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령(守護靈) (285) 구출(救出)
구출(救出)
우문학은 평소랑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그 속내
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유설린을 도주시키기로 계획이 짜져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소교주가 도망치는 날, 그리고 우문학 자신이 죽게 될 날. 우문학은 태연하
게 풍운조를 찾아가기 위해 방밖으로 걸어나왔다. 문 밖으로 나온 우문학
은 의외의 인물에 눈을 휘둥그래 떴다.
능려운이다.
"이 대낮부터 자네가 웬일인가?"
"그게…… 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사람 참 싱겁기는."
우문학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닿는 능려운은 보면서 피식 웃었
다. 아마도 이 사내도 걱정이 많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 도망치기 위
해서는 능려운의 도움도 중요하다.
계획 된 시각은 정확하게 자시(子時)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사무린이
라는 자를 베는 것이다. 그 일은 풍운조가 해야 한다. 지금의 우문학으로서
는 사무린을 상대할 자신이 없다.
우문학은 아무런 말도 없이 능려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옆을 스
쳐지나갔다.
능려운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
다.
능려운은 멀어지는 우문학의 등을 조용히 바라봤다.
알고 있다. 개조차도 기르는 주인은 물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행
동이 그러한 개보다도 못하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
우문학을 바라보는 능려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풍운조의 집무실 앞에서 우문학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
다.
"누군가?"
"접니다."
"아, 우문학 자네인가?"
"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우문학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풍운조는 대충 종이를 정리하면서
우문학을 맞이했다. 이미 그가 찾아온 목적을 풍운조는 알고 있다. 우문학
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대로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뭐 이 정도면 곧 철의 판매도 뚫릴 것 같군."
우문학이 풍운조에게 전음을 날렸다.
[자시입니다. 자시에 풍 노야께서 사무린을 베어주셔야 합니다.]
[걱정 말게. 자네나 늦지 마.]
우문학은 고개를 꾸벅하고는 방밖으로 걸어나갔다.
풍운조가 속으로 혀를 찼다.
'끌끌, 아까운 친구.'
하지만 유설린을 구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다는 것 정도는 풍운조도 잘
알고 있다.
우문학은 방에 앉은 채로 창 밖을 바라봤다. 몸을 감추고는 있지만 수많은
자들이 지금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지막 해일 것이다. 그가 이승에서 볼 수 있는.
'힘겹게 달려왔지.'
소교주와의 처음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참 힘들기도 했고 유쾌하기도 했
다. 계획했던 대로 하나씩 일이 풀려 나갈 때마다 얼마나 기뻤던가. 그렇지
만 그 끝은 아쉽게도 실패다.
우문학은 서랍 속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들었다. 한동안 손도 대지 않았는
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꼭 한 대를 빨고 싶다.
우문학은 연초를 깊게 빨아들었다가 뱉어냈다.
머리를 가득 채운 잡념이 단숨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
도 왠지 모르게 기분은 상쾌하다.
'후후, 죽으면 그 친구를 볼 수 있으려나? 소교주님을 두고 죽었다고 욕이
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절로 그런 모습이 상상되자 우문학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때부터였다. 여운휘가 죽은 후부터 유설린도 죽었고, 그 때부터는 유가
가 죽어 버렸다.
연초를 다 태운 우문학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아직 자시
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동안 해결 할 일들이 많다.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일에 치이는 군.'
가득하게 쌓인 종이를 처리하면서 우문학이 실소를 흘렸다.
달조차 뜨지 않는 밤이다. 물론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일부로 우
문학이 이런 날을 택했다. 그건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반대이기도
했다.
유설린을 죽이기 위해 근처에 다다른 지문육가(知文六家)의 살수들 또한
몸을 감추고 이곳까지 접근한 것이다.
모든 것은 사무린의 각본 대로였다. 이미 탈출 시간까지 알고 있는 사무린
은 그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지문육가의 살수들이 이곳에 들이닥치게끔 조
절해놨다.
더군다나 지문육가의 살수들이 유가를 휘젓고 있는 사이 그 뒤를 이어 백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이곳을 기습할 것이다. 그들은 버려도 되는 패다. 지
문육가의 살수들은 살려야 하지만 백 명에 달하는 무인들은 그저 일회용품
이다.
소란을 일게 해서 잡혀가거나 해도 정체가 드러날 위험도 없다.
그들은 일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어딘가에 의해서 키워졌다는
것 뿐.
지문육가의 살수들의 우두머리가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안으로 잠입하
자는 소리다. 다소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이들이라면 아무런 소란도 없이
악양유가 안으로 잠입할 수 있다.
파팍!
살수들의 몸이 허공을 날아 올랐다.
삼십 명의 살수들이 유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가볍게 손짓했다. 이미
밖에서 유가를 감시하는 무림맹의 무인들을 베고 들어왔다. 가장 먼저 지
문육가의 살수들이 하기 시작한 것은 유설린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양유가를 감시하고 있는 무림맹의 눈들을 먼저 자르기 시작했다.
