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37)

괴사(怪事) 

유설린의 움직임은 완전히 묶여 버렸다. 유가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결코 소가주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이미 유가는 유설린의 것이 아니 

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암암리에 유가를 무림맹이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반발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 또한 드물었고, 개중에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 처지에 있는 인물이 없는 탓이다. 

더군다나 유가의 기둥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유설린이 그 모든 신경을 끊어 버린 것 

이다. 

여운휘의 죽음. 그것이 유설린에게 어떠한 것인지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가졌던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이만하지는 않으리라. 유설린의 얼굴은 인형처럼 굳 

어져 버렸다. 옆에서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던 미소조차도 사라졌고 누군가가 말 

을 걸어도 묵묵부답이다. 

특히나 무림맹 쪽에서 온 자들의 말에는 단 한 마디의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이 바로 여운휘를 죽인 주범이니까. 

그런 그녀의 옆을 우문학이 홀로 외로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 있는 유설린을 보면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상실감이 클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폐인의 모습으로 지낼 줄은 몰랐다. 해야 할 말은 많지만 도 

저히 듣지도 않는다. 

우문학은 마침내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가주님." 

고개는 돌렸지만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나마 우문학이기에 이만한 반응을 보 

이는 것이지 웬만한 사람이라면 무시하기 일쑤다. 

"소가주님이 도망치신 후 저는 유가를 정리했습니다. 물론 일부로 드러낸 일부의 세 

력은 무너져버렸지만 실질적인 힘을 그대로입니다." 

대단한 수완이다. 무림맹의 철두철미한 정보망과 계산을 우문학은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냈다. 물론 그 대가로 우문학은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유설린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일터인데도 그녀는 그저 멍하니 허공만 응 

시했다. 우문학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소가주님. 상실이 크신 것은 알고 있지만 이대로 있으셔는 안 됩니다. 유가가 건재 

한다 해도 그것은 전부 소가주님이 멀쩡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유가는 있 

어도 없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리고 죽어 버린 그 친구도 소가주님이 이 같이 있 

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정신을 차리시고 복수를……" 

"복수를 해서…… 뭐가 남죠?" 

폐부를 긁어내는 듯한 한 마디였다. 하지만 우문학은 유설린을 설득하기 위해 계속 

해서 말을 꺼냈다. 

"그럼 가만히 계실 겁니까? 여운휘 그 친구도 소가주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 분명 화 

를 낼 겁니다. 그건 저보다 소가주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아요! 안단 말이에요! 휘가 내 옆에 있었다면 분명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무슨 말 

인가 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유설린이 이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건 우문학으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는 급 

히 유설린에게 조용 하라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바로 곁에는 없지만 이미 사방에 

무림맹의 무인이 깔린 상태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유설린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죠. 그 꾸중 어린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소가주님." 

우문학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유설린은 지금 바라고 있는 게다. 죽 

은 여운휘가 지금이라도 나타나 꾸중 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꾸짖어주기를. 

하지만 불가능하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승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온단 말인가. 다 

시 보고 싶어도 결코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여운휘다. 

우문학은 어떻게든 유설린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말을 돌렸다. 

"소가주님 그 뿐이 아닙니다. 애초의 목적이었던 유 교주님의 복수는 어쩌시려고 그 

러십니까. 그리고 여운휘의 죽음 또한 그리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알아요?" 

"뭐가 말입니까?" 

"만약 내가 마교에서 도망쳐 나온 그 날로 돌아가면 복수 따위는 하지 말자고 했을 

거예요. 그냥 초야(草野)에 묻혀서 그렇게 살자고 말했을 거라고요. 알겠어요? 휘 

가 없이는 복수고 뭐고 다 필요 없단 말이에요!" 

우문학을 말을 마치고 고개를 파묻는 유설린을 보면서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다. 

"복수를 안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해요. 그냥 있을래요.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 복수 

를 하려고 하면 또 다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죽게 될 거예요. 그냥 이렇게 있다 

가…… 허수아비처럼 있다가 휘를 따를래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우문학은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유설린의 

얼굴을 보다가 속으로 되뇌었다. 

'끝이다.' 

완전히 끝나 버렸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같이 힘든 상황에 있었어도 항상 눈 

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설린의 눈에는 희망이 있었다. 하고자 하 

는 욕망과 함께.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런 것은 없다. 

완연한 포기다. 무엇인가를 할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 

도 그녀에겐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우문학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는 자연스럽게 다음 말로 넘겼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게 언제일지, 혹 평생이 지나야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결 

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게다. 

우문학은 무림맹의 무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유설린에게 건넸다. 

"오늘 도착한다고 합니다. 소가주님의 곁에 있을 무인이. 소가주님이 여자인 탓에 

아직까지 하루 종일 무인이 옆에 붙어 있지 않았지만 이번에 오는 자가 여인이라 앞 

으로는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 겁니다. 결코 소가주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 

려고 할 테니까요." 

말을 하지 않는 유설린을 보는 것만큼이나 우문학에게 답답한 일이 산더미다. 그의 

대단했던 정보망을 활용할 수가 없는 탓이다. 유설린에게 감시가 붙었듯 우문학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정보를 대놓고 받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은밀히 그것들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우문학은 유설린의 옆에 선 채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유설린의 옆에 있을 거라 

는 무인을 보기 위해서다. 

