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37)

수호령(守護靈) (307) 만류귀종(萬流歸宗) 

혈전을 생각하고 있던 혈무린은 눈을 감았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지금 물 

러나고 있다. 싸웠다면 양쪽 모두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했어야 했다. 그러 

한 상황에서 이 사내는 그 모든 것을 끝냈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이젠 더 이상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눈을 뜬 혈무린은 물러나는 무림맹의 무인들을 바라보는 여운휘를 향해 다 

가갔다. 

여운휘가 고개를 돌리자 혈무린이 씨익 웃었다. 

"수고했네. 아, 그리고 그 목은 좀 내려놓지 그러나?" 

"그럴 생각이오." 

여운휘는 품안에 있는 보자기 하나를 꺼내 일마의 목을 넣고 묶었다. 이것 

을 그대로 유설린에게 보여 줄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일마의 목에 대해 언 

급하고서야 혈무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서 자넬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자넬 기다리네." 

"…… 직접 찾아왔소?" 

혈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운휘는 몸을 돌려 마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 

했다. 그의 발걸음이 상당히 경쾌했다.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사러 가는 

아이의 발걸음처럼 가볍다. 여운휘의 뒤를 따라 마교 밖으로 나왔던 자들 

이 움직였다. 

마교 안에 들어선 여운휘가 옆에 있는 남궁진에게 물었다. 

"그는 어딨지?" 

"소교주님에게는 가보지 않을 생각인가?" 

"가야지. 하지만 모든 일을 끝내고 갈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마지 

막 일이 바로 이 인연에 종지부를 찍는 거다." 

"…… 날 따라오게." 

여운휘는 뒤에 있는 혈무린을 바라보고는 이내 몸을 돌렸다. 혈무린은 어 

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버렸다. 불이 붙어 버린 저 사내를 그 

누가 말리겠는가. 그리고 일마를 꺾은 이상 백무량이 여운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이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저 사내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겠지.' 

신기한 사내다. 적이라면 최악이지만 같은 편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 

하다. 

'소교주는 대단한 사내를 곁에 두게 되었어.' 

황제가 온다한들 이만한 사내를 곁에 둘 수는 없을 게다. 그러한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백무량이 있는 곳은 감옥이 아니다. 그는 큰 연무장 가운데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었다. 혈도를 제압하기 전에 그를 어딘가에 가둔다는 것은 불 

가능하다. 그걸 알기에 사욱천은 그를 그저 감시만 하게끔 시켰다. 더군다 

나 여운휘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가장 감시하기 편한 연무장에 그를 있게끔 했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던 그가 갑자기 움 

직이자 감시하고 있던 무인들은 움찔해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 백무량이 작게 중얼거렸다. 

"왔다." 

덜컹. 

순간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진과 여운휘다. 그 둘은 연무장 가운데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무 

인들이 급히 길을 막았다. 

"죄송하지만 접근 하실 수 없습니다.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무진이라고 하오. 그리고 이 친구가 바로 여운휘요." 

"아……" 

여운휘라는 말에 고개를 숙인 무인은 급히 옆에 있는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미리 사욱천에게 명 받은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이 오면 그와 접촉하 

지 못하게 하지만 여운휘가 온다면 모두 자리를 비켜주라는 명이었다. 

무인들이 하나씩 연무장을 벗어났고 이제는 이 넓은 곳엔 셋이 남게 됐다. 

쇠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백무량이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여운휘 

를 확인하고야 입꼬리를 비틀었다. 물론 투구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지만. 

"네가 왔다는 건…… 일마는 죽었다는 거겠지." 

여운휘는 말 없이 보자기에 담아뒀던 목을 꺼내들었다. 놀란 듯이 그 목을 

바라보던 백무량은 천천히 수갑을 어루만졌다. 손에 꽉 맞게 들어맞는 이 

느낌이 좋다. 이 묵직함은 언제나 백무량의 마음을 식게끔 했다. 

"난 고통을 모른다. 하지만 너라면 알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마친 백무량은 옆쪽에 있는 흑색 창을 꺼내 잡았다. 애초부터 그의 

모든 무기들도 이곳에 놓아져 있었다. 전부 사욱천의 배려다. 

