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137)

폭로(暴露) 

종리회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림맹에서 날아든 한 장의 서찰 탓이다. 무림맹의 맹주는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모습 

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최근 들어 만난 것은 종리회연 하나 뿐. 최근 들어 맹주 

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던 그가 직접 보낸 서찰이니 처음 종리회연은 기분이 좋았다. 고민에 빠져 있던 

맹주가 그것을 해결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서찰의 내용을 본 종리회연의 얼굴은 핏기마저 가실 정도로 변했다. 

"이런 일이……" 

종리회연은 털썩 의자로 주저 앉았다. 아니, 다리의 힘이 풀려 더 이상 버티고 서 있 

을 재간이 없었다. 

"진군휘가 마교의 인물이라니……" 

입안이 바짝 바짝 마른다. 여태까지 그가 무림맹에서 쌓은 입지를 잘 아는 탓이다. 

오히려 무림맹은 그를 맨 앞에 세워 실추 된 무림맹의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것 

이 지금은 화가 되어 버렸다. 

'안 돼. 이것이 소문이 나서는.' 

무림맹의 신기인 제왕검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 

을 여운후가 되찾았다는 것도. 쉬쉬하지만 무림맹에서 그토록 소란이 일었으니 밖으 

로 빠져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은 짓이다. 

사람의 입은 결코 믿을 수 없다. 

종리회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자신의 수하를 불렀다. 

"부를 수 있는 모든 수뇌부들을 모으게."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시는 분들도 말입니까?" 

"그래. 그 누구라 해도 모두 오라고 해주게." 

말을 마친 종리회연은 문을 쾅 닫았다. 해결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다. 

종리회연의 갑작스러운 회의에 몇몇 무인들의 얼굴에는 불만스러운 감정이 싹텄다. 

개중에는 꽤나 나이가 있는 무인도 있었지만 종리회연이 무림맹의 군사인 탓에 대놓 

고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그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무슨 일이길래 마교와 한창 전투를 벌이려는 우리를 불러들인 겐가. 지금 이토록 있 

다 공격을 당하게 되면 오백 리를 후퇴해야 하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군. 만약 그것이 별반 대단한 일이 아니 

라면 아무리 군사라 해도 죄를 물어야 할걸세." 

살기 어린 말에도 종리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단호한 그의 모습에 웬만한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진군휘를 잘 아실 겁니다. 현재 무림맹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고수이며 그 무명 또 

한 무림을 울리고 있는 사내를 말입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기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은연중에 이 일이 진군휘 

라고 불리는 사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아차렸다. 

종리회연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마교의 인물입니다." 

"뭐야!" 

성격이 불같은 독리객(獨離客)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사람 모두 놀 

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처럼 표현을 안 했다 뿐이지 그토록 내세웠던 무인이 마교의 

자라는 사실에 적잔히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사, 그것이 정말이외까?" 

"광한검 어르신. 죄송하지만 무림맹의 정보를 담당하는 곳에서 알아낸 정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진군휘는……" 

"압니다. 진군휘를 가장 각별히 생각하셨던 것이 광한검 어르신이라는 것 정도는. 상 

심이 크겠지요. 하지만 현실입니다. 그는 마교의 무인입니다. 그것도 전 교주였던 유 

백명의 딸인 소교주를 지키던." 

"하면……" 

종리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가의 소가주라고 알려진 유소화가 실제는 유백명이 그토록 사랑해 얼굴조차 본 사 

람이 없다고 알려진 유설린이겠지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군. 그 또한 유가의 소가주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거 

늘……" 

누남천 또한 여운휘를 변호했지만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직감했다. 무림맹 

의 정보를 담당하는 곳이라면 결코 허튼 정보를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이 대충 나왔지만 누남천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엄밀히 보면 자신의 생명의 은인. 그리고 그것을 떠나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진정한 무 

인인 그를 구하고 싶었다. 

"보다 자세히 알아낸 후에 행동하는 것이 어떻소?" 

"광한검 어르신께 죄송하지만 지금 상황을 아실 겁니다. 그를 앞으로 내세운 저희로 

서는 진군휘가 마교의 무인이라는 것이 알려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진군휘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시지 않습니까. 죽여야지요." 

"자네…… 무서운 사람이군." 