두 시진 정도가 흐르니 밖이 시끌벅적하다. 누군가가 온 것을 확인한 우문학은 그 

게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여운휘처럼 유설린의 옆에 붙어 있을 여자 무인이다. 하지만 여운휘와는 달라도 극 

히 다르다. 그녀는 무림맹에서 뽑은 자로 지켜 준다기 보다는 감시자의 역할이다. 

우문학은 문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움찔해버렸다. 상대는 어느새 문까지 다가왔는데 

지금에야 알아차려 버렸다. 그가 제 상태였다해도 상대하기 힘든 고수다. 

'누구인가!' 

그의 머리 속에서 수많은 여자 고수들의 별호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문이 열리 

며 젊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급히 머리를 회전하던 우문학은 넋을 놓고야 말았 

다.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다. 유설린과는 전혀 다른 미를 풍기는 여인은 결코 나이가 많 

아 보이지 않았다. 우문학은 정체를 파악해내지 못했다. 색미호 도미진과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실력이나 그 모든 것에서 이 앞에 있는 여인이 월등하다. 

화려한 붉은 경장을 입은 여인이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유설린에게 인사를 건 

넸다. 

앵두 마냥 붉은 입술. 아니 오히려 피를 머금은 듯 요사스럽기까지 한 입술이 나지 

막이 열리며 꾀꼬리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뵙게 돼서 반가워요. 무림맹에서 소가주님을 지키라고 해서 왔죠. 잘 지내봐요 우 

리. 아, 제 이름은…… 사무린이라고 해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여인의 눈이 일순 번뜩였다는 것을 우문학은 알아차리 

지 못했다. 

유가의 내부를 두 명이 걸었다. 

한 명은 절름발이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한 눈에 확 들어올 정도의 미인이다. 전 

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내와 여인이었지만 묘한 대조를 보이며 유가를 걷고 있 

다. 

절름발의 사내는 우문학이고 여인은 사무린이다. 지금 우문학은 유가의 몇 군데를 

대충 둘러보게끔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무린을 주의 깊게 살폈다. 

상대가 어떠한 자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인품이나 성격, 그리고 무공의 깊이. 

그런데…… 

‘모르겠다. 도저히.’ 

사무린이라는 여자는 도저히 파악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다. 사무린이라는 이름 처음 들어 본 

다. 여인 중 이만한 고수라면 소문이 나고도 남을 터인데 어떻게 이 같이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단 말인가. 

무공이 떨어진다 해도 외모만으로도 소문이 나기 충분하다. 그녀의 미는 사람을 무 

섭도록 흡입해 간다. 마주 보고 있으면 속이 진탕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섭혼 

술의 고수를 앞에 두고 있는 듯 하다. 

무림맹에서 유설린의 바로 옆에 있을 인물로 지적한 만큼 분명 고수임은 틀림없는 

데 도저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처음 유설린의 거처 앞에 모 

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랬다. 바람처럼 나타난 사무린이라는 여인의 등장에 우문학 

은 놀라 버렸다. 

분명한 것은 우문학보다는 한 수 이상은 위라는 것이다. 

사무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유설린을 살폈고 그리고 우문학을 관찰했다. 

‘소교주는 애송이, 이 사내는 범이지만 결코 날개는 달 수 없는 범.’ 

유설린을 본 사무린은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여운휘가 선택했던 여인이다. 자신에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사내가 마음을 

열었다. 헌데…… 실망이 앞선다. 눈에는 힘이 없고 살려는 의지조차 없다. 그저 어 

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인이다. 그저 외모만 아름다운. 

‘아무런 것도 없어. 그런데 도대체 왜 그가 이토록 마음을 준 거지?’ 

어차피 죽은 사내다. 그렇지만 사무린은 죽기 바로 직전의 여운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변한 게 없다. 그 멍청할 정도의 우직함도. 너무 아깝다. 여운휘의 목숨 

값을 아무리 작게 쳐도 그 소교주에 비하면 천배는 아까운 사람이다. 

그 생각 때문일까 소교주를 처음 보는 순간 웃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 

다. 여운휘가 고작 저런 계집 때문에 죽다니…… 

여운휘도 그렇지만 우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둘 모두 범이지만 결코 그 주인 되는 

사람은 그만한 그릇이 아니다. 

우문학이 절름발이가 된 이유도 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눈에서는 기광이 번뜩인 

다. 눈빛이 마음에 드는 사내다. 싸운다면 필승을 장담하지만 그래도 쉽게 싸우고 

싶지는 않은 상대다. 저런 자라면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지며 달 

려들 자다. 

싸운다면 적어도 손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사무린은 은근히 우문학을 떠보기 시작했다. 

“다리는 괜찮으세요?” 

“아, 뭐 다니는데 불편은 없습니다.” 

“무공을 펼치기 힘드시겠어요. 차라리 편히 쉬시는 게 어떨까요. 일선에서 물러서 

시고요.” 

“하하! 걱정은 감사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소가주님을 보필 하는 것이 제 

몫입니다. 비록 한 발은 쓸 수 없어 무공 실력이 예전에 비해 부족하다 하나 그래 

도 말입니다, 전 악양유가의 1조 조장인 우문학입니다. 제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건 

무덤에 들어간 이후일 겁니다.” 

