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37)

지령(指令)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은 치열했다. 그리고 치열한 만큼 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시체는 산을 만들고 피는 강을 이루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 

히려 독아(毒牙)를 드러냈다. 

두 세력간의 싸움은 단순히 무공만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무림맹(武林盟)의 군사(軍師)인 즉살검 종리회연. 

마교(魔敎)의 머리인 귀마(貴魔) 탁불혈. 

머리라고 할 수 있는 그 둘의 싸움은 마교와 무림맹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실로 기기묘묘한 전술들이 펼쳐졌다. 심지어 기문둔갑과 진법까지 펼치며 양쪽은 승 

리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현재 두 세력은 백중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 전부는 아니다. 

마교나 무림맹이나 모두 아직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교에서는 아 

직 최정예 부대들을 앞으로 내세우지도 않은 상태다. 

마교의 힘이 무림맹보다 위인데도 불구하고 백중지세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종리회연의 거처는 깔끔했다. 전쟁을 하기 위해 임시로 만든 막사(幕舍)인데도 불구 

하고 왠지 모르게 그의 거처에서는 난과도 같은 기백이 느껴졌다. 

종리회연의 상 위에는 차 한잔이 놓여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차를 마시냐며 타 

박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는다. 

종리회연은 차를 즐긴다. 아니, 단순히 차를 즐기는 것뿐이 아니다. 그가 차를 마 

실 때는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 차를 즐길 때와 상당한 고민을 해야 할 때. 지금은 

후자라는 것은 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책상은 어지러이 펼쳐진 종이들로 가득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싸움을 하기 위해 진법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다. 

진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을 이용할 수도 있고 자연을 이용할 수도 있다. 작 

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몇 십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진법인 것이 

다. 

그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기에 또한 진법을 펼치는 과정이 복잡한 거다. 실수를 한 

다면 오히려 아군이 그 진법 안에 쓸려 들어간다. 

그렇게 종이와 싸움을 하던 종리회연이 고개를 든 것은 문으로 다가온 누군가 때문 

이다. 그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들어오게." 

끼익. 

문이 열리며 종리회연이 잘 아는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수하로 꽤나 믿음직 

한 자다. 

"그래. 무슨 일인가." 

"서찰이 왔습니다." 

"서찰? 어디서?" 

"무림맹입니다." 

"분류는?" 

"특(特)." 

무림맹 쪽에서 서찰이 왔다는 말에 종리회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맹 쪽에서 

날아온 서찰인데다 특별로 분류되는 서찰이다. 그는 사내의 손에서 서찰을 받아 들 

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사내가 고개를 꾸벅하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분류가 특으로 되는 거라면 당사자를 

제하고는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종리회연은 서찰을 펼쳤다. 

처음 서찰을 보던 종리회연은 흠칫하더니 곧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긴 듯 고개 

를 갸웃했다. 중요한 안건인 건 분명한데 그에 대한 대처가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무림맹의 위신을 내세우는 물건을 도둑 맞았다는 게 이번 서찰의 내용이다. 무림맹 

을 상징하는 물건인 만큼 경비는 철통같았지만 지키고 있는 자들을 베고 그것을 훔 

쳐갔다는 거다. 

당연히 빠른 대처로 그러한 짓을 벌인 자의 행방을 찾았고, 지금 그 자의 뒤를 잡았 

다는 것이다. 거기 까지는 좋다. 당연히 순리대로 일을 해결한 거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런데 그 후가 이상하다. 그 자가 가져간 물건을 찾으러 두 사람을 보내라는 것이 

다. 누남천과 진군휘. 

'누남천이라면 몰라도 굳이 진군휘를……' 

잠시 그가 빠진다고 해서 대세가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왠지 지목 한 

것이 진군휘라는 것이 뭔가 석연치 않다. 

기분은 좀 그렇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기에 종리회연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보다 오히려 훔쳐갔다는 그 물건에 더욱 신경이 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돌려 받아야 한다. 그 물건이 없다고 해서 무림맹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첫 무림맹의 맹주 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종리회연은 문 밖에 있는 사내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사내가 문 

을 열고 다시금 안으로 들어섰다. 

"하명하십시오." 

