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드 닷(Gold Dot)-1화 (1/8)

아이삭스 제라드. 그는 절망에 빠졌다.

튀어나올 만큼 커다랗게 뜨인 눈에는 허공을 비행하는 하얗고 굴곡 있는 구체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비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식의 높은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었고, 잘 정돈된 거리에는 둥글둥글한 생명체가 바닥을 쓸며 매끄럽게 이동했다.

“맙소사, 몬스터인가?”

열심히 빨빨거리며 도시를 청소하는 로봇을 보는 제드가 중얼거렸다.

여동생이 ‘제드! 어서 일어나!’ 하고 자신을 발로 차며 깨워 주기를 바랐지만, 철썩 내려친 뺨이 아픈 것으로 보아 이것이 현실인 것 같았다.

제드의 헛소리에 지나가던 행인이 그를 보고 위아래로 훑었다. 꼬질꼬질한 행색과 갈색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그는 젊은 노숙자로 보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무섭다.

순간, 제드와 행인이 눈을 마주쳤다. 그가 활짝 웃고는 행인에게 말을 물으려 입을 떼는 순간, 행인은 더러운 것을 본 듯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이곳 사람들은 매정하군.”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단색의 깔끔한 복장이었다. 깨끗한 거리만큼 사람들도 모두 깨끗했다.

사람들은 모두 귀족처럼 때깔이 좋았지만, 귀족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다른 행색이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도시의 광경에 제드가 넋을 빼놓고 있을 때, 멀리서 덩치 큰 폴리스 로봇이 빠르게 다가왔다.

폴리스 모자를 쓴 로봇의 얼굴은 뻥 뚫려 푸른빛이 나왔고, 허리는 가늘었다. 역삼각형의 하반신은 바닥에서 20cm가량 떨어져 있었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그 크기에 제드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이디 카드를 보여 주십시오.”

딱딱한 기계음이 흘러나오자 제드의 몸이 굳었다. 몬스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 댔다.

“몬스터가 이상한 말을 하는군?”

로봇은 제드의 입에서 나온 말이 통역할 수 없는 언어로 뜨자, 곧 그의 팔을 잡고 연행했다.

제드는 제 팔을 잡은 코끼리 다리만큼 굵은 고철 팔을 퍽퍽 내리쳤다.

“이봐! 놔! 사람 살려!”

딱딱하고 우악스러운 로봇에게 팔이 잡혀 끌려가자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꼬질꼬질한 행색에 불법체류자가 연행된다며 수군거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귓속말로 속닥거리는 통에 제드는 억울함과 무서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제드가 경찰용 에어 카에 탑승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순간 장렬히 구토했다.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비행했지만, 처음으로 비행이라는 것을 겪은 제드는 엉덩이가 뜨는 간지러운 기분을 느끼자마자 점심으로 먹은 스튜를 깨끗한 은색 바닥에 게워 내고 말았다.

로봇은 뒷좌석에서 웩웩대는 더러운 젊은 노숙인을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라고요?”

“몇 번을 묻는 거지? 나는 아이삭스 제라드다. 다마치스 왕국의 치유 능력자다.”

‘이건 무슨 또라이야’라는 표정의 폴리스는 제드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총명한 또라이인 것 같았다.

로봇이 제드를 경찰서에 데리고 오자, 건물 내에 있는 인간 경찰이 그를 심문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제드의 귀에 기계를 삽입했다.

제드는 귀로 들어오는 차가운 소형 기계를 빼내려 했지만, 곧 앞에 앉은 경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만두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다른 차원에서 오셨다?”

“그렇다.”

“거기다 치유 능력자다?!”

“그렇다.”

경찰은 머리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과거의 인류는 나라를 나누어 계속해서 전쟁을 치렀고, 나라별로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했다.

막강하고 욕심 많은 나라가 몇 세기에 걸쳐 전쟁을 하다 결국에는 핵전쟁을 일으켰다.

많은 인간이 죽었고, 남은 인류는 1부터 13지구로 나누어져 관리되고 있었다. 오염이 막심한 밖은 정화를 포기했고 사람들은 진화로 이룬 작은 마을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은 1지구였고, 다마치스 왕국이라는 곳은 듣도 보도 못 했다.

거기다 치유 능력자 운운하는 게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제드는 꼬질꼬질했다. 걸치고 있는 옷도 해괴해 보였고 사용하는 언어도 이상해서, 통역 기계가 아닌 뇌파 기계를 삽입해야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 마법사셨군요… 혹시 기억나는 병원 없습니까? 도망쳐 나온 병원 이름이라든가, 돌봐주시던 의사 선생님 성함이라든가….”

“치유자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제드는 빌어먹을 몬스터의 등장에 현장으로 파견되던 중이었다. 그곳에 생긴 어둡고 깊은 홀에 빨려 들어가서 눈을 뜨자 이 이상한 곳이었다.

제드는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폴리스 로봇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은 무슨 몬스터지?”

“몬스터….”

“몬스터는 토벌해야 한다. 이곳에선 사육해서 일을 시키나 보군.”

“아아….”

“여기가 어디라고 했지?”

“1지구, 북반구 2단지 7구역 폴리스요.”

“….”

생소한 지명이다. 건물도 옷도 행색도, 몬스터를 사육해서 일을 시키는 것도 왕국과는 너무도 달랐다. 다마치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곳을 본 적은 없었다.

비행 능력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봤지만, 마차도 아닌 이상한 구체에 몸을 넣어 이동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런 대단한 발명품이 있다면 제드가 한 번이라도 들었을 것이었다.

