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會談)
오로목제(烏魯木齊)라는 곳이 있다.
마교가 있는 신강(新疆)에 위치한 곳이다. 거대한 초원이 있는 탓에 말을
기르는 목장이 많다. 꽤나 큰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도 잦고 나름대로 서역
경영의 중요한 한 부분을 맞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틈을 열 명 가량이 되는 자들이 헤집고 들어
왔다.
앞장서서 있는 자는 오로목제의 토박이라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무
엇인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자가 마침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객잔이다.
뒤에 서 있던 외팔이 무인이 사내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수고했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예상보다 많은 돈에 사내는 히쭉 웃었다. 이만한 돈이면 한달 정도는 신나
게 먹고 놀으리라.
옆에 있는 중년을 넘어서 노년에 이른 무인이 외팔이 무인을 향해 말했다.
"가세."
"그러지요."
그 열 명에 달하는 무인들은 객잔을 향해 걸었다.
외팔이 무인은 문필우다. 혈무린이 가장 믿는 수하이자 그의 호위무사이기
도 한 인물. 그리고 혈무린의 마음을 움직인 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혈
무린은 혈교를 움직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물론 그의 옆에 있는 자는 혈무린이었다.
이곳에 온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다. 하루 하루가 아쉬운 이럴 때
이 먼 곳까지 시간을 소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번 계획의 성사여부
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혈무린은 일마를 만나러 온 것이다.
혈무린은 수하들을 이끌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점소이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저기 이곳은 어떠한 분이 통째로 빌리신 지라……"
"알고있네."
혈무린은 가볍게 말하고는 객잔 안을 훑어봤다. 구석 자리에 앉아 한 중년
인이 무엇인가를 홀짝이고 있다. 그 자세 하나만으로도 혈무린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일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혈무린이 앞에 있는 점소이에게 말했다.
"내가 바로 저 분을 만나러 온 손님일세."
"아! 그러십니까?"
점소이가 옆으로 물러나자 혈무린은 수하들을 이끌고 일마를 향해 다가갔
다.
이들의 등장을 일마가 모를 리가 없다. 혈무린이 다가오자 일마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일마가 먼저 포권을 취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혈무린 교주님."
"당신이 진린이오?"
"그렇습니다."
일마는 혈무린 앞에서 진린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혈무린 또한 그의 정체
를 알고 있다는 것을 내색하면 안 되는 입장이었기에 그에게 반 하대를 하
면서 진린이라고 불렀다.
둘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혈무린
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뒤에 있는 수하들이 혈무린을 기점으로 둥글게
섰다. 만약에 있을 암습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진린은 그 수하들의 모습부터 살폈다.
특히 외팔이 검객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팔이 하나라면 다른 무인에 비해
싸울 때 불리한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두 개의 손이 해야 할 일이 하나가
대신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마는 이 중에서 가장 고수로 저 사
내를 꼽았다. 외팔이지만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혈무린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일마를 다시 보게 되니 화가 솟구치면서도 놀랍다. 예전에 봤던 일마의 모
습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어렸기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도 이 정
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무공이 고강하다는 소리다.
혈무린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자가 혈무린이 그토록 사랑하던 마교를 엉망으로 만
든 것이다. 또한 여운휘에게 들어본 바로는 검문이 유설린의 어머니인 엄
여홍의 죽음과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검문은 일마의 수족이었
다. 그것은 곧 일마가 그 죽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태까지 죄책감에 시달렸다.
비록 혈무린이 엄여홍을 죽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
이 소개시켜줬던 무인이 아니던가.
물론 여인의 옆에 호위무사를 두게 하려면 나름대로 선별을 하게 된다. 그
래서 혈무린은 자신의 수하 중에서 믿을 만한 자를 보냈다. 믿을만한 무인
이었거늘 그 같은 일을 저질렀다.
당시에는 너무나 놀라 그가 겁탈이라는 더러운 행동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마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애초부터 일마는 유백명을 망치려고 했다. 그가 있었다면 지금 진린이라는
인물로 마교를 지배하지 못했을 게다. 비록 문(文)보다는 무(武)에 치우친
유백명이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다.
