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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121/137)

수호령(守護靈) (292) 일마(一魔) 

          

                                     일마(一魔)

와락!

손에 들린 종이가 구겨졌다. 안에 있던 내용을 읽던 일마가 마침내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해 버린 것이다. 그의 양미간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마가 고개를 돌려 좌운을 바라봤다. 이미 서찰 안의 내용을 아는 좌운으

로서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가 비록 쌍존 중 하나인 독패지존이라 한

들 그의 앞에 있는 진린이라는 사내는 무림의 최고 고수인 일마이니까.

"…… 사무린의 행보는?"

"아직 이네. 곧 알아내겠네."

일마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좌운을 보는 눈빛이 곱지 않다. 좌운으로서

는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적어도 요즘의 좌운은 일마의 눈에서 너무나 

벗어나 버렸다. 

"자네 이제는 곧 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군 그래.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

냐. 그리고!"

일마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장력이 좌운의 가슴을 때렸다. 좌운의 몸이 뒤

로 마구 밀려나다가 벽을 등지고서야 간신히 멈췄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핏줄기가 새어 나왔다.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여운휘? 그 놈 이름이 왜 또 나와!"

"미, 미안하네. 그것도 곧……"

말을 하던 좌운은 입을 닫아 버렸다. 실수로 또 곧 이라는 말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일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뿐 재차 손을 휘두르

지 않았다. 일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일이 너무나 요상하게 변하고 있다.

사무린이 떠났다. 물론 사무린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언제든 배신 할 수 

있는 계집이고, 누구의 등도 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은 자신이 있어서다. 그리고 지금 그

녀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무린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지

금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결코 사무린이 사라질 때가 아니었던 게다.

더군다나 이 서찰을 보낸 사무린은 여운휘를 언급했다.

그는 죽었다. 분명 무림맹의 고수들이 그를 죽이는 것을 확인까지 하지 않

았던가.

사무린의 서찰이기에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마의 생각대로라

면 지금 사무린이 물러설 만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녀였다면 지금을 기

회로 삼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 절벽에서 떨어지고 살아남았다?'

말도 안 된다. 그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산다? 그것도 정신도 완전

히 잃은 자가?

불가능하다. 정신이 멀쩡하다 해도 살아 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높이였다. 

이 서찰의 내용을 믿을 수는 없지만 또 완전히 거짓말로 치부 할 수도 없

다. 

"말미를 주지. 오일. 오일 안에 사무린의 행보를 알아내. 여운휘 건은 사무

린의 행보를 알아낸 후에나 알 수 있겠군. 발견하면 잡아. 죽이지 말고 잡

아야 해."

"그리 하겠네."

대답은 했지만 좌운은 자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 좌운의 정보망은 상당히 

분산되었다.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 그 외의 삼세력들, 황궁의 움직임을 비

롯해 이래저래 감시하는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정보력이 넓게 퍼진 만큼 

그 틈새가 많아진 건 어쩔 수 없다. 

사무린이라면 그 틈새를 비집고 나갈지도 모른다.

일마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요즘은 도통 되는 일이 없다. 소교주 유

설린을 죽이는 것은 실패. 행방도 묘연하다. 여운휘도 살아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직 정확히 판단 할 수 없다.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으니 살아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일마는 여운휘가 살아 있을 거라는 쪽에 마음이 갔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일마의 수족들을 잘라대던 것도 여운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운휘는 일마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더불어 그렇다면 유가의 

힘이 일마의 수족을 자를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 된다. 여운휘 혼자서 부수

고 다녔을 정도로 일마의 세력들은 약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또 내부에도 일이 벌어졌다.

'그 놈……'

흑색 기마대와 비견되는 유일한 단체인 금천멸문대의 수장인 사욱천이다. 

그를 위시한 몇 명의 고위층의 수뇌부들이 일마의 행동에 반기를 들었다. 

차라리 반역이라면 그것을 핑계로 사그리 죽여버릴 수라도 있다. 

그렇지만 사욱천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그저 일마의 행동에 불만을 품었

지 무력적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일마는 마교 내

에서 인지도가 없었다. 진린이라는 이름으로 마교에 있는 그는 단순히 강

한 힘으로 마교를 제압한 인물에 불과하다.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점점 피해가 쌓여만 갔다. 일마로서는 

일부로 그러한 행동을 한 거지만 마교 쪽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다. 충분히 압도적으로 이길 만한 싸움도 비등한 대결을 펼쳐 많은 피

를 흘렸다. 

마교와 무림맹의 힘 모두를 약하게 하려는 일마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마교 

쪽의 입장에서는 꼬투리를 잡기 충분하다.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마교 내에서 완전히 인지도를 

잃게 될 것이다.

일마는 비장의 패를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일마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무량을 불러라."

지붕 위에 있던 자가 사라졌다.