흑색 창을 잡게 되자 사방의 공기가 갑자기 팽팽해졌다. 그리고 연무장 한 

가득 차가운 살기가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남궁진은 뒤로 물러났고 여운휘는 검을 꺼내들었다. 

"백무량, 갑갑한 투구와 무장을 벗어라." 

"알고 있었나?" 

"네가 백무량이라는 건 전부 알고 있다." 

그 말에 백무량은 힐끔 남궁진을 바라봤다. 그의 누이인 남궁려희 때문이 

다. 왠지 아까 남궁진을 봤을 때부터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마도 그의 

정체를 아는 탓이었으리라. 

"어차피 이 갑옷이 네 검을 막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난 이 갑옷을 벗지 않아. 비록 무거워 거치적거린다 해도 내가 걸어온 길 

이니까. 난 가슴에 있는 이 흑자를 걸고 싸운다." 

"좋을대로." 

여운휘의 검은 오행검법을 펼치려 했고 백무량은 흑색 기마대에 내려오는 

흑화개천창법(黑花開天槍法)의 기수식을 잡았다. 흑색 기마대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창술이다. 그렇지만 그 위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백 

무량뿐이다. 더군다나 절초를 펼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백무량 하나였다. 

일전에 여운휘를 상대로 절초를 펼치려는 순간 누남천의 등장으로 창을 회 

수해야 했었던 일이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상대는 변하지 않았다. 

'최대의 적수. 후후, 이 자리에서 죽겠군.' 

백무량은 알고 있다. 검을 잡고 있는 여운휘의 기도가 변했다. 예전에는 상 

대할 만한 적수였지만 이제는 월등히 거리가 벌어졌다. 더군다나 일마를 

베었다는 건 이미 백무량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알면서도 왔다. 싸우면 죽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창을 들었다. 

남궁려희를 생각하면 죽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무인이다. 무인인 이상 죽 

음 앞에서 떳떳하려고 한다. 

'행복해야 하오.' 

이제는 많은 사내들이 그녀에게 구혼을 청할 것이다. 백무량이 없는 이상 

더 이상 남궁려희는 사향화라고 불릴 필요가 없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 

내들을 죽이던 백무량은 오늘 이후로 세상에 없을 테니까. 

"절초로 가지." 

백무량은 창을 등뒤로 향했다. 자세가 다소 낮아졌고 양손에는 힘이 들어 

갔다. 

"키앗!" 

외침과 함께 백무량이 튀어나왔다. 흑화삼라만변(黑花森羅萬變)이라고 불리 

는 흑화개천창법의 절초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맞서는 여운휘의 

검은 왠지 모르게 초라해 보였다. 백무량의 눈에서 이채가 발했다. 

'잘하면!' 

여운휘가 피하지 않았다. 창이 정확하게 여운휘의 몸을 갈랐다. 강한 파공 

음과 함께 사방 육장 가량이 터져 나갔다. 굉장한 파괴력이다. 사방에 있는 

돌들이 터져 나갔고, 심지어는 공기마저도 갈리는 듯 했다. 

번개와도 같고, 그 위력은 태산까지도 부술 정도로 박력 있다.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남궁진조차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뭐야?' 

묵직한 느낌은 들지만 무엇인가를 벤 느낌은 없다. 백무량 정도 되는 무인 

이 그런 것을 놓칠 리가 없다. 뿌옇게 일었던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괴 

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에서 박살났다고 느낀 돌들이 멀쩡했다. 연무 

장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했다. 

'환술(幻術)!'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백무량이 몸은 허공을 향해 날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에 묵직한 힘이 

위에서 내리눌렀다. 정확하게 어깨에 무엇인가가 와 닿았다. 

"큭!" 

그리고 이어지는 고통이 가슴, 그리고 반대편 어깨까지 이어졌다. 

갑주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력이다. 

우직! 

깨어져 버렸다. 쇠로 된 갑주가. 

그러면서 천천히 눈앞이 뿌예지나 싶더니 곧 또렷해졌다. 그곳에는 여운휘 

가 있었다. 그리고 백무량의 흑화삼라만변이 부순 연무장이 있었다. 

