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령(守護靈) (299) 급변(急變)
급변(急變)
일마는 좌운을 바라봤다. 자신의 명에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한동안 바빴던 모양이다. 한 눈에 봐
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좌운이 천천히 말했다.
"사무린의 거처를 알아냈네. 산동지방으로 향하는 듯 하더군."
"산동?"
"아무런 소란도 없이 조용히 움직여 찾기 힘들었네. 빼어난 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찾아내는 것
도 불가능했을 걸세."
"그래. 그렇다면 여운휘는?"
그 말에 좌운은 침묵했다. 좌운 또한 사무린보다는 오히려 여운휘를 찾는데 모든 신경을 쏟았
다. 사무린의 행보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여운휘의 생사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더군
다나 유가의 힘의 크기도 완벽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여운휘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후……"
더 이상 닦달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안 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
은 어떻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지만 그 외의 변수가 너무 많다. 원래대로라면 그 모든 변수를
제거한 후 일을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림맹과 마교의 전면전을 일으키기 위해 소모된 시간
이 자그만치 몇 년이다. 또 다시 그런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
"유설린의 행보도 못 알아냈을 테고. 그렇다면 유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냈나."
"유가의 힘 또한 정확히 말할 수 없네. 최악으로 판단한다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하나 정도
로……"
"제길."
일마는 짧게 말을 마쳤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무시하려고
해도 왠지 모를 불안함이 무인의 감을 건드렸다. 여운휘는 분명 강한 무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일마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몇 십 년 후라면 모를까 지금의 여운휘라면 우습게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왜일까 이 불안한 감정은……
일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 밖을 바라보며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무린을 잡아와."
"알겠네. 그리 하지."
좌운이 사라진 후 일마는 조용히 주변을 바라봤다. 자꾸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했지만 일마는
애써 그 감정을 무시했다.
'내가 누구냐. 난 일마다.'
스스로에게 자문을 던진 그가 마침내 창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살기 어리게 빛났다.
'난 천하제일이다.'
혈무린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맴돌았다.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내부에서의 도움이었다. 그렇기에 사욱천에게 위험을 감수하
고 돕기를 청했고, 일은 성공했다. 사욱천은 전 마교 교주인 유백명을 따랐던 무인이다. 유설린
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이미 돌아섰다고 볼 수 있다.
혈무린이 비밀스럽게 만든 자리에 새로운 인물 하나가 늘었다. 사욱천이다.
"이 자리까지 오느라 다들 수고가 많았네."
말을 마친 혈무린이 유설린과 여운휘를 바라봤다. 그 둘의 고생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고작 두 주먹으로 이 정도까지 일을 크게 만들어 놓은 두 명이 대견했다.
"소교주, 그리고 여운휘 특히 둘이 말일세."
"고마워요. 하지만 혈 교주님이 없으셨다면 저희 또한 이 정도까지 올 수는 없었겠지요."
"하하! 그건 저 사내 때문이지."
여운휘를 슬쩍 띄어 준 혈무린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때가 온 것이다.
"그에게 연락이 왔네."
그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일마다. 그렇지만 적진에서 일마라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없었기에 미
리 그렇게 호칭을 정했다. 일마에게 연락이 왔다는 말에 모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말하더군.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고."
"슬슬 무림맹과 마교의 힘을 뺏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철사자 철비상의 말에 혈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문학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유가는?"
"준비 중입니다. 이미 근처에 와 있습니다."
상인 세력으로 변장한 유가의 무인들이 이미 마교 근방으로 와 있다. 일이 벌어지면 당장에 움직
일 수 있게 그들은 준비 중인 것이다.
수많은 무인들이 지금 혈무린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욱천 또한 가볍
게 말했다.
"내가 나서면 마교의 반 정도가 회유 될 것이오. 이미 그는 마교 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으니 어
렵지 않을 거요. 문제는 그가 마교 내부에 있다면 일이 힘들어진다는 거겠지."
마교에 있는 무인들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일마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일마가 어떠한 자
인가. 무림에서 전설로 알려지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곁에 있는데 쉽사리 마음을 돌린다는 것
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일마를 밖으로 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
는 그런 그를 어떻게 끌어낸다는 것인가.
그리고 또한 일마의 뒷처리도 중요하다. 그가 살아만 있다면 마교는 반드시 흔들린다.
"그는 내가 상대할 거요."
"자네가?"
여운휘가 나서자 사욱천이 되물었다. 여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욱천은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토록 어렸던 아이가 지금은 천하제일의 고수인 일마를 상
대하겠다고 자신 있게 나섰다.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천하제
일이라는 이름 탓인지 여운휘가 일마의 적수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강해. 혼자서는 무리야."
"알고 있소. 그와는 한 번 싸워본 적이 있으니 누구보다도 그의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있소."
"그와 싸워봤다고?"
처음 들어보는 말에 사욱천의 눈이 커졌다.
일마와 싸우고도 사지가 멀쩡하게 있는 것을 보니 혹시나 하면서 여운휘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여운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당했소. 꼴사나울 정도로."
"흠…… 그런데도 싸우겠다는 건가? 자네가 강해졌다 해도 무리 아니겠는가."
꼴사나울 정도로 당했다면서 혼자 싸우겠다니 사욱천으로서는 말리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여운휘는 단호했다.
"그때는 당했지만 이제는 아니오. 전에 당했다 해서 오기로 이러는 것도 아니고. 나에겐 중요한
게 많으니까. 지켜야 할 것도 있으니까. 결코 죽지 않을 거요."
여운휘의 자신 있는 대답에 사욱천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욱천은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것이 여운휘라는 사실을. 사욱천은 화두를 전환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를 불러낼 건가."
"내 이름으로 서찰을 한 장 보낼 거요. 그에 대한 걸 알고 있고, 또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유
가의 세력들도 신경 쓰일 거요. 분명히 나오겠지. 그럼 내가 그를 제압할 거요. 나머지는 맡아주
시오."
"잘 되길 빌지."
그 외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하며 혈무린은 회의를 마쳤다. 이제 슬슬 거사일이 되어 버린 것이
다.
"서찰은 이삼일 후에 보내겠소."
"그렇게 하게. 유가도 그렇고 이것저것 움직이라면 삼일 후가 좋겠네."
여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바라만 보던 혈무린이 다소 풀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면 무얼 하겠는가. 상당히 오랫동안 힘들었을 텐데."
"여행을 갈 거요."
"여행? 그거 좋지. 어디로 갈 겐가?"
"바다."
"바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혈무린이 되물었다. 여운휘가 가볍게 손짓으로 유설린을 가리
키면서 말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후후, 이럴 때도 한 사람 생각 뿐인가."
"그 한 사람이 내 삶의 이유요."
그 말에 유설린이 활짝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절로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이런 인연도 참으로
드물 것이다. 아니, 그걸 떠나서 이렇게 한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목
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에
랴……
거사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마교를 가지고 겨루는 일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