우문학의 말에 사무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로 마음먹고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정정하셔야겠어요. 오래 함께 하시려면.” 

“몸 하나는 건강합니다.” 

가볍게 말을 끊은 우문학은 그냥 그렇게 걸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무린은 속으 

로 중얼거렸다. 

‘정말 아까운 자야. 저 만한 투지라면 좋은 상관만 만났다면 지금쯤 멋들어지게 살 

고 있을 텐데.’ 

그러해야 할 자가 주인을 잘못 만난 이유로 지금은 절름발이가 되어 버렸다. 

사무린은 얼마 전을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일마의 명령에 그녀는 유가로 향하게 됐 

다. 처음엔 조금 그랬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일마 

는 유설린을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다. 그러한 여인을 완벽하게 제어한다면 사무린 

은 분명 일마의 눈에 들게 될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죽여야 할 상대이지만 그전까지는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 탓에 사무린은 무림맹에 가야했다. 마교의 인물인 그녀가 무림맹에 정파의 가면 

을 쓰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종리회연의 조카인 종리구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사무린은 아 

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일마의 명이라면 이미 모든 것이 준비 되어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제는 

사무린이 자신의 실력만 보여주면 됐다. 

사무린과 종리구가 대면했다.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다가 앉아 있는 사무린을 보 

고 조금 못마땅한 듯 말했다. 

“흠. 사무린이라고 했소?” 

“예. 이번에 명을 받고 왔지요.” 

“이번에 해야 하는 일은 힘든 일이오. 아마 여협의 몸으로는 다소 힘들 듯 한 

데……” 

종리구는 사무린이 너무 어려보이기에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종리구는 위 

에서 보내온 무인이기에 딱히 반대는 하지 못하면서도 뭔가 못마땅하기에 말을 흐렸 

다. 

그렇다. 일마의 세력은 무림맹 깊숙이까지 박혀 있었다. 그중에 최상층에 있는 무인 

도 있는데 그가 지금은 죽은 유명한 무림명숙이었던 선녀검(仙女劍) 유사의 제자로 

사무린을 위장 시킨 것이다. 

“실력을 보여드리면 되는 거겠죠?” 

“그럴 수 있소? 그러면 나야 감사할 뿐이오.” 

내심 걱정이 앞섰기에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사무린에 말을 종리구는 반갑게 받아들 

였다. 사무린은 앉은 상태로 발검 했다. 

슉! 

검은 종리구의 귓가를 스치고 뒤쪽을 훑고 지나갔다. 

찌릿! 

종리구는 몸을 스치는 전율을 느끼며 사무린을 바라봤다. 아까와는 다른 눈빛이다. 

종리구 또한 어느 정도 무공에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 조차도 사무린의 검 

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귓가를 훑고 지나간 검이 뒤쪽에 걸려 있던 그림의 끝 네 

군데를 모두 잘라 버렸다. 

단 한 번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후로 두 번씩 움직인 모양이다. 

“대단하오! 과연 선녀검 유사님의 제자요!” 

감탄하던 종리구는 이어 사무린에게 조심스럽게 유가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것을 비 

밀에 붙여주기를 부탁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지만 짐짓 놀란 척을 하던 사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가의 소가주가 여자인 탓에 너무 옆에 남자를 붙여 놓으면 안 좋게 소문이 날까 

봐 고민을 했는데 여협 같은 고수가 나타나 실로 마음이 든든 하외다. 그럼 부탁하 

오.” 

사무린은 종리구와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문 밖을 나와 바로 악양유가로 달려왔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악양유가에 오게 된 과정이었다. 

앞으로 사무린은 항상 유설린의 옆에 있을 것이다. 유설린의 곁에서 그녀를 감시하 

며 또한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무린은 무림에 전 

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까. 

사무린은 홀로 걸어가는 우문학의 뒷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당신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일마는 이기지 못해.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인간이 아닌 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이 아니어야 해. 당신 중에 그럴 자 

는 아무도 없어.’ 

적어도 지금만큼은 일마와 겨룰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지금이 아닌가. 하지만 언젠가는…… 

사무린은 유가가 무너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했다. 일마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이상 그건 당연한 결과다. 

혹 모른다. 여운휘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일이 풀려나갔을지도. 사무린이 기억하 

는 여운휘 또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 천재적인 기질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는 무리였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찾아봤자 무엇하겠는가. 그나마 유가를 버티게 했던 여운휘라 

는 기둥이 무너진 지금 이곳은 작은 바람에도 무너져 버리는 가문일 뿐이다. 

대충 이곳저곳을 둘러본 사무린은 우문학에게 말했다. 

“이만 돌아가요. 소가주님의 옆으로 말이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무린에게 우문학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앞 

으로 여운휘의 자리를 대신 할 여인.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검을 들었다. 

가벼이 몰아치는 검풍이 귓가를 스쳤다. 한 사내의 검이 앞에 놓여 있던 나무토막 

을 벴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천하를 흔들 만한 힘이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깔끔하 

다. 

단 한 번의 검을 휘두르고 사내는 숨을 몰아 쉬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검을 잡은 탓 

이다. 얼마 전까지는 거동을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던 여운휘다. 

