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37)

사욱천은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마교 내부에 있는 주점을 찾았다. 평소 그 

는 자신의 거처에서 수하들과 술을 즐기곤 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 천마대 소속으로 있었을 때 자주 갔던 술집을 향해 발을 돌렸다. 그리고 

문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당장 꺼져!" 

"이, 이보게. 한 잔만 더 주면 되지 않는가." 

"도대체 네가 외상으로 먹은 술값이 얼마인지 알아? 그간 정으로라도 외상으로 달아 

줬지만 더 이상 못 참겠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주점의 주인이었고 그에게 옷소매를 붙들린 채로 밀려나오는 것 

은 낯익은 사내였다. 오른 손이 없는 무인. 천마대에 있었을 때 같은 동료로 있었 

던 사마연이다. 

막 밀쳐져 쓰러지려는 사마연을 사욱천이 받쳤다. 

잔기침을 토해내던 사마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는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오! 이게 누구야! 그 유명한 금천멸문대의 수장이신 사 대협이 아니신가!" 

"오랜만이군." 

"크크. 사 대협은 여전히 신수가 훤하구려." 

입을 여니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사욱천은 절로 이마가 찌푸려졌지만 곧 고개를 

흔들고는 그를 부축했다. 무인인데 술 몇 병에 몸도 지탱하지 못할 정도다. 

'이제는 무인도 아니지.' 

그렇게 오랫동안 검을 놓아 버린 자가 어찌 무인이겠는가. 

아무리 좋은 명검을 준다 해도 술을 먹기 위해 팔아 버릴 자를 무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욱천은 오랜만에 지기를 만나지 왠지 모르게 감회에 젖었다. 

금천멸문대의 수장이 되기 전, 그저 천마대의 무인으로 있었던 시절은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무공만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다가 지금의 별호인 무패도라는 것을 얻었고. 

사욱천은 사마연을 들쳐업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연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 

자 주인이 막 일갈을 터트리려 했다. 하지만 손을 들어올려 제지하는 사욱천을 보 

고 주인은 조용히 물러섰다. 

사욱천은 주점에서 가장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건너편에 사마연을 앉혔다. 

사마연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왠지 모르게 공허한 웃음이다. 

가볍게 시킨 술이 나오자 잔에 따라주며 사욱천이 입을 열었다. 

"잘 지냈는가?" 

"이 주정뱅이가 어찌 지냈을 지야 뻔하지 않소. 사 형." 

"사 형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군. 형이라는 말 실로 오랜만이야." 

아까전에는 대협이라고 치켜올렸던 사마연도 술잔이 채워지며 얼굴을 마주하게 되 

자 과거의 일들이 기억난 모양이다. 방금 전 비꼬는 듯했던 말투는 사라졌고 예전 

의 그로 돌아왔다. 

"당연하지 않소. 사 형은 예전 그대로가 아니니까. 그때는 그저 천마대의 무인이었 

지 금천멸문대의 수장은 아니지 않았소." 

"그래. 변하는 것이 인간이지. 인간도, 그리고 이 인간들의 집단인 마교도……" 

사욱천은 술을 들이켰다. 사마연 또한 그토록 원했던 술이니 만큼 조심스럽게 음미 

하듯 술잔을 홀짝였다. 

몇 순배의 술을 더 마시던 사욱천이 이외의 말을 했다. 

"내가 금천멸문대의 수장이 된 것은 자네 덕도 크다네." 

"큭, 이 놈의 주정뱅이가 말이요?" 

"기억나는가? 그때 전 마교의 주인이었던 유교주님이 천마대의 무인들에게 명을 내 

리지 않았던가. 자시에 태어난 열 살 된 아이들을 잡아오라는 명이었나?" 

"아아. 기억이 나오. 그때 나 또한 마교 밖으로 나갔었지." 

"그때 자네가 데리고 왔던 꼬마를 기억하나?" 

사마연의 몸이 움찔했다. 굳은 듯 경직해 있던 사마연은 고개를 저었다. 

"꼬마를 데리고 온 것은 기억이 나오. 하지만 이름이나 생김새 같은 건 전혀 기억 

이 나지 않소." 