거리의 상태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부유한 도시인지 알 만했다. 허리가 꺾일 만큼 올려다본 건물은 매끈거렸다. 능력자가 한 무더기로 붙어도 그런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직도 입에 구토의 향이 남아 있자 경찰관이 준 물을 마셨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셔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곳에 와 있는지 모르겠고, 다시 돌아갈 방법도 모르겠다.

“거참. 생체등록도 안 되어 있는 양반을 어떻게 하라고….”

“그게 뭐지?”

“뭐긴요. 모든 사람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거죠. 태어날 때 등록하는 거고요.”

근데 당신은 그게 없어. 당신 뭐야, 하는 눈초리가 따가웠다.

능력자 부대에서 오래 근무한 제드는 해괴한 실종자의 기록을 몇 읽은 적이 있었다.

몇백 년 동안 여러 사람이 실종되었다가 발견되었고, 그중에는 몇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왔다고 진술된 내용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취급했고, 자신도 그 기록을 보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웃었다. 그들의 공통된 진술은 어두운 홀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진술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했던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제드는 깊게 반성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들의 진술서를 빠짐없이 꼼꼼히 읽어 보리라.

제드는 앞에 앉은 경찰관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기록이 없나?”

“있겠죠.”

“어디에 있지? 나에게 보여 줬으면 좋겠군.”

“어디에 있긴 정신병원에 있겠죠.”

“정신병원이 뭐지?”

“당신 같은 분들이 가는 곳이요.”

“그런 곳이 있었군! 어서 가세나!”

제드는 그 말에 아주 잘됐다는 듯, 신이 나서 말했다.

경찰관은 젊은 사람이 참 딱하네, 같은 표정을 짓고는 로봇을 부려 그를 가장 가까운 정신 의료시설로 이동시켰다.

온통 하얀색으로 둘러싸인 시설에 도착하자, 제드는 돌아갈 방법을 찾은 것처럼 기뻐했다.

정신 의료시설의 직원들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제드를 반겼다. 제드가 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들으며 태블릿에 기록했다.

제드는 요상한 장치에 글과 자신의 사진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태블릿을 빼앗아 들고 탈탈 털어 보기도 하고, 불빛에 비춰 보기도 했다.

“내 얼굴이 어찌 여기 들어가 있는 건가? 자네 능력인가?”

그 모습을 관계자들은 짠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일단 씻으시고,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내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요. 잘 보관해 둘게요.”

“고맙군.”

제드가 홀로 욕실에 들어갔다. 거울에는 더러운 행색의 사내가 비쳤다. 몬스터 토벌에 나서며 며칠 동안 야영하며 지낸 탓에 씻지 못한 구질구질한 모습 그대로였다. 몸에서 나는 냄새도 지독했다.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타일을 느끼며 난생처음 보는 샤워기 앞에서 멀뚱거렸다.

“물은 어디 있고, 욕조는 없는 건가.”

오로지 흰색과 은색으로만 구성된 욕실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왕국에는 수도 시설이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물을 받아서 사용했다. 이곳은 물을 받는 욕조는 물론, 대야도 보이지 않았다.

제드가 은빛 스위치를 누르자 위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앗!”

곱고 수압 좋은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자 제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다니!’

깨끗한 물로 몸을 문지르자 까만 구정물이 흰 바닥을 더럽혔다. 옆을 보니 귀족이 쓸 법한 향기 나는 비누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정말 부유한가 보군.”

머리부터 발끝까지 뽀득거리게 씻은 제드는 직원이 준 하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머리가 젖었는데, 건조 안 하셨어요?”

“건조?”

“욕실에 건조 스위치 못 보셨나 봐요.”

“모른다.”

제드는 그 스위치를 보았지만,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몰라 그냥 지나쳤다.

직원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드를 보고는 조금 놀랐다. 떡진 머리에 때 낀 얼굴일 때는 몰랐는데 씻겨 놓고 보니 훤칠하니 잘생겼다.

눈썹 뼈가 툭 튀어나와 있고, 코가 높아서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들었다. 환자복 밑으로 윤곽을 드러낸 몸도 근육질이다.

‘미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드는 하얀색 환자복을 입고는 기세등등하게 가슴을 폈다. 왕국에서는 흰옷을 주로 귀족들이 입었다. 평민은 밝은 옷을 입고 일하면 금세 더러워졌기에 밝은 옷은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평민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능력자 부대에 들어가 개처럼 일했기에 꽤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능력자는 귀한 인재였기에 부대 안에서는 평민이라도 높은 지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의 귀족 같은 말투 또한 무시당하기 싫어 어릴 때부터 연습해서 얻어 낸 결과였다.

다른 이들은 평민이 귀족의 말투를 흉내 낸다며 뒤에서 비웃고 수군거렸지만 직급이 높은 그의 앞에서는 티 내지 못했다.

또한 제드는 치유 능력자인지라 공격형 능력자들이 은근 무시했기에 시간을 내어서 훈련하고 몸을 키웠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몸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미친 사람이 가슴을 펴고 당당한 표정을 짓자 직원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저런, 환자복이 좋은가 봐.’

“건물 위치 안내해 드릴게요.”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1지구회에서는 신원불명의 정신질환자를 정신의료 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했다. 좋게 말해 좋은 환경에서 감금해 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제드가 발견된 것이 1지구라 다행인 셈이다. 1지구는 가장 부유한 자들만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13지구는 숫자가 커질수록 환경이 열악하다. 만약 할렘가나 마찬가지인 12지구나 13지구에서 제드가 발견되었다면 로버들에게 강도를 당하고 죽었을 것이다.

“이쪽은 식당입니다. 매일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식사할 거예요.”