이제는…… 검을 들 수 있다. 위력이나 내공의 분배 모두 예전에 비해서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줄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검을 든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 누가 

봐도 감탄을 터트릴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맬 정도의 부상을 입었 

던 여운휘의 회복은 그 누가 봐도 놀랄 정도였다. 

단순히 여운휘의 회복력 때문이 아니다. 유설린을 구하기 위한 여운휘의 발악이었 

고, 피나는 노력이었다. 안 움직이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결 

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검을 들 수 있다. 

'아직이다. 아직.' 

벌써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고 검도 조금 

휘두를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무림맹에 갈 수는 없다. 

혈교가 돕는다고는 하지만 짐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막 흐르는 땀을 닦는데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혈 

무린이 서 있었다. 그 날 이후 혈무린은 종종 여운휘를 찾아왔다. 

여운휘는 혈무린에게 전에 했던 마교와 싸워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고 그 또한 그 

것에 대해서는 마치 듣지 못했던 것처럼 함구했다. 

"그것이 천하를 흔들었던 사내의 검이로군. 얼마 전까지 그토록 부상을 입었던 사내 

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덕분이오." 

"약조한대로 소교주를 구하는 것은 도와줄 것이네. 미리 말만 해 준다면 충분히 도 

움을 주지. 그리고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그것뿐이네. 더 이상의 것은 미안하지 

만 무리야." 

여운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혈무린은 그를 보면서 내심 미안하면서도 그런 감 

정을 숨기려 했다. 대신 혈무린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차라도 한 잔 하지." 

말을 마친 혈무린은 여운휘와 함께 연무장을 벗어났다. 언제와도 혈무린의 거처는 

검소했다. 무인답게 화려하지 않은 흰색으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겉모습만이 아니 

다. 혈무린이 마시는 차 또한 결코 톡톡 쏘지 않고 혀를 부드럽게 감싼다. 

처음에는 가벼운 담소가 오갔지만 곧 혈무린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소교주를 구한 후에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마교를 되찾을 거요. 약속이니까." 

"힘들텐데 굳이 그래야겠는가. 원한다면 혈교가 도와 평생 조용히 살게 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럴 생각은 없소. 비록 힘들겠지만 유가의 힘은 화산파에 견줄 만 하오." 

혈무린은 그 말에 내심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태까지 유가라는 세력에 대해 

듣기만 했을 뿐 그것이 구파 일방의 하나인 화산파에 견줄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한 

탓이다. 

"과연 그 친구로군. 그 친구는 예전부터 그랬지. 뭔가 앞날을 내다봤단 말이야. 그 

런데 말일세, 그 정도의 집단이라면 자네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 그다지 이해가 가 

지 않는 군. 더군다나 자네와 소교주 또한 마교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지 않았는 

가. 무림맹이 어떻게……" 

"무림맹이 아니오. 그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아내지 않았을 거요. 정보는 마교에서 

샜소." 

"마교에서? 그들이 무슨 이유로 자네들의 정보를 흘린단 말인가." 

"우리가 무림맹을 도우니까. 그들로서는 아마도 눈에 가시였겠지." 

이해는 가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혈무린이었다면 그 상황을 이처럼 보 

내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크게 그리고 적절하게 터트렸을 게다. 

지금 무림맹이 입은 손해는 여운휘가 죽인 자들이 전부다. 아마 이 일을 조금 더 적 

절하게 터트렸다면 무림맹을 흔들 정도로도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좋은 기 

회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마디 하겠네. 비록 엄백린이 편협한 자라고는 하지만 어 

느 정도 머리는 있는 인물일세. 아마 나였다면 일을 이처럼 만들지 않았을 게야. 무 

림맹의 힘을 줄여 마교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게 분명하단 말이야." 

"일마는 마교도 무림맹도 승기를 잡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하오. 아마도 자신의 개 

인 세력으로 완벽하게 무림을 휘어잡기 위해서겠지." 

"일마? 자네가 말하는 것이 강호십일객 중 하나인 일마라는 말인가?" 

여운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혈무린이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 

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꽉 쥐여진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알아냈는가……" 

"직접 대면한 적도 있소. 과연이라는 말이 나오던 실력이더군." 

"일마가 지금 마교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지금 무림을 움직이는 게 일마요. 오래 전부터 준비했는지 이미 마교를 쥔 상태라 

고 알고 있소." 

혈무린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교가 누 

군가의 손에 의해 놀아난다니. 

그리고 그것이 강호십일객 중 하나인 일마란다. 그가 알기로 결코 일마는 그렇게 모 

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일마가 무림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혈무린은 

안다. 그 또한 그곳에서 그 모습을 본 당사자 중 하나니까. 아는 것은 마교의 전전 

대 정도의 장로들과 유백명, 혈무린이 전부다. 

일마는 마교도인이 아니다. 그는 어느 날 마교에 도전을 해왔다. 

자신감이 넘치는 일마는 당시의 마교 교주였던 유문극에게 일대일 비무를 요청했 

다. 그가 바로 유백명의 아버지로 마교 교주 중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고수다. 

일마가 말했다. 

"십 수. 십 수 안에 끝내지. 만약 십 수 후에도 자네가 서 있다면 난 평생 은거하겠다. 대신 네가 십 수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마교는 내 것이다." 