"후후. 벌써 그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가 지났어. 잊는 게 당연하지. 어쨌든 그 아이 

를 보고 나태해지려던 마음을 다잡았지. 천마대 내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실에 우쭐 

했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 아이를 보고 다시금 무인의 혼을 불태웠지. 만약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면 나 또한 그저 천마대 소속의 무인으로 계속 있었을지도 모르 

는 일이야." 

사마연은 아무런 말도 없이 술잔만 홀짝였다. 사욱천은 그러한 사마연의 모습을 보 

다가 고개를 돌렸다. 열려진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멋진 눈을 가졌던 놈인데 소식이 없군. 그 놈…… 죽지는 않았어야 할 텐데. 안 그 

런가?" 

"…… 그깟 아이가 죽던 말던 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 하 

나 죽는다 해서 그게 큰 문제도 아니잖소."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에 은근히 가시가 있군." 

사마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사욱천을 향해 포권을 취해보이고는 짧게 

말했다. 

"난 이만 가야겠소. 사 형." 

"왜? 자네가 좋아하는 술도 있는데 한 잔 더 하지 않고." 

"아니오. 이제 사 형은 나와 얼굴을 맞댈만한 자가 아니오. 훗날, 죽기 전에 한 번 

만 더 찾아와 주십시오. 그 전까지는 만나지 말았으면 하오." 

"알겠네. 그리 하지." 

사욱천의 대답이 끝나자 사마연은 거칠게 주점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한 아이의 모습 탓이다. 

미친 듯 달리던 사마연은 숨이 턱까지 차 오르자 다리를 멈췄다. 그는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돌 벽에 몸을 기댄 사마연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운휘(餘雲輝)……"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여운휘라는 

이름도, 그토록 건방져 보였던 모습도. 잊을 리가 없다. 항상 술을 거하게 마신 후 

에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이였으니까. 

"하하. 살아 있다면 많이 컸을 게야. 벌써 삼십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테니까. 살 

아만…… 있다면." 

죽었을 게다. 살아있다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저번에 데려간 아이들 중에서 살아서 나온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는 것을. 

"운휘야. 운휘야……" 

짧은 만남이었다. 그토록 많은 말을 나눈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정을 쌓은 것도 아 

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온 몸을 감싼다. 

그 아이를 죽인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그를 미치게 만든다. 

이 같이 별이 밝게 빛나는 날에는 더욱 그 아이가 생각난다. 여운휘의 휘. 빛난다 

는 의미를 가진 휘라는 글자가 마치 저 하늘의 별을 생각나게끔 했으니까. 

사마연은 자신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눈가리기 식의 마교의 회의가 아닌 실질적인 세력들이 모였다. 

진린의 수하들이다. 백무량은 현재 마교 밖에 있는지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 외에 대부분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무린은 처음과는 달리 이런 자리가 익숙한지 태연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를 바라 

보던 좌운의 눈에 짧지만 강렬한 시선이 다가갔다 사라졌다. 

'변했군.' 

전에 봤을 때와는 확연히 변했다. 회의에서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몸에서 풍기는 기 

도도 그러하다. 이토록 짧은 시간만에 저 같은 도약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불 

가능에 가깝다. 

엄청난 기연을 얻기 전까지는 이러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좌운은 어렴풋이 눈치챘다. 사무린이 진린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진린이 의자에 앉아 손을 들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사무린은 이야기를 꺼내는 좌운을 힐끔 본 후 자리를 채우고 있는 다른 무인들을 하 

나씩 훑어보았다. 

일전에 봤던 추요광부, 장국광, 암영기. 그리고 이번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왕기(王 

基), 왕충(王充) 형제와 성난 호랑이라 불렸던 맹걸(孟杰)까지. 하나 하나가 모두 

무림을 호령하던 무인들이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진린 앞에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사무린은 진린의 정체를 안다. 그에게 스승의 예를 올린 후 사무린은 진린의 제자 

가 되었다. 진린에게 새로운 검법들을 전수 받았고, 온갖 영약들을 복용하게 되었 

다. 