백무량은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그의 얼굴에는 초연한 빛이 완연했다. 

"졌군." 

흑화삼라만변을 펼쳤을 때 이미 각오한 바가 있다. 이 일격이 실패하면 그 

만 창을 내려 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여운휘가 펼친 무공을 보게 되 

니 창을 들고 있어도 벨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백무량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진법인가?" 

"그래." 

"대단하군.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지.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걸." 

검술에 진법을 접목시켰다는 말을 백무량으로서는 처음 듣는다. 하지만 그 

렇기에 그만큼 여운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곁에 있어 줄 수 없었지. 난 흑색 

기마대의 대주니까. 네가 부럽다. 누군가의 옆에 있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랬다. 처음 여운휘를 봤을 때부터 무인의 투지도 불탔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있을 수 없는 자신과 여운휘는 완전히 처 

지가 달랐던 것이다. 곁에 있을 수 없는 자신, 항상 곁에 있는 여운휘. 

"웃기는 소리." 

"뭐?" 

"네 이름이 뭐냐." 

"……?" 

백무량은 질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여운휘는 싸우기 전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만 백무량 

은 순순히 답했다. 

"백무량이다." 

"난 여운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무량이 여운휘 

를 바라봤다. 그때 여운휘가 말했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이기도 하지만 인간 백무량도 있다. 옆에 있으려 했다 

면 불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큭큭! 그런가?" 

백무량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라는 마교의 무인은 남궁려희와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무림을 제패한 후에야 그녀에게 당당하게 청혼을 

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후회스럽다. 차라리 조금만 더 같이 시간을 보냈더라면…… 

꽤나 오랫동안 알아왔거늘 지금 생각해보니 딱히 추억이라고 할 것도 없 

다. 자조석인 웃음을 짓고 있는 백무량을 보던 남궁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 

다. 

"운휘. 그 검을 거둬 줄 수는 없겠나." 

"이유는?" 

"우리 누님이 그 남자를 사랑하네." 

그 말에 웃고 있던 백무량은 움찔해 버렸다. 생각도 못한 말이 남궁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적어도 남궁진에게 누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뿐 

이다. 바로 백무량이 사랑하는 남궁려희라는 여인이다. 

짝사랑인 줄만 알았다. 혼자만 그녀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 

니었던 모양이다. 그걸 지금에야 알다니…… 

"부탁이네." 

"굳이 죽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인대 무인의 싸움이었다. 목숨을 구걸 받는 것을 백무량 정도 되는 무인 

이 흔쾌히 받아들일 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알고 있네. 백무량." 

백무량이 고개를 들었다. 

"당신을 살아야 하오. 비록 당신이…… 흑색 기마대의 대주라 해도 나의 

누님에게 당신은 그저 백무량이니까." 

남궁진이 검을 꺼내어 들고는 자신의 어깨에 가져다 댔다. 

"당신의 목숨을 내가 사겠소. 비록 별 값어치가 없긴 하지만 내 왼팔로." 

"이, 이봐!" 

백무량의 눈이 커지는 순간 남궁진의 검이 왼팔을 잘라냈다. 피가 튀어 오 

르면서 남궁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왼팔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여운휘 

가 급히 다가와 어깨를 움켜쥔 채로 식은땀을 흘리는 남궁진의 혈도를 급 

히 찍었다. 

이대로 피를 흘렸다가는 죽게 된다. 

백무량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남궁진을 바라봤다. 그는 예전에 남궁진을 죽 

이려고까지 했다. 비록 흑색 기마대의 대주로서의 행동이라 하지만 그래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위해 남궁진은 왼팔을 내줬다. 

남궁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백무량을 쳐다봤다.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당신의 목숨은 내 꺼요. 마음대로 죽어서도 안 되고, 내가 죽으라 하면 죽 

어야 하오." 

"남궁진……" 

"내 이름은 남궁진이 아니오. 무진이오." 

백무량은 고개를 떨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그건 자신을 위해 

한 팔을 희생한 남궁진이라는 무인에 대한 결례다. 

말이 막힌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목이 메인다. 울음이 쏟아질 것 같 

다. 

"…… 고맙네." 

백무량은 투구를 떨어트렸다. 