"광한검 어르신과 진군휘를 내게 오라고 좀 해 주게."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사내가 모습을 감추었고 종리회연은 양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지긋이 눌 

렀다. 생각할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그나마 비슷비슷하게 싸우고 있지만 마교 

의 진정한 세력들이 움직인다면 지금 나아간 이상을 뒤로 물러서야 할 게다. 

'장강수로야. 그들이 바로 우리의 비장의 패지.' 

수황까지 움직여 준다면 더할 나위도 없지만 그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는 중립적 입 

장으로 그저 싸움을 관전만 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고수 하나가 절실히 필요할 때 

다. 

강호십일객 중 지금 이 싸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무도 없다. 애초에 그들의 대 

부분이 어디에서 지내는 지 조차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그나마 수황은 강호십일객 

중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만간 강호십일객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거다. 

이미 무림맹 쪽에서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고, 마교 쪽도 분명 그러했을 게 

다. 

긴 생각에 잠겨 있던 종리회연은 세 명의 등장에 정신을 차렸다. 

종리회연은 오랜만에 본 여운휘를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먼저 누남천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인 그는 여운휘를 향해 말했다. 

"잘 지냈는가?" 

"언제나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소." 

"그런가? 자리에 앉아 차나 한잔하지." 

자리에 앉자는 말에 여운휘가 바로 말했다. 

"중요한 용건이 있는 듯 한데." 

"하하! 역시 자넨 하나도 변한 게 없군. 좋아, 바로 말하지."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다시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누남천과 여운휘는 들을 권 

리가 있지만 그는 들어서는 안 되는 탓이다. 

종리회연은 마시던 차를 머금으며 말했다.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생겼네." 

노인 하나가 얼어붙기 시작한 땅에 침을 퉤 하고 뱉어났다. 노인의 눈은 거들먹거리 

며 걷는 사내의 등에 박혀 있었다. 

"에이, 썩으랄 놈의 잡것." 

노인은 다시금 침을 뱉었다. 

노인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은 지금 앞에서 걸어가는 사내 탓이다. 몸을 흔들며 옆 

에 있는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꼴이 영락없이 파락호다. 나이는 삼십이 넘은 자 

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심심하면 주먹질이고, 남편이 있는 아내를 희롱하는 것도 우습게 행하는 자다. 보이 

는 것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삼류 인생인 파락호. 특별한 무공도 익히지 못했고 

그저 이 마을에서나 거들먹거리는 것이 전부인 자다. 

노인은 자신이 소중히 길렀던 나무들을 바라봤다. 이제 간신히 어느 정도 열매가 열 

릴 정도로 컸나 싶었거늘 가지들이 전부 부러져 있다. 누가 했는지는 불 보듯 뻔하 

다. 

얼마 전 뭐라고 큰 소리를 친 이후로 파락호 녀석의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두고 

보라고 말하며 사라지더니 마침내 이런 일을 벌인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젊 

었다면 모를까 지금 노인에게 파락호는 너무 버거운 상대다. 

어떻게든 혼을 내줄 수 없는 노인으로서는 다시금 침을 내뱉는 것이 다였다. 

건들거리면서 걷는 사내의 손이 가게를 향했다. 팔기 위해 내놓았던 과일이 사내의 

손에서 입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가게의 주인이 급히 뛰어나왔지만 사내가 눈을 

부라리자 딱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락호 사내는 그 주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야! 불만이라도 있다는 거야! 장사하기 싫어?" 

쾅! 

발이 과일들을 받치고 있던 상의 축 하나를 찼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당연히 과일들 

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아이쿠!" 

주인은 급히 과일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일들은 강한 충격을 받게 되면 

멍이 들어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과일을 줍는 모습을 보면서 씩 웃은 파락 

호 사내는 과일을 다시금 입에 집어넣으며 어딘 가로 걷기 시작했다. 

우물거리며 과일을 씹던 사내가 말했다. 

"앞으로 조심해! 감히 권왕(拳王)인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무림인이 들으면 웃을 게다. 일개 파락호가 자신이 권왕이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아 

니 우스울까. 권왕이라는 별호는 결코 파락호 따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를 막을만한 사람이 아무 

도 없기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 

파락호 사내를 마을 사람들은 탁비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는 이 부근에 있는 파락호 

들 중 가장 주먹이 강한 자다. 