온통 하얗게 빛나는 복도를 지나자 큰 문이 나왔다. 직원이 문에 목에 걸린 카드를 찍자 문이 빠르게 위잉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제드는 신기한 것투성이인 이곳에서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식당은 넓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만한 테이블이 있었다. 모두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나에게도 밥을 주나?”

“그럼요.”

“나는 지불할 돈이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삭스 씨. 모두 무료니까요.”

‘정말 좋은 곳이군.’

무료로 외부인에게 밥도 주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는 이곳은 천국 같았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아등바등 목숨 걸고 일하지 않을 수 있다니.’

제드는 남몰래 감탄하며 직원의 뒤를 쫓아다녔다. 그는 친절하게 상담실과 사무실, 체력단련실 등의 위치를 알려 주고는 마지막으로 제드가 지낼 방을 소개했다.

“이곳은 다 하얗군.”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다른 색을 사용할 수 없어요.”

직원은 정신 의료 시설이 좀 더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어야 사람들의 정서가 좋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법으로 인테리어 색상을 정해 놓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하얗고 깨끗해서 신경증에 걸릴 것 같다며 직원들은 불만을 이야기하곤 했다.

8평 정도의 하얀 방에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 의자가 놓여 있고 욕실이 딸려 있었다.

“잘 묵도록 하지. 내 옷은?”

“그건 저희가 잘 보관하고 있어요.”

“받아 봤으면 좋겠는데.”

“그건 아이삭스 씨가 건강해진 다음에 드릴게요.”

제드가 대답하기도 전에 직원은 발 빠르게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 버렸다.

“이봐! 문 열어!”

문에 달린 작은 투명 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제드는 소리쳤다.

“문은 내일 아침 식사 시간에 열린답니다. 푹 쉬세요.”

제드가 화를 내며 쾅쾅 쳐대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고, 직원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그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떠났다.

좋은 시설인 줄 알았는데 가두어 놓는 것과 다름이 없어 답답했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문도, 책도.

테이블에는 아이용 홀로그램 영상 기계가 있었지만, 제드가 사용하는 법을 알 리 만무했다.

“어찌해야 하나.”

제드는 이 순간만큼 자신이 공격형 능력자가 아닌 것이 한탄스러웠다.

* * *

“빌어먹을.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해.”

제드가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신 의료 시설에 온 다음 날, 제드는 씩씩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많은 이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먹어 보는 맛있고 질 좋은 음식에 지난밤 부글부글 끓었던 화가 사르르 녹았다.

음식은 따뜻하고 영양소가 풍부하고, 먹고 싶은 만큼 더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종류가 다양해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미련할 만큼 밥을 먹은 제드는 직원에게 과식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는 상담실로 향했다.

“어디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다마치스 왕국.”

“그렇군요. 그곳은 어떤 곳이죠?”

제드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왕과 선대 왕들의 이름을 말하고, 문화 등을 말하며 자신이 능력자라는 것도 밝혔다.

차원을 이동한 것 같다고. 내가 이상해 보이는 것을 안다며 의사를 이해하기도 했다.

그 말에 의사는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 줄 수 있다. 치유해 주마.”

“네, 저는 다치지 않았는걸요. 다음에 다치면 부탁합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말을 전혀 믿어 주는 것 같지 않았다.

-망상장애. 자신의 세계가 너무 확고하여 치료가 불가피함.

-차원 이동을 한 이능력자라고 자신을 정의. 말투가 특이함. 언어 판독 불가?

의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태블릿에 제드의 상태를 기록했다.

망상장애치고는 세계관이 그럴듯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사용하는 언어가 판독 불가인 게 조금 걸렸지만, 이곳에는 그럴듯한 미친 사람이 많았다.

“이곳엔 몬스터가 많군.”

“몬스터?”

“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들 말이다.”

“아, 저것들은 청소 로봇이에요.”

“여기선 몬스터를 로봇이라고 말하는가 보군.”

“하하. 뭐 비슷합니다.”

의사는 몬스터와 로봇의 차이를 설명하기 귀찮았다. 직원 사이에는 안드로이드도 여럿 존재했지만 제드는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면 미친 흉내를 내고 싶어서 모르는 척하는 거든가.’

의사는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하고는 직원을 시켜 제드를 내보냈다.

그 후 제드는 쓸모없는 명상이라는 것을 하고 체력단련실에 갔다.

시원하게 땀을 빼고 쉴 생각에 웃던 그는 체력단련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는 의아했다.

‘체력 단련이라고 하면, 검을 휘두르거나 몸을 단련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곧 모두 함께 현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기 맨 뒤의 환자분! 좀 더 격렬하게!”

맨 앞에서 땀 흘리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강사는 이 요상한 운동을 줌바라고 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운동이라고.

“다 같이! 신나게!”

수십 명이 두 팔을 들고 아래를 흉하게 튕기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미친 사마귀 같았다. 제드가 도망가려고 하자 빨간 머리의 직원이 붙들고는 놔주지 않았다.

“환자분. 단체 생활에도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나는 환자가 아니다!”

“환자분, 격렬한 운동은 신체 단련은 물론 뇌 건강에도 좋습니다. 따라 해 보세요.”

“싫다! 싫어!”

제드는 근육질이었지만, 안드로이드의 힘에는 당해 낼 수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잘 먹어서 힘이 센가?’

붉은 머리의 직원이 인간형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모르는 제드는 시무룩해졌다.

“흔드세요! 빨리!”

강사의 재촉에 제드는 똥 씹은 표정으로 허리를 퉁겼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처참했다.

지급해 준 속옷을 입지 않아 통 넓은 하얀 바지만 입었는데,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래 살덩이가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내가, 공격 능력자였으면!’

