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37)

변모(變貌) 

일마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떠한 일이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탓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일마는 탁자를 내려쳤다. 거대한 탁자였거늘 단숨에 반으 

로 쪼개졌다. 

"아직도 못 알아챈 것이냐!" 

잘 나가던 일마의 계획에 누군가가 끼여든 것이다. 

전혀 정체를 알지 못한 자들이 일마의 개인 세력들을 박살내고 있다. 그것도 완벽하게 

말이다. 

"머리가 있고 정보력이 있는 놈들이야. 우리의 눈과 귀를 먼저 잘라 버렸네. 그 탓에 아 

직도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말이야." 

"건방진 놈들…… 좌운 예상이 가는 놈들이 있을 텐데?" 

일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좌운이 입을 열었다. 

"두 무리가 있네. 무림맹과 유설린의 아래에 있던 세력." 

"대충 이야기 해 보게." 

"현재 유설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네. 사무린의 보고대로라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 만약 유가 쪽에서 손을 썼다면 범인은 우문학일 게야. 그 놈 전 

혀 본 적 없는 놈인데 호랑이 같은 자라고 하더군." 

사무린은 현재 완벽하게 악양유가에 파고들었다. 사무린은 유설린의 바로 옆에서 그녀 

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감시한다. 눈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바로 알아차리게 된 

다. 

"우문학이라는 놈에게 감시를 더 붙여.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당장 알리게 하고." 

"알겠네. 사무린에게 그리 전하지." 

"무림맹은?" 

"비록 우리 비밀세력들이 당했다고는 하나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네. 그런데 아무런 흔 

적도 없이 죽었지. 내가 보기엔 유설린의 휘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네. 개인적으로 난 둘 중 하나라면 무림맹에 손을 들겠네." 

조그마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병장기나, 시체는 고사하고 옷의 일부조차 남겨두지 않 

을 정도로 상대는 치밀한 자들이다. 중요한 건 일마의 비밀세력 모두가 죽는 동안 근방 

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다. 

그만큼 압도적이고 은밀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무림맹이라고 보기만도 뭔가 석연치 않다. 좌운이 그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헌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림맹에서 자네에 대해 알아내야 했다는 말이야. 비밀세력을 

골라내면서 부술 정도라면 이미 자네의 정체도 알아냈겠지. 그런데 무림맹에 심어 놓은 

간자에게서 그런 연락이 없었네." 

"무림맹이든 유가의 조무래기든 이제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대세는 결코 기울어 질 수 

없으니까." 

그 누가 방해한다 한들 두렵지 않다. 하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이쪽에서 사양이다. 가랑 

비에 옷이 젖는다 했다. 비록 지금은 웃어 넘기지만 이러한 피해가 계속 쌓인다면 일어 

설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더군다나 무림을 제압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무림을 제압한 후에는 바로 황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만들어 내 

야 하는 처지다. 

"반드시 알아내게." 

"내 최대한 빨리 알아보지." 

건방진 자들이다. 감히 천하를 손 아래 두려는 자신에게 도전을 하다니. 솟구치는 화를 

비웃음으로 대신한 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획에 변화는 없다. 

막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녹포괴존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녹포괴존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거대한 고목 옆에 한 사내가 서 있다. 

여운휘다. 세 달 전 오행검법 후반부 비급을 가지고 사라졌던 그가 이곳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예상외의 등장이었는지 내심 놀란 듯 녹포괴존이 말했다. 

"무슨 일이지? 분명 오행검법을 다 익힌 후에야 보자고 했는데? 설마 벌써 오행검법을 

다 익혔다는 건가?" 

"아니오. 아직 난 오행검법을 대성하지 못했소." 

녹포괴존의 물음에 여운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운휘의 대답에 녹포괴존은 문을 닫 

았다. 분명 다시 만날 때는 오행검법을 대성한 후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여운휘와 만날 

이유도, 생각도 없다. 

문을 닫은 채로 녹포괴존이 말했다. 

"썩 물러가라. 네 놈과 지금 얼굴을 맞댈 이유가 없다." 