물론 그래봤자 파락호. 삼류 무인이라도 손쉽게 꺾을 수 있는 자다. 그렇지만 호랑 

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이라고, 이 마을 또한 그러한 것이다. 

탁비는 신이라도 난 듯 몸을 흔들면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이라고 해봤자 당장 쓰러질 것과도 같은 건물 한 채가 다다. 아니, 오히려 마구간 

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구멍들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탁비는 전혀 그러한 것을 내색 

치 않고 발을 옮겼다. 

삐거덕. 

무너질 것과도 같은 집이다. 거칠게 문을 열면 그 날로 당장에 무너질 것만 같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탁비는 그대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이불조차도 피는 게 귀 

찮은지 누운 채로 그는 꼼지락거렸다. 

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왠지 모르게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제길." 

달도 참이나 밝다. 구멍난 틈 사이로 잔뜩 쏟아지는 달빛은 요사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잠이 오지 않은 것은 저 환한 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술이나 한 잔 할걸 그랬나.' 

이런 밤에 청승맞게 억지로 잠을 잘 바에는 차라리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게 나을 

듯 싶다. 그렇지만 탁비는 계속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잠은 오지 않지만 움직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던 탁비의 몸이 움찔했다. 집 밖에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고 그 

것은 권왕이라고 자신을 치켜세우고 다니는 파락호가 알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탁비는 그 미세한 기척을 알아냈다. 

'고수!' 

지금에서야 기척을 알아낼 정도의 자다. 더군다나 거침없는 발걸음. 

'설마 다음 지령이라도 온 건가?'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다. 분명 상부에서는 일 하나를 시킨 후에는 일년 이상을 죽 

은 듯 보내게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활동을 하면 그만큼 꼬리를 밟히기 쉽다. 그 

탓에 그는 거의 오 년 정도에 하나씩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일을 끝낸 지는 불과 보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재차 일거리가 올리는 없다. 

'혹시 적인가?' 

탁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곧 자신의 상관인 그를 모욕하는 거다. 그의 계획은 

언제나 완벽하다. 한 치의 빈틈도 없고 또한 꼬리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뒤처리가 

깔끔하다.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밖에 누군가가 있다 

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태연한 척 했다. 그것을 마치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누운 그대로 코를 골았다. 

"드르렁!" 

누가 본다면 잠에 빠져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 근방에 있는 사람 

이 아는 탁비는 그저 삼류 인생을 사는 파락호에 불과하다. 만약 그냥 지나가는 고 

수라면…… 

"나와라." 

간절히 바랬던 것이 깨져버렸다. 구멍이 난 벽 틈으로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알면서도 탁비는 그대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다시금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폐부를 헝크는 듯이 다가왔다. 

"죽고 싶나 보군." 

알 수 없는 박력에 탁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그 

는 끝까지 자신이 파락호임을 보이려 했다. 

"썅! 어르신이 주무시는데 어떤 미친놈이 와서 지랄이야 지랄은! 퉤!" 

거칠게 침을 내뱉으며 주먹을 들어올리는 꼴이 영락없이 파락호. 

탁비는 욕을 하면서 상대를 바라봤다. 나오기 전까지는 혹시나 자신의 상관이 보낸 

자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말을 하는 꼴을 봐서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태까지 자신에게 임무를 주었던 자 

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온 몸을 감추고 있었지만 지금 앞에 있는 사내는 그렇지 않 

다. 

꽤나 젊어 보였고 얼굴 또한 빼어나다. 만월의 달빛도 마치 이 사내를 반기려고 준 

비라도 된 냥 환하게 비추었다. 

"뭐야? 이 썩을 놈아 남의 집 앞에 와서 죽인다 만다 했으면 이유라도 말해보거라. 

답이 뭐든 네 놈의 두 다리를 분질러 놓겠지만 이유라도 들어보자!" 

"권왕 탁비." 

"어쭈? 내 이름을 아는 놈이네? 그럼 날 알면서도 덤빈다는 거야? 이 놈 아주 간이 

부은 놈이구나!" 

호탕하게 외치는 탁비를 향해 사내가 입을 열었다. 

"파락호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불린다지? 안 그런가 귀영분신(鬼影分身)." 

