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137)

수호령(守護靈) (306) 만류귀종(萬流歸宗) 

천천히 여운휘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미 애초부터 순서는 정해져 있다.

"무림맹 회객당(會客堂) 당주(堂主) 용천승."

"……!"

모두의 얼굴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운휘의 입에서 나

온 용천승이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방금 전에 죽은 곽무환도 무림

맹에서 인지도가 있는 자지만 그와 지금 불린 용천승은 그 궤를 달리한다. 

용천승이라면 일전에 여운휘가 무림맹에 있을 때 만나본 적도 있는 자로 

핵심 인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무인이다. 그는 무림맹 내에 있는 모든 

비밀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다.

그런 그가 마교의 간자? 믿기 어렵다. 특히나 이 같은 일을 벌려 놓은 일

마의 힘을 믿을 수가 없다.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단숨에 제압하려는 듯이 여운휘의 앞에 서 있던 화산

일검(華山一劍) 풍천악이 재빠르게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용천승의 가문은 대대로 무림맹의 충복. 또한 용천승 

또한 내 제자라 잘 알고 있네. 그는 결코 무림맹을 배신할 자가 아니네."

"맞소. 저자가 진짜 용천승이라면 그렇겠지."

"하면……"

"가짜요."

그 한 마디 말에 풍천악은 급히 눈을 돌렸다. 용천승은 여운휘에게 다가온 

몇 명의 무인 사이에 껴 있었다.

용천승의 얼굴에는 미묘한 변화도 없다. 이 같은 일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

되었다는 것에 화가 나는 듯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풍천악이 여운휘를 

바라봤다.

"자네는 무림맹에 숨어들어 우리의 이름에 먹칠을 한 자. 그리고 용천승은 

무림맹의 핵심인물일세. 누굴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날 믿지 않는다면 무림맹은 더욱 큰 오욕을 뒤집어쓸텐데. 어차피 싸워봤

자 양쪽 모두 적지 않을 피해를 볼 터. 그러기에 나 또한 이런 제안을 하

는 거요."

조용히 여운휘를 바라보던 노인이 말했다.

"증거는?"

"당신이 더 잘 알텐데."

풍천악은 앞장서서 여운휘에게 왔던 무리에 섞여 있는 용천승에게 물었다.

"묻겠다."

"예, 그러하십시오."

"내 너에게 항상 말하던 말이 있다. 기억하느냐?"

"사람은 항상 겸양지덕(謙讓之德)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풍천악은 조용히 용천승을 바라봤다. 그러던 그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보았는가? 이 아이는 가짜가 아닐세."

"그 정도는 충분히 조사가 가능한 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다른 무엇으로 증명하라는 말인가. 자네의 말에는 분명 억지가 

있네."

"홀로 아는 신체적 특징 같은 건?"

여운휘의 말에 풍천악은 움찔하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무엇인가를 상기하고는 말했다.

"한 가지가 있네."

"확인해보시오."

자신 있다는 듯한 여운휘의 태도에 내심 풍천악은 불안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확인하고자 하는 게 없다면 이 앞에 있는 자는 가짜가 된다. 그렇

지만 그렇게 된다면……

"소매를 걷어보거라."

"예?"

"소매를 걷어보래도. 아무래도 네 팔에 있는 상처를 보여줘야지 믿을 듯 

하구나."

"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찔했던 용천승은 오른 소매를 걷어올렸다. 순

간 풍천악의 손이 움직이면서 그의 목젖을 움켜쥐었다. 

"컥!"

용천승은 급히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이미 목젖을 잡힌 상태다. 조금만 움

직이면 바로 숨이 끊어질 것이다. 풍천악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놈 내 제자가 아니구나."

"아, 아닙니다! 스승님 절 몰라보시겠습니까? 전……"

"닥쳐라 이놈! 그 녀석이 다친 곳은 팔이 아니라 다리였다. 그것도 모르는 

놈이 용천승이라고? 우습지도 않구나. 이 놈! 감히 우리 무림맹을 우롱한 

네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나 보자!"

풍천악의 손은 급히 용천승의 혈도를 집었다. 자결을 하려던 그의 행동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무너지는 용천승의 옷깃을 잡으며 풍천악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더불어 무림맹의 무인들 또한 침묵에 휩싸였다. 이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여운휘의 손에 들린 손에는 적게는 수십에서 많으면 수백에 달하는 

자들의 이름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중 몇 명이나 무림맹의 수뇌부일까.

이 일이 이렇게 밝혀진다면 정파 무림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풍천악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그 탓이다. 이 안의 내용에 있는 자들을 속

속들이 듣고 조사해 진상을 밝히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정파 무림

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을 안아야 한다. 

'때가 아니야. 이 놈은 완벽하게 준비했어.'

그 또한 사파를 싫어하는 마음은 그 누구 못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마음 속에서 자꾸만 외쳤다. 더군다나 앞에 있는 여운휘라는 사

내의 준비 또한 완벽했다. 이 정도로 무림맹 내부에 숨어 있는 간자들을 

알아차릴 정도라면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이 자료들은 녹포괴존의 손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을 풍천악이 알 

도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싸워 이긴다 한들 결코 정파는 조용하지 못할 것이다. 

