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137)

수호령(守護靈) (304) 만류귀종(萬流歸宗) 

무림맹의 무인들은 급히 움직였다. 

지금은 기회다. 마교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 기회를 놓치고 않고 

치고 들었다. 예상대로 상부의 지시를 받지 못하는 마교의 무인들은 급히 

뒤로 물러섰고 무림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올라왔다. 원래대로

라면 밤이니 행군을 멈추었겠지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마교까지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한 달이 걸릴지, 아니면 평생이 걸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교까지는 왔지만 무림맹의 무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주면 줄수

록 마교가 정리된다는 것은 알지만 바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지금 이 상태로 격돌하면 피로에 젖은 무림맹

의 무인이 지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 때문에 무림맹과 마교는 서로 대치한 상태로 서로의 행동을 예의주시하

고 있었다.

그 시간 유설린은 엄백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비록 일마가 세운 허수아비에 불과했지만 

유설린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게 만든 것이 이 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다. 이 날을 꿈꾸었다. 이렇게 엄백린의 앞에 당당히 서서 그에게 천벌을 

내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엄백린은 예전에 알던 그가 아니다. 완전한 

폐인이 되어 피골이 상접한 엄백린은 침상에 누운 채로 유설린을 바라봤

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모양이다.

"소교주님 아마도 일마가 손을 쓴 모양입니다."

옆에 있던 우문학의 말에 유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막상 눈으로 보니 마음도 아프다. 이렇게 

변해 버리니 유설린으로서는 그 어떠한 결정도 쉽사리 내릴 수가 없었다.

"소교주님."

우문학은 어떠한 결정을 내리라는 듯이 그녀를 불렀다. 유설린은 주먹을 

꼭 쥔 채로 눈을 감았다.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상념이 오간다. 이 자 때

문에 스스로 힘든 길을 걸었다.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고, 그 때문에 자신뿐

만이 아니라 여운휘까지도 수많은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가둬요. 마교 구석에 감시자 하나를 붙여서요. 죽을 때까지 옆에서 수발을 

들어줄 시녀 하나와."

"알겠습니다."

유설린의 마음을 아는 우문학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커 버린 딸을 바라

보는 심정이다. 꽤나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우문학은 유설린의 옆에 서서 

같이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둘의 옆에는 혈무린과 사욱천도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 시진 안에 격돌이 벌어

질 겁니다."

"시간을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겠지요."

사욱천의 말에 유설린은 가볍게 대답했다. 태연한 듯한 유설린의 대답에 

사욱천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운휘가 아직도 오지 않았습니다."

"알아요."

"지금쯤 왔어야 정상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났다. 사욱천은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여운휘가 죽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설린은 고개를 저었다.

"올 거예요."

"하지만……"

그때 사욱천의 어깨를 우문학이 잡았다. 몸을 돌리고 있는 유설린이 모르

게 우문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다. 사욱천은 그

저 입맛만 다셨다.

우문학 또한 여운휘가 너무 늦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일까. 우문학 또

한 여운휘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여운휘이기 때문이다.

'죽을 놈은 아니지.'

결코 죽지 않을 자다. 그 어떠한 곳에서도 살아 남을 것이다. 유설린을 위

해서라면.

지금 마교는 상당히 분주하다. 밖에 있는 무림맹도 문제지만 내부의 정리

도 급하다. 남아있는 일마의 잔당들을 속출해내고 처리하고 있다. 하루 이

틀만에 될 일은 분명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급히 진행중인 

것이다.

혹시나 있을 기습에 유설린 근처는 현재 철통같이 무인들이 지키고 서 있

다. 그녀는 그런 무인들 틈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한 무인이 허겁지겁 

사욱천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흑색 기마대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어디서?"

"저기 그게…… 지금 바로 앞에 찾아왔습니다."

"뭐?"

사욱천은 주변에 있는 무인들을 제치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

백린의 거처 앞에는 흑색 갑주를 입은 무인들이 있었다. 실제로 이렇게 대

면해 본 것은 사욱천 또한 처음이다. 사욱천의 눈이 맨 앞에 있는 흑 자가 

적혀 있는 자에게로 향했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

분명하다. 이 위압감, 그리고 가슴에 적혀 있는 글씨. 말로만 들었던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검은색 투구 안에서 쉰 듯한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사욱천이오?"

"그렇네."

"내가 흑색 기마대의 대주요."

"알고 있다."

말을 하면서도 사욱천은 손을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했다. 흑색 기

마대는 마교 최후의 보루다. 그렇지만 또한 조사한 바로는 일마의 수족일 

수도 있다는 거다. 확실하지 않은 지금 섣부르게 다가갈 수 없다.

사욱천의 뒤를 따라 유설린과 혈무린, 그리고 우문학 남궁진이 모습을 드

러냈다. 뒤따라 나타난 자들을 쳐다보던 백무량의 눈이 남궁진에서 일순 

흔들렸다. 갇혔다가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구해준 모양이다.

"묻지. 네 놈은 일마의 수하냐?"

"일마의 제자였지."

"역시인가!"

말을 마친 사욱천이 도를 뽑아들었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자들도 흑색 기마대들이다. 그 실력은 결코 우습지 않다. 이쪽의 숫자

가 비록 압도적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쉽사리 상대할 수 없다.

그때 백무량이 손을 들어올렸다.

기이익 하는 쇠의 울림과 함께 들어올린 손에 사욱천은 도를 휘두르려던 

손을 멈췄다.