거절 할 수 없는 비무였다. 그때 이미 일마는 천하제일인으로 무림의 모든 문파를 

깨나갔다. 마교 교주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마교의 자존심이다. 마교의 

무인이 상대가 강하다는 이유로 피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패를 추구한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도 강하다. 

마교의 장로들이 증인으로 참석했고, 그 둘은 약속 된 십 수를 겨루었다. 

유문극은 강했다. 그는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에만 치중했다. 그는 수라혈모수를 사 

용하여 공격을 흘리면서 단 한 수를 준비했다. 반면 일마는 십 수 모두를 자신의 절 

공을 펼쳤다. 

몰아닥치는 파도와도 같은 공격. 하지만 유문극은 용케도 피해냈다. 그때 일마는 슬 

쩍 비웃음을 흘렸다. 애초부터 팔 수는 장난이다. 진정 공격은 구 수로 기회를 만들 

어 내고 터져 나오는 바로 마지막 십 수였다. 

애초부터 유문극이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안 일마는 그를 가지고 논 것이다. 

구 수에서 유문극은 갑자기 변하는 기도에 급히 뒤로 물러서다가 급기야는 균형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제야 일마의 계책을 알아차렸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일마의 마지막 일 장이 유문극의 가슴을 쪼개려고 다가왔다. 너무나 빨랐기에 유문 

극은 그 손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무인의 직감이 말했다. 

움직이라고.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방어를 포기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당시 몰두하고 있던 대풍운장을 사용했다. 손 

에 무엇인가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몸이 뒤로 붕 하니 떴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에 일마의 손이 적중됐다. 

잔뜩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 유문극을 보며 일마는 승리를 직감했다. 

그런데 일어났다. 우습게도 대풍운장이 일마의 반탄력에 의해 밀려나면서 덩달아 유 

문극 또한 뒤로 저절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 탓에 일마의 공격은 제대로 된 위력 

을 발휘하지 못했고. 

일마는 미친 듯이 포효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는 그 

날로 무림에서 몸을 감추었다. 

그랬기에 잊고 지냈는데…… 

자신을 드러낸다면 더욱 쉽게 풀릴 일을 그토록 비밀리에 행하는 이유도 알만 하 

다. 그런 약속을 하고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는 무인 대 무인으로 한 약 

속을 어긴 셈이 된다. 

혈무린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단순히 일마의 등장 때문이 아니다. 마교가 마교의 무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휘 

둘리는 탓이다. 

마교는 약육강식이다. 힘이 강한 사람이 위에서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 

고 혈무린 또한 그러한 생각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교 

의 무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마는 마교의 무인이 아니다. 오히려 마교의 교주와의 약속을 어기고 모습을 드러 

낸 자인 것이다. 

마교의 무인으로서 수치스럽다. 그런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마교가 지금 이 

용당하고 있다니…… 

혈무린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보며 여운휘는 의아스러운 표정만 짓고 있었 

다. 

혈교개문(血敎開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요물이라 했다. 마교에 대해 관심을 끊는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건 

만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마교가 마교인도 아닌 제 삼자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 혈무린의 가슴에 불을 지 

폈다. 더군다나 그는 오히려 마교에 해악을 끼치려 했던 자가 아니던가. 

마교에 대한 마교도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만큼이나 마교라 

는 이름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위에 마교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군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친구여.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유백명과의 약속만 없었다면 단숨에 달려갔을 게다. 설령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상 

관없다. 그것은 혈무린 뿐만이 아니라 마교의 무인의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그들 

에게 그것은 목숨을 버리고도 지켜야 할 정도의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사내끼리의 약속이었다. 그것도 비록 등을 돌렸다고는 하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벗이었던 사내와의. 

심란한 표정으로 창 밖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던 혈무린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 

렸다. 

"주군." 

"무슨 일인가." 

"심기가 어지러우신 듯 합니다." 

"어찌 알았는가?" 

"주군과 함께 한 지 삼십 년이 넘은 저입니다. 그 정도는 말하지 않으셔도 알 수 있 

습니다." 

혈무린은 사내를 바라봤다. 

외팔이 검객이다. 빈 왼쪽 소매가 펄럭였다. 하지만 결코 그 모습은 누군가에게 위 

축됨이 없이 당당했다. 비록 외팔이라고는 하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은 

맹수조차도 물러서게 만들 것만 같았다. 

혈무린이 가장 믿는 자고, 또한 그만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비록 주군과 수하의 관계였지만 삼십 년 이상을 같이 하면서 심지어 혈무린 조차도 

그를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 정도로 깊은 정을 느끼게 됐다. 

"후후. 맞추었네. 그럼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가?" 

"혈교에 온 여운휘라는 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은 맞추었군." 

"그 나머지 반은 혹 마교의 일 때문이 아닙니까?" 

"역시 문필우(文筆友) 자네답군. 속이지 못하겠어." 

기다렸다는 듯 중년의 사내가 답했다. 

혈무린은 과연 문필우라고 생각했다. 문필우라는 이름은 무인답다기 보다는 오히려 

문인에 가깝다. 이름처럼 그는 영특한 자였다. 무인이 아닌 문인의 길을 걸었다면 

황궁의 중요한 문사로 거듭날 수도 있을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인의 길을 택했고 지금 혈무린의 옆에 있다. 

