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37)

수호령(守護靈) (302) 만류귀종(萬流歸宗) 

검이 맞닿는 순간 일마의 눈썹이 꿈틀했다. 겨우 검을 맞댄 것뿐이지만 이

것으로도 여운휘의 변한 실력이 느껴진 것이다. 여운휘의 실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방심하면 안 되겠군.'

잘못했다면 예전의 그를 생각하고 방심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봐주지 않고 검을 움직였다. 만약 방심했다면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운휘의 검이 약점을 노리고 파고들었을 게

다.

검을 맞댄 채로 여운휘를 노려보던 일마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자리를 여운휘의 손이 흔들고 지나갔다. 

'뭐, 뭐야?'

검을 맞대고 있던 손에서 스르륵 힘이 풀려 나가버렸다. 무인의 직감으로 

급히 뒤로 물러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일장을 고스란히 받

았어야 했다. 일마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이 같은 일이 괜스레 벌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제야 일마는 땅을 봤다. 

땅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넘겼는데 그 

선을 따르다보니 알 수 없는 그림이다. 

"진법?"

그렇다. 이곳은 진법의 간격 안이었던 듯 하다. 하지만 진법이 가동되는 것

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여운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일마는 몸을 움직였다. 혹시나 하고 

한 가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도 진법이 가동되고 있지 않다. 그

렇다면 진법이 가동되는 순간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때를 일마는 

여운휘와 검을 맞대는 그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검을 맞대자마자 일마는 뒤로 피했다. 주변의 기류가 알 수 없게 흔들렸다. 

일마는 뒤로 물러선 채로 씨익 웃었다.

"사술(邪術)이로군!"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자신을 흔든 다음에 베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모양이다. 사술은 사람을 흔든다. 그 때문에 약점

이 노출되어 싸움에서 목숨을 잃곤 하지만 알아버린 지금은 아니다. 더군

다나 일마 정도 되는 무인이 사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할 리가 없었다.

"사술? 우습군."

일마는 여운휘의 단호한 대답에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곧 태연함을 유지했

다. 분명 여운휘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

과 검을 맞댈 정도로 큰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변함 없다. 사술인 것이 

분명하다.

여운휘는 검을 들어올렸다. 오행검법을 모두 익혔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미리 진법을 쳐놓고 그 위력을 증가시켰다. 일마는 강하다. 

오행검법을 완벽하게 이겼다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만한 상대가 아

니다.

파악!

일마의 검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여운휘는 검을 비틀면서 그 기운을 

쳐냈다. 검에 검기가 닿는 순간 입술이 절로 비틀렸다. 묵직한 충격에 여운

휘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서는 순간 일마의 몸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

다. 

검이 움직였다.

캉!

맞닿는 것과 동시에 일마의 손이 검을 놓으며 쌍장으로 여운휘의 배에 와 

닿았다. 여운휘는 미리 알아차리고 뒤로 몸을 날렸다. 일전에도 이 장법 한 

방에 여운휘는 일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검과 동시에 적절하게 파고드

는 용혈장(龍血掌)이 허공을 격타했다.

펑!

강한 충격파에 여운휘는 뒤로 물러섰지만 결코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튕겨나가면서 여운휘는 소매 속에 감춰둔 암기를 던져냈다. 다섯 

개의 암기는 정확하게 백회혈(百匯穴)부터 하음혈(下陰穴)까지 일렬로 날아

들었다. 그 어느 곳도 암기에 적중된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게 하는 사혈

들이다.

그렇지만 역시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모양이다. 허

를 찌르기도 했고 막기도 까다로웠을 터인데 일마는 가볍게 검을 휘두름으

로서 시간차 없이 날아드는 암기 다섯 개를 쳐냈다.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올 듯 하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 사사로운 말 따위는 필요 없다.

말 없이 서로의 검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 두 개가 공중

에서 불꽃을 만들면서 서로 튕겨나갔다. 일마의 얼굴은 말로 형용하기 힘

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

겨우 저 만한 나이대의 무인이 자신에게 뒤쳐지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

다. 그것도 일년 전쯤에는 상대도 되지 않았던 자다. 도대체 무슨 기연이 

있었기에!

일마의 손이 움직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일마의 손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손바닥이 떨어져 내리는 듯 하다. 온 하늘을 뒤덮은 손이 마치 

빗줄기라도 된 마냥 쏟아져 내렸다. 여운휘는 일마의 위력적인 공세를 피

하기 위해 신형을 뽑아냈다.

