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37)

수호령(守護靈) (293) 일마(一魔) 

백무량은 마교 깊숙한 곳에서 몸을 감추고 있었다. 흑색 기마대는 한동안 

모습을 감췄었다. 무림맹에게 공포의 대상인 흑색 기마대가 가만히 있던 

것은 다 일마 때문이다. 그는 흑색 기마대라는 자신의 패를 쓰고자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한동안 움직일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백무량은 자신만의 세상

에 잠겼었다. 무공을 익혔고, 한동안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도 했다. 그

런데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인 남궁려희 때문이 아니

라 오히려 적의를 두고 있는 한 사내 탓이다.

여운휘다. 그와 승부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 백무량은 내내 마음에 걸렸

다. 이제는 다시 상대할 수 없는 상대. 이제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 

유일하게 호적수라고 인정했던 사내의 죽음이 너무나 볼품 없었기에 백무

량은 애써 여운휘를 잊으려 했다.

헌데, 얼마 전 만난 일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여운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믿기 어렵다. 분명 그 상황이었다면 의당 죽어야 

당연했다. 그런데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니 쉽사리 믿기 어려운 건 어찌 보

면 당연할 수도 있다.

"대주."

"음?"

백무량은 자신을 부르는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뒤에 서 있던 수하가 조심

스럽게 말했다.

"슬슬 움직이셔야 할 듯 합니다." 

"아아. 알고 있다."

백무량은 흑마에 탄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 봤다. 지금 그는 일마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까지 나왔다. 얼마 후 이곳에는 큰 싸움이 벌어

질 것이다.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이 벌어지면 곧 흑색 기마대에 연락이 올 

것이고 어느 정도 후 움직일 예정이다. 

그의 눈이 뒤로 향했다. 백무량과 마찬가지로 흑색 갑옷에 흑마를 탄 무인

들이 꽤나 많다. 여운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번에 격돌하게 될 무림맹 무인들의 궤멸

이 그 목표다.

아래쪽을 바라보던 백무량의 눈에 붉은 기가 언뜻 보였다. 싸움이 시작 된 

지 반 각이 흘렀다는 신호다. 백무량이 손을 치켜들었다.

미리 사전에 이야기 해 둔 것이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거늘 흑색 

기마대는 백무량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흑마가 거친 경사를 가로지르며 

전장을 향하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달리던 백무량의 눈에 전장이 들어왔다. 꽤나 치열해 보인다. 싸

움은 백중지세, 그렇지만 곧 승부가 갈릴 것이다. 완전히 일류고수로 구성 

된 흑색 기마대의 등장은 싸움의 판도를 바꾸기 충분하다.

백무량은 창을 꺼내서 높이 치켜들었다.

"와와!"

그리고 그러한 백무량의 모습에 흑색 기마대의 대원들은 창을 들고 달려내

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던 백무량의 눈에도 싸움의 분위

기가 확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흑색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무림맹의 무인들의 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열을 이탈하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물러서려는 무림맹의 무인들의 움직임을 멈추게끔 했

다. 백무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창."

옆에 서 있던 백무량의 수하는 그의 손에 얇은 창 하나를 건넸다. 백무량

은 말의 아랫배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지만 덩치가 커다란 흑마는 성큼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의 관경이 흐릿해 질 정도의 속도다.

그 상태로 백무량의 손이 움직였다.

파아앙!

창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전장 한 가운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

고 그 창은 아까 무림맹의 무인들을 독려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의 가슴에 

박혔다.

"컥!"

말에 타고 있던 무인은 그대로 땅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보나마나 즉사

다.

백무량은 그대로 말 안장에 차여 있던 창을 꺼내들었다. 아까 와는 다르게 

꽤나 묵직해 보이는 창이다. 그의 흑마가 미친 듯이 무림맹 무인들의 가운

데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웅, 붕!

창이 한 번 휘둘릴 때마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다. 흑색 창은 사람의 약

점들을 노려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누군가가 백무량의 가슴에 적혀 있는 

흑(黑) 이라는 글자를 본 듯 하다.

"흐, 흑색 기마대의 대주!"

백무량의 눈이 힐끔 소리친 상대를 보더니 곧장 창을 움직였다. 창이 목을 

관통하고는 곧 빠져나왔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무림맹 무인들의 사기가 꺾였다. 

반면 마교의 무인들은 기세를 틈타 무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가운데로 

나타나 안을 휘젓고 있는 흑색 기마대와 앞으로 무작정 치고 들어오는 마

교의 합공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록 전부를 건 싸움은 아니라 하지만 이 싸움에서 패하게 되는 쪽은 막심

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하다.

우선적으로 무림맹 입장에서는 이곳을 빼앗기면 죽을 고생을 해서 빼앗은 

지역의 일부를 포기하고 물러나야 한다. 반면 마교로서는 이곳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곳까지 빼앗긴다면 마교의 힘이 두 개로 분산되어 버린다.

무인들 사이를 미칠 듯이 휘집고 다니는 백무량의 앞을 마침내 누군가가 

막아섰다.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무인이 흑마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미친 듯 

창을 휘두르던 백무량도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노인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상당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기억도 난다.