일마가 던지는 마지막 한 수. 그것은 바로 흑색 기마대였다. 그들이 움직인

다면 마교 내에서도 무능하다는 욕을 잠잠하게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이제는 혈교도 움직이고 있다. 물론 혈교는 일마의 개인 세력으로 

쓸 것이다. 무림맹과의 전투보다는 뒤에서 지원을 해주는 형식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일마는 장승처럼 서 있는 좌운에게 말했다.

"혈교는?"

"지금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더군. 한달 안에 마교로 올 수 있을 걸세."

"그래. 혈교만 온다면 그때부터는 모든 게 끝이야."

혈교의 힘이라면 검문을 잃은 손실도 만해할 수 있다. 

일마는 모른다. 그 혈교가 자신에게 검을 들이댈 최대의 변수라는 것을. 그

것을 모르는 일마는 그저 혈교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음침한 미소를 흘렸

다.

"흐흐흐! 건방진 놈들! 얼마 남지 않았어! 이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는 날

이 말이야!"

혈교의 수뇌부들이 모였다.

그 수는 여운휘와 유설린을 포함해 겨우 아홉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이 많

으면 소문이 퍼질 확률이 늘어난다. 그랬기에 혈무린은 완전히 믿을 수 있

는 몇 명에게만 이 일을 알렸고, 그리고 이 자리에 오게끔 했다.

혈무린의 양옆에는 철비상과 외팔이 검객 문필우가 앉았다. 그 반대쪽에는 

유설린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여운휘가 선 채로 모두를 응시했

다. 

"거사가 가까워져서 이리 모이자고 했네. 대부분 이 앞에 있는 분이 누군 

지는 알 게다."

철비상과 문필우는 물론이거니와, 그 둘을 제한 나머지 네 명 또한 유설린

의 정체를 알 고 있다. 그들은 말 없이 유설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

에게 가볍게 목례로 답한 유설린은 앞에 있는 혈무린을 바라봤다.

처음 혈교에 온 유설린은 여운휘가 만들어 놓은 세력들이 믿을 수 없을 정

도로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혈교라는 세력을 포섭해 둔 상태였다. 그

리고 혈무린이라면 유설린 또한 알고 있는 인물이다. 비록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 자신을 무척이나 아껴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마교에서 쫓겨난 인물이라는 것도 알지만 유설

린으로서는 혈무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기도 했고, 또 그 일들이 일마와 무엇인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

실을 아는 탓이다.

"이제 우리는 마교로 들어갈 것이네. 성공한다면 우리는 다시 마교인이 되

지만 실패한다면 죽음도 불사해야 하네. 우리의 적은 천하제일의 무인인 

일마니까. 혹여 이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가 있다면 지금 말하게."

"흐흐, 교주님. 저희 또한 머리가 있는 놈들입니다. 저희가 예전 마교를 벗

어날 때 교주님을 따른 것은 저희의 목숨을 맡겨도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

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원하신다면 제 목을 잘라 교주

님 앞에 바치지요. 그렇게 해서 교주님의 숙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이 

놈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꽤나 우직해 보이는 사내답게 말도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잔뜩 묻

어나는 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혈무린은 미소를 지으며 우직

한 사내를 바라봤다. 이제는 오십 줄에 들어선 인물이다. 마교를 떠날 때는 

혈기왕성한 무인이었는데 이제는 꽤나 나이를 먹었다. 

그렇지만 그 젊었을 적의 패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자네는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는 모양일세. 그 용기 감사히 받지."

혈무린은 모두의 얼굴을 하나씩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에서는 

한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혈무린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만한 벗들은 만나기 힘들다. 

비록 상하관계로 얽혀져 있다 하지만 혈무린은 단순히 이들을 부하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들이다.

"고맙네. 다들 고마워."

혈무린은 앞에 있는 술병을 들어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었다. 

모두가 조용히 잔을 든 채로 유설린을 응시했다. 혈무린이 마침내 유설린 

앞에 섰다. 그가 술병을 내밀었다.

"이 술을 받게."

유설린은 앞에 놓여져 있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술잔에 술이 채워졌다. 이번에 혈무린은 여운휘에게도 한 잔 따라주었다. 

모두의 잔에 술이 차자 혈무린이 먼저 그것을 들이켰다. 덩달아 모두가 잔

을 비우자 혈무린이 말했다.

"이 안에는 나를 담았네. 내 인생을…… 이 술잔에 담은 게야. 이제 우리는 

하나일세."

이십 년 간 잠잠하게 있던 혈무린의 검이 마침내 목표를 향해 뽑혀졌다.

그가 노리는 자는 거짓된 신분으로 마교를 잡으려는 일마다.

"오일 후! 우리는 혈교를 떠난다! 그리고 이 거사가 끝나는 날…… 우리는 

그리워하던 마교 안에서 술잔을 기우일 수 있을 것이네!"

혈무린의 수하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처럼 혈기 넘치게 움직이는 

혈무린은 오랜만이라 서다. 그동안 죽은 듯 있던 혈무린이 활기를 되찾았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림에는 정사파의 운명을 바꿀 커다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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