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령(守護靈) (281) 우정(友情)
***수호령 팔권 분량 내일이나 모래쯤 삭제 합니다.
267편 여정 까지입니다***
***사신 홈페이지 정모가 있습니다. 참석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자유게시판이나 공지란 참조..***
콰앙!
노인의 몸이 옆으로 밀리면서 그대로 피를 뿜어냈다.
"우욱."
흰수염에 피가 잔뜩 묻어버렸다. 노인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천뢰삼장을
펼칠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피해버린 여운휘의 모습에 놀라 버린 것이
다.
노인이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네 놈…… 남궁세가의 무인이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천뢰삼장을 이토록 완벽하게 기회를 알고 피
해내는 것은 이 무공을 속속들이 알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번 물음에도 여운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너는……"
여운휘는 대답대신 제왕검을 든 채로 노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간 노인
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고민이 오갔다.
'천풍장력(天風掌力)? 천뢰기(天雷氣)를 펼친 후 지공을? 한령신조(寒靈神
爪)?'
그렇지만 노인은 결국 아무런 무공도 펼쳐내지 못하고 여운휘의 검에 가슴
이 뚫렸다.
그 어떠한 무공도 펼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들 모두를 여운휘가 알고
있을 거라고 자기도 모르게 주저해 버렸다. 순간적인 망설임 탓에 노인은
아무런 무공도 펼치지 못했다.
노인의 입가에서 주르륵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더니 이내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여운휘는 노인을 힐끔 바라보고는 검을 검집에 꼽았다. 그는 노인
의 허리춤에 있는 열쇠를 뽑았다.
그리고는 앞에 잠겨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면 지금에는 온통 썩은 내가 진동을 한
다. 여운휘는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 남궁진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 버린 것이다.
여운휘가 한 발자국씩 걸으면서 옆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여운휘는 기척이 들리는 곳을 발견하고 곧장 그곳을 향해 걸었
다.
기척이 들린 곳에 도달하자 여운휘는 다리를 멈췄다. 철창 안에는 한 사내
가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내가. 그리고 그는 너무나 익
숙한 인물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사내가 눈을 떴다. 피비린내를 느낀 것이다.
남궁진은 앞에 있는 여운휘를 보고 순간 움찔해 버렸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자가 죽립을 쓴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탓이다. 이
곳에 올 수 있는 자는 식사를 가져다 주는 그 자와 사대무원이 전부다.
그런데 이런 자가……
여운휘는 초췌해진 남궁진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얼굴뿐만이 아
니라 의복도 이미 걸레와 다름없을 정도로 변해 있다. 평소 여운휘가 알던
남궁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서 경계심을 읽은 여운휘가 쥐어짜
듯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날…… 아는가?"
여운휘는 대답대신 죽립을 뒤로 젖혔다. 여운휘의 긴 머리카락이 풀어지면
서 뒤로 나풀거렸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여운휘의 얼굴에 남궁진의 입이
벌어졌다.
"아, 아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내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야 만
것이다. 남궁진은 너무나 놀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여운휘의 얼굴만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여운휘를 바라보던
남궁진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어떻게 살았냐고 물으려는 건가?"
"그래."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지."
말을 마친 여운휘는 수많은 열쇠를 일일이 껴보다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여운휘가 안으로 들어가 남궁진을 일으켜 세웠다. 오랜 시간 앉아만 있다
보니 다리도 굳어버렸다.
여운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공은?"
"점혈법으로 점혈 당했네. 그리고 점혈법이 독특해서 반 정도의 내공은 소
실되었겠지."
"그런가? 어쨌든 나와 함께 가지."
"잠깐."
막 움직이려는 여운휘의 어깨를 남궁진이 잡았다.
여운휘가 고개를 돌렸다. 남궁진은 여운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이 뇌옥
에 온 이후 처음으로 지어 보는 미소다.
"미안하네만 난 안 가겠네."
"…… 뭐?"
"이곳에 남겠다는 소리네."
"무슨 소리냐.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겠다는 건가?"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여운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곳까지 구하러 왔는데 이
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런 여운휘의 마음을 알아차린 남궁진이 다
시금 미소지었다.
"자네를 구하지 못해 정말로 마음이 아팠네.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자
네를 보니 이제 죽어도 원이 없네. 그리고 난 남궁세가에 씻을 수 없는 죄
를 지었어. 그런 내가 다시금 살아서 나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곳까지
온 자네의 성의는 고맙네만…… 난 못 나가겠네."
여운휘는 남궁진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아버렸다.
그의 눈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했다.
남궁진이 천천히 여운휘의 어깨를 밀었다. 그는 계속해서 웃고만 있었다.
"가게. 어서. 자네도 위험해지네."
남궁진을 바라보던 여운휘의 얼굴에 화라는 감정이 드러났다. 여운휘가 남
궁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 웃기지마."
"하하! 자네가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군."
"농담 따위 하려고 들지 마!"
여운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남궁진은 입을 닫아 버렸다. 여운휘가 이토
록 격해진 감정을 드러낸 적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여운휘가 계속해서
말했다.
"네 놈은…… 이곳에서 죽을 그릇이 아니다."
"자네의 말은 고맙지만 난 남궁세가에……"
"핑계 그만 대라! 혹시 겁나는 거냐? 천하 무림을 적으로 두는 것이?"
그 말에 남궁진 또한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무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잃은
그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려 버린 거다. 남궁진 또한 여운휘의 팔목을 잡았
다.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함부로 말하지 말게……"
여운휘는 남궁진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러자 남궁진 또한 손
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여운휘가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네가 그토록 위하는 남궁세가가 반년 안에 무림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뭐……?"
"지금 무림은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아니야. 강호십일객 중 일마라는 자
가 모든 것을 꾸몄지. 두 세력은 그 위에서 놀아나는 것에 불과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남궁진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그는 무림맹과 마교의 싸
움의 베일을 모른다.
여운휘가 다시금 말했다.
"나는 그 일마를 막으려고 한다. 너는…… 남궁세가가 망하는 것을 이렇게
보고 있을 거냐."
남궁진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전혀 처음 듣는 말이지만 남궁진은 그 말이 사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운
휘가 마교의 무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무림맹이나 마교
를 떠나 남궁진은 여운휘를 친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여운휘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진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운휘의 말대로 남궁세가는 남
궁진의 전부였다. 지금 이곳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위해서다. 비록 이제 남궁 이라는 성씨도 버리게 된 그지만 남궁세
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이 없다.
여운휘가 망설이고 있는 남궁진에게 말했다.
"같이 가자."
남궁진이 고개를 들어올려 여운휘를 바라봤다.
여운휘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남궁진은 여운휘의 손을 바라보고 이내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점혈법
을 풀기 전까지는 평범한 무인 수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을 어디에 쓰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내밀고 있는 여운휘의 손을 보다가 마음이 동한 남궁진
이 마침내 자신의 손을 뻗었다.
남궁진은 여운휘의 손을 잡았다.
여운휘는 남궁진을 일으켜 세웠다. 남궁진은 여운휘를 바라봤다. 여운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남궁진을 부축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해주러 와서 고맙네."
"그 말을 이제야 듣는 군."
여운휘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러한 여운휘의 대답에 남궁진은 다시 미소지었다.
변함 없이 무뚝뚝하지만 그 한편에서 묻어나는 따뜻함을 느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