뒤로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솟구치면서 그 공세 사이로 파고 든 것이다.

쉑쉑!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소름이 오싹 돋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그 일

장 일장들 모두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다. 그런 위력적인 공세 사이로 파고

든다는 것은 웬만한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여운휘는 그런 행동을 취했고 공세 사이를 파고들어 피해내 버렸

다. 일마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노옴!"

이번에도 일마의 손바닥이 마구 갈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소 

다르다. 이번에 펼쳐진 것은 금나수다. 그것도 소림의 무공인 미륵삼천해

(彌勒三天解)가!

여운휘는 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결국은 옷소매가 일마의 손에 붙들렸다. 

재빠르게 빠져 나오기 위해 소매를 흔들었지만 기회를 잡은 그는 결코 이

를 쉽게 버리지 않았다. 

안으로 파고든 일마의 어깨가 여운휘의 가슴을 받았다. 여운휘의 몸이 공

중을 날았다. 그런데 일마의 얼굴이 결코 밝지 않다. 은연중에 자신의 힘이 

반감된 것을 아는 탓이다.

이해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 주변의 대자연의 기운이 이리 흐른단 말

인가. 누군가가 억지로 흔들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마조차도 대

자연의 기운을 바꾼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다. 

이빨을 꽉 깨문 일마는 공중에서 빙글 도는 여운휘를 향해 그대로 몸을 날

렸다. 그의 쌍장에서 장법이 터져 나왔다. 여운휘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그 장법들을 피해냈다. 땅에 내려서기가 무섭게 여운휘가 치고 나왔다.

검이 일마의 옆구리를 슥 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일마는 그대로 여운휘의 백회혈을 내리쳤다. 

펑!

여운휘가 옆으로 피해내자 손에서 뻗어 나온 장력이 그대로 땅을 터트렸

다. 사람의 머리가 그대로 맞았다면 으깨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력이다.

일마는 뭔가 허한 옆구리로 슬며시 손을 내렸다. 뭔가 끈적한 것이 손에 

묻었다.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미 몸은 알고 있다. 스치긴 했지만 베인 것이

다. 이런 부상을 입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멸감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뜩이나 죽

여버리고 싶었던 놈이다. 그런 놈이 말도 안 되는 사술로 자신을 흔들고 

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그런데…… 사술이 맞는 걸까?

사술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너무 완벽하다. 사술이라기 보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무공을 익힌 자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허점도 없고, 그렇다고 사술을 

펼치면서 있을 법한 대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운휘가 어깨에 맞으면서 가볍게 흘린 피를 쓱 닦아내는 것을 보면서 일

마는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사술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것을 어떻

게 설명해야 할지 답이 내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운휘가 펼치는 것이 사술인지 아닌지 확답

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 지금의 그는 일마가 우습게 볼 수 없는 무인이

다. 

"큭, 크크큭!"

이것저것 생각을 하던 일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부터 상대에게 이렇게 

얼어붙었던가. 더군다나 앞에 있는 놈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다. 거

기다가 자신이 인생을 걸었던 모든 것을 무너트린 놈이기도 하다.

비록 여운휘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일마 자신이 그 아래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너무나 실력이 늘어 당황했을 뿐이지 제대로 싸운

다면 결코 일마가 밀리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고 천천히 기회를 본다. 그리

고 벤다.

"강해졌군."

"이길 수 없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겠지."

"흐흐!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방금 말했잖아."

확고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 저 어린놈이 자신을 이길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너무 과신한다고 생각했다.

"넌 내 상대가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천하제일고수니까."

"그렇기에 널 이기려 온 거다. 천하제일이라는 호칭 따위 나에겐 필요 없

다. 내가 천하제일이 되려고 하는 건 한 여인을 위해서다. 그녀를 위해서는 

천하제일이고 싶으니까."

차가운 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쳤다. 사람의 심장이 오그라들게 할 정도의 

추위다. 그렇지만 둘은 미동도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먼저 여운휘가 가볍게 땅 위로 발을 끌면서 움직였다. 일마 또한 여운휘의 

움직임에 맞춰 원을 그리며 걸었다. 둘의 눈이 공중에서 부닥쳤다. 이미 상

대의 실력은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다. 이제 격돌한다면 둘 중 하나는 죽

는다.

"난 무적이야 애송아……"

그 말과 함께 일마의 검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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