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137)

수호령(守護靈) (288) 구출(救出) 

대충 살수들과 검을 섞고 있던 사무린으로서는 고민이 일었다.

예상외로 풍운조라는 인물이 강했던 것이다. 강호십일객 중 하나인 살황과 

이토록 비등하게 싸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풍운조가 강호십일객이라

는 사실을 몰랐던 탓이다.

그리고 그토록 큰 부상을 입은 우문학조차도 혈리추검 공청에게 전혀 밀리

지 않았다. 사무린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분명 이대로 싸운다면 필승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럴 시간은 없다는 생각

이 든 것이다. 비록 많은 무인이 마교와의 전면전 때문에 빠져나갔다 하지

만 이만한 소란이 인다면 관이나 다른 무인들도 개입할 지도 모른다.

사무린은 결단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살수들과 검을 맞대면서 은

근슬쩍 뒤로 물러났다. 귀찮게 싸우지 않고 싸움을 끝낼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풍운조라면 몰라도 우문학이라면 반드시 멈추게 할 방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유설린이다.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휘두르던 사무린이 마침내 소교주의 뒤에 서는 순간 

본성을 들어냈다.

"다들 멈춰요. 멈추지 않으면 소교주를 베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분명 힘이 있었다. 우문학은 놀란 눈으로 사무린을 

바라봤다. 무림맹의 무인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탓이

다.

"말했어요. 풍운조, 우문학 당신 둘이 검을 멈추지 않으면 바로 베죠."

사무린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같은 격전장에서 지을 만한 표

정이 결코 아니다. 우문학은 사무린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혔다. 무엇인가

를 알아차린 듯 했다.

"혹시…… 마교의 무인이었소?"

"맞췄어요. 역시 당신은 죽어야 될 것 같아요. 너무 영리하니까."

말을 마치는 순간 사무린의 손가락 끝에서 가볍게 지공이 뻗어져 나왔다. 

우문학은 옆으로 비키면서 그 지공을 피해냈다. 그러자 사무린이 가볍게 

손가락 끝을 유설린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서, 설마!"

"피하지 말아요. 안 그러면 소교주가 죽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사무린이 다시금 손가락을 뻗었다. 움찔했던 우문학이었

지만 결코 피할 수가 없었다. 지공이 어깨에 틀어박히면서 피가 흘러나오

기 시작했다. 우문학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같은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다.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살황과 백중지세로 손을 겨루고 있던 

풍운조 또한 손을 내려트렸다.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이거야 원 어린 계집에게 놀아난 꼴이로구나……"

"저 또한. 당신이 백면귀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으니까요."

"하늘이 두렵지 않더냐!"

격분한 풍운조가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사무린의 얼굴에는 일말의 변화

가 없었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던 사무린이 유설린의 목에 대고 있는 

검을 살살 움직였다. 

풍운조는 이를 부득 갈았다.

분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풍운조라고 해도 유설린을 구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

면 인질로 잡힌 유설린의 얼굴은 담담했다. 마치 죽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사무린이 말했다.

"저 둘을 죽여요. 소교주를 잡고 있으니 반항하지 못할 거예요."

"정말이오?"

혈리추검 공청의 반문에 사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살살 눈웃음을 

치면서 우문학을 바라봤다.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 상당히 분한 모양이다.

"백면귀황은 몰라도 우문학 저 사내는 분명 죽을 거예요. 만약 백면귀황은 

죽지 않겠다 하면 그냥 내버려둬요. 소교주의 팔 하나만 먼저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 안 그래요 우문학?"

"당신은…… 천벌을 받을 거요."

"아니요. 그건 약한 사람들의 독기 어린 말에 불과해요. 그 당신이 말하는 

천벌…… 내려주실 수 있나요?"

사무린의 말에 우문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수그릴 

뿐이었다. 사무린은 공청에게 턱짓으로 우문학을 가리켰다. 그를 죽이라는 

신호다. 공청이 비수를 들고 다가왔지만 우문학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반항을 한다면 유설린의 팔 하나가 잘려 나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

다.

그때 그토록 입을 닫고 있던 유설린이 입을 열었다.

"우문학! 죽지 마요! 이건 명령이에요!"

"하지만 소교주님!"

"닥쳐!"