"마교가 말이야 일마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 하더군." 

"일마라 함은 혹 강호십일객을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문제는 그 일마가 왜 마교를 잡았느냐는 게야. 그는 마교의 정신을 가지 

고 있지 않은 자야. 언제부터 마교가…… 그러한 자에게 휘둘리게 되었느냐는 말이 

야." 

혈무린의 이마에 잔 주름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문필우는 절로 고개를 숙 

였다. 젊을 때부터 함께 했다. 처음 혈무린을 만났을 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패 

기 넘치는 젊은이였을 뿐이다. 무공은 빼어났지만 다소 행동이 앞섰다. 물론 그때 

의 문필우 또한 혈무린과 비슷한 나이였기에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생각 

이 깊었다. 

항상 옆에서 수족처럼 보필했다. 그때 혈무린은 미장부(美丈夫)였다. 그 수려했던 

외모 탓에 많은 여성들이 그에게 구애를 하곤 했다. 그랬던 혈무린이거늘 이제는 미 

장부의 모습이 사라졌다. 

피부는 예전만 못하고 주름도 생겨버렸다. 

하지만…… 웃어 버렸다. 비록 그러한 것은 변했지만 그만큼 다른 게 채워졌다. 더 

욱 더 진중해졌고, 얼굴에 깊이가 생겨버렸다. 철없던 예전과는 다르다. 비록 늙었 

다 하지만 혈무린은 언제까지나 사내 대장부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리는 문필우를 혈무린이 본 모양이다. 

"왜 웃는가?" 

"예전의 모습이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세월의 깊이가 있어 보이는 눈동자를 보니 처 

음 뵌 젊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바람에……" 

"허허! 이 친구 부끄럽게 옛날 이야기를 하기는." 

혈무린은 빙그레 웃어 버리고는 다시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교가 마교인이 

아닌 다른 자에게 휘둘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답답 

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주군, 움직이시지요." 

"무슨 말인가." 

"주군의 마음은 이미 마교로 가고 있습니다. 몸만 이곳에 있는 주군은 주군답지 않 

습니다." 

"아니 되네. 내 비록 그렇게 하고 싶다고는 하나 친구와 약조를 했지 않은가. 난 결 

코 마교로 돌아갈 수 없네.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던 문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혈무린에게 다가왔다. 혈무 

린은 갑작스럽게 그가 다가오자 몸을 돌리고 있다가 곧 문필우를 마주봤다. 

꽤나 가까이 다가온 문필우가 작지만 사람의 심중을 흔드는 진지한 어조로 말문을 

텄다. 

"어리석은 사내가 있었습니다. 영특했지만 또한 멍청했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러 집 

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에게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지 

요. 그런데 사내가 떠난 후 일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어머니는 크게 앓았습니다. 

사내는 고민했지요. 집에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곧 마음을 정했습니 

다." 

문필우와 눈이 마주치자 혈무린은 계속 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필우가 

다시금 말했다. 

"그에겐 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린 동생이지만 그를 믿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게 다 

였습니다. 돌아온 사내는 죽어 있는 어머니의 시신만을 볼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 사내는 어찌 되었는가?" 

"지금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혈무린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가 자네인가 아니면 그 아우가 자네인 것인가?" 

"아, 이야기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대답을 대신 해서 문필우는 끝마쳤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사내의 아우는 형을 원망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형을 말입니다. 형만 있었다면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제 이야기는 끝입니 

다." 

혈무린은 조용히 문필우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었다. 문필우의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개중에 문필우가 형이냐 아우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이야 

기 하고자 한 것이 혈무린에게 분명히 전달 된 것이다. 

사내는 혈무린을 비유한 것이요, 어머니가 마교요, 아우는 그러한 마교에 있는 마교 

도인들인 셈이다. 

원망 할 거라는 말이다. 마교의 현재 사정을 알면서도 그토록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 

을. 그리고 후에 후회한다고 해도 이미 늦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혈무린은 문필우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이.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어 놓으니 말이야." 

예전부터 그래왔다. 항상 어려운 결단에 답을 내리는데 문필우는 지대한 공헌을 하 

곤 했다. 

꿈에 빠진 사람처럼 멍한 듯이 

"하늘을 나는 새는 자유로울 게야.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주군, 주군 또한 그러실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날개가 되어드리지요. 저 

뿐만이 아닙니다. 주군의 수하 모두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군의 날개가 되 

어드릴……" 

가만히 문필우를 쳐다보던 혈무린이 결단을 내린 듯이 마침내 침상 옆에 있는 상자 

를 열었다. 

꽤나 빛이 바랜 듯 한 붉은 옷이 상자에서 나왔다. 혈무린은 그 옷을 꺼내서 펼쳤 

다.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옛날 마교의 부교주였을 때 입었던 붉은 옷이다. 

"내일 회의를 소집하겠네. 모두를 모아주게." 

"주군!" 

혈무린이 마음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알아 버린 문필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 또한 내 

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교가 그 같은 일에 휩싸였다는 사실에 피를 토할 정도로 울분 

에 잠겼던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로 문필우는 감동에 젖어들었다. 그 동안 혈무린이 얼마나 고뇌에 잠 

겼었는지 옆에서 항상 지켜보던 그는 잘 알고 있다. 마교로 돌아가고픈 혈무린의 간 

절했던 소원이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혈무린과 함께 마교에서 나왔던 모든 무인의 공통 된 꿈이기도 했다. 