안드로이드의 감시 속에서 제드는 이를 악물고 그 짓을 30분이나 더 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두 시간입니다! 환자분들! 기대되시죠?”

제드를 제외하고 다른 환자들은 재밌는 것 같았다. 땀을 흘리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네에!’ 하고 대답하는 게 순진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큰 키 때문에 머리 하나가 툭 튀어나온 제드만이 표정을 구겼다.

‘도망가야겠군.’

그러나 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차원 이동에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찾지도 못했다.

환자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오는 네모난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방에 있는 아이용 홀로그램 영상에서는 깜찍한 캐릭터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만 흘러나왔다.

치유 능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말을 믿게끔 하고 싶었지만, 다친 사람이 없으니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제 몸에는 치유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자해하고 상처를 치유해 보일 수도 없었다.

‘누군가 다쳐야 하는데….’

‘대뜸 아무나 공격해서 다치게 한 다음에 바로 치유를 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무식하게 힘센 붉은 머리의 직원이 나타나 그를 주시했다.

허튼짓을 하면 팔을 부러뜨릴 듯한 시선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밥을 먹을 시간이었고, 맛있는 밥을 먹으면 마음이 풀려 ‘이곳에 눌러살까?’ 생각하다가 체력 단련 시간이 오면 도망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였다.

‘내일부터는 치료에 들어간다고 했지.’

일주일간의 적응 기간이 끝나면, 정신 치료에 들어간다고 했다. 먹어야 할 약의 종류가 10개가 넘었고 치료 일정표는 빠듯했다. 그 전에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곳은 창문이 없었고 몇 중으로 보안 장치가 걸려 있어 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직원 카드를 뺏으려 했지만, 붉은 머리 직원이 따라붙었지.’

제드는 붉은 머리 직원이 잠도 안 잔다며 툴툴거렸다.

그리고 시설을 청소하는 몬스터들은 생각보다 순했다. 식당에서 몰래 빼 온 음식을 줘도 먹지는 않았지만,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있었다.

‘이곳 몬스터는 착하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몬스터만 봐 와서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길들이니 참 편리하고 순종적이다.

딱딱하고, 두드리면 깡통 같은 소리가 났지만 제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 빨래, 음식 준비, 일 등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해 대도 이곳에서 나갈 명쾌한 방법이 없었다.

* * *

제드는 운이 좋게도, 다음 날 같이 줌바 댄스를 추던 환자가 넘어져 치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투명 의자 자세로 옆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추다 균형을 잃은 어느 환자가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송골송골 맺힌 모습을 보고 제드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참 잘했군!”

“뭐요? 놀려요?”

덩치 큰 제드가 활짝 웃으며 까진 무릎을 쥐자 환자는 몸을 움찔 떨며 안드로이드를 찾았다.

제 피 나는 무릎을 탐욕스럽게 쳐다보는 제드는 미친놈 같았다. 물론 미쳐서 이곳에 들어와 있겠지만.

“놔요! 선생님!”

환자는 급하게 선생님을 외쳤다. 저 미친놈이 무릎을 너무 꽉 쥐고 있어서 피를 짜내는 것처럼 보였다.

안드로이드와 직원들이 급하게 뛰어올 때, 제드의 손에서 금빛이 일렁이며 퍼졌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환자들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무릎이 잡힌 이는 따스한 햇볕에 감싸이는 기분이었다. 무릎이 간질거리며 심장이 콩콩 뛰었다.

제드의 얼굴은 집중한 듯 굳어 있었고, 무릎을 잡힌 환자는 얼굴이 붉어져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놓으세요.”

그 이상한 빛과 기류에 안드로이드만이 침착하게 말했다. 곧 제드의 손이 떼어졌을 때 피가 비치던 곳이 감쪽같이 나아 있었다.

“이럴 수가.”

직원들은 그 기이한 현상에 할 말을 잃었다. 제드는 뺨을 붉힌 환자에게서 눈을 떼고는 가슴을 펴고 그들 앞에 섰다. 환자복을 입은 가슴과 어깨가 그의 기세만큼 빵빵해졌다.

제드가 고개를 치켜들고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입이 떡 벌어진 직원들을 훑을 때, 안드로이드만이 그의 팔을 잡고 연행하듯 상담실로 이끌었다.

현대의 의료는 많은 것들이 발전했다. 간단한 찰과상은 약을 바르고 자연 치유하게 두었지만, 위중하게 다쳤을 때는 수술 기계에 들어가 수술을 받고 재생수로 가득 찬 캡슐에 들어가 회복했다.

대부분은 의사가 수술했고, 수술 기계와 재생수는 너무나 값비쌌기에 일반인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 돈이 많은 특권층이 사람이 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흉터가 남지 않게 수술할 때나 사용했다.

마법처럼 손에서 빛이 흘러나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고, 망상에나 존재하는 능력이었다. 모두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한 것도 당연하였다.

그 후, 시설은 난리가 났다. 치유자 어쩌고 했던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제드는 의사인지 상담사인지 모를 사람과 다시 면담하고, 방에 갇혔다. 붉은 머리 직원은 그의 방 앞을 지켰다. 문에 달린 작은 창을 통해 붉은 머리가 보였다.

“이제 나갈 수 있겠군.”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미친 사람 취급받으며 갇혀 있지도 않아도 되겠거니 생각했다.

나가면 돌아갈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몬스터 토벌 중 사라졌으니, 죽었거나 재수가 없으면 도망갔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능력자 부대는 도망가는 것을 대단한 수치로 생각했다. 자칫하다가는 감옥에 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제드는 서둘러야 했다.