누남천은 은근히 노기가 띤 표정으로 종리회연을 노려봤다. 비록 군사라는 위치에 있 

다보니 그러한 결정을 내려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가슴은 그것을 인정하 

지 못했다. 

"무림맹의 앞길을 막을 자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마음이 아프지만 이 같은 

결정은 무림맹을 위해 섭니다." 

"그렇다면 유설화, 아니 유설린이라는 마교의 소교주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녀는 죽일 수 없습니다." 

"그건 또 왜인가." 

"우선 그녀는 마교의 소교주입니다. 비록 죽은 전 교주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현 마교 

의 교주인 엄백린 또한 그녀를 사로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설린은 유가의 소가 

주. 그녀를 죽인다면 그 세력들을 규합시킬 수 없습니다. 잡아는 두되, 죽이지는 않 

을 생각입니다." 

"허허." 

누남천은 공허한 듯 웃음을 흘렸다. 

다소 날카로운 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같은 지는 몰랐다. 이용할 자는 완벽하게 이 

용하고 버릴 자는 확실히 끝낸다. 

"이제부터 그의 이름은 진군휘라고 칭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실제 이름은 여운휘로 

앞으로 우리 무림맹의 제일척살대상이 됩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이 일은 결코 밖으 

로 세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제가 무림맹에 서찰 

을 보내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소리 없이 죽일 생각입니다." 

모두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 또한 젊은 고수 하나를 잃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를 감당해 내기에는 뒤따르는 

여파가 너무 컸다. 

누남천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보 같은 녀석. 무림맹을 이용할 거면 걸리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니더냐. 이 같이 

걸려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거늘……' 

실로 가슴이 아팠다. 비록 마교의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여운휘를 아는 누남천으로서 

는 그가 결코 무림맹에 간자로 숨어 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 교주가 쫓겨나면서 소교주를 데리고 도망친 것일 게다. 그리고 복수를 하기 위해 

무림맹 쪽에 다가온 것일 테고. 

'너무 커 버렸어. 이토록 크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라도 살릴 방도가 있었거늘……' 

회의가 끝났다는 종리회연의 말에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침중했다. 

그때 종리회연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누남천의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알고 있네." 

말을 마친 누남천은 종리회연을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왠지 계속 종리회연을 보고 있다 보면 울화가 터져 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무림이 이리 변했는가. 계산적으로 이득만을 취하는 무리들. 

'남궁진, 그 녀석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겠군. 남궁진이라면 미리 피할 길을 만들어 

놓을지도 모를 테니.' 

지금 누남천이 기댈 자는 남궁진 밖에 없다. 

여운휘가 유일하게 사람으로 대하는 몇 안 되는 자 중 하나인 남궁진. 현재 남궁세가 

가 소란스러우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겠지만 결국은 그를 제하고는 아무도 생각이 나 

지 않는다. 

'진군휘…… 후후, 여운휘라 했던가?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네. 꼭 

살아 남았으면 하는 군. 그리고 설령 네가 죽더라도 유설린 만은 내 힘 닫는데 까지 

도와주지.' 

누남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리 그를 높게 친다 한들 무림맹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여운휘가 운반하는 제왕검은 피를 머금지 않은 날이 없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 

고 하나에서 많으면 열 까지 이상한 자들이 습격을 해 온 탓이다. 

상대하기 어려운 자들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무공을 익힌 자들이기는 했지만 여운휘 

에게는 결코 상대가 되지 않을 적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검에 피를 묻히는 것은 

여운휘 또한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다. 

산길만을 택하던 여운휘가 객잔에서 하룻밤을 자기 위해 묵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용케도 자신의 뒤를 쫓아와 숨어 있곤 했다. 

꽤나 늦은 저녁 식사다. 원래대로라면 마을을 벗어나 있겠지만 객잔에 머무는 이상 

푹 쉬려고 마음먹은 여운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막 나온 음식을 먹으려던 여운휘의 옆에 앉아 있던 사내 중 하나가 자그마한 목소리 

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둘 모두 무인으로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자네 들었는가? 진군휘에 대한 이야기 말일세." 

"그 사내가 왜? 무슨 무림맹의 신물을 옮기고 있다고 하던데 그 이야긴가?" 