맨 처음 목표가 마교의 교주인 유백명을 망가트리는 것이었을 게다. 그리
고 예상대로 망가진 유백명을 엄백린이 몰아내고 곧 그를 타락시켰다.
마교는 그렇게 일마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유백명과의 긴 우정을 무너트린 것이 바로 이 앞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머리통을 부수어 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손을 휘두른다 해서 이길
상대도 아니거니와 지금 그러는 것은 경거망동이다.
혈무린은 속에서 꿈틀거리는 분노를 내색하지 않고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었다.
앞에는 원수가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걸었다.
"한 잔 주겠는가?"
"그러지요."
쪼르르르.
술잔에 술이 가득 담겼다. 혈무린은 한 잔 들이켰다. 입 주위를 닦는 혈무
린에게 일마가 말했다.
"도와주신다는 말에 교주님께서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옛날의 일은 잊고
시작해보자고……"
"허허. 이보게 진린. 지금 마교의 패권을 잡고 있는 것은 자네라는 것 정도
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가. 엄백린이 지금 술과 여자에게 빠져 마교의 일
을 보지 않은지 오래 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네."
"아시고 계셨습니까?"
일마는 숨기려 들지 않았다. 이미 혈무린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
각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 그리고 안다 해도 상관없다. 그 정도도 모를 정
도의 인물이라면 오히려 이쪽에서 사양이다.
무림맹 또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진린이라는 자가 마교를 잡고 있다
는 것을 알아차린 지 오래다.
"진린이라는 이름이 귀에 따갑게 들리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리고 이제부
터는 자네의 정체에 대해 말했으니 나 또한 그에 걸맞게 대하지. 알겠소?
진린."
혈무린의 말이 반 하대에서 반 존대로 변했다. 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름대로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럼 제대로 이야기하지요. 도와준다는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오. 나 또한 지금처럼 변방에만 박혀 있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교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림을 흔들던 나요. 혈무
린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무림에 진동시키고 싶소."
"저 또한 그렇습니다. 진린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시키고 싶
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잘 맞을 듯 합니다."
진린이 손을 내밀었다.
마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지만 겉은 달랐다. 미소를 지으며 혈무린 또한
손을 내밀었다. 둘이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이제부터 동지요."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목숨을 함께 해야 합니다."
혈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마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잠시동안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요."
"그럽시다. 내가 언제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도 궁금하고……"
"우선 저는 맨 처음 마교를 정리 할 생각입니다."
"마교를 정리한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불순분자들을 제거한다는 소리로 들
리는데."
"맞습니다. 아직 마교에는 제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예로 금
천멸문대의 수장인 사욱천, 그리고…… 아직도 전 교주였던 유백명을 따르
는 자들이지요."
아직도 유백명을 따르는 무인들이 있다는 말에 혈무린은 가슴이 울렸다.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은 진심으로 유백명을 따르던 수하들일 것이다.
그리고 또 그만한 인물들이라면 혈무린과도 큰 친분이 있는 자들일 게다.
마교 안에 들어가자마자 섭외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금천멸문대라면 겉
으로 드러난 마교 최강의 단체. 그곳의 수장인 사욱천이라면 분명 한 몫을
할 자가 분명하다.
일마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적에게 스스로의 정보
를 뱉고 있는 것이다.
"아, 그리고 가장 먼저 저는 소교주 유설린의 세력을 정리 할 겁니다."
"유설린? 유백명의 딸이었던 그 계집을?"
"눈치를 보아하니 유설린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던 듯 한데……"
"뭐 나 또한 눈 먼 바보는 아니라서 말이오. 솔직히 말해 비밀이라고 숨겨
도 결국은 퍼지는 법 아니겠소. 더군다나 유설린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아
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나 또한 듣게 되었소."
일마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여운휘와 유설린을 죽이기 위해 동원된 무인의 숫자가 백 명을 훨씬 넘어
선다. 그 중에서는 이유도 모르고 싸운 자들도 많지만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무인들도 있다. 꽤나 많은 수의 무인이었기에 쉬쉬하긴 했지만 결국
은 약간의 뒷소리가 나게 된다.