창 밖을 바라보던 혈무린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마교의 술이 먹고 싶구나. 자네가 나에게 그 술을 따라 줄 수 있겠는 

가?" 

몸을 돌리면서 내뱉은 혈무린의 말에 문필우는 감정이 격해졌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하나 뿐인 주군이시여!' 

늦은 아침이다. 하루에 두 시진 정도만 잠을 취하는 여운휘로서는 결코 이른 시간 

이 아니다. 검을 든 채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 하나 하나에 힘이 실렸고, 

그 어느 때건 수많은 변화를 보이기 위해 발가락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기 전에 가볍게 몸을 푸는데 누군가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이곳은 여운휘를 제하고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연무장이다. 그를 제하고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혈무린과 철비상, 여운휘를 담당하는 시녀 뿐이다. 고개를 돌린 여 

운휘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철비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담 

고 있었다. 

"이보게! 좋은 소식이 있네!" 

여운휘는 철비상의 말을 듣고도 검을 내리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 유설린을 구하는 

것을 제한 다른 모든 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그런 그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돌려 철 

비상의 모습만 확인 한 여운휘는 다시금 자신의 손에 들린 제왕검에 온 신경을 쏟았 

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운휘의 검이 되어 버린 무림맹의 신물 제왕검. 여운휘가 그토록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조차 빠지지 않았다. 명검이다. 사람의 피를 머금고 

도 녹슬거나 예리함을 잃지 않는다. 

철비상은 그런 여운휘의 태도를 보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 

신 그는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혈교가 움직이기로 했네. 마교를 향해 말이야!" 

멈칫. 

가볍게 검을 휘두르던 여운휘는 철비상의 말에 다리를 멈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철비상을 바라봤다. 그가 판단하기로 혈무린은 결코 움직일 사내가 아니었다. 

다시금 말해보라는 듯한 여운휘의 표정에 철비상은 다시금 말했다. 

"형님이 혈교를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는 말일세. 처음 자네의 소원처럼 말이야. 물 

론 이 사실은 혈교 내에서도 몇 명만이 알고 있네. 혹시나 마교의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혈교가 내가 전에 부탁한 대로 움직여준다고?" 

"그렇다네." 

여운휘는 철비상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결코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칠 사내가 아님을 여 

운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철비상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건데…… 

혈무린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거다.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꾼 게 분명 

하다. 검을 늘어트린 채로 멍하니 서 있는 여운휘를 보며 철비상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어렴풋이 느낀 탓이다. 

"형님을 찾아뵙겠는가?" 

"그랬으면 하는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듣고 싶은 것들도 많다. 분명 혈교가 움직이는 것 

은 기쁜 일이지만 단순하게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날 따라오게." 

여운휘는 철비상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토록 오래 걸렸던 길이지만 거동에 무리가 없는 지금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여운휘와 철비상의 방문에 혈무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 

다. 

"차 한잔들 하겠는가?"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 자네는 어떤가?" 

"나도 좋소." 

혈무린은 자리에 앉으며 밖에 있는 시비를 불렀고 곧 그녀는 세 개의 차를 따라 그 

들의 앞에 내놓았다. 혈무린은 나가보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시비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철비상이었다. 

"형님, 제가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묻고 싶은 게 조금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토록 움직이지 않겠다던 내가 결정을 번복했으니." 

차를 마시던 여운휘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그렇소. 내가 아는 당신은 결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쉽게 번복할 자가 아니었소." 

"후후, 맞네. 난 결코 내가 한 말을 번복하지 않지. 더군다나 가장 절친했던 벗과 

의 약조 때문이었으니 더했을 게야. 하지만 말이야 마교의 인물로서 참을 수 없는 

사실을 알아 버렸네.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가 마교 위에 군림했다는 것을 말 

이야." 

여운휘로서는 혈무린의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가장 절친했던 벗과의 약조라는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약속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일마 일 터인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여운휘는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정말로 마교와 싸울 것이오?" 

"물론이네.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말일세." 

"좋소. 그것이면 된 거요."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철비상이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님 

을 말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혈무린이 마음이 돌린 것만은 확실하다. 전 

에 봤을 때와는 눈빛이 다르다. 

모든 것이 그렇다면 예정대로 돌아간다. 혈교의 힘과 유가의 힘을 이용해서 힘이 빠 

진 마교에 들어간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 

"작전은 있소?" 

"물론이네. 아직 구체적인 것까지는 짜지 않았지만 조만간 완벽한 계획이 세워질 것 

이야. 마교의 피해를 최소화 할 생각이네." 

"하지만 마교의 피해를 최소화시킨다면……" 

"힘들 거라는 말이겠지?" 

"그렇소. 마교의 힘이 남아있다면 갑절 이상의 힘이 소모 될 거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게 아니니 걱정 말게. 그리고 난 마교인일세. 죽 

어서도 마교인일 것이고. 마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난 돌아가는 것이지 결코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네." 