"분명 난 지금 오행검법을 대성하지 못했소. 당신은 나에게 오행검법을 다 익힌 후에 이 

곳에 오라고 했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을 이만 떠나야 해서요. 당신의 말대로 대 

성 한 후에 찾아올까 했지만……" 

여운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녹포괴존이 닫아 버린 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여운휘가 말 

을 이었다. 

"확실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왔소. 만약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또 다시 약속을 어기는 것 아니오. 두 번이나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이토록 찾아 

온 거요. 그리고…… 지금의 오행검법만으로도 당신이 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 줄 수 있 

다고 생각하기에." 

여운휘의 말을 듣고있던 녹포괴존은 마지막 말에 발끈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그 

곳에서 바닥을 박차면서 여운휘의 코앞까지 날아왔다. 

"오냐. 아직 채 익히지 못한 오행검법으로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한 

번 보여봐라!" 

녹포괴존은 양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소매가 미친 듯이 휘날렸다. 그리고 녹 

포괴존의 손이 멈추는 순간 소매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여운휘가 제왕검을 들어올렸다. 

검을 들어올린 여운휘를 보는 순간 녹포괴존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변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전에 한 번 겨뤄 본 녹포괴존으로서는 여운휘의 자세가 바뀌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 

차렸다. 그때는 너무 빈틈이 없었기에 공격을 할 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온 몸이 무방비다. 검을 들고 있는 여운휘의 온 몸이 빈틈 투 

성이다. 

"가겠소." 

"하압!" 

먼저 움직인 것은 녹포괴존이다. 여운휘의 자세의 변화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녹포괴존의 쌍장이 날아드는 것과 동시에 여운휘의 

검도 움직였다. 

순간…… 환상을 보았다. 녹포괴존의 눈 앞에 수만가지 환상들이 스쳐지나갔다. 

털썩. 

녹포괴존이 주저앉아 버렸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여운휘를 바라봤다. 

"이, 이것이 오행검법……?" 

"아직 대성하지 못했소. 대성하게 되면 검법을 펼치는 순간 진법도 동시에 일어난다고 

하더군." 

"하, 하하!" 

녹포괴존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토록 보고자 했던 오행검법이다. 전에 봤던 여운휘의 반 쪽 짜리가 아닌 진짜배기 오 

행검법이다. 

숨이 턱 하니 막혀온다. 

물론 지금 싸웠다면 단순히 밀리지는 않았을 게다. 지금의 자신과 여운휘는 동수였다. 

하지만 그게 놀라운 거다. 얼마 전 까지 여운휘는 녹포괴존에게 패배라는 단어를 생각나 

게 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제는…… 싸운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고작 몇 달 만에 자신과의 틈을 극복해 

낸 것이다. 

비록 녹포괴존 자신의 손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오행검법을 보았 

다. 남의 손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것에 연연할 녹포괴존도 아니다. 이미 오 

행검법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포기했으니까. 

"만약 내가 살게 된다면 제대로 된 오행검법을 들고 당신을 찾아오겠소. 그럼 이만." 

오행검법을 보여 주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여운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녹포괴존은 아직도 멍한 상태였다. 

'할아버님……'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목표했던 사람이다. 무인으로 존경했고, 넘어서고 싶었던 존재 

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힘들 듯 하다. 

'당신을 넘어서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녹포괴존은 검귀는커녕 일마라는 벽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녹포괴존의 눈이 여운휘의 등뒤로 향했다. 저 사내다. 지금 무림에서 유일하게 일마를 

이길 만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저 자 뿐이다. 

천하제일이라는 검귀의 진전을 이은 자.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사내.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게다. 일마 그 자는 설령 할아버님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상대하 

기 꺼려할 만한 고수니까.' 

녹포괴존은 싱긋 미소지었다. 이제는 새로운 젊은 무인들의 시대다. 

이제 뒤는 무림의 후세들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럼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여운휘와 별개로 녹포괴존 또한 할 일이 있다. 암황의 입장을 잘 아는 녹포괴존으로서는 

현재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녀 또한 일마의 횡포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다.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게다.' 