진린은 사무린에게 자신의 정체를 말했다. 

강호십일객 중 최고수라고 알려진 일마가 바로 자신이라고. 처음 사무린은 무척이 

나 놀랐지만 곧 수긍했다. 일마가 아니고서야 이만한 자들을 이끌 수 없을 거라는 

생각 탓이다. 

"무림맹의 무인들 중 일부가 출발했네. 그리고 우리 쪽도 준비를 끝냈고. 격돌한다 

면 십에 팔은 우리의 승리일세. 하지만 결코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장강수로 

십팔채라는 이외의 변수가 있으니까." 

"장강수로십팔채는 우리가 맡지. 낄낄." 

왕씨 형제 중 형인 왕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린 아이를 방불케 하는 작 

은 덩치, 날카로운 눈빛과 소름이 돋게 하는 목소리를 가진 자다. 그에 반해 그의 

동생인 왕충은 마치 산을 연상케 할 정도의 우람한 몸을 지닌 자다. 

왕충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애초부터 왕충은 말을 할 수 없는 벙어 

리다. 

"좋아. 그럼 자네 형제들이 장강수로십팔채를 견제하게.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당 

장 연락을 취하고."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나 있나. 그림자처럼 접근해서 총채주인 혁련우의 목을 그어 

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장국광의 말에 좌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그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니지. 만약 우리가 암수를 써서 장 

강수로십팔채의 채주인 혁련우를 죽인다면 수황이 나설 게야. 그는 지금 중립적 위 

치에 서 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완전히 마음을 돌리겠지. 혁련우를 죽여 수황 

을 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더 우습지 않는가." 

좌운의 말에 장국광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 자는 내 상대가 아냐.' 

사무린은 장국광을 보며 자신했다. 무공은 강하지만 머리가 없는 자. 죽이려고 한다 

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진린 또한 그리 생각하 

고 있으리라. 

사무린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과 자신을 견주며 상하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 알겠지만 좌운이라는 저 노인에 대해서는 도통 모르 

겠다. 

분명 대단한 실력자다. 진린이 유독 그에게만 반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렇다. 또한 비상한 머리와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사람의 마음까지 파고드는 느낌 

이다. 

여태까지 침묵하고 있던 맹걸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좌운. 한 가지 물을 게 있네." 

"무엇인가?" 

"소교주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 보기에는 너무 풀어두는 듯 하이." 

"아, 그것에 대해서도 오늘 말하려고 했지. 자네가 이왕 말을 꺼냈으니 지금 하도 

록 하지." 

소교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사무린은 귀를 세웠다. 소교주의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여운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교주는 악양유가에 있네. 그 동안 소교주에 대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해봤 

는데 그녀의 뒤를 받쳐주는 유가가 만만치 않은 듯 하더군. 돈도 그렇고 무력도 나 

름대로 있는 모양이야. 더군다나 지금 소교주의 위치는 무림맹에서도 무시할 수 없 

는 입장이네. 지금도 무림맹에 엄청난 양의 돈을 대주고 있다는 군." 

"역시 그냥 둘 수 없겠군……" 

"물론이지. 소교주는 무림맹에 돈을 쏟아 붓는 것으로 마교를 흔들리게끔 하려고 하 

겠지. 우리들의 존재도 모르는 그녀로서는 아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야." 

좌운은 유설린이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암황이 없었 

다면 그것은 현실이 되었을 테고. 

"그럼 소교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일 겐가?" 

"지금은 아니야. 지금 죽여서는 안 되지. 유가라는 곳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 

어. 그들의 저력을 완전히 알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마음은 없네." 

"그렇지만 유가의 힘을 파악할 때까지 소교주를 풀어두는 것도……" 

"흐흐. 굳이 우리 손으로 소교주를 건드릴 필요는 없지. 우리는 그저 한 가지 소문 

만 무림맹 쪽으로 풀어버리면 그만 일세." 

좌운의 말에 맹걸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소문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가?" 

"간단하지 않은가. 유가의 소가주라고 알려진 여인이 실제로는 마교의 소교주였다 

는 사실을!" 