사무린의 유설린의 머리채를 감은 채로 뒤로 잡아당겼다. 사무린은 목에 

바로 검을 가져다 댔다. 조금의 힘만 주면 피가 주르륵 흘러나올 것만 같

다.

그런데, 

'뭐, 뭐야?'

사무린은 처음으로 유설린의 살아 있는 눈을 봤다. 언제나 아무런 말도 하

지 않고 죽을 것처럼 지내던 유설린의 눈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무린은 유설린의 머리채를 휘감았던 손을 풀고야 말았다. 

유설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만 죽이면 되잖아요? 저만 죽어요. 그리고 우문학과 풍 노야를 살려줘

요. 어차피 저 둘을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렇게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도 처음이다. 사무린은 조용

히 유설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야 여운휘가 마음을 열었던 여인을 본 기분이다. 반 년 이상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지금이 첫 대면만 같은 느낌이다.

사무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는 소리. 우리의 정체를 안 이상 죽어야 해요. 그리고 이미 당신의 목 

값은 가치도 없어요. 당신의 목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공

청! 뭐 하는 거죠? 어서 죽어요."

사무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공청인 우문학을 향해 다가왔다.

'끝났다.'

우문학의 검을 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무것도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하늘이 미웠고, 신이 원망스럽다. 왜……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순간 낯이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 계단을 다 올라섰을 때까지 검을 들고 있는 놈들은…… 다 죽는

다."

계단을 밟으며 죽립을 쓴 자가 방 안으로 막 들어오고 있었다. 우문학의 

눈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자에게로 향했다.

단순한 광인과도 같았지만 그자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기도가 흘러나왔

다.

모두의 시선이 그 자에게 쏠렸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온 것이다. 혈리추검 공청이 양옆에 있는 수하들에 

가볍게 손짓했다. 두 살수의 몸이 날아올랐지만 그보다 빠르게 그 둘은 땅

에 처박혔다.

가볍게 공중으로 솟구친 사내의 양발이 그들의 복부를 걷어 차 버린 것이

다. 

그다지 무게를 실은 것 같지도 않건만 둘은 피를 토하면서 그대로 땅을 나

뒹굴었다. 그제야 모두의 눈에 조심스러운 기색이 넘치기 시작했다. 

이만한 고수라면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우문학의 얼굴빛이 갑자기 변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우문학이 잘 아는 사

람의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어투와 체형도 분명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우문학이 기억하는 그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문학이 이 이상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유설린 때문이

다. 우문학뿐만이 아니라 유설린 또한 죽립을 쓴 여운휘를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도 생기가 일기 시작했다.

벙어리인 살황을 대신해서 공청이 나섰다.

"어느 고인이신지요. 그리고 이 곳에 나타난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

습니까?"

"공청. 내가 말했지? 다시 내 눈에 띈다면 죽여버린다고."

"그게 무슨……"

그때 가만히 앉아만 있던 유설린의 입이 열렸다.

"휘…… 휘 맞지?"

그 말에 사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유설린이 말하는 휘라는 인물이 여운

휘라는 것을 잘 아는 탓이다. 그렇지만 불가능하다. 분명 무림맹의 포위망

에 쌓여 천길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떨어졌다면 뼈도 추리지 못

한다.

사무린은 유설린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온 몸

을 감쌌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자꾸만 온 몸을 자극했다.

죽립을 쓴 사내가 고개를 돌려 유설린을 응시했다. 그가 손을 들어올려 죽

립을 들어올렸다. 사내가 죽립을 벗어버리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 있는 몇 명의 인물들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눈도 돌리지 못했다.

여운휘다.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는 그 여운휘다.

사무린은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너, 넌 죽었잖아!"

"사무린, 그곳은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여운휘가 차가운 눈으로 사무린을 응시했다. 유설린의 목에 대고 있는 검

을 봐서다. 사무린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살아서 재회할 거라고는 생

각도 하지 못했다.

여운휘가 작지만 무서울 정도의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검을 치워라."

사무린은 애써 웃음을 보이려고 했다. 우선 진정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평소의 말투로 돌아갔다.

"어떻게 살았죠? 분명 죽은 줄 알았는데."

"내가 아래에서부터 경고했지? 검을 들고 있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고."

"당신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 협박을 할 수 있는 건 저예요. 

당신이 아니고."

사무린은 유설린의 목에 대고 있는 칼을 슬쩍 움직였다.