"그럼 유설린은 어떻게 할 것이오?"
"당연히 죽여야지요. 남겨봤자 후환일 뿐입니다. 지금 마침 연락이 와서 죽
일 생각이지요."
"흠…… 진린 당신이 그리 판단했다면 그게 옳겠지. 그럼 우리는 언제쯤
움직이면 되겠소?"
혈무린은 크게 놀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연스럽게 말
을 돌렸다.
"그건 제가 연락을 드리지요. 미리 준비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비야 언제든 되어 있소. 필요할 때 말하면 바로 도우러 가리라."
일마가 신이 난 듯 웃었다. 그는 혈무린의 잔에 술 한잔을 더 채우며 말했
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나 또한."
혈무린이 술을 들이켰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유설린에 대해 알아버리게 되자 마음은 이미 먼 곳을
향했다.
여운휘가 있는 혈교로 말이다.
사천에는 한 가문이 있다.
딱히 많은 문인을 배출 한 것도, 그렇다고 무인을 배출하지도 못했다. 간신
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는 가문이다. 손님들의 왕래도 없고 문도 꼭꼭 닫혀
있다.
사람들은 그곳은 지문육가(知文六家)라 불렀다.
조용한 지문육가에 하나의 서신이 날아듦과 동시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
다.
지문육가의 가주는 당장에 회의를 위해 수하들을 불러모았다.
실제로는 지문육가는 일마의 수하 세력이었다. 그들은 전부 중요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키워진 살수들이다.
전문적인 살수들. 그런 최고급의 살수들 서른 명 정도가 한 방에 모이자
그 안은 날카로운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주가 말했다.
"명령이 떨어졌다. 한 가문을 멸망시키라는 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죽이라고 하면 죽이면 그만이다. 상대가 황
실의 황제라 해도 일마가 명하면 죽이기 위해 가야 한다. 설령 그게 불가
능한 일이라도.
"악양에 있는 악양유가다. 그들의 비밀세력까지 움직인다니 하나도 남김없
이 베라고 하더군. 그리고 다른 자는 몰라도 유가의 소가주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악양유가라면 어렵지 않다. 남궁세가도 아니고 상계에 이름을 날리는 악양
유가 정도라면 일 각 안에 끝낼 자신이 있다.
"무림맹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 한다. 내일 정오 출발한다. 각기 준비하도
록."
말을 마친 지문육가의 가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흙먼지가 가득 일었다.
말의 눈이 돌아갔다. 아무리 말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달리는 건 무리였던
듯 하다. 혓바닥까지 뺀 채로 말은 미친 듯이 달렸다. 나름대로 종자도 좋
고 명마라고 소문난 녀석이었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모양이다.
푸르륵!
결국 버티지 못한 말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말 위에서 미친 듯이 배를
걷어차던 사내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쓰러진 말을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사내는 그대로 달렸다. 이미 이렇게
쓰러진 말이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하루에 두 세 번은
말을 갈아탔다. 그만큼 강행군이었다.
새우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넓은 대지를 달리는 사내의 몸이 마치 환영처럼 흐릿했다. 오히려 말보
다도 더 빠르다. 인간이 펼쳐낼 수 있는 속도를 벗어난 듯 하다.
그처럼 사내가 급히 달리는 것은 한 여인을 위해서다. 사내는 여운휘였고
지금 그는 유설린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혈교에 있던 여운휘는 놀라는 소식을 접했다. 혈무린이 급히 날린 전서가
이 일의 시발점이었다. 전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는 순간 여운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마는 지금 유설린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 계획을 가동시
킬 준비까지 끝마쳤다는 거다.
철비상에게 간단히 말만하고 그대로 악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는 아무것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유설린의 목숨이다. 정
안 된다면 복면이라도 쓰고 전부 베어버리리라.
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이 조급
한 여운휘로서는 자신의 움직임이 너무 더디게만 느껴졌다.
마음은 이미 만리 앞을 달리고 있거늘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