"허어!" 

그 말에 사방에 있던 무인들의 입에서 놀랍다는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좌운이 내놓은 방안이 최선의 것이라 

는 생각이 들지 않은 탓이다. 그러한 다른 자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좌운이 천천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림맹에 정보를 풀면 그쪽에서는 조치를 취하겠지. 소교주를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만…… 또 그러지도 못하지. 유가의 힘이 무림맹에 미치는 것도 적 

지 않고 여운휘라는 존재 탓이지." 

"죽이는 것이 안전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교주를 죽인다면 유가에서 나오던 돈줄이 끊기는 셈이야. 차라리 생포를 해서 감 

금을 하지 절대 죽이지는 않을 거란 말일세. 더군다나 여운휘라는 자가 지금 어떠한 

가. 무림맹에서 자신 있게 선두에 내놓은 무인이 아닌가. 근데 실상 그가 마교의 무 

인이였다는 소문이 퍼져보세. 후후. 무림맹 쪽도 그런 일은 원치 않을 게야." 

좌운의 설명이 끝나자 그제야 다른 자들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 

다. 

좌운은 그 후에 있을 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무림맹 쪽에서는 소교주를 감금할 것이고 우리는 그 동안 유가에 대해서 알아낼 걸 

세. 그 후에는 소교주의 목숨 따위는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우리가 죽이려고 달려 

들게 될 게야. 그러기 위해서는…… 여운휘라는 놈은 죽어야 해." 

그때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진린이 말했다. 

"굳이 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야. 아마 무림맹 쪽에서 그 자를 죽이려고 

들 테니까." 

"후후!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가?" 

"무림맹 쪽에서도 여운휘라는 자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오히려 폭탄이야. 어차피 인질 식으로 잡아 둘 것이면 하나면 족해. 그 

리고 인질로 잡을 것이면 여운휘보다는 소교주가 더 낫지. 내가 무림맹의 군사인 종 

리회연이라면…… 죽일 것이야." 

"나 또한 그리 생각하네." 

진린의 말대로다. 여운휘는 무림맹에서 중요한 자다. 그런 자가 알고 보니 첩자였다 

는 식으로 소문이 난다면 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또한 무림맹 

의 수뇌부에 그런 자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으로 불신감도 생길 것이다. 

그런 위험을 안느니 차라리 무림맹은 여운휘를 죽이려고 들 것이다. 

"여운휘라는 자가 옆에 없다면 소교주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더군다나 마교와 

무림맹의 전쟁 중이라면 더욱 감시망은 약해져 있을 테고." 

좌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든 일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마교와 무림맹의 전 

쟁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미 각본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끝도 이미 

짜져 있다. 

"일년, 일년 안에 무림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게야."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사무린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여태까지 몇 번의 회의를 하면 

서 단 한 번의 발언도 하지 않았던 사무린으로는 상당히 의례적인 일이다. 

"음? 무슨 일이지?" 

"그럼 여운휘는 죽는 건가요?" 

"무림맹에서 손을 쓴다면 살아남기는 어렵지." 

무림맹에서 여운휘를 죽이려고 한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최대한 조용히 죽이 

려 하겠지만 그래도 구파일방을 비롯한 오대세가, 그 외의 나이든 고수들이 여운휘 

에게 칼을 날릴 것이다. 

살아남는 건 하늘에 있는 별을 딸 정도로 어렵다. 

사무린의 아름다운 얼굴에 잔 경련이 일었다. 여운휘가 죽는다는 사실 탓이다. 다 

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운휘만은 그녀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 평생 이 같은 패배감 

에 시달리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때 진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여운휘라는 놈. 한 번 보고 싶군. 그냥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놈이야." 

"아무리 뛰어난 자라고 해도 적일세. 적이라면 죽여야지." 

"척마신풍대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나." 

"자, 자네!" 

뭐라고 말을 이으려는 좌운을 진린은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러자 좌운은 터져 나오 

려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일 정도 후면 신강에 다다를 걸세." 

"오일이라……" 

진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엇인가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이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뜬 그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 손수 그 놈을 만나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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