유설린은 울 것만 같은 얼굴로 여운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에 달려가 

여운휘를 만져보고 싶다. 그렇지만 이 칼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대신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여운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여

운휘를 응시하던 유설린이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치마 위로 뚝 하고 떨

어졌다.

'살아 있었어……'

그 한 가지 사실에 유설린의 마음에는 파도와도 같은 감정이 밀어닥쳤다. 

눈물이 쉴틈도 없이 터져 나왔다.

"흑, 흑흑."

울고 있는 유설린을 바라보던 여운휘가 고개를 들었다.

자애로운 눈으로 유설린을 바라보던 여운휘의 눈빛은 사무린을 보는 순간 

완전하게 변해 버렸다. 

여운휘가 말했다.

"넌 검을 휘두를 수 없다."

"그게 무슨……"

여운휘의 몸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검을 슬쩍 뽑았을 뿐인데 사무린의 몸이 굳어졌다. 여운휘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사무린은 알 수 없는 예감에 급히 소리쳤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벨 거예요!"

그렇지만 여운휘는 다가왔다. 사무린의 목소리가 더욱 급해졌다.

"농담인지 아나 본데 후회……"

사무린은 살짝 목을 그어 피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이 마치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사무린의 얼굴

에 핏기가 가셨다.

여운휘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지만 사무린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이 상태로 손만 뻗는다면…… 사무린은 죽는다.

여운휘가 손을 뻗었다. 사무린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았다. 그렇지

만 곧 그녀는 눈을 떴다. 아무런 일도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은 것을 알아

버린 탓이다. 여운휘는 유설린을 사무린의 품안에서 빼갔을 뿐이다.

힐끔 사무린을 바라만 봤을 뿐 여운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

았다.

여운휘는 유설린을 바라봤다. 안아들고 있지만 유설린이 고개를 떨구고 있

어 눈을 볼 수가 없다. 

아직도 유설린을 울고 있었던 것이다. 힘겹게 유설린이 입을 열었다. 목소

리가 눈물로 가득 젖어 있었다.

"왜…… 연락 안 했어?"

여운휘는 능려운의 마지막 말이었던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를 확인했다. 이

미 혹시나 하고 있었던 탓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너무들 놀라는 

모습에 능려운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능려운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는 분명 무인답게 싸우다가 죽었

으니까.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 약속을 했다면 내가 어디에 있던 반드시 네 옆으

로 돌아온다."

유설린은 얼굴도 들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휘는 천천히 공청과 살황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등장으로 싸움이 소

강 상태로 변했지만 분명 이들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려고 할 것

이다.

그렇지만 이미 싸움의 기세가 넘어가 버렸다. 여운휘의 살기에 사무린뿐만

이 아니라 이들도 섣불리 움직이지를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풍운조가 나섰다.

"이보게 살황. 우리의 승부는 내야 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밖에 나가는 것

이 어떠한가.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싸우니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가 없군 

그래."

말을 못하는 살황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대답을 대신했다. 살황 또한 지

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그저 자신의 상대인 백면

귀황을 상대하고자 마음 먹은 것이다.

우문학 또한 혈리추검 공청을 상대하려 했지만 여운휘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여운휘는 유설린을 내려놓으며 우문학에게 말했다.

"내가 상대하지. 자네가 지켜 줘."

우문학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운휘의 모습을 뚫어져라 봤다. 결코 이승에

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문학이 웃었다. 피범벅인 얼굴로 그는 신이 난 듯이 웃었다. 왠지 모르게 

이 사내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변한 듯한 기분이다. 

"잘 돌아왔네. 아무렴, 자네가 소교주님의 옆에 있어야지 다른 곳에 있다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여운휘는 우문학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고초를 한 눈에 알아버린 것이다. 절름거리는 발과, 완전히 상처투성

이인 몸. 아마도 여운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을 게 분명하다. 여

운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 뒷일은 내게 처리하지."

말을 마친 여운휘는 혈리추검 공청 앞에 섰다. 

혈리추검 공청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운휘라면 옛날에도 상

대가 되지 않았던 자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갑절 이상은 강해진 듯 

하다. 그러한 발전이 믿어지지 않지만 몸으로 느꼈다.

지문육가의 살수들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싸움의 승패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공청이 말했다.

"난 살고 싶은데 말이야……"

"그럼 검을 버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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