무림맹과의 싸움이 끝난 지 보름 정도 지난 후다. 

마교를 정리하던 혈무린의 거처에 손님이 왔다. 

유설린과 여운휘가 그의 거처에 나타난 것이다. 혈무린은 보던 서찰들을 

접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어인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이제 마교의 교주는 유설린이 될 것이다. 혈무린은 부교주로 등극할 것이 

고. 말을 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말을 낮추셔도 됩니다." 

"하지만 마교의 주인에게 어찌 제가 말을 낮출 수 있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찾아왔어요." 

유설린이 살짝 웃더니 말했다. 

"저는 마교의 교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애초부터 마교의 교주가 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에겐 교주가 

될 힘이 없어요. 마교는 약육강식이에요. 저 같이 약한 사람이 교주가 되어 

서는 안 되죠." 

분명 유설린의 말은 일리가 있다. 

마교는 약육강식이다. 약한 사람이 자신의 위에 있는 것을 마교의 무인들 

은 참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무조건 반란을 일으키거나 그렇다는 것 

은 아니다. 더군다나 유설린의 곁에 여운휘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혈무린은 유설린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떠날 생각인 겁니까?" 

"예." 

"말려도 듣지 않을 테고……" 

"물론이죠." 

대답을 하면서 유설린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혈무린 또한 유설린을 

마주보면서 웃고야 말았다. 

처음부터 어딘가에 얽매인 채로 살아갈 인물은 아니었다. 

"후,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아버지를 꼭 닮았어." 

한 번 정한 것은 그 누가 말려도 밀고 나가는 것은 죽은 유백명을 꼭 닮았 

다. 혈무린이 포권을 취했다. 

"다음에 볼 때까지 건강하게." 

"아저씨도요." 

"아저씨? 하하!" 

혈무린이 웃었다. 꽤나 유쾌해 하던 혈무린이 웃음을 멈추며 진지하게 말 

했다. 

"걱정은 하지 않겠어. 저 사내가 있으니까." 

혈무린은 여운휘를 바라봤다. 저 사내만 곁에 있다면 유설린은 안전하다. 

그 누가 천하제일인인 여운휘의 앞에서 유설린에게 해를 끼치려 하겠는가. 

막 혈무린의 거처를 벗어나니 밖에는 남궁진이 서 있었다. 이미 여운휘에 

게 오늘 떠날 거라는 말을 들었던 탓이다. 그는 유설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는 여운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지금 가는가?" 

"그래." 

"몸조심하게. 뭐, 자네를 건드릴 정도로 간 큰놈은 세상에 없겠지만 말이 

야." 

그 말에 여운휘가 피식 웃었다. 남궁진은 외팔이 된 오른손을 여운휘의 어 

깨에 걸쳤다. 

"난 자랑스럽네. 무림 최고의 고수가 내 친구라는 게 말이야." 

말을 마친 남궁진은 천천히 여운휘에게서 멀어졌다. 

"잘 가게." 

"네 누님에게 혼례 할 때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 죄송하다고 전해줬으면 

하는 군." 

"후후, 어차피 나도 가지 못하네." 

남궁세가에서 파문 당한 남궁진으로서는 당연하다. 여운휘는 유설린과 함 

께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만 보던 남궁진이 급히 무엇인가를 생각해내고 외쳤다. 

"아! 어디로 갈 생각인가?" 

"해남도로." 

"해남도? 그 먼 곳까지 말인가?" 

해남도라면 중원 가장 아래쪽에 있는 섬을 말한다. 그곳에는 무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구파일방중 하나인 해남파가 있다. 

"왜 그곳까지 가는가?" 

"바다를 보여주기로 했으니까. 그곳은 사면이 바다니 지겹게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곳이 내 고향이거든." 

그 말은 처음 듣기에 남궁진은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여운휘는 

해남파의 인물이었던가? 해남도에서 왔다고만 했지 그 외의 것은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멈췄던 여운휘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남궁진이 재차 외쳤다. 

"무림에 돌아올 건가!" 

여운휘가 발을 멈추고는 몸을 돌려 남궁진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이지 

만 눈빛만은 왠지 모르게 따스하다. 

"이 여인이 무림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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