혈무린은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마교가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재 무림맹 

과 마교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밀지도, 밀리지도 않 

는 상태다. 전에는 왜 그럴까 했는데 지금은 안다. 

일마가 개입해 한 쪽이 밀리지 않게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마교와 무림맹 모두 일어서기 힘들 정도의 손실을 받게 된다. 그리 

고 혈무린은 그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그에 맞추어 짜둔 계획도 있다. 

혈무린이 그렇게 말하자 여운휘로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혈교의 우두머 

리도 그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도 혈무린의 몫이다. 

그걸 가지고 여운휘가 가타부타 말하는 것이 우습다. 

그때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혈무린이 두 손을 마주쳤다. 

"아! 그리고 자네의 몸이 낫는다고 해서 바로 소교주를 구해서는 안 되네. 괜히 튀 

는 행동을 했다가는 꼬리가 잡힐지도 모르네. 조용히 있을 거면 모를까 활동을 하 

기 위해서는 치명적이야." 

"위험할지도 모르오." 

"아닐세. 무림맹은 결코 그녀를 죽이지 않아. 내 목을 걸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적 

어도 마교와의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림맹은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걸세. 그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여운휘는 어떻게든 유설린을 구해내고 싶었다. 

자신의 손과 멀어져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지켜주겠다던 약속도 어 

기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혈무린의 말대로다. 지금은 오히려 혈교를 향하고 있는 눈 

을 줄여야 할 때다. 그런데 괜히 소교주를 구해냄으로써 감시의 눈길이 강해진다면 

덩달아 혈교의 움직임도 힘들어진다. 

"그럼 언제쯤이나 가능하겠소?" 

"아직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나 또한 소교주를 가능하면 빨리 구해 낼 생각이네. 

아마도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치열해진 때 혈교가 움직이면서 그때쯤에 손을 써 

보는 게 어떤가 생각중이네." 

분명 적기다.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아무래도 감시의 눈이 흐트러 

질 게 분명하다. 거사 바로 직전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하면 된다. 혈교는 마교의 뒤 

를 칠 것이고 그럼과 동시에 유설린을 구해내면 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여운휘로서는 그 작전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지금 괜히 움직임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 

혈무린은 여운휘의 표정을 보고 어느정도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잠시만 참게. 어차피 자네가 몸이 완전히 나은 후에 움직일 예정이었으니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걸세. 길어봤자 반년일세." 

"…… 알겠소." 

"좋아, 자네도 수락한 것으로 하지. 이제 나도 자네에게 떳떳해 질 수 있겠어. 자네 

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영 찝찝했는데 말이야." 

"아니오. 사실 다소 무리인 부탁이라고 생각은 했었소. 이 같이 들어준다니 실로 감 

읍할 따름이오."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여운휘의 가슴은 지금 복받쳐 오른 상태다. 이 정도로 

누군가에게 감사해 본 적이 과연 있었을까? 

거절을 한다 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무리한 부탁이었다. 물론 혈무린 개인적 

인 일 때문에 움직이는 감도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자네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딱히 할 게 없다면 몸이 나은 후 우리를 도 

와주는 게 어떠한가?" 

"할 일이 있소." 

"중요한 일인가 보군." 

"원래는 다소 뒤로 미뤘던 일인데 일이 이렇게 되니 지금 해야 옳을 듯 하오." 

"소교주를 구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테니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군. 내가 물어도 되겠 

는가?" 

여운휘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녹포괴존을 찾아갈 생각이오." 

"녹포괴존? 쌍존 중 하나인 그녀도 아는가?" 

혈무린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강호십일객 중 쌍존들은 그 위치가 모호하다. 그 

탓에 쌍존을 만난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운휘는 너무나 쉽게 

말했다. 이미 녹포괴존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가능한 말이다. 

"일이 있어서 알게 되었소." 

"녹포괴존을 만나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받을 게 있소. 쉽게 주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게 있소." 

"그러한가? 자네의 일이니 내 간섭은 않겠네. 하지만 모든 거사가 시작되기 전에 빨 

리 움직여야 하네." 

"걱정마시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니 몸 상태가 조금만 더 나으면 움직일 생각이 

오." 

혈무린은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을 확 

인 받은 이상 이곳에서 더 있을 생각은 없다. 한시라도 몸을 제 상태로 만들어서 녹 

포괴존을 찾아가야 한다. 

"다시 한 번 감사하오." 

포권을 취해 보이며 여운휘는 진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혈무린은 자그 

맣게 미소지었다. 

몸을 돌린 여운휘는 연무장을 향해 걸었다. 

만나야만 할 사람이 있다. 원래는 유설린을 구하고 나서 만날 생각이었지만 혈교의 

입장이 바뀌면서 애초의 계획도 바뀌었다. 

녹포괴존.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무림맹의 포위망에 갇혔을 때 암황이 말해줬다. 만약 살아 남 

으면 이곳으로 오라며 가르쳐 준 녹포괴존의 거처는 여운휘는 잊지 않았다.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일마는 결코 여운휘가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면 모를까 지금은 결 

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 지금 그토록 여유를 부릴 수도 없는 형 

편이다. 

희망을 걸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녹포괴존을 만나러 가는 것은 그 마지막 희망의 꼬리를 잡기 위함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받아내고야 말 것이다.' 

검귀의 오행검법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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