혹여 그들 중 누군가가 살아나가서 원군을 부른다면 일이 귀찮아진다.
삼십 명의 살수가 악양유가 안을 돌면서 조용히 하나 둘씩 베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지문육가의 살수들이 등뒤를 잡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목
이 베이면서도 무림맹의 무인들은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지문육가의 살수들은 그 작은 소리까지도 내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지문육가 살수들이 그 같은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쪽 또한 계획 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풍운조다.
그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자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쯤 움직여서 소가주의 거처 근방으로 가
있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 나가려던 풍운조가 다리
를 멈췄다. 주변에 이상한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풍운조는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림맹의 무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무림맹의 무인이 감시하던 자신을 놔두고 어딘가를 갔을 리는 없다. 그렇
다면……
날파리들이라고 생각했던 자들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은밀한 움
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죽였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란 말인가.
'유가는 아니야. 우문학에게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하면…… 서, 설마!'
무엇인가 생각난 것이 있어 풍운조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이런 경우 답은 하나 뿐이다. 먼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사전에 지금의
탈출 계획이 발각되었다는 소리다.
동시에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가장 목숨이 위험한 인물이 떠올랐다.
'소가주!'
풍운조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소가주의 거처를 향해 달렸다.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문학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는 풍운조
와 조금 입장이 달랐다. 우문학은 급히 검을 들었다. 비록 무공 실력이 예
전만 못하다 하나 무인의 감까지 죽은 것은 아니다.
살기를 지닌 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또한
무림맹의 무인들의 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길!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분명 소가주의 탈주 계획이 드러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은 마교에서
보낸 자들일 것이다. 무림맹에서 보낸 자들이라면 굳이 지키고 있는 자들
을 죽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전문적인 자들인 것 같다.
우문학은 검을 뽑아들었다. 비록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검을 휘두를 수는
있다.
'넷? 다섯?'
정확한 숫자조차 딱 잡아서 말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들은 고수였다. 그렇
지만 우문학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풍운조를 믿기로 했다. 그라
면 분명 자신과 같이 이 일에 대해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 바로 유설
린에게 달려갔을 게 분명하다.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강호십일객이라면 믿을 수 있다.
우문학은 서랍 속에 있는 비수를 꺼내 창문 밖으로 냅다 던졌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 사이에 챙 하는 비수를 쳐내는 소리가 들렸다. 우문학은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슈욱!
쒜엑!
기다렸다는 듯이 검과 비수들이 날아들었다. 우문학은 뒤로 물러섰다.
단 한 걸음을 움직였을 뿐이거늘 검과 비수들이 모두 빗겨 나갔다. 절름발
이가 된 이후 우문학은 움직임을 최대로 줄였다. 그것만이 그에게 살길이
었던 것이다.
우문학의 손에서 혈풍구룡검법이 펼쳐졌다.
피보라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서운 검공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확
실히 예전만 하지 못했다. 손은 움직이는데 가장 중요한 보법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문학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창창!
'넷!'
살수들의 숫자는 넷이었다. 둘은 숨어서 기회를 틈타 암기를 뿌려댔고, 나
머지 둘은 직접 검을 맞댔다. 예전이었다고 해도 쉽지 않을 상대거늘 지금
은 너무 버겁다.
우문학은 무사히 이들을 꺾으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는 검을 피하면서 암기를 던지는 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들은 계속
해서 위치를 바꾸며 암기를 뿌려댔다. 하지만 암기를 던지기 위해서는 각
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각도가 되는 곳들을 우문학은 눈여겨보았다.
이미 몸에는 잔 생채기들이 가득 생겼다. 다리가 거치적거리는 바람에 생
긴 상처다.
막 두 명의 검을 쳐내는 순간 나무 위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지금!'
우문학은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검을 무시 한 채로 공중으로 솟구쳤
다. 어깨가 화끈거렸다. 날아드는 검이 아마도 어깨를 베고 지나간 모양이
다.
우문학의 눈에 복면은 쓴 채로 급히 몸을 피하려는 살수의 등이 보였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의 검이 살수의 등을 찍었다.
퍼억!
정확하게 박힌 검은 등으로 박혀 가슴으로 빠져 나왔다.
우문학은 발로 살수를 밀쳐내면서 검을 뽑아냈다. 뒤에서 날아드는 검공들
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크윽!"
그렇지만 비수 하나가 부상당한 어깨에 박혔다. 이제는 완전히 한 쪽 손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왼쪽 손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 버렸다.
"후우, 후우!"
우문학은 검을 들어 올려 상대들을 바라봤다. 이제는 검을 맞대는 자들이
둘이고 암기를 쏟아대는 자가 하나다. 큰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오히려 수
월하다.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암기가 현저히 줄었다.
'승산이 있다!'
우문학은 그대로 앞에 있는 두 명의 살수에게 혈풍구룡검법의 절초를 펼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