외상보다 무서운 것이 내상이다. 안의 상처가 있는 이상 아무리 겉을 치유

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다.

물러나야 하지만 풍천악으로서는 그럴 권한이 없다. 종리회연 또한 마찬가

지의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맹주님이시다!"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고 알려진 무림맹의 맹주, 철산신권(鐵山神拳) 이환

(彛奐)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이는 이제 육십에 접어들었고 권사치

고는 평범한 체구를 지닌 인물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가 이십 년 전부터 

무림맹의 맹주를 맞고 있는 이환이다.

그가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 같은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성큼 성큼 

다가왔다. 여태까지 마교와의 싸움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마침

내 나타난 것이다. 종리회연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인들이 고개를 숙였고 

풍천악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했다.

풍천악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인 이환이 여운휘의 앞에 섰다.

그는 여운휘를 위부터 아래까지 찬찬히 훑었다.

"자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죽은 지 알았던 사람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내가 오래 무림에 나서지 않긴 했지만 죽은 줄까지 알았는가? 하하."

"뭐, 다른 의미에서도……"

여운휘는 말을 끌면서 이환을 바라봤다. 여운휘의 눈을 마주하던 이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종이를 나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는가?"

"……"

여운휘는 말 없이 종이를 이환에게 건넸다. 이환은 종이를 훑어보기 시작

했다. 그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가 풀어졌다. 종이 안에 너무나 이외의 인물

이 있었던 탓이다.

"맹주, 물러나야 하오."

옆에 있던 풍천악이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이 싸움은 결코 이익이 없는 싸

움이다. 싸운다면 득이 아닌 실을 안게 될 것인데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종리회연 또한 그걸 알고는 있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는 것이 석연치 않았

다. 그는 반대 의사를 보였다.

"물러난다고 해도 무림맹까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

지 흘린 피가……"

"군사."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의 노고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안이 썩어 버린 과일을 팔 수 

없는 법 아닌가."

"하, 하면 돌아가신다는 것입니까?"

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의 행보를 멈추고 무림맹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태까지 흘린 피가 얼마고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

데…… 종리회연은 어떻게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수그렸다. 

맹주다. 그의 명이 바로 무림맹의 후사다. 그리고 이환의 선택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이 상태로 싸운다 해도 이길 자신이 없다. 이미 무림맹 무인들

의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는 형편이다.

"…… 그리하겠습니다."

종리회연까지 마음을 정했으니 이제 답은 내려졌다.

"회군한다!"

종리회연은 피눈물을 삼키고 몸을 돌렸다. 이환은 조용히 무림맹의 무인들

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여운휘가 말했다.

"무림맹의 뒤를 치지 않겠소. 약속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거요."

"흥!"

종리회연은 크게 코웃음을 쳤다. 여운휘가 한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의 손에서 놀아난 듯한 기분 탓이다. 이환과 여운휘는 서로를 향해 가볍

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 몸을 돌린 이환의 귀에 여운휘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지금은 살려준다. 독패지존 좌운. 조용히만 있는 다면 평생 네 놈을 건드

리지 않는다. 하지만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넌 죽을 거다. 내 말을 우습

게 듣지 마라.]

이환, 아니 독패지존 좌운이라고 불리운 자는 말 없이 걸었다.

서찰에서 본 것은 바로 자신이 이름이었다. 그곳에는 적혀 있었다. 이환 

살, 독패지존 좌운 이라고. 

무림맹의 맹주를 독패지존 좌운이 죽이고 역용술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일마의 손이 간 것들이다. 

이유야 어쨌든 좌운으로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오히려 무림

맹과 마교의 싸움을 원했다. 그 두 세력의 힘이 약해져야 어떻게든 치고 

올라갈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운휘가 나타나 서찰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아니겠지 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서

찰을 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봤다. 그는 여운휘가 이렇게 모르는 

척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여운휘 또한 독패지존 좌운의 이름을 부를 생각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애

초부터 이런 상황을 위해 다른 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좌운을 위협했다.

비록 이 서찰의 내용에서 불리울 이름들이 가지고 올 충격은 대단했다. 그

렇지만 그렇다 해서 싸움이 멈출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여운휘는 좌운에

게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조용히 있어주는 대신 넌 무림맹의 맹주라는 가짜 지위를 이용해 물러나

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좌운은 느꼈고 그대로 행했다.

[잊지 마라. 잊었다가는 죽게 될 거다. 여운휘라는 이름을 평생 머리에 얹

고 살아라.]

좌운으로서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싸울 수가 없다. 일마의 목을 

들고 온 이상 여운휘가 그를 죽인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분명 여운휘는 강하다 하지만 자신조차 상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은 여운휘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끝났다. 모든 게.'

수십 년 간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깨어져 버렸다. 우습게도 이름도 몰랐던 

호위무사 따위에게……

"전군 회군한다!"

무림맹의 맹주로서의 좌운의 외침이 공터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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