"예끼! 그거야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턱에 까만 수염으로 가득한 사내는 옆에 있던 비쩍 마른 자에게 핀잔을 줬다. 여운 

휘로서는 당연히 귀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이야 사실은……" 

털복숭이 사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 

는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마교의 인물이라지 뭔가." 

"뭐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그가 마교의 인물이라는 건가." 

"자네 모르나? 내 사촌 형님께서 무림맹의 간부 중 한 분이시지 않는가. 그 분께서 

얼마 전에 말해주셨네. 무림맹 쪽에서는 이미 그를 잡을 작전을 짜고 있다고 하더 

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운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어떻게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인가. 

여운휘의 머릿속은 마치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털이 많은 사내가 계 

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무림맹에서 유가의 소가주는 살려 둘 생각인 모양이더군. 그 여자 또한 마 

교의 인물인데도 말이야." 

말을 마친 사내는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자 비쩍 마른 사내가 궁금하다는 듯 그를 자꾸 재촉했다. 

"그 여자는 왜 살려두는 거지? 궁금하니 말 좀 해 보게." 

"아마도 써먹으려는 거겠지. 그래서 지금 무림맹에서 일련의 병력을 보내 그녀를 잡 

으려고 한다더군. 물론 이건 비밀일세. 결코 세어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란 말일세. 

내 특별히 자네라서 이야기 해 준거니 절대 함구하게." 

"이 친구, 내 입이 그리 가벼워 보이는가? 당부하지 않아도 그쯤은 알아서 하네." 

젓가락을 들고 있던 여운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음식을 먹을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들지 않는다. 여태까지 힘겹게 쌓아 놓은 성 

이 단숨에 무너지는 기분이다. 

여운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일이 걸렸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긴박한 일이 있다. 

'설린이에게로 간다.' 

힘은 다시금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설린만큼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여운휘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그 일이 밝혀졌을까 하는 종류의 의문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로지 유설린 

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여운휘가 나가자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내의 얼굴이 변했다. 

그 둘은 먹던 술을 내팽개치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 둘이 모습을 드러내자 얼마 

되지 않아 나무 위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는?" 

"완(完)." 

"목표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번에는 바짝 마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소교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듯 합니다." 

"좋아. 그럼 너희의 임무는 끝났다." 

"그럼 저희는 이제 무엇을……" 

나무 위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금 굵은 목소리가 천 

천히 흘러나왔다. 

"너희는 이제 아무런 할 일이 없다. 이제…… 편히 쉬어라." 

"헉!" 

퍽퍽! 

두 개의 격타음이 들리는 순간 두 사내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피가 하늘을 향해 솟 

구치듯 터져 나왔지만 나무 위에 있는 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수하를 죽인 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밀은 적은 사람이 알수록 좋은 법. 너희들에게 맞지 않는 일을 시킬 때부터 알아 

차렸어야지."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린 자가 나무 위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그로부터 멀지 않은 

후였다. 그는 새를 한 마리 날리고 어딘 가로 향했다. 

수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사무린은?" 

"떠났지. 아마 여운휘와 곧 조우 할 수 있을 게야." 

진린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여운휘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었다는 전보입니다!" 

"뭐? 모습을 감춘 것이냐?" 

"아닙니다. 악양을 향해 발을 돌렸다는 것을 보니 아마도……" 

"어리석긴. 뻔한 발걸음을 옮겼군. 무림맹에 연락해서 그 근방이 아닌 여운휘가 도 

망칠 퇴로를 추적해서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칠 준비를 하라고 전하라. 움직임은 

뻔할 것이다." 

종리회연은 급히 무림맹에 서찰을 보내게끔 했다. 

"제길…… 이 친구!" 

누남천의 서찰을 보자마자 정신이 훽 돌아갈 정도로 놀라 버렸다. 상상도 못했던 일 

이다. 그가 마교의 무인이었다니…… 

지금 남궁세가는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상태다. 자리를 비울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 

지만 유일하게 지기라고 생각했던 사내를 위해서 남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을 가리면 벨뿐이다. 한 시가 급한 그에게 제왕검을 노리는 자들을 향해 베풀 자 

비 따위는 없다. 

막 핏줄기가 터져 나오며 한 인영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검을 가볍게 털면서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사내. 

'지키러 간다.' 

여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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