 손을 잡자 그에게 달려들기 위해 기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때 멘가의 손에서 불덩이가 발사되었다. 불덩이를 정통으로 맞은 다비드가 제드의 손을 놓치고 멀리 날아갔다.

“놔라!”

멘가는 블랙홀 앞에서 제드의 휘청이는 몸을 잡았다.

“엇.”

눈 깜빡할 사이에 제드와 멘가는 검은 구멍으로 사라졌다. 기계가 큰 소리를 내며 터지자 소음은 사라지고 빨려 들어가던 물건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주변이 엉망이 되어도 다비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제드가 있던 자리만 바라보았다.

불에 타서 구멍 난 상의에 드러난 다비드의 피부는 끓고 있었다. 화상과 내상을 함께 입어 입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렀다.

이 정도 아픔쯤은 지금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비드는 눈을 굴려 제드의 행방을 찾았다.

지하실로 폴리스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경계 태세로 다비드를 에워싸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폴리스가 다비드에게 괜찮냐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다비드는 고장 난 안드로이드처럼 한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절망감에 빠져 무너지고 있었다.

어릴 적 납치당했을 때만큼, 눈과 귀와 혀가 제거되었을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공포와 불안감이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차가운 물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처럼 몸이 식고 목이 막혔다.

“제드?”

그가 다비드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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