머리에 번개라도 맞은 듯 강한 충격이 인다. 탁비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지만 곧 

평정심을 찾았다.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꼬리를 잡힐만한 일을 한 적은 없다. 어떻게 이러한 사내 

가 정체를 알고 찾아왔는지 그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놈…… 뭐하는 놈이냐?" 

귀영분신은 이미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했다. 앞에 있는 사내를 보면 알 

수 있다. 결코 어영부영한 정보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진군휘라고 하지." 

진군휘라고 자신을 설명한 사내가 검을 들어올렸다. 

귀영분신은 숨을 들이켰다. 

진군휘라는 이름은 그도 알고 있다. 정확한 무위는 모른다. 몇 번의 싸움을 통해 무 

림에서 상대할 적수가 많지 않은 자라는 것만 알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상대한 자들이었다. 

혈리추검 공청, 강호십일객의 하나인 수황, 그리고 비밀에 감추어진 흑색기마대의 

대주. 

‘제길 차라리…… 소림의 장문인이 상대하기 낫겠군.’ 

소림의 장문인이라고 해도 이 같지는 않을 게다. 아무리 살펴봐도 빈틈이 없다. 귀 

영분신이라는 이름답게 그의 경공은 천하에서 손꼽힌다. 경공 뿐만이 아니다. 순식 

간에 갈라지는 신형,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신법에 능숙하다는 말이 

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등을 돌린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거다. 

귀영분신이 보는 상대는 결코 상대에게 빈틈을 주는 자가 아니다. 만약 놓칠 거라 

고 생각했다면 굳이 밖에서 부르지 않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검을 뽑은 것을 봐서는…… 좋은 이유로 방문한 것은 아닐 테고.” 

“맞았어. 네 놈을 죽이러 왔지.” 

“이유가 뭐지?” 

“이유?” 

검을 든 여운휘는 귀영분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네 가슴에 물어봐.” 

“살려 줄 생각은?” 

대답대신 검이 날아들었다. 귀영분신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지라 몸을 뒤로 뺐다. 

쉭! 

눈앞을 베고 지나가는 검날에 귀영분신은 식은땀을 흘렸다. 적어도 경공을 펼친다 

면 어느 정도 도망칠 수 있을 확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의 움직임이 그의 

경공보다도 빠르다. 

이대로라면 몸을 돌리는 순간 비어버린 등판에 검이 박히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렇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바로 날아든 검이 이번에는 가슴을 벨 듯 

이 다가왔다. 

귀영분신의 다리가 급히 변화를 보였다. 

한 걸음에 아홉 개의 신형을 만들어 낸다는 일보구변(一步九變)이다. 하지만 너무 

급했던 탓에 귀영분신은 다섯 개의 신형 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허나, 그것만 해 

도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다. 현 무림에서 그만큼 신법에 뛰어난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나 그만큼 대단한 신법 조차도 여운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제법.” 

갈라지는 신형 사이를 헤집는 검에 귀영분신은 작은 비명을 내뱉었다. 

“크윽!” 

그 같이 절묘한 신법을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이다. 그리고 번개와도 같이 떨어지는 

검에 귀영분신은 그저 뒤로 물러서는 게 다였다. 

그는 무공이 뛰어나지 않다. 일반적인 무인들에 비하면 월등히 빼어나지만 절정고수 

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경공과 신법만큼은 무림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 

을 정도로 빼어나다. 

‘살기는 힘들겠군.’ 

귀영분신은 직감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흔적도, 다른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마 이 자 

가 죽이러 온 이유도 자신이 훔친 그 물건 탓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평소대로 

자신의 상관이 뒤처리도 잘 해줬을 게다.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걸릴 이유가 없 

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자신을 죽이러 누군가가 왔고, 또한 확실히 거 

처를 알고 찾아왔다. 물건을 훔친 지도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으니…… 

‘뒷조사를 했다 해도 너무 빨라.’ 

그의 비상한 머리가 급격히 회전했다. 찰나라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수만 가지 것들이 머릿속을 헝클었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용당했군.’ 

자신의 상관에게 이용당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단기간에 알아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귀영분신의 거처가 있는 

곳을 아는 곳은 오로지 그의 상관 뿐. 