"일마와 관련 된 것은 나뿐이오. 흑색 기마대는 마교의 보루. 내분으로 깨

지게 할 수는 없을 거요."

사욱천은 천천히 도를 내렸다. 백무량의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다. 그는 자

기 자신만을 가두고 수하들을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더군다나 사

욱천 또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 

흑색 기마대는 어떠한 의미로는 마교의 자존심이다. 그런 단체를 자신이 

깬다는 것도 뭔가 우스웠던 것이다. 

"대주!"

뒤에 있던 백 자가 적혀 있는 무인이 급히 소리쳤지만 백무량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백무량이 차갑게 말했다.

"개죽음 당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

"하지만 대주 저희는……"

"너희들이 누구냐. 흑색 기마대다. 흑색 기마대는 마교와 싸우라고 있는 단

체가 아니야."

백무량이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흑색 기마대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하지 마라. 비록 내가 일마의 수

족처럼 움직였지만 마교를 향해 검을 휘두른 적은 없다. 그것이 바로 흑색 

기마대의 대주라는 내 자부심이였다."

일마의 제자로 수많은 일들을 행했지만 정작 모든 것은 마교를 위해서였

다. 일마의 야심에 따라 움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교를 향해 이빨을 들이

민 적은 없었다. 만약 일마가 무림맹 편에서 마교를 박살내려고 했다면 앞

장서서 막았을 것이다.

"잊지 마라. 너희들이 바로 흑색 기마대였다는 것을."

말을 마친 백무량이 다시금 사욱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미 사욱천은 마

음을 정한 상태였고 백무량 또한 그것을 알아차렸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뭔가."

"여운휘…… 그 놈이 살아 있소?"

"…… 그래."

순간 망설였지만 사욱천은 살아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모습

에 백무량이 미심쩍다는 듯이 쳐다보자 우문학이 나섰다.

"지금 그는 일마와 싸우러 갔소. 곧 돌아오겠지."

백무량은 잠시 서서 우문학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학의 

말대로 여운휘가 일마와 싸우다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이미 백무량은 그의 

상대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그가 돌아오면 겨루고 싶소. 그것이 내 목숨의 값이오."

"그건 아직 대답을 할 수가 없겠군. 적어도 그걸 정하는 것은 여운휘일 테

니까."

"아뇨. 휘라면 당신과 싸울 거예요."

애매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사욱천의 뒤에 있던 유설린이 나섰다. 그녀의 

말에 백무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오. 내가 본 그는 결코 누군가를 피하는 자가 아니었

으니까."

"그럼 여운휘가 올 동안 자네를 가두겠네."

"마음대로. 하지만 내 무장은 벗기지 않아 줬으면 하는군."

사욱천이 가볍게 뒤에 있는 수하들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수하 몇 명이 

달려와 백무량을 데리고 어딘 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라지는 백무량을 남궁진은 왠지 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가 모습을 감춘 후에야 사욱천이 말했다.

"백가장의 백무량이 흑색 기마대의 대주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습니다."

"백가장에서 인재를 냈군. 아쉽게도 뜻이 맞지 않아 적이 되긴 했지만 대

단한 무인이야."

그렇다, 이미 유가 쪽에서 백무량의 정체를 알아냈던 것이다. 

사욱천은 몸이 근질거렸다. 천성이 무인이다. 강한 상대만 보면 우선은 도

부터 뽑아 보고 싶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정도로 젊지 않다는 것을 

사욱천은 다시금 느꼈다.

"가시지요 소교주님."

소교주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던 사욱천은 다시금 달려오는 수하의 행동

에 몸을 돌렸다. 혈무린의 수하로 성벽 위에서 밖을 살피던 자다. 그가 급

히 부복했다.

"무, 무림맹이 움직입니다!"

"오냐, 때가 왔다 이건가."

혈무린과 사욱천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무림맹과

의 싸움이다. 그에 반해 구석에 가만히 있던 우문학은 뭔가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어서 와야 할 터인데.'

유설린만큼이나 여운휘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우문학이다. 

지금 판단하기에 싸운다면 마교 쪽이 우세하다. 그들에게는 혈교의 힘도 

있고, 유가의 힘도 존재한다. 싸움에 지친 무림맹을 이기는 것은 거의 확실

하다. 그렇지만 여운휘는 더 이상 이 싸움을 끌 생각이 없었나보다. 

그가 부탁했던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여운휘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성벽 쪽을 향해서 걸으면서도 우문학은 여운휘가 어서 나타나기를 빌었다.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우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더 이상 상황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

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선은 피를 본다면 그 후부터는 분명 난전이 될 

것이다.

성벽 위에 선 채로 혈무린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또한 싸우고 싶은 것

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평(和平)을 하자고 보낸 서찰은 그대로 무시당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마교다. 그러면서 갑자기 싸움을 그만두자고 하니 무림

맹 쪽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혈무린은 멍하니 다가오는 무림맹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이제는 더 이상 

싸움 없이 이 일을 끝낼 수 없다. 

'피를 봐야겠군.'

마교의 수많은 무인들이 죽을 것이다. 무림은 약 사십 년 전으로 퇴보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싸워야 한다면 그 어떠한 것도 감수하고 이겨야 

한다. 진 쪽은 다른 쪽의 지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사방을 살피고 있던 우문학이 누군가를 발견했다. 마교의 성벽과 다가오는 

무림맹 사이를 가로지르며 한 사내가 유유히 걸었다. 마치 사방의 살기 어

린 상황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이 천천히 걷는 사내의 모습을 

본 우문학이 소리쳤다.

"여, 여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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