이번 토벌 기간이 1년으로 잡혀 있으니, 그 전에 돌아가야 오해가 풀릴 것이다.

앞으로 일이 잘 풀리리라고 생각했던 제드는 방에 갇힌 지 3일이 지나자 조급함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식사는 안드로이드가 가져와 방에서 해결해야 했다.

흰옷을 입은 이들이 몰려와 그를 홀로그램 기계에 넣고 스캔을 하고 뇌파를 측정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댔다.

“아이삭스 제라드다!”

그들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똑같은 답을 하던 제드는 결국 인내심이 바닥나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제드가 목소리를 높이건 말건 그들은 어딘가에서 다친 사람이나 동물을 데려와 그의 치유 능력을 시험했다.

상처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 치유되는 속도와 횟수는 모두 달랐고, 제드는 유능했기에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상처는 말끔하게 나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나가고 싶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삭스 씨. 곧 나가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하얀 옷의 사람은 속이 시커메 보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제드는 기분 나빴다.

곧 나갈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음 날, 시설을 방문한 이로 하여금 제드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제드는 앞에 선 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감탄했다.

“안녕하세요. 다비드 폴머입니다.”

결 좋은 그의 금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사이로 아몬드 같은 눈매가 보기 좋게 휘었다. 모공 하나 없이 보드라워 보이는 피부와 깎아 만든 듯한 얼굴형은 완벽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못난 곳이 없어 안드로이드보다 더 안드로이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드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의 그를 홀린 듯 멍청하게 보고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외모다.

“아이삭스 제라드다.”

사람의 미모에 넋을 잃어 본 것은 제드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에게 감탄하다니.’

그는 예의 없이 그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황급히 눈을 돌렸다.

다비드의 옆에는 키가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괴물 같은 근육의 남자가 서 있었다.

정장이 터질 듯 꽉 조여 보이는 그는 다비드의 옆에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의사들과 이야기를 하더니 서류를 건네받고 있었다.

다비드는 제드에게 관심이 없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시설 관리자와 몇 마디 섞었다.

제드는 시설의 관리자를 오늘 처음 봤지만, 그가 심각하게 다비드에게 굽신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근육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느새 근육질의 남성은 제드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제드의 근육을 훑었다.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흉근과 삼각근이 멋지십니다.”

바짝 깎아 두상까지 보이는 머리를 진지하게 끄덕거렸다. 끄덕이는 목도 두껍다. 움직일 때마다 정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제드는 이 남자가 왜 넉넉한 옷을 입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었다.

“용병인가?”

“저는 다비드 님의 비서입니다. 에든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비서치고는 군인처럼 말투가 딱딱했다. 그는 근육이 너무 거대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며 낑낑거렸다.

제드는 작은 크기의 고급스러운 명함을 받았지만, 이곳의 글을 읽을 수 없어 멀뚱거렸다.

다비드가 용무를 끝낸 듯 출구로 걸어갔다. 긴 다리로 거침없이 나가는 그의 뒤를 에든이 따랐다.

“갑시다. 아이삭스 씨.”

에든은 몸이 좋은 제드가 마음에 드는지 그를 챙겼다.

밖으로 나오자 다비드는 딱 보기에도 아주 잘 빠진 플라잉카에 탔다. 그 뒤로 에든이 제드를 태우고, 거대한 몸을 구겨 넣듯 내부에 들어가자 문이 스르륵 닫혔다.

플라잉카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저 근육 덩어리 에든이 타도 넉넉할 정도였다. 다비드는 다리를 꼬고 앉아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금발에 자꾸만 눈이 가자, 제드는 그를 보지 않기 위해 에든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다비드 님의 저택에서 지내시게 될 겁니다. 장담하는데 시설보다 쾌적하고 호화롭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저에게….”

“왜 나를 데려가는 거지?”

근육질의 비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착해서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궁금하실 겁니다.”

“나는 돌아가고 싶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 하셨습니까?”

“그렇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지만, 아이삭스 씨의 능력은 영상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정말 엄청났습니다. 다들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에든는 신기하다는 듯 제드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아이삭스 씨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당장 지내실 곳이 없어 시설에 계셨다고 알고 있는데, 다비드 님의 저택은 그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제드는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에 그들이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맞았다.

“아이삭스 씨는 거기서 다비드 님을 치유하시면 됩니다.”

제드가 고개를 돌려 다비드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안 아파 보이는데?”

“지금은 아프지 않죠.”

다비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리자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근처로만 반짝이는 효과가 보이는 듯했다.

“만약을 위해 내 곁에 두는 거예요.”

“만약을 위해?”

“내가 좀 위험한 일을 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습은 지나치게 아름다웠지만, 차가울 만큼 무감했고 그의 말처럼 위험해 보였다.

“내가 거절한다면?”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다비드는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태블릿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대로 제드는 선택권이 없었다. 당장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돈도 없었고, 묵을 곳도 없었다. 부랑자처럼 떠돌아다니며 정보수집을 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잘생겼지만 싹수없는 놈과 근육 덩이가 믿을 만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한 재력가로 보였고 시설의 높은 사람도 아는 사람 같으니 제드는 그를 따라가도 괜찮으리라 판단했다.

* * *

제드는 처음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타고 토를 했지만, 두 번째는 괜찮았다. 일단 승차감이 굉장히 편안했다. 사방이 트여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면 움직이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내부가 넓어서 갇혀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아 멀미가 덜했다.

‘마부가 없는 건가. 신기하군.’