‘흐흐!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나까지 버린단 말인가!’ 

우습게도 버림 받은 모양이다. 

너무도 완벽한 그의 상관이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완벽하게 이용 

한 상관의 능력에 감탄이 인다. 

귀영분신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어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품속에서 검을 꺼내들었 

다. 

손바닥 두 개를 붙여 놓은 정도의 크기를 지닌 검이다. 크지 않은 검이지만 평생 그 

와 함께 했다. 

“편히 보내주었으면 하는 군.” 

“도망을 치지는 않겠다는 건가? 귀영분신이라면 경공에 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하지만 등을 돌린다고 해서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 

다면 차라리 검을 겨루고 죽어야지. 그게 무인이지.”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겨누었다. 도망치려고 했다면 상대하기 버거웠을 것 

이다. 

‘경공은 절정, 신법도 절정. 하지만 무공은 그저 고수. 단 일합.’ 

귀영분신은 단 일합에 무너질 것이다. 여운휘는 검을 곧추 세웠다. 

짧은 검을 반쯤 일으켜 세운 귀영분신이 먼저 몸을 날렸다. 짧은 만큼 간격이 작 

다. 베려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여운휘가 검을 휘두른 후에는 움직이기가 더 버겁 

기 때문이다. 

팍! 

빗살처럼 짧은 검이 여운휘의 목덜미를 자르려고 날아들었다. 섬광과도 같은 일격 

을 보면서 여운휘는 막을 생각은 않고 검을 내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귀영분신의 몸이 무너졌다. 어깨부터 꼽힌 검이 단전에 이르기 

까지 내리그어졌다. 그의 몸은 부르르 떨리기가 무섭게 쓰러져 버렸다. 

짧은 검은 여운휘의 목과 한 치 떨어진 곳까지 이르렀었지만 무너지는 주인과 함께 

떨어져 버렸다. 

승부는 끝났다. 애초부터 귀영분신의 무공으로 여운휘를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었다. 

여운휘는 죽은 시체에 박힌 검을 빼냈다. 그리고는 귀영분신의 거처를 향해 발을 옮 

겼다. 

당장에 쓰러질 것과도 같은 거처를 바라보며 여운휘는 무엇인가를 찾는 듯이 시선 

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곳까지 여운휘가 괜히 왔을 리가 없다. 종리회연에게 받은 부탁 때문에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에서 빠져 이곳에 온 것이다. 

누남천과 여운휘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두 군데 중 한 군데에 있을 거라는 종리회 

연의 말에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리고 귀영분신은 여운휘가 향했던 이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종리회연이 부탁했던 물건도 이곳에 있을 게 분명하다. 

여운휘는 집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상해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그렇지만 별반 수상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찾지 못하자 여운휘는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 

다. 특별한 살림살이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깨끗한 것도 아니다. 

뭔가를 숨기기 난해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공개 된 다는 말이고 그건 

곧 숨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방 안을 한 바퀴 돌던 여운휘가 갑작스럽게 멈췄다. 

그의 눈은 아래로 향했다. 이런 구조라면 물건을 숨기기 위해서 가장 좋은 곳은 단 

한 군데다. 

쾅! 

여운휘의 발이 그대로 땅바닥에 틀어 박혔다. 단숨에 바닥은 내려앉았고 여운휘는 

부서진 것들을 치우며 안을 헤집었다. 그러던 여운휘의 눈에 마침내 목표했던 물건 

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에는 금색 용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검날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 

구하고 밝은 빛을 토해낸다. 무인이라면 절로 욕심이 가게끔 만드는 검임은 분명하 

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맹이 만들어지는 그때부터 함께한 신물이기도 했다. 

‘찾았다.’ 

여운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마치 여운휘를 위해 만들어지기 마냥 한 것처럼 한 손 

에 쏙 들어온다. 대단한 명검이다. 

“제왕검(帝王劍).” 

새겨져 있는 글자는 살아 있기라도 한 마냥 꿈틀거렸다. 

여운휘는 검을 미리 준비해 둔 검집에 넣고는 걷기 시작했다. 종리회연이 있는 곳 

을 향해서다. 