일마의 뜻대로 되게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혈무린은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세 달 전쯤 혈교를 떠났던 여운휘가 이곳에 돌아온 것 

이다. 그간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던 터다. 그러던 차에 연락도 없이 그가 혈 

무린의 거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비에게 철비상을 이곳으로 오라고 하게끔 명한 혈무린은 그녀가 방을 나서자 입을 열 

었다. 

"잘 지냈는가? 보아하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군." 

"이제 몸은 완전히 나았소. 거동은 물론이거니와 예전처럼 검을 휘두를 수도 있는 단계 

요." 

"녹포괴존을 만나러 간 일은 잘 되었나?" 

"운이 좋아서 쉽사리 받고자 하던 것을 받았소." 

"잘 된 일이야! 그리고 그동안 우리 혈교는……" 

혈무린은 말끝을 흐리더니 곧 전음을 날려왔다. 

[지금 일마의 세력을 파악해 내서 각개격파 중이네. 현재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했고 

자금줄도 반 정도는 잘라낸 상태네.] 

[추후의 계획은 어찌 되는 건지 말해주실 수 있소?] 

[간략하게라면.] 

여운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혈무린이 계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우리는 마교의 안으로 들어갈 걸세. 물론 정면격돌은 아니야. 아무리 우리가 일마의 세 

력을 줄여 놓는다 한들 정면으로 부닥친다면 이긴다 해도 이쪽 또한 소생불가의 피해를 

입을 걸세. 우리가 지금 일마의 세력을 줄여 놓는 것은 두 가지 이유네. 첫 번째가 그의 

힘 자체를 약하게 하려는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우리의 힘을 마교에서 필요로 하기 위 

해서지.] 

여운휘는 바보가 아니다. 혈무린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계획을 알아차린 것이다. 

일마의 세력이 자꾸만 줄어든다면 그들로서는 다른 힘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러한 힘을 하루아침에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다른 누군가의 힘 

을 빌려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는 적당한 조건을 걸고 마교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할 걸세. 물론 일마는 망설이겠 

지. 다른 세력이 이 일에 끼여들면 일이 더욱 복잡해질 테니까. 하지만 그로서는 승낙할 

수밖에 없을 게야. 우리가 그리 만들 테니까.] 

[그 후에는?] 

[마교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때는 끝이네. 애초에 우리의 뿌리는 마교일세. 교란은 

일도 아니지. 몇 가지 생각해 둔 것이 있긴 하지만……] 

말을 하던 혈무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시비와 함께 철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혈무 

린과 여운휘는 태연한 얼굴로 인사했다. 

혈무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후 철비상이 반갑다는 듯 여운휘의 손을 잡았다. 그 두꺼 

우면서도 단단한 손이 여운휘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연락이라도 주지 않고!" 

"연락을 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몸 건강하니 정말 다행일세! 환자 혼자 보낸 게 자꾸 마음에 걸렸는데 이토록 건 

강하게 돌아오니 내가 심히 기쁘구먼." 

철비상이 손에 힘을 풀자 여운휘는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 

항상 이 사내에게는 고마울 뿐이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고, 여운휘를 위해 준다. 

지금도 그렇다. 철비상의 눈에는 결코 위선이나 거짓이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여운휘 

를 걱정했다는 것이다. 

"당신 덕분이야. 철비상 당신 덕분에 내가 이곳에 있게 됐지. 은혜는 갚지." 

"하하! 나 또한 은혜를 입었거늘 무슨 소리인가! 

시비가 세 잔의 차를 건네고 나간 뒤 다시금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여운휘가 먼 

저 입을 열었다. 

"유가의 상황은 어떻소?" 

"현재 유가는 예전과 전혀 다를 것 없이 돌아가고 있네. 그렇지만 장사를 해서 생기는 자 

금들은 전부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지. 완전하게 무림맹의 돈줄이 되어 버린 셈이야. 그 

리고 현재 소교주는 두문불출이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양이야."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오?" 