플라잉카는 운전자가 없었다. 제드는 내부를 둘러보다 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제드가 살던 곳과는 다른 양식의 건물들이 보였다. 아주 높은 건물도 있었지만, 대부분 작고 돔 형태라 단조로웠다.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서 장난감 마을을 보는 듯했다.

플라잉카 주위로 구체가 지나다녔다. 저 구체 안에도 사람이 타고 있을까? 제드는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12구역에서 캐롤이 또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냥 로버가 아니고요?”

“불법 개조한 전투기에 시끄러운 기체 소리가 캐롤이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잡았나요?”

“…놓쳤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웃는 다비드 앞에서 에든은 좌불안석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근육질의 비서를 다비드가 뱀처럼 웃으며 갈궜다. 제드는 다들 저 인간에게 너무 굽신거린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대단한 귀족이기에.’

제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신분 사회를 혐오했다. 귀족과 왕족은 탯줄 잘 잡고 태어나 주어진 것을 당연시하며 산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발밑에 깐 듯 대하는 그들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귀족의 말투를 흉내 내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것 또한 살아남으려는 자신의 노력이었다.

“기대도 안 했어요.”

“죄송합니다.”

“에든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말만 들어 보면 다비드는 상당히 괜찮은 상사 같았다. 에든은 그가 말할수록 더욱 불안했다.

“전투기 준비해 줘요.”

“직접 가려고 하십니까?”

“무능한 부하들 대신 내가 일해야죠.”

쯧쯧. 웃으면서 잘도 갈구는군. 제드는 생각했다. 가끔 저런 부류의 상사가 있다. 살살 웃으면서 말하는 게 아주 재수가 없었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타입도 싫었지만, 은근 돌려 까는 상사도 싫었다.

에든은 다비드가 웃으며 자신을 죽일까 봐 불안해하는 거였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제드는 높은 신분의 상사가 웃으며 돌려 까기를 시전하자 부하직원으로서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다.

제드가 다비드의 갈굼 속에서 하품하며 밖을 구경하자, 곧 저택에 도착했다.

“이곳이, 집인가?”

플라잉카가 부드럽게 정차하고 발을 내디딘 순간 제드는 탄식했다.

비행하며 보았던 수많은 집과 완전 달랐다. 형태와 크기가 압도적이다.

호화로운 저택은 마치 작은 왕궁 같았다. 제드도 일하며 왕궁에 몇 번 방문했고, 그 사치스러운 내부에 탄식했는데 이곳은 왕궁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집에 연못이 있는 건가?”

“네, 화원처럼 꾸며 놓으셨습니다.”

앞장선 다비드를 따라 에든과 제드가 뒤따랐다. 미래형인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다비드의 저택은 친환경적으로 보였다. 화원을 가로질러 보이는 건물은 세련되고 신식 디자인이었지만 화원만큼은 여느 귀족의 집 같았다.

“대단하군.”

제드가 중얼거리자 에든이 씁쓸하게 웃었다. 제드의 생각보다 이곳을 화원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은 더욱 대단한 것이다.

핵전쟁 이후 나무가 귀해졌다. 1지구의 안은 쾌적했지만 밖은 먼지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햇볕이 들지 않았다.

지금 그들 위에 떠 있는 해는 인공 태양이다. 인공적이기 때문에 나무와 풀, 꽃은 금방 시들어 죽었고 저것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비용이 들었다.

나무 사이로 작은 로봇들이 물을 뿌리고 풀을 심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귀여워 보였다.

“이 앞까지는 나와서 산책하셔도 되지만,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알겠다.”

“저택 뒤편으로 수영장과 테니스장, 농구장이 있으니 사용하시면 됩니다. 지하에는 다비드 님이 훈련하시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가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립니다.”

“테니스가 뭐지?”

“…모르시면 안 가시면 됩니다.”

저택에 다다르자 문이 알아서 열렸다.

“다비드 님은 생체 등록을 하셔서 문이 알아서 열립니다. 아이삭스 씨도 오늘 등록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인력을 사용하지 않고 문이 알아서 열리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내부는 화이트톤과 그레이, 대리석이 대부분이라 다소 차가워 보였다.

밖이 화원으로 꾸며져 있어서 안에도 귀족식의 인테리어일 줄 알았는데 깔끔한 최신식이었다.

1층은 가구가 없어 휑했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탁 트였다.

“다비드 님과 아이삭스 씨를 제외한 저택의 모든 것들은 로봇입니다. 인간형 안드로이드도 있지만 눈에 띄진 않을 겁니다.”

“안드로이드가 뭐지?”

“하… 이따 알려드리겠습니다.”

에든은 백지와 같은 제드에게 어디서부터 알려 줘야 할지 몰랐다. 에든은 자식이 있기는커녕 조카도 없었다. 주변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욱 막막한 기분이었다.

“KAI 준비해 줘요. 옷만 갈아입고 나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에든은 제드를 로봇에게 맡기고는 다비드를 따라갔다. 제드는 앞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로봇을 따라 방으로 향했다.

“다비드 님의 저택은 13개의 방과 5개의 욕실, 2개의 식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

“지하는 훈련장이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알겠다.”

어느 정도 말하는 몬스터가 친숙해진 제드는 그의 말에 대꾸했다.

“2층 가장 안쪽 방은 주인님의 침실이시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생체 인식이므로 어차피 못 들어가시겠지만 되도록 1층에서만 생활해 주시기 바랍니다.”

“충분하다.”

1층만으로도 충분했다. 넓고 잘 정돈된 방에 들어선 순간 제드는 이 방이 자신과 여동생이 살던 집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침대 옆 태블릿에서 호출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태블릿이 뭐지?”