백무량은 억지로 바꾼 컬컬한 음성을 내뱉었다.

"우린 구면이군."

"알아주니 고맙군 그래. 누남천이라 하네. 두 번 정도 만났지."

"광한검."

일전에 만났던 기억이 난다. 여운휘를 궁지에 몰아 넣었을 때 이 노인이 

얼마의 무인들을 이끌고 그를 구해냈던 적이 있다. 비록 광한검이라면 무

림맹 쪽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지만 백무량으로서는 우스웠다.

"날 막겠다고 선 것이냐."

"물론. 비록 내가 자네의 상대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피해

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말이네."

"패기 하나는 알아 줄만하군."

어떻게든 자신을 피하려는 주변의 무인들보다는 훨씬 마음에 든다. 비록 

백무량이 엄청난 고수라고는 하지만 무림맹의 무인들 또한 나름대로 실력

이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백무량의 창 한 번에 쉽사리 무너진 것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려고 한 탓이다. 

백무량은 더 이상 말 없이 묵빛 창을 꼬나 쥐었다. 반면 누남천은 평범해 

보이는 검을 꺼내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백무량이다. 말 등에서 공중으로 도약한 그의 창이 아래

를 향해 내리 꼽혔다. 누남천은 옆으로 움직여 창을 피하면서 그대로 하늘

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어느새 회수된 창이 누남천의 어깨를 노

리고 떨어졌다.

'이런!'

누남천은 급히 검을 거두면서 뒤로 물러섰지만 착지한 백무량의 창이 재차 

움직였다.

쉬익!

앞가슴 쪽을 스치고 지나간 창 탓에 누남천의 옷 앞 부분이 벌어졌다. 조

금만 늦었다면 잘린 것은 옷이 아니라 가슴이었을 게다. 누남천은 어떻게

든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백무량의 창이 가볍게 검을 옆

으로 밀어내며 그대로 찔러 들어왔다.

누남천은 급히 발등으로 창의 옆면을 쳐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충격에 

넘어지고 만 것은 누남천이었다. 발에 인 충격 탓에 옆으로 구르면서 창은 

피해냈지만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초식의 운용도 그렇지만 힘도 밀린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누남천이 백무량

보다 나은 게 없다는 말이다. 

"어르신!"

백무량은 누남천의 옆으로 날아든 사내를 힐끔 살폈다. 

표향천투 운빈이다. 그는 누남천 옆에 서서 급히 백무량을 살폈다. 앞가슴

에 붙어 있는 흑이라는 글자에 그는 내심 놀란 눈으로 백무량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이곳에는 척마 신풍대도 와 있는 모

양이다. 허기야 누남천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짐작한 상태였다. 

운빈이라면 여운휘와 함께 척마 신풍대의 지객을 맡고 있었던 자 중 하나

다. 

나뭇잎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자, 그렇지만 백무량에게는 십초지적

도 되지 않는다.

누남천에게 운빈이 말했다.

"물러서라는 명령입니다! 지금 당장 척마 신풍대를 뒤로 빼야 합니다!"

누남천 또한 알고 있다. 비록 싸우고자 한다면 맞서 싸울 수도 있다. 그렇

지만 지금 상태로 보면 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많은 피해를 입게 될 것

이다. 차라리 후퇴하는 것이 낫다.

그렇지만 섣불리 후퇴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이 흑색 기마대 탓이다. 아

무리 도망친다 해도 말을 타고 쫓아오는 이들을 피할 수는 없다. 적지 않

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누남천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 척마 신풍대의 일부는 이곳에 남는다. 남은 자들은 도망치라고 하게. 

우리가 잠시 시간을 벌 거라고."

"하지만 어르신!"

"이대로 도망치면 모두 죽어. 무인이라면 등을 보이면서가 아니라 당당하

게 싸우다 죽고 싶네. 자네는 이해하겠는가?"

운빈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누남천의 옆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 기마대의 천객인 백산이다.

"나와 어르신이 이곳을 맡지. 자네와 하 소저가 나머지 척마 신풍대를 이

끌고 도망치게."

운빈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백산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듣고 옆에서 바로 나섰다. 그에 

반해 운빈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못 이기는 척 백산의 말을 받아들였다.

'젠장!'

운빈은 고개를 꾸벅하고는 뒤로 사라졌다. 

누남천은 검을 꺼내든 채로 백무량에게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우이."

"어차피 도망친다 해도 무림맹은 끝이다. 너희 같은 무인이 죽고 저런 자

들만 남는 무림맹이라면…… 흑색 기마대가 없는 마교로도 충분하니까."

"하하! 무림맹에는 인재가 많네. 비록 우리가 이곳에서 죽는다 한들 상관이 

없을 정도로 말일세."

말을 마친 누남천은 백산을 슬쩍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지 알면서 선뜻 나선 백산이 고마울 뿐이다. 

"간다!"

누남천이 일갈과 함께 검을 내질렀다.

무림맹의 무인의 일부를 제한 나머지는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마교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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