걸으면서 여운휘는 이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귀영분신이 훔친 물건을 항상 집 주변에 둔다는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다소 의심이 가는 일이다. 귀영분신은 뛰어난 경공만큼이나 대단한 도둑이다. 그런 

그가 훔친 물건을 항상 주변에 둔다는 것을 퍼트리고 다녔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알아냈다는 건데 뭔가 석연치 않다. 

의심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여운휘는 생각을 접고 제왕검을 허리에 찬 채로 그렇게 걸었다. 

눈을 감고 있는 진린의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귀영분신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계획을 준비해라." 

"옙!" 

바람 소리가 이는 듯 싶더니 진린의 옆에 있던 기척이 사라졌다. 진린은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리고는 그만의 연무장을 향해 발을 돌렸다. 그만의 연무장이었지만 지금 

은 그렇지 않다. 진린이 받아들인 제자인 사무린이 한창 무공을 닦고 있을 게다. 그 

리고 그녀에게 지금 볼일이 있는 것이고. 

진린이 연무장에 드러서자 검을 휘두르고 있던 사무린이 급히 검을 회수했다. 그녀 

는 진린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진척은?" 

"전해 주셨던 검법의 6성을 익혔어요. 아마 두달 정도 후면 큰 성취를 보일 것 같아 

요." 

"그래? 아, 지금 본좌가 온 건 그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이 있어서다. 

진린이 무슨 일을 명하려고 왔다는 것은 곧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 사실 

을 잘 알고 있는 사무린이었기에 그녀는 조용히 경청했다. 

"계획 되었던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여운휘가 제왕검을 집었다는 군." 

"그런…… 가요?" 

"곧 무림맹에 숨겨 둔 간자가 이 일에 대해서 터트릴 것이다. 아마 여운휘는 무림맹 

에 도착하기 전에 이 소식에 대해 듣겠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여운휘가 움직일 공간이 늘지 않을까요? 무림맹 안에 넣어 버 

린 다음에 잡는 것이……" 

"아니. 무림맹 안에 있다면 우리가 빼오기는 더욱 힘들지. 그리고 여운휘가 움직일 

공간이 는다고? 크크! 그 놈은 분명 악양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자신의 정체가 들켰 

다면 유설린도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그 때가 기회야. 일전에 말한 대로 여 

운휘를 설득하는 것은 네 몫이다." 

사무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사곡에서 떨어진 이후로는 얼 

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운휘는 사무린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네 실력이라면 알아서 말을 할 수 있을 거다. 설득해 보고 계속해서 거절한다면 어 

쩔 수 없지. 하지만 가능할 것이다. 그대로 있다면 개죽음을 당할 거라는 것을 여운 

휘 또한 알테니까." 

진린은 자신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그 같은 경우에 내려질 답은 뻔하다. 

"지금쯤 내가 손 써 놓은 놈들이 움직일 때가 되었을 터인데……" 

중얼거리던 진린은 사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좌운에게 가라. 그가 너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 하도록 하죠." 

사무린은 고개를 꾸벅하고는 연무장을 벗어났다. 

황색 검을 허리에 찬 사내 하나가 큰 대로(大路)를 걸었다. 

임무를 띄고 움직이고 있는 여운휘다. 그가 지금 향하는 곳은 무림맹이 있는 하남이 

다. 

처음 여운휘는 마교와 무림맹의 전장에 있는 종리회연에게 갔다. 하지만 그곳에 간 

여운휘는 제왕검을 무림맹까지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 

던 탓에 여운휘는 승낙했다. 

더군다나 하남이라면 유설린이 있는 악양유가와도 어느 정도 가깝다. 기회만 된다면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게다. 

여운휘를 향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외모도 한 눈에 확 드러오지만 그 분위 

기가 사람을 묘하게 압도하는 탓이다. 더군다나 허리에 찬 황금색 검은 여운휘를 고 

귀한 신분의 사람으로 보이게끔 했다. 

시각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여운휘는 객잔을 지나쳐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객잔 

에서 몸을 쉬어도 되겠지만 최대한 모습을 감추라는 종리회연의 부탁이 있었던 탓이 

다. 

그가 지니고 있는 제왕검은 무림맹의 신물. 

제왕검이 외부에 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 

양이다. 