그의 질문에 로봇은 잠시 3초 정도 버벅대더니 태블릿의 조작법과 호출기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로봇 인생에서도 태블릿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로봇이 나가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보고 방을 구경했다.

“너무 좋군.”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방에 딸린 욕실과 드레스룸까지 뒤져 봤다.

“이건 내 옷인가?”

제 몸에 맞는 옷을 가슴께에 대 봤다. 다비드는 2층에 방이 있으니 이 방에 딸린 옷은 제 것 같았다. 제드는 환자복을 훌훌 벗어 버리고 가장 밝은 옷을 꺼내 입었다.

“역시 귀족의 옷은 다르군.”

몸에 닿는 옷의 감촉이 좋았다. 바지 사이즈도 딱 맞아서 움직임이 편했다. 거울 앞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제 모습을 살필 때 노크와 함께 에든이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셨군요.”

“그래.”

“밝은 옷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좋다.”

흰색 목폴라에 흰 바지를 입은 제드는 나름 잘 어울렸다. 너무 과하게 흰색이었지만, 키가 크고 몸이 좋아서 봐줄 만했다.

아무렇게나 말린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짙은 아이홀과 높은 콧대가 야성적이다.

“장점을 잘 살려 입으셨습니다. 흰 티는 흉근을, 흰 바지는 대둔근을 완벽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터질 듯한 정장을 쫄티처럼 입고 있는 사람에게 잘 입었다는 말을 듣자 제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바로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바지만 짙은 색상으로 바꿔 입었다.

“간단하게 이곳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혹시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까?”

“못 읽는다.”

“뇌파 기계는 듣는 것까지 가능할 겁니다. 글을 읽는 것은 직접 교육받아야 하는데, 가르칠 선생님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아니다. 곧 돌아갈 것이니 필요 없다.”

“네.”

에든은 다비드가 그를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비드에게는 그가 대단히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에든은 훌륭한 비서답게 입을 다물었다.

에든은 테이블에 앉아 로봇에게 차를 내오라 말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이 세계는 13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대충 들었다.”

“네, 이곳은 1지구이고 살기 가장 좋은 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도시의 대부분은 안드로이드와 기계,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봇이 뭐지?”

“로봇은 이걸 말합니다.”

트레이를 가지고 오는 로봇을 가리키며 말했다.

“로봇은 이렇게 인간을 도와주는 기계를 말합니다.”

“이건 몬스터가 아니었나?”

“몬스터…는 아닙니다.”

에든은 설명하기 복잡한지 로봇의 머리를 분리해 회로가 얽힌 안을 보여 주었다.

“로봇은 전자 부품과 하드웨어와 제어장치, 센서 등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명령을 받아 우리를 도와주는 기계입니다.”

“머리를 분리하면 죽지 않나?”

“이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살아 있지 않은데 움직이고 말을 한다?”

“맞습니다. 타고 오신 플라잉카도 기계의 한 종류고요. 안드로이드는 인간형 로봇입니다.”

“인간의 모습인 로봇?”

“네, 아이삭스 씨는 구분하지 못할 테니, 저택에서 일하는 인간이 보이면 그건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놀랍군.”

“저는 치유 능력이 더 놀랍습니다.”

현대 기술에 익숙한 에든이 말했다. 에든 또한 숨 쉬듯 생활을 같이하는 로봇과 기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기계와 함께 살아 이것들을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아이가 커 가면서 인간보다 기계와 로봇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적이었다.

“다비드는 귀족인가?”

“이곳엔 왕도 귀족도 없습니다.”

에든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드 또한 차를 마시고는 맛이 좋은지 눈썹을 찡긋댔다. 그러고는 뜨겁지도 않은지 꿀떡꿀떡 삼켰다.

사내다운 화끈한 원 샷을 보고 에든은 자신의 입천장이 다 뜨거운 느낌이었다.

“그렇군. 다들 어려워하기에 귀족인 줄 알았지.”

“비슷하지만, 이곳에서는 상류층이라고 부릅니다.”

다비드 폴머. 그는 상류층이면서도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폴머 가문은 몇 대째 항공우주, 군수업체의 큰 손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4차 산업혁명 당시 가장 크게 성장한 가문이기도 했다.

핵전쟁이 나기 전부터 이름 있는 가문이었고, 핵전쟁 후 13지구를 이루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폴머 가문이 5할은 기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폴머 가문은 지구가 병들어 감에 따라 항공우주 산업에도 크게 투자했고, 연구는 성과를 보였다. 인류가 지구 밖으로 이주하는 것이 먼 미래는 아니었다.

폴머 집안 자체가 대단했지만, 다비드 폴머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는 직접 타 지구에 가서 로버들을 죽이고 다녔다.

“위험한 일을 한다는 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다비드 님은 직접 로버들을 처치하고 다니십니다.”

“로버?”

“10구역부터 13구역에서 자주 나타나 강도나, 폭력, 살인을 하는 인간들입니다.

“쳐죽일 것들이군.”

살인은 불법이지만, 로버를 죽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다비드 폴머가 살인을 해도 그에게 벌을 내릴 사람도 없었다. 다비드는 그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면 직접 달려가 모두 죽였다.

곱게 자란 사람이 어떻게 혼자 할렘가로 내려가 거칠기 짝이 없는 강도, 살인에 익숙한 로버를 처치하냐고 묻는다면 에든은 할 말이 없었다.

다비드가 공중전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은 물론, 200kg이 넘는 슈트를 입고 살인 기계처럼 싸우며, 원시적이라 잘 사용하지 않는 칼 또한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다비드 님은 로버와 싸우며 근래 크게 다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잘하게 다치시고, 혹시 모를 큰 사고에 대비해서 아이삭스 님을 모셔 온 겁니다.”