"걱정 말게 죽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십여 일 전에도 유가에서 소교주를 보았으니까. 다 

만…… 살아 있긴 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말이오?" 

"혼이 나간 사람 마냥 하루 하루를 보내는 모양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인형처럼 

말일세." 

그럴 만도 하다. 유설린은 여운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만약 유설린이 죽었다 

면 여운휘 또한 완전히 미쳐 버렸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유설린은 지금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다. 항상 지켜주겠다고 해 놓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만 

안다면 결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할 여인이 아니다. 

더 이상 이렇게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여운휘는 혈무린에게 말했다. 

"유가로 가겠소." 

"안 돼. 아직은 때가 아닐세." 

"알고 있소. 아직 섣불리 움직일 때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여운휘라고 그걸 모르랴. 잘 알지만 더 이상 이렇게 관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설린이를 구해내겠다는 것이 아니오. 지금 그랬다가는 모든 일이 무너져 내릴 지도 모 

른다는 것도 알고 있소.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을 알리고 싶은 거요." 

"괜히 움직였다가는 꼬리가 잡힐지도 모르네. 섣부른 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아." 

"설린이의 옆에는…… 내가 있어야 하오. 강하지만 약한 아이니까." 

"허나……" 

혈무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운휘의 눈빛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예전에 봤던 여운휘는 하루 하루를 살아갈 마음조차 없는 아이였다. 변한 건 키나 무공 

만이 아닌 듯 하다. 눈빛이 변했다. 그토록 삶의 욕심이 없던 아이였거늘 지금은 아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그토록 삶의 의욕이 없던 사내를 이토록 바꾼 것은 분명 유설린이라고 불리는 소교주일 

게다. 

더 이상 반대할 마음이 일지 않는다. 혈무린은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는 안 될 게야.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돌아오게. 그리고 꼬리가 

잡힐 일도 해서는 안 되네. 소교주의 감시가 상당할 테니 직접 접촉할 생각은 하지말고." 

"알고 있소. 만약 꼬리가 잡힐 것 같다면 그대로 물러서겠소." 

"자네라면 잘 해 낼 수 있을 게야."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대로라면 혈교에서 조용히 오행검법을 익히려 했다. 하지만 유설린의 상황을 알아 

버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이곳에 있으면 마음만 흔들릴 것 같다. 

다행히도 오행검법은 몇 만 번에 휘두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깨달음이 필요한 검법이 

다. 

걸으면서도, 누워서도 언제든지 오행검법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럼." 

그는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여운휘가 나간 것을 확인하자 차를 마시는 혈무린을 향해 철비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 

었다. 

"형님. 여운휘의 기도가……" 

"알고 있네. 변했어. 잘은 모르지만 한 단계 무공의 증진이 있었거나 깨달음이 있었겠지. 

아무래도 녹포괴존과 만난 것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네." 

혈무린과 철비상은 여운휘의 변화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날카로우면서도 모든 것을 포 

용할 듯한 기도에 혈무린 조차도 처음엔 숨을 들이켰을 정도다. 

"그때 점쟁이의 말을 듣고 오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죽게 한 유백명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지. 그렇게 해서 만든 고수라고 해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무인에게는 손도 

못 쓸 거라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그 조그만 곳에서 호랑이가 태어난 모양이야." 

혈무린은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혈무린은 미소를 거두로 철비상을 바라봤다. 마교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후 혈무린의 

측근들은 쉴 날도 없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철비상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한 일은 잘 되고 있는가?" 

"현재 마교 내에서 진린이라고 알려진 일마의 행각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대충 추려냈습 

니다. 보름 정도면 숨은 몇 명도 알 것 같습니다." 

"이 일은 중요한 일일세. 최대한 우리의 힘이 되어줄 자들을 찾아내게." 

"알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꾸벅 한 철비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운휘가 왔다기에 잠시 온 자리, 그 또한 

지금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입장이다. 

쉴 틈이 없는 건 혈무린 또한 마찬가지다. 천하를 놓고 싸우는 싸움. 한시라도 쉴 여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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