그렇게 걷던 여운휘가 멈춘 곳은 나무가 있어 바람을 피할만한 장소였다. 급히 움직 

여야 유설린을 볼 기회도 생길 거라는 생각에 하루에 한 시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다. 

여운휘는 식사를 젖끼고 불만 지핀 상태로 눈을 감았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들이 타면서 재로 화했다. 여운휘는 가볍게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던 여운휘의 손이 꿈틀했다. 

'다섯.' 

정체를 숨기고 다섯이나 되는 자들이 여운휘의 주변에 포진 해 있다. 살기는 뿜어내 

지 않지만 결코 좋은 목적 같지는 않았다. 적당한 방위를 점했고, 또한 공격하기 가 

장 좋은 지형을 따라 움직인다. 

알면서도 여운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섯 명은 움직이지 않다시피 다가왔다. 꽤나 오랜시간이 지났건 

만 다가온 거리는 일장 정도.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지 않는다면 이끌어 내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처럼 여운휘는 발로 불을 끄고 걷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자 숨어 있던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말도 없이 각자의 병기를 휘둘렀다. 

쒜엑! 

맨 처음 다가온 것은 검, 그리고 이어지는 조. 

여운휘는 제왕검을 뽑아서 검과 조를 쳐냈다. 그러자 뒤따르듯 다가온 도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강맹한 힘을 위주로 하는 도지만 지금 변화만큼은 검에 못지 않다. 

제왕검을 트집은 도가 여운휘의 옆구리를 벨 듯 다가왔다. 하지만 그 정도에 당할 정 

도로 여운휘는 녹록치 않았다. 

황금색 줄기가 일렁이는 순간 도를 비롯해 다섯 명의 병기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제왕검을 내놔라!" 

다섯 명 중 하나가 외쳤다. 그제야 여운휘는 다섯 명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렸 

다. 어떻게 알아차리고 쫓아온 모양이다. 하지만 여운휘는 태연했다. 실력자들이라고 

는 하지만 여운휘의 입장에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타앗!" 

양 쪽으로 검이 날아들었다. 

두 명의 무인이 마치 하나가 된냥 검을 휘두른 것이다. 

합격이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어느 쪽으로 움직이던 검이 뒤따라 공격해 올 것이다. 

여운휘는 피하지 않고 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왕검의 검날이 황금색으로 변한 것이다. 여운휘 또한 일순 놀랐지만 곧 그것이 제 

왕검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볼 수록 마음에 드는 검이다. 

과연 천하제일인이었던 자가 쓸만한 무기인 것이다. 

쾅! 

강력한 내력이 담긴 제왕검에 부닥친 두 개의 검이 하나는 튕겨 나갔고, 나머지 하나 

는 박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비어 버린 가슴에 여운휘의 검이 꼽혔다. 

"이 놈이!" 

검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나머지 넷이 몸을 날렸지만 여운휘의 제왕검이 번뜩였다. 

콰앙! 

강한 내력이 담긴 제왕검에서 강기가 뿜어져 나왔고 피하지 못한 무인들의 몸은 갈기 

갈기 찢겨 나갔다. 

"쿨럭!" 

간신히 살아 남은 자 하나가 피를 토해냈다. 그는 오른쪽 팔이 어깨부터 양단 된 상 

태였다. 다른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이미 다리 한 쪽도 날아간 탓에 상당히 

많은 피가 쏟아졌다. 

가만히 둔다고 해도 결코 살아날 가망이 없다. 

"두, 두고보거라! 내 동료들이 언젠가 네 놈을……" 

사내는 혀를 깨물었다. 

푹 쓰러져 버린 사내는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여운휘는 제왕검을 바라봤다. 검에 피가 묻지 않는다. 검 날을 타고 흘러 내렸다는 

증거다. 

명검은 명검. 그리고 그만큼 제왕검이 지닌 무게도 적지 않다. 이것이 마교의 손으 

로 넘어간다면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치감을 느낄 것이 

다. 

그리고 아마 지금 나타난 자들은 마교에서 온 자들일 것이다. 

'급하군.' 

원래 빨리 움직였지만 더욱 빨리 무림맹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제왕검을 노리 

는 자들과 일일히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허리에 제왕검을 찬 여운휘는 어두운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퍼지고 있는 계략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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