“좋은 일을 하는군.”

10구역 후부터는 폴리스의 수가 확 줄었다. 상류층이 모여 사는 1구역에 폴리스가 가장 많았고, 뒤로 갈수록 치안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비드 폴머를 보고 대단히 봉사적인 일을 한다며 칭송했지만, 다비드는 로버를 증오했고, 살육에 미쳐서 저 짓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다비드가 봉사 정신이 있었다면, 사비로 폴리스의 수를 늘리면 간단한 일이었다.

“기계가 많다고 했는데, 사람을 치유하는 기계는 없나?”

“있지만, 아이삭스 님의 능력이 훨씬 탁월합니다.”

“그렇군.”

제드의 높은 코가 더 높아 보였다. 은근 어깨가 위로 솟아올랐다.

제드는 자신의 몸과 능력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만큼 누군가 그를 칭찬할 때면 티 나게 좋아했다. 물론 본인은 몰랐지만.

에든의 말에 제드는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다비드의 체질은 기밀 사항이었기에 에든은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저택에서는 조용히 계셨으면 합니다. 다비드 님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본인도 사람인 것을.”

제드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에든은 다비드가 사람보다 기계에 가깝다는 말을 눌러 삼켜야 했다.

“식사는 1층 식당에서 하셔도 되고 방에서 하셔도 됩니다. 입구 쪽에서 돌아다니지는 마시고요.”

“다비드는 집에 항상 있나?”

“스케줄에 따라 다르지만, 조심하시면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

“이곳 음식이 맛은 좋아도 영양소가 부족하니 영양제는 꼭 드시길 바랍니다.”

설명하다 보니 생각보다 알려 줄 것들이 많았다. 제드 또한 질문이 많았기에 그들은 꽤 오랫동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흉터 치료는 안 된다는 겁니까?”

“그래. 이미 생겼다 없어진 상처는 치유해 줄 수 없다. 흉터도 그대로지.”

“아쉽습니다.”

“흉터가 있나?”

“저 말고 가족 중에 있습니다. 그럼 그 멋진 근육도 능력으로 만드신 겁니까?”

“아니! 내 노력으로 만든 거다!”

“능력으로 보조적인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거나….”

“없다!”

“이야. 등 운동은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풀업으로….”

에든이 운동 이야기를 꽃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업무를 할 때보다 확연히 밝아진 표정으로 끝도 없이 운동과 근육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침 튀기겠군.’

“그래서 제가 케이블 크런치로 복부를 조각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저를 툭툭 치는 겁니다.”

“아… 그랬군….”

“그게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데, 자세가 흐트러지면 다칠 수도 있잖습니까?”

제드는 영혼 없는 눈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소름 돋게도 곧 끝날 것 같던 운동 이야기를 족히 두 시간은 들은 듯했다.

넓은 통유리를 바라보자 해가 져 가고 있었다. 에든의 지치지 않는 주둥이를 막아 버릴까 생각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빨리 오셨습니다?”

“네, 멍청한 부하 직원 덕에 다 튀었더라고요.”

“하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비드는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늘씬해 보이는 정장과는 달리 몸에 붙는 검은색 티셔츠는 그의 두꺼운 몸을 돋보이게 하기 충분했다.

잘생기다 못해 예쁘기까지 한 얼굴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다비드의 몸이 좋다는 것을 제드는 깨달았다.

“이거 치료해 봐요.”

다비드는 빠르게 다가오더니 제드의 코앞에 자신의 손을 들이밀었다.

길고 하얀 손은 뼈마디가 툭 불거져 나와 있었고, 제드의 얼굴을 다 덮을 만큼 컸다.

‘손도 곱군.’

제드는 그의 손을 감상하며 손등이 얕게 찢어져 피가 조금 비치는 상처를 봤다.

상처가 깊지 않아 약만 발라 두면 금방 나을 듯한 상처를 들이미는 것은 제드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그럼 만지겠다.”

인간이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에든의 말을 생각하며 제드는 그의 손을 쥐었다.

방에서 나가려던 에든도 궁금증이 생긴 것인지 어느새 옆에 다가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이 거칠어.’

마냥 곱기만 한 줄 알았는데 만져 보니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이다.

다비드는 제 손에 닿은 것을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미미하게 눈썹을 찡그리며 제드의 머리꼭지를 바라보는 것을 에든은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봐야 했다.

곧이어 제드가 그의 손등에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다비드는 참지 못하고 그를 벌레 죽이듯 밟아 죽였을지도 몰랐다.

“와아….”

에든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꼭 껴안고 있던 태블릿 가방을 놓칠 뻔했다.

제드에게 금빛으로 일렁이는 기운이 맴돌았다. 다비드의 금발보다 더 찬란한 색이었다.

다비드 또한 제 손에 퍼지는 따스한 기운과 빛나는 제드를 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내비쳤다.

“다 됐다.”

작은 상처는 정말 금세 아물어 있었다. 깨끗한 손등을 바라보며 다비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작으면 금방 낫나요?”

“그래. 크면 클수록 오래, 여러 번 치유 받아야 하지.”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아이삭스 씨.”

“제드라고 불러라.”

이곳에서 자신을 아이삭스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었다. 제드의 세계에서는 보통 그를 제라드 또는 제드라고 불렀다.

“그래요. 제드.”

할 말 끝냈다는 듯 그는 곧바로 뒤돌아 방을 나가 버렸다.

“와, 정말 멋지십니다. 한 번 더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상처가 없으면 안 된다.”

에든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추켜세웠다. 제드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계속해서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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