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37)

수호령(守護靈) (290) 구출(救出) 

반면 여운휘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사무린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요기와 같은 기운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겉모습은 그러했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붉은 요기를 가득 뿜어내는 검법은 보통의 것이 아닐 

것이다. 여운휘로서는 그것이 검귀의 유일한 호적수였던 구취향의 혈루검

법이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요기 하나만으로 엄청난 검법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오행검법의 후반부를 익히지 못했다면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게다. 

방심할 수 없는 상대. 

여운휘의 검이 먼저 솟구쳤다.

사무린의 몸이 순간적으로 쇠사슬에 얽히기라도 한 듯 옥죄여졌다. 사무린

은 눈을 부릅떴다.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사무린의 검도 움직였다. 검이 맞닿는 순간 사무린은 손

아귀가 얼얼해 질 정도의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온 몸이 짜릿하다.

'이거야!'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전율이 인다. 무료했던 삶에 무엇인가 강한 

활력소가 생긴 듯 하다. 언제나 꿈꾸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여운휘와 맞설 

자신을!

혈루검법은 변화무쌍하다. 현재 무림에 알려진 그 어떠한 검법보다 변화가 

심하고 반드시 사람의 숨통을 끊어야만 멈출 정도로 살기가 넘친다. 그에 

맞서는 여운휘의 오행검법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한다. 

변화는 포용하려는 것을 벗어나려 한다. 

혈루검법은 오행검법의 극성이다. 애초부터 혈루검법을 만든 구취향이 오

행검법에 패한 후 만든 것이니 그러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구취향은 

오행검법을 부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오행검법을 만들어 

냈다. 몇 백년이 지난 지금 구취향의 혈루검법과 검귀의 오행검법이 다시 

맞섰다.

챙!

검을 맞댄 채로 사무린은 밀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오행검법, 비록 모두 익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깨

우치지 못한 혈루검법이 붙었다. 하지만…… 자질은 여운휘가 위다.

버티고 서 있던 사무린은 미끄러지는 검을 보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붉은 

옷자락이 화려하게 흔들렸다. 

스윽!

"큭!"

빙글 돌면서 검을 피해냈지만 다리가 베였다. 여운휘와 맞선 순간부터 움

직임이 둔해졌다. 이상하게 주변의 모습들도 일그러지고 있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사무린의 움직임을 자꾸만 더디게 만들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르는 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여운휘의 검인 것이다. 

사무린은 허벅지를 베인 탓에 주저앉으면서 바로 검을 내질렀다. 이번엔 

다가서던 여운휘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검의 길이가 조금만 길었다면 명

치에 박혔을 게다. 

순간적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운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무릎을 굽히고 있던 사무린은 그대로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사무린의 절로 입술을 깨물었다. 베어버린 허벅지에

서 피가 터져 나와 버렸다. 

사무린의 몸이 팽이처럼 도는 순간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막 사무

린을 향해 다가서려던 여운휘로서는 한 호흡 물러서야만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녀는 몸을 추슬렀다.

사무린의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그녀의 몸이 여

운휘의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대기하고 있던 여운휘로서

는 사무린의 검을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

챙챙!

사무린의 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 번째가 실패하자 바로 그녀의 

검이 비틀렸다. 

검날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 보이는 

잔영들을 남겼다. 혈루검법의 변화를 이용한 사무린의 일격인 셈이다.

여운휘는 우선 뒤로 물러섰다.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서면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검이 쭉 펴진 채로 요동쳤다.

타타탕!

가볍게 검날을 흔들었는데 물러선 것은 오히려 사무린이다.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컥!"

사무린의 입에서 피가 세어 나왔다. 여운휘는 오행의 힘을 이용해 사무린

의 검로를 비틀어 버렸다. 내공의 흐름이 역류했고, 그걸 제어하지 못한 사

무린은 내상을 입어 버리고야 만 것이다.

사무린은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내며 여운휘를 응시했다.

격공장(隔空掌)은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속을 진

탕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힘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벌써 끝인가?"

여운휘의 말에 사무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웃기지 말라 이거다. 목숨을 버

리면서 까지 검을 겨루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겨우 이 정도로 끝날 거였

다면 목숨을 아꼈을 게다.

"개소리!"

사무린은 억지로 들끓는 기혈을 누르며 여운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대

로 가다가는 패하는 게 불 보듯 뻔하다. 힘겹게 살아온 만큼 삶에 대한 욕

심도 많다. 

이런 날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사무린은 자신의 목숨이 여

운휘의 손에 의해서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

개 같이 살았다.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고 새로운 사무린이라는 모습

으로 살아야만 했다. 태연한 척 했지만 당장 눈물을 흘리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고 힘든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눈물은 약한 자들이 흘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아왔다.

여태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러한 독한 마음이었다. 여운휘를 향해 

날아드는 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탕!

여운휘는 뒤로 물러서면서 일검을 받아냈다.

사무린의 몸이 바짝 붙었다.

탕탕!

이번에는 연속공격이다. 여운휘의 검이 좌우로 재차 움직이면서 막아냈다. 

이번엔 여운휘의 보법이 엉키기 시작했다. 사무린의 검의 갑작스러운 변화 

탓이다. 그렇지만 수세로 몰린 듯 해 보이는 여운휘의 두 눈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다.

사무린의 검이 비록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이미 그 정도에 휘둘릴 여운휘가 

아니다.

혈루검법을 펼치는 사무린의 검이 몇 차례 여운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

다. 가느다란 혈선이 생기면서 여운휘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헌데 오히려 사무린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분명 승기를 잡고 있지만 불안한 것이다. 사무린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여운휘는? 처음엔 몰랐지만 점차 사무린은 그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사무린의 검은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지만 여운휘의 움직임은 결코 더뎌지지 않는다.

'승부를 잡아야 해.'

사무린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차피 목숨까지 건 마당 아닌가.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아깝지 않다. 팔을 

버려도 좋고, 다리 하나가 날아가도 좋다. 목숨만 살아 있다면 그건 사무린

의 승리다.

사무린의 눈에 언뜻 유설린의 모습이 비쳤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의 눈빛

이 아니다. 여운휘가 나타나기 바로 직전에 봤던 유설린은 분명 사무린이 

알던 쓸모 없는 여인이 아니었다. 유설린의 눈이 검을 나누고 있는 여운휘

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찾았다! 여운휘의 유일한 약점!'

여운휘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유설린이라는 여인이.

사무린은 강하게 검을 휘둘러 여운휘를 물러서게 함과 동시에 유설린을 향

해 몸을 움직였다. 꿈틀거리는 검 끝에서 무서울 정도의 기세가 터져 나왔

다. 

비록 우문학이 있다 하지만 예상대로 여운휘는 움직였다. 그렇지만 워낙 

사무린의 공격이 빨랐던 탓에 여운휘는 몸을 돌린 채로 검을 휘둘렀다. 묵

직한 충격에 여운휘의 손목이 아려왔다.

'기회야!'

사무린의 눈에 여운휘의 등이 보였다. 적을 상대하면서 등을 보이다니…… 

여운휘의 등뒤로 날아드는 사무린의 입가에 순간적으로 미소가 걸렸다. 이

대로 이 등을 쪼갠다면 승리는 사무린의 것이다.

여운휘의 몸을 비틀